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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22화 (422/522)

2부. 22화

쏟아지는 룬을 보며 렌은 생각했다.

이 광경.

마치 어렸을 때 즐겨하던 달리기 게임의 캐릭터, 소닉이 죽을 때 같다고.

쏟아진 룬 조각들은 마치 탄성이라도 가진 것처럼 바닥에 한번 튕겼다가 위로 다시 치솟았다.

헨리는 그런 룬 조각들을 염동 마법으로 한데 모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 <대왕숭이>를 쓰러뜨리셨습니다. ]

[ <하층로 : 9존 1층>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

[ 스테이지 클리어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

[ 측정 완료. ]

[ 최고 기여자는 <헨리 모리스>님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헨리 모리스>님에게 스테이지 최고 보상을 지급합니다. ]

[ <대왕숭이의 룬>을 획득하셨습니다. ]

[ 모든 스탯이 5 상승합니다. ]

[ 5,000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쏟아지는 아카이브의 알림들.

파티를 맺었지만 그 혜택은 온전히 헨리 혼자 받았다.

당연했다.

어비스는 무임승차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편이었으니까.

헨리는 시선을 옮겨 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말끔하게 머리만 터져 죽은 대왕숭이의 시체를 보았다.

그 순간, 좌륵─ 소리와 함께 대왕숭이의 육체가 사라지고 무수한 양의 룬 조각들이 대신 남았다.

그것을 본 렌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헤, 헨리 씨! 이, 이건!”

“이게 이곳의 히든 피스다.”

“예? 이게요?”

“그래.”

히든 피스는 별게 아니다.

게임으로 치자면 개발자가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몰래 숨겨 놓은 것들……

그중에서도 단순한 이스터 에그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모두 히든 피스라고 볼 수 있다.

룬타곤을 만든 장인이 그러더군요. 만약 생명체를 타격 중에 룬타곤이 부서진다면, 그리고 그 대상 또한 죽음에 이른다면 그 대상은 룬타곤의 영향을 받아 온몸이 룬 조각이 될 거라고요.

다시 말해 헨리가 노리고 있던 히든 피스는 대장숭이가 아니라 룬타곤의 숨겨진 기능인 것.

물론 룬타곤을 위층계에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헨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제 올지 모를 나중을 도모하는 것보단 모든 게 부족한 현재부터 구축해 나가는 게 옳다고 판단했기에.

그런 의미에서 대장숭이는 룬타곤의 최적의 제물이었다.

클레버에 의하면 최하층에서 대장숭이만큼 등급 높고 많은 양의 룬 조각을 만들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고 했으니까.

헨리는 염동 마법으로 바닥의 룬 조각들을 모조리 쓸어 모았다.

그런 다음 인벤토리를 열어 획득한 룬 조각들의 수를 확인했다.

[ 대왕숭이의 룬 조각 x 2075 ]

[ 창숭이의 룬 조각 x 850 ]

어마어마한 양의 룬 조각들.

심지어 보스 몬스터인 대왕숭이의 룬 조각이 일반 창숭이들의 룬 조각보다 훨씬 더…… 아니, 압도적으로 많았다.

룬타곤 덕분이었다.

이윽고 헨리와 렌 앞에 공간을 네모난 모양으로 반듯하게 잘라 만든 차원문이 생겨났다.

2층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허나 헨리는 그 문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열심히 농사를 짓고 수확을 했으면 이제는 수확물을 음미할 차례.

헨리가 뒤쪽으로 앉는 시늉새를 해 보이자 지상으로부터 나무줄기가 휘감겨 솟으며 멋진 나무의자가 만들어졌다.

헨리는 그 위에 자연스레 앉아 신선의 항아리를 꺼내 룬 조각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온전한 하나의 룬을 획득할 때마다 바로바로 흡수해 스탯을 올렸다.

[ <대왕숭이의 룬>을 사용하셨습니다. ]

[ 근력이 1 올랐습니다. ]

[ 체력이 1 올랐습니다. ]

[ 에테르가 1 올랐습니다. ]

……

[ <대왕숭이의 룬>을 사용하셨습니다. ]

[ 감각이 2 올랐습니다. ]

[ 체력이 1 올랐습니다. ]

[ 에테르가 2 올랐습니다. ]

……

눈앞에 끊임없이 치솟는 아카이브 알림.

렌은 신기한 듯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헨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지켜보길 얼마간, 렌은 이 일이 꽤 오래 걸릴 거라는 걸 깨닫고 헨리 옆에 털썩 앉아 기대며 말했다.

“시간이 좀 걸리실 것 같아서 그런데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편한 대로.”

“이건 그냥 제 촉인데 헨리 씨는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아니다.”

역시.

그럴 것 같더라니.

렌이 물었다.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이십니까?”

“가우스.”

“가우스?”

“난 다른 차원에서 왔다.”

“……?”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렌은 미간을 좁혔다가 다시 폈다.

“그러니까 이세계 사람?”

“너희들 입장에선 그렇지.”

“하?”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무려 이세계 사람이었다니.

그래서일까?

놀라기 보단 오히려 흥미가 동했다.

일본인인 렌은 만화나 소설 중에서도 이세계물을 가장 좋아했으니까.

“근데 왜 처음엔 한국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한국에서 왔으니까.”

“그럼 불시착한 곳이 한국이란 말입니까?”

“불시착?”

정확히는 랜덤 게이트에서 제자를 만나 따라온 거지만 그 나라가 한국인 건 몰랐으니 불시착이라면 불시착이 맞았다.

그래서 대강 대답했다.

“그런 셈이지.”

“그럼 한국에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

“누군지 물어봐도 됩니까?”

“안 된다.”

“엑, 왜요?”

“내 개인적인 일로 그 녀석의 평화를 깨고 싶진 않으니까.”

그 말에 렌은 입을 다물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꽤나 복잡한 사연이 있어 보였으니.

이럴 땐 그냥 안 물어보는 게 매너다.

렌이 말머리를 돌려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어비스엔 어쩐 일로 오게 되신 겁니까?”

원초적인 물음.

저것에 대해 다 대답해 주려면 사연이 꽤 길다.

허나 그렇다고 재하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억을 심어 모든 걸 보여 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잠깐의 고민 끝에 함축해서 대답했다.

“구해 주고 싶은 녀석이 있어서 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헨리가 구하고 싶은 건 가우스, 그리고 중층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자신의 권속 클레버였으니.

그쯤이었다.

[ 모든 스탯이 최고 수치에 도달하셨습니다. ]

아카이브가 뜻밖의 메시지를 보낸 건.

헨리는 그 알림에 상태창을 켜 자신의 스탯을 확인했다.

++

[ 헨리 모리스 ]

- 신분 : 최하층민, 이레귤러

- 특성 : <강화D>

- 근력 : 99

- 체력 : 99

- 감각 : 99

- 에테르 : 99

- 어비스 포인트 : 5,025 ap

++

아카이브의 말대로였다.

헨리의 스탯은 모두 99로 최고 수치에 도달해 있었다.

허나 그에 비해 룬 조각은 아직도 많이 남은 상황.

아깝거나 당황스럽진 않았다.

헨리는 자신의 스탯이 이렇게 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헨리는 남은 룬들을 모두 조합해 룬 조각이 아닌 온전한 룬들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클레버에게 배운 대로 말했다.

“차원상인을 만나고 싶다.”

그러자 아카이브가 물었다.

[ 차원상인을 호출하시겠습니까? ]

그 물음에 응하자, 2층으로 향하는 문 옆에 새롭게 조그마한 문 하나가 그려졌다.

그것은 2층으로 향하는 문처럼 공간을 오려 만든 것처럼 반듯했다.

이윽고 네모난 공간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커다란 짐 보따리를 멘 난쟁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김새는 귀여운 요정 같았지만 그는 아저씨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헨리 앞에 섰다.

“읏샤, 반갑습니다. 차원상인 허멀트라고 합니다.”

차원상인.

줄여서 차원상이라 불리는 그들은 관리자와 비슷한 존재들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관리자가 공무원 느낌이라면 차원상들은 기업의 느낌?

그렇기에 렌도 차원상의 존재를 알고 있긴 했다.

기나 긴 하층로를 통과하기 위해선 중간 보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으니까.

허멀트가 탐욕스럽게 양손을 비비며 말했다.

“후후, 82번 하층로에서 9존 손님은 또 처음이네요. 자, 그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허멀트의 눈에서 탐욕이 빛난다.

당연했다.

유능한 상인이라면 돈 되는 걸 바로바로 알아보는 법이니까.

하물며 82번 구역에서 최초로 9존 1층을 클리어 한 플레이어다.

분명 거래할 게 많을 터.

헨리가 말했다.

“성장의 룬이 필요하다.”

“성장의 룬요?”

“그래.”

“당신이 성장의 룬을 어떻게……?”

뜻밖의 요구에 허멀트의 눈이 커졌다.

당연했다.

이곳은 최하층계로 ‘성장의 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하층 플레이어가 어떻게 성장의 룬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흠.’

허멀트가 눈꺼풀을 좁히며 이래저래 눈알을 굴렸다. 그 모습에 헨리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별로 거래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다른 상인에게 거래를…….”

“자, 잠깐만요!”

이 자식.

보통내기가 아니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밀당을 해?

그것도 초보자와 다를 바 없는 최하층 플레이어가?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절대 아니다.

무릇 진정한 상인이라 함은 숙여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

허멀트가 얼른 굽실거리며 말했다.

“에이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성장의 룬이라면 충분히 있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시죠?”

그 반응에 렌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차원상이 저런 태도도 보일 줄 아는 존재들이었던가?

최하층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차원상의 별명은 샤일록으로, 불친절하고 탐욕스럽게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말했다.

“4개.”

“4개씩이나……! 더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홀이 4개뿐이거든.”

“아, 홀 개념까지……!”

홀.

상태창에 난 스탯 개수를 뜻하는 용어로 홀이 많다는 건 스탯의 종류가 많다는 걸 의미했다.

그나저나 성장의 룬 4개라니.

대어였다.

허멀트가 입 안 가득 고이는 침을 애써 참으며 품에서 계산기를 꺼내 두들기기 시작했다.

허나 허멀트가 헨리에게 계산기를 내미는 날은 오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게 헨리가 먼저 물건 값을 꺼내 내밀었으니까.

헨리가 내민 건 대왕숭이의 룬 13개로 그것들은 룬 조각이 아닌 온전한 룬이었다.

그것을 본 허멀트가 물었다.

“이게 뭐죠?”

“물건 값.”

“아, 아니 그건 아는데 왜 룬으로 지불을…….”

“별로인가 보군.”

“에?”

“별로면 말해라. 다른 상인과 거래하면 되니.”

“…….”

허멀트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뭐지, 이 자식은?

어째서 이런 거래법을 알고 있는 거지?

심지어 시세까지 정확했다.

당연했다.

이 시세는 클레버가 가르쳐 준 거였으니까.

하층로의 시세는 거의 대부분 바뀌지 않습니다. 구할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고 드랍되는 것도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하층로에서 얻어지는 룬은 화폐처럼 쓰기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왕숭이의 룬은 하층로 한정 최고 단위의 화폐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 때문에 대왕숭이의 룬이 히든 피스 취급을 받는 것이었고.

이에 허멀트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못 이기는 척 손을 내밀었다.

“상인으로서 어떻게 거래를 거절하겠습니까? 제가 멈칫한 건 놀라서 그런 거니 부디 오해가 없으시길.”

이윽고 거래가 이루어졌고 헨리는 성장의 룬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성장의 룬을 확보한 헨리가 다시 대왕숭이의 룬 몇 개를 꺼내며 말했다.

“최하급 특성의 룬 2개.”

“……?”

새 대왕숭이의 룬을 본 허멀트가 당황스런 눈빛을 짓는다.

그 눈빛에 헨리는 클레버의 조언을 떠올렸다.

차원상들이랑 거래하실 때는 절대로 한꺼번에 거래하지 마시고 한 번에 한 품목씩만 거래하세요. 안 그럼 후려치거든요, 그 녀석들.

모든 건 매뉴얼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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