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6화
자욱한 흙먼지.
일순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그리고……
[ <작은 파수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 <작은 파수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 <거대한 파수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 <초대형 파수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
[ <작은 파수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 <거대한 파수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
눈앞에 떠오르는 무수한 양의 메세지들.
좀 전의 공격으로 증명의 관에 존재하는 수많은 파수꾼들이 절멸해 버린 것이다.
허나 헨리는 그런 알림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헨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 <증명의 파수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시스템 창을 본 헨리는 무표정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증명의 관을 휘감고 있던 흙먼지들이 돌개바람에 휩쓸려 사라졌고 그 아래 펼쳐진 거대한 나선 모양의 파괴흔이 드러났다.
헨리는 나선흔의 중심으로 내려갔다.
거대한 나선흔의 중심에는 마치 부유석처럼 두 뼘 정도 높이에 두둥실 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환생의 정수’였다.
유리병에 담긴 그것은 내부에 분홍빛으로 찰랑이고 있었다.
헨리가 환생의 정수를 집어 들자.
[ <환생의 정수>의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아카이브가 질문했고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
[ 환생의 정수 ]
- 등급 : ???
- 설명 : 증명의 관을 지키는 증명의 파수꾼이 지니고 있던 보물이다.
병을 파괴할 경우, 모자란 자격을 인정받고 본층에 입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
심플하기 그지없는 설명.
클레버의 기억에 따르면 이것을 사용하게 될 경우, 탑은 헨리의 육체를 탑에 맞게 재구성시키며 본층으로의 입탑을 허가해 준다고 하였다.
헨리는 그것의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정수를 파괴했다.
그러자.
푸쉬이이······!
파괴된 유리병으로부터 분홍빛 연기가 뿜어지더니 이내 곧 헨리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안기 시작했다.
[ <환생의 정수>를 사용하셨습니다. ]
[ <환생의 정수>가 플레이어 님의 육체를 재구성하기 시작합니다. ]
두 줄의 알림.
그리고.
화아아악!
별안간 분홍빛 섬광이 터지며 헨리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어지럽혀진 시야는 밝게 물들었고, 헨리는 시력을 빼앗긴 동안 몸의 감각이 요상하게 변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눈 감은 헨리가 생각했다.
‘육체의 재구성이라······.’
인간으로 태어나 두 번의 죽음 끝에 신이 되었다.
그 이후로 헨리의 육체는 단 한 번도 유기물이었던 적이 없다.
그저 보통의 존재들이 놀라지 않도록 유기물인 척 육신의 존재를 연기해 왔을뿐.
그렇기에 탑은 헨리의 육체가 자격에 미달된다고 하였던 걸까?
이윽고 육체가 완성되어 감에 따라 헨리는 점점 더 몸이 무거워짐을 알 수 있었고, 마침내······
[ 육체의 재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
[ 플레이어 님의 이름을 입력해 주십시오. ]
빼앗긴 시력이 회복됨과 동시에 헨리의 눈앞에 아카이브가 질문을 건네왔다.
‘내 이름이라······.’
주어진 칸은 비어 있다.
허나 적어야 할 이름은 하나뿐.
그럼에도 잠시 빈 칸을 바라보았던 건 어딘가에 자신의 진명을 남긴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잠깐의 감상 끝에 빈 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 갔다.
자랑스런 고향말로 말이다.
헨리가 빈 칸에 자신의 이름을 모두 적어 넣었을 때였다.
[ 플레이어 님의 이름을 어비스 아카이브가 기록합니다. ]
[ 축하드립니다! 어비스 아카이브에 플레이어 님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
[ 어비스는 <플레이어 : 헨리 모리스>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 어비스 아카이브의 모든 기능이 해금 되었습니다. ]
[ 현 시간부로 <상태창>과 <스킬창>, <인벤토리> 외 다양한 기능들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
여지껏 탑은 헨리를 헨리라고 부르지 않고 그저 이름 없는 무명의 플레이어로 취급했다.
허나 이제는 아니었다.
헨리는 당당하게 자신의 힘으로 탑의 인정을 받고 탑의 아카이브에 자신의 진명을 아로새길 수 있었다.
그때였다.
[ <플레이어 : 헨리 모리스>님은 <증명의 관>을 클리어 하셨기 때문에 클리어 보상으로 <특전>을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
[ <특전>을 수령하시겠습니까? ]
눈앞에 아카이브의 물음이 떠오른 건.
알림창을 본 헨리는 생각했다.
‘이게 클레버가 말한 그 특전이로군.’
반층에서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플레이어들을 탑은 ‘규격 외 입장자’, 혹은 ‘규격 외 플레이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증명의 관까지 클리어한 존재는 그 강력함을 인정하여 이레귤러라고 명명하는데.
이 특전은 오직 탑의 이레귤러들에게만 제공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절대로 놓쳐선 안 되는 보너스인 것.
그렇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 <보너스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
헨리의 시야가 다시금 어둡게 물들었다.
*[ <보너스 스테이지>에 입장하셨습니다. ]
귓가에 울리는 알림.
그즈음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헨리는 돔 형태의 방 안 한가운데 있었다.
방 안에는 수많은 카드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내용물을 감추기 위해 뒷면만 내보여지고 잇었다.
그 순간.
[ 원하시는 <특전>을 선택하십시오. ]
[ 한 번 선택하신 <특전>은 변경하실 수 없으니 신중하게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
아카이브의 안내.
역시.
예상대로 저 카드들이 바로 특전들이었다.
헨리는 시선을 옮겨 오른손에 힘을 주어 보았다.
그러자 펼쳐진 손아귀 사이로 옅은 에메랄드 빛 기운이 휘감겼다.
그런데……
‘정말이군.’
휘감기는 기운은 놀랍게도 마력과 신력이 아닌 마력뿐이었다.
‘육체를 재구성한다더니…… 정말이었군.’
신력이 사라졌다.
환생의 정수로 육체가 재구성되며 신력을 잃고 유기물로 이루어진 신체를 얻었기 때문이다.
클레버도 이와 같은 경험을 겪었다.
그도 그럴 게 신이 되기 위해선 유기물덩어리인 육체를 포기해야 했으니까.
다시 말해 헨리는 이제 ‘신’이 아닌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된 셈.
허나 상관없었다.
자신이 언제 신력 때문에 강했었던가?
헨리는 대마법사였다.
인류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그렇기에 신력을 잃어버린 몸이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비록 신력은 잃어버렸지만 자신의 근간되는 힘인 마력은 여전히 온전했으니까.
‘대신 공간의 권능 같은 건 이제 못 쓰겠군.’
클레버가 가우스로 돌아오지 못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헨리가 다시 시선을 옮겨 카드들을 보았다.
그런 다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자……
화아악!
머리 위에 라의 문장이 떠올랐다.
라의 눈이 머리 위로 떠오르자 마치 투시력이라도 생긴 것처럼 카드들의 뒷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력이 없어도 라의 눈은 여전하군.’
라의 눈은 본디 신법이었지만 헨리는 이 기술을 마법으로 개량해 냈다.
라의 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신법들 또한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근본되는 힘은 신법이 아닌 마법이었으니까.
투시력을 얻은 헨리가 카드에 담긴 특전 정보들을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
탑에서 획득하는 모든 어비스 포인트를 2배로 획득할 수 있다.
++
처음 보는 언어였지만 읽는 데 무리는 없었다.
랜덤 게이트에서 들었던 것처럼 탑은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해 통일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어비스 포인트의 2배 획득이라.’
그러고 보니 어비스 포인트란 것도 있었지.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지만 당시엔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클레버의 기억에 의하면, 어비스 포인트는 탑 내에서 사용되는 화폐라고 한다.
다시 말해 아주 쓸모없진 않다는 말.
하지만 헨리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어비스는 돈보다 힘이 더 중요시 되는 곳이었으니까.
‘이건 패스.’
이후, 헨리는 카드들을 연달아 확인해 나갔다.
특전 카드들은 대부분 구성이 비슷했다. 예컨대 색깔이나 등급 표기처럼 특별히 차이점을 두지 않았다는 말.
헨리와 같은 이레귤러들의 꼼수를 예상해서였을까?
아쉬웠다.
허나 다행인 점이라면 특전 내용 대부분이 클레버가 제공해 준 정보에 있었다는 것.
그렇게 구경하기를 한참……
‘이건…….’
방 안에 전시된 카드의 수만 어림잡아도 수백여 장.
헨리는 그중에서 카드 한 장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이게 좋겠군.’
후보로 삼을 만한 다른 카드들도 많았다.
클레버가 추천해 준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헨리가 판단하기엔 헨리가 고른 게 더 좋아 보였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대로 카드를 골랐다.
카드 선택을 마친 헨리가 카드에 손을 가져다 대자……
[ <특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 한 번 선택하신 <특전>은 변경하실 수 없습니다. ]
아카이브가 헨리에게 물었고, 헨리는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 <특전>을 지급합니다. ]
[ <특전>을 선택하심에 따라 <보너스 스테이지>를 종료합니다. ]
특전이 선택됐고 카드에 담긴 힘이 헨리에게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헨리의 시야가 다시 한번 어둡게 물들었다.
[ <본층>에 입장합니다. ]
*“······헉!”
몇 시간을 잔 걸까?
재하는 헉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바깥은 깜깜했다.
“이게 대체 무슨··· 윽! 머리가······!”
갑작스런 시간 변화에 기억을 떠올리려던 찰나, 도끼로 머리를 쪼개는 듯한 두통이 일었다.
고통은 차츰 잦아드는가 싶더니 이윽고 밀려 있던 기억들이 파도처럼 몰아치기 시작했고.
고통이 완전히 멎을 때쯤, 재하는 헨리가 자신에게 했던 말과 심어 준 기억들에 대해서 완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럴 수가······.”
그렇기에 힘이 빠졌다.
반층이라니.
어비스에 대해 꽤 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지만 반층 같은 건 여태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런 곳에 스승님 혼자서 홀연히 떠나 버렸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법 지식의 전수는 물론이요, 세상을 상대로 엄포까지 놓은 채로 말이다.
재하는 힘 빠진 다리를 억지로 부축해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자 지평선 너머로 차원탑 어비스가 신기루처럼 보였다.
“반층······이라고?”
지구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보.
그런 곳으로 그는 떠나 버렸다.
그래서일까?
일평생 안전과 쾌락을 고수해 온 자신이었건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런 것들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관심조차 가지 않았다.
재하는 조심스럽게 헨리에게 영성을 보내 보았다.
하지만······
“······.”
회신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동시에 심장의 쿵쾅거림이 느껴졌다.
“어비스······ 반층······.”
재하는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것들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재하의 두 눈에 신기루 같은 탑이 비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