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3화
고통에 몸부림치는 재하에게 헨리가 말했다.
“내 마법 지식의 모든 것을 네 머리에 심어 주마. 허나 그 지식을 그냥 얻을 순 없을 게다. 연습과 공부, 그리고 끝없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내가 준 것들을 절대로 네 것으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헨리는 재하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 것을 약속했다.
허나 어비스의 반층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마당에 그냥 떠날 순 없었다.
그래서 비록 봉인된 형태이긴 하나 자신의 모든 지식을 주입식으로 전수해 준 것이다.
그렇기에 재하를 걱정하진 않는다.
고작 저정도 고통에 죽을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을 마친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재하의 품에 있던 휴대폰이 헨리의 손아귀에 쥐여졌고 몇 번의 조작을 통해 한재호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신재하 헌터님!
수화음이 다섯 번도 채 가기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발랄한 목소리에 헨리가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협회로 가겠습니다.”
- 예? 갑자기요? 혹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경고하러 가는 겁니다.”
- 네? 경고요?
“예, 그러니 다들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바로 모이는 게 좋을 겁니다.”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헨리가 재하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다녀오마.”
*협회는 난리가 났다.
밑도 끝도 없이 신재하 헌터에게 협박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협회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협회장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협회로 모였다.
헨리는 진작에 협회장실에 도착해 있었다.
이윽고 헨리의 연락을 받은 모든 사람들…… 예컨대 협회장을 비롯한 헨리가 알 만한 사람들 전부가 협회장실로 모였다.
당황한 협회장이 자리에 앉지도 못 한 채 헨리에게 물었다.
“시, 신재하 헌터님? 갑자기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으셔서 이러시는 건지…….”
초조했다.
상대는 검증이 끝난 세계 최강의 헌터이자 재앙 그 자체.
얌전해 보이던 고양이가 호랑이가 되었으니 겁나는 건 당연했다.
헨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하실 말씀요?”
“예. 그리고 그 말은 오늘 딱 한 번만 할 테니 다들 새겨들었으면 합니다.”
웃음기는 없다.
헨리의 표정은 한없이 싸늘했고 그 표정에 모두들 마른침을 삼켰다.
헨리의 말이 이어졌다.
“현 시간부로 그 누구도 절 귀찮게 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제가 드러나서도 안 되고 게이트와 관련된 그 어떤 부탁도 해선 안 됩니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제 평화로운 일상에 어떠한 형태로든 지장이 생겨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설령 경제적인 문제일지언정 말입니다. 만약 그 어떤 형태로든 간에 절 귀찮게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순간.
화악!
협회장실 내부가 헨리의 살기로 가득 찼다.
“커, 커억!”
“커헉!”
털썩!
털썩!
헨리가 자신이 풍길 수 있는 살기의 아주 극소량을 방 안에 풀어놓자 그것을 견디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기절하고 말았다.
물론 살기를 견딘 사람들이라고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저 기절하지 않은 것뿐.
그들 모두 숨막히는 공포에 덜덜 떨고 있을 때 헨리가 이어 말했다.
“그땐 모두의 평화가 깨지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예……! 헌터님!”
“며, 명심하겠습니다!”
“그, 그 어떤 것도 헌터님을 귀찮게 할 순 없을 겁니다!”
“기, 기자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신재하 헌터님의 집에 얼씬도 못 하게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이유는 하나뿐.
오직 살기 위해서.
그들의 진심어린 대답에 헨리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그리고 이사는 하루 빨리 진행시키세요.”
“예!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헨리가 스르륵 모습을 감추자 기절하지 않고 버티던 사람들 전원이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식은땀으로 범벅된 협회장이 떨림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앙…… 이런 게 바로 재앙이구나…….”
*볼일을 마친 헨리는 다시 재하 앞에 나타났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협회 사람들을 협박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짓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종말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보다는 제자가 더 중요했고 앞으로 제자를 돌봐주지 못하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손을 써 두어야 했으니까.
재하는 쓰러져 있었다.
갑자기 주입된 급격한 정보 과부하에 지쳐 쓰러진 것이다.
헨리가 잠든 재하를 침대로 옮겼다.
‘제자야, 너와의 약속은 모두 지켰다. 그러니…….’
헨리가 말을 이으며 황금 열쇠를 꺼내 들었다.
‘만약 만날 수 있다면 탑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이윽고 황금색 광휘가 방 안에 번쩍였다.
*[ 어비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규격 외 입장자입니다. ]
[ 규칙에 의거, <반층>에 입장합니다. ]
빛이 번쩍이고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이어서 시스템 음성이 귓가에 멤돌았고 다시금 주변이 밝아졌다.
시야가 다시 밝아지자 바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재하의 자취방이 아닌 처음 보는 낯선 공간.
그곳은 3m 정도의 높이를 가진, 마치 어느 미궁의 내부처럼 앞뒤를 제외하곤 모든 면이 벽돌로 막혀 있었다.
[ <재생의 관>에 입장하셨습니다. ]
[ <튜토리얼 시스템>이 <어비스 아카이브>로 전환됩니다. ]
‘어비스 아카이브?’
이건 또 뭘까?
그때, 헨리의 눈앞에 새로운 안내창이 떠올랐다.
++
[ 어비스 아카이브 ]
- 어비스 아카이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비스 아카이브는 플레이어 님의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기록합니다.
- 어비스 아카이브는 탑을 이용하시는 플레이어 님들을 위해 대부분의 편의를 제공합니다.
- 설명문을 모두 읽으셨다면 <확인>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
그것은 어비스 아카이브에 대한 설명문이었다.
설명문의 물음에 헨리가 눈짓으로 확인 버튼을 누르자.
++
[ 어비스 아카이브 ]
- 플레이어 님은 규격 외 입장자로 <반층 : 재생의 관>에 입장하셨습니다.
- 미달된 규격은 <신체>입니다.
- <재생의 관>에서 규격에 맞는 적합한 신체로 재구성되시면 어비스의 <심사>후 <본층>으로의 입장이 가능합니다.
- 힘내시길!
++
어비스 아카이브가 헨리가 이곳에서 해야 될 일들에 대해 알려 주었다.
‘신체 조건이 미달됐다고?’
대체 왜?
헨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하지만 어비스의 규칙이 그렇다고 하니 일단은 따를 수밖에.
그때였다.
[ 0 - 1 스테이지를 시작합니다. ]
연이어 떠오르는 알림.
그리고……
쿵!
별안간 둔탁한 굉음과 함께.
구르르르르르……
뒤편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헨리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빛을 비추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거대한 둥근 바위 하나가 헨리를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음.”
이런 식으로 테스트를 하는 건가.
김이 샜다.
반층이니 뭐니 가타부타 말이 많길래 솔직히 좀 더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바위 굴리기라니.
헨리는 발로 바닥을 탁탁 찼다.
그러자……
휘오-!
헨리가 가진 특유의 힘들……
예컨대 마력과 신력이 단 한 방울도 빠짐없이 순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기본적인 4대 원소를 비롯한 각종 상태 리스크도 체크했다.
다행히 모든 게 정상이었다.
‘다행이군.’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힘들이 모두 사라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하긴,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자신은 마법의 신.
이젠 마력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했기에.
헨리는 달려오는 바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헨리의 손으로부터 희멀건 연기가 뿜어졌다.
희멀겋게 뿜어진 연기.
다름 아닌 냉기였다.
이윽고 헨리의 손아귀로부터 냉기가 뿜어졌다.
꽈드드드득─
냉기가 지나간 자리에 기다란 얼음선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뿜어진 냉기는 이윽고 바위를 집어삼켰고……
쩌적-!
쩌저저적-!
거대한 바위 전체를 얼려서 벽과 붙이는 데 성공했다.
싱겁기 그지없다.
헨리는 그대로 뒤돌아 두둥실 자신의 몸을 띄웠다.
높이는 지상으로부터 약 세 뼘 정도.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나아가 보기로 했다.
뒤가 아닌 앞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뒤는 바위가 막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헨리의 몸체가 앞으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후웅!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얼마 뒤, 헨리는 놀라운 광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건…….’
오랜 비행 끝에 마주한 것.
다름 아닌 헨리가 얼려 두었던 둥근 바위였다.
‘그렇군. 이 길은 사실 연결되어 있던 거였어.’
만약 이 사실을 몰라서 바위를 멈춰 두지 않았으면 아마 자신은 영원히 바위를 피해 뛰어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하찮은 놈들.’
고작 이런 식으로 자격을 테스트하다니.
헨리는 손에 마력을 모았다.
그런 다음 얼어붙은 바위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얼어붙은 결정들과 함께 산산조각 나 사방에 흩어지는 바위.
바위가 파괴된 직후였다.
[ 0 - 1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
[ 3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스테이지가 클리어 됐다.
핵심은 바위를 피해 도망치는 게 아닌 바위 자체를 부수는 것.
생각보다 허무한 결과에 혀를 차고 있던 차……
[ 0 - 2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곧바로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됨을 알리며 헨리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투두두둥!
사방에서 화살 세례가 발사된다.
마법으로 막았으나 화살비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이전 스테이지 때처럼 마법으로 화살 장치들을 파괴했다.
[ 0 - 2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 5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그러자 이번에도 스테이지가 클리어 됐다.
[ 0 - 3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다음 스테이지도 마찬가지였다.
3 스테이지는 불구덩이였다.
이 역시 마법으로 공간 자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 0 - 3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 4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다음 스테이지도 비슷했다.
무언가 헨리를 공격했고 이번에도 그 자체를 파괴했다.
[ 0 - 4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 7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
[ 0 - 5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 2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
다음도.
그다음도.
그다음 스테이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 나갔을 때였다.
[ 0 - 11 스테이지를 시작합니다.]
시작되는 11번째 스테이지.
그즈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단계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벌서 11번째 스테이지가 진행되었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바뀌는 것이라곤 그저 헨리를 해하는 방식들만 조금 바뀌었을뿐.
그때였다.
쿵!
드르르륵……
좁은 길목.
뒤에서 굴러오는 바위.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 봤던 그것이었다.
헨리는 굴러오는 바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다음 마력을 쏘아 보냈다.
이번에도 바위를 파괴할 심산으로.
그러나……
텅!
놀랍게도 바위는 헨리의 마력을 튕겨 내고 계속해서 헨리에게 굴러왔다.
사용된 마력은 처음 바위를 파괴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수지 못 했다.
헨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까보다 더 많은 마력을 압축시켜 마력포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그제서야 바위가 부서졌다.
[ 0 - 11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
[ 3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 0 - 12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12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됐다.
등장한 것은 화살 세례.
혹시나 하는 마음에 2스테이지 때와 동일한 수준의 실드를 만들었다.
그러자 실드가 와장창 깨졌다.
다행히 헨리에게 닿지는 않았다.
화살이 헨리에게 닿기 전, 새로운 실드를 덧씌웠으니까.
“그렇군.”
허나 그로 인해 헨리는 확신할 수 있었다.
스테이지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