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06화 (406/522)
  • 2부. 6화

    강남 도곡동에 위치한 헌터 팰리스.

    헌터 팰리스 정문 앞에 도착한 재하가 질문했다.

    “근데요, 스승님.”

    “왜 그러느냐.”

    “계속 보니까 텔레포트나 블링크 같은 걸 막 쓰시던데 저희 대중교통 말고 그냥 마법으로 이동하면 안 될까요?”

    솔직히 아까웠다.

    헨리가 정말 대마법사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 물음에 헨리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왜요?”

    “공간 이동 마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뭐가 됐든 지구에서 막 쓰기엔 조건들이 부적합해.”

    “예를 들면요?”

    “텔레포트는 좌표를 모르고 공간의 권능은 내가 관장하는 지역이 아니라 육안으로 본 곳 이외엔 사용할 수가 없다.”

    “텔레포트랑 공간의 권능이 달라요?”

    “후자가 더 높은 차원의 힘이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블링크 같은 것도 쓸 줄 아세요?”

    “마법도 없는 세상에서 블링크는 또 어찌 아는 게냐?”

    “소설이나 게임에는 등장해요. 실존하지만 않을뿐이지.”

    “블링크는 가능하다. 블링크는 근거리 이동 마법이니까.”

    “그렇군요.”

    궁금증이 해결된 재하는 결심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헨리를 데리고 전국일주라도 한번 해야겠다고.

    ‘아니면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거로도 대체가 되려나?’

    그때였다.

    도민호가 헌터 팰리스 정문에서 튀어나온 건.

    “재하 님!!”

    눈치 없게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도민호.

    도민호의 목소리에 헨리는 작전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도민호는 인스타그램에서 발췌한 정보들에 의하면 올해 스물한 살의 전형적인 철없는 부잣집 아들래미로.

    재하 앞에 선 도민호가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두 손을 베베 꼬며 말했다.

    “재하 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서 정말 영광입니다!”

    “조용히 좀 하지?”

    “예?”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도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쯧, 생각이 바뀌었어. 난 그냥 돌아가겠다.”

    “예?”

    말을 마친 재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려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도민호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곧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씨발, 뭐야? 미친놈인가?”

    처음엔 할 말이 있다며 만나자고 제안하더니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다며 가 버렸다.

    미친놈도 저런 미친놈이 없다.

    “시발, 이것 때매 쇼핑 약속도 취소했는데 다시 잡아야겠다.”

    도민호는 욕설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도민호의 집은 54층.

    도곡동에 위치한 헌터 팰리스는 입주민을 제외한 외지인에 대한 입장이 매우 엄격하며.

    그 흔한 배달조차도 1층에서 경비원들이 대신 받아 올려 보낸다.

    이윽고 집에 도착한 도민호는 나갈 채비를 한 뒤 집을 나섰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도민호의 집은 입주 가정부 같은 걸 들이지도 않았고 그 흔한 애완동물도 기르지 않았으니까.

    그때였다.

    “흠.”

    텅 빈 집 안에 목소리가 울린다.

    헨리였다.

    헨리는 재하가 말한 대로 은신 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도민호를 따라 조용히 집에 들어온 것이다.

    은신 마법은 해제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집 안에 CCTV가 작동 중일 수도 있을 테니.

    심지어 헨리는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 바닥에서 조금 몸을 띄운 채로 걸어 다녔다.

    마치 허공답보를 하듯 말이다.

    ‘여기 있군.’

    각성의 돌은 도민호의 방에 있었고 놀랍게도 값비싼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난 방지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다.

    ‘부자의 자신감이란 거겠지.’

    헨리는 그것을 챙겨 조용히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

    *“진짜 가져오셨네요.”

    “그 아이는 모르게 가지고 왔다. 집에도 사람이 없었고.”

    “알겠습니다.”

    도둑질은 나쁜 거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니까.

    헨리가 각성의 돌을 들고서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

    “사용이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사용?”

    그 순간.

    [ 각성의 돌을 사용하셨습니다. ]

    [ 정말 각성하시겠습니까? ]

    [ 한 번 각성된 플레이어는 두 번 다시 각성되기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실 수 없습니다. ]

    헨리의 눈앞에 처음 보는 시스템 메시지들이 나타난 건.

    헨리가 시스템 메시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도 이게 보이느냐?”

    “각성하겠냐고 묻는 메시지가 뜨셨나 보네요. 당연히 전 안 보이죠. 그건 스승님한테만 보이시는 거예요.”

    “그래?”

    “예.”

    “만약 하겠다고 대답하면?”

    “각성하시는 거죠, 그럼.”

    “하겠다.”

    [ 수락하셨습니다. ]

    [ 각성을 진행합니다. ]

    헨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애초에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이 난리를 친 거니까.

    헨리가 물음에 수락한 순간, 각성의 돌이 황금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금빛 광휘는 이어서 헨리를 집어삼켰고 천천히 안개 흩어지듯 사방으로 사라졌다.

    화려한 이펙트가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잠자코 지켜보던 재하가 짐짓 긴장한 얼굴로 헨리에게 물었다.

    “좀 어떠세요?”

    “음…….”

    이펙트가 끝난 뒤, 헨리는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딱히 육안에서 비춰지는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느껴지는군.”

    “느껴져요?”

    전신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 기운.

    재하의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고 희미하지만 종말들이 두르고 있던 것과 본질이 같은 힘.

    에테르였다.

    “정말이군. 에테르는 플레이어가 되기만 해도 얻을 수 있다는 게.”

    “각성 축하드립니다, 스승님.”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그냥 하는 말이죠 뭐. 그럼 이제 상태창을 한 번 켜보세요. 플레이어가 되면 상태창과 스킬창, 그리고 인벤토리까지 세 가지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돼요.”

    “상태창?”

    그 순간, 헨리의 눈앞에 헨리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뭔가가 나타났군.”

    “상태창이요?”

    “그래.”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나요? 아니지, 정확히는 무슨 특성을 얻으셨나요?”

    “특성?”

    “거기 적혀 있을 걸요? 특성이라고.”

    “그렇군. 적혀 있구나.”

    “뭐라고 적혀 있나요?”

    “‘<강화F>’.”

    “예?”

    “‘<강화F>’라고 적혀 있다.”

    “아…….”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아뇨, 뭐…… 문제까진 아닌데…… 혹시 다른 특성은 또 없으신가요?”

    “없다. 이게 전부다.”

    “아하…….”

    재하의 어색한 반응에 헨리가 말없이 자신의 상태창을 응시했다.

    ++

    [ 특성 : <강화F> ]

    근력 : 1

    체력 : 1

    감각 : 1

    에테르 : 1

    ++

    상태창은 생각보다 간결했다.

    심지어 직관적이기까지 했다.

    ‘이게 상태창이란 거군.’

    재하에게 들어 스탯에 대한 개념은 이해했다.

    그런데 모든 스탯들이 1이다.

    이제 막 각성해서 그런 걸까?

    허나 마나 하트 안의 마력은 그대로였고 플레이어가 됐다고 해서 힘이 약해진 건 또 아니었다.

    헨리가 물었다.

    “표정을 보아 하니 별로 좋은 특성은 아닌 모양이구나.”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건 없지. 스탯이든 특성이든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플레이어 시스템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종말이 사용하는 힘이 에테르다.

    그리고 자신은 그놈들을 가우스에서 몰아내기 위해 이차원의 바다를 여행한 것.

    그러니 놈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반드시 에테르란 힘을 키워야만 했다.

    그게 놈들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제자야.”

    “예, 스승님.”

    “이 에테르란 힘은 노력하면 상승시킬 수 있는 것이냐?”

    “예, 뭐. 스탯은 고정적인 게 아니니까요.”

    “그렇군. 그럼 됐다.”

    성장의 가능성만 열려 있으면 됐다.

    자신은 여태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아주 조그마한 가능성만 있으면 항상 돌파구를 찾아왔으니까.

    “그럼 이제 어비스에 갈 수 있는 게냐?”

    헨리의 물음에 재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어, 그게…… 준비 과정으로 치자면 이제 막 첫 단계를 클리어 하신 거긴 합니다.”

    “플레이어가 됐다고 해서 어비스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냐?”

    “예. 어비스에 가려면 열쇠가 필요하거든요.”

    “열쇠?”

    “게이트 안에서만 드랍되는 건데 열쇠 조각을 모아 하나의 온전한 열쇠를 만들어야지만 어비스에 드나드실 수 있게 됩니다.”

    “쯧, 절차 한 번 복잡하구나. 그럼 이번에도 그 열쇠인지 뭔지를 찾아 오거라.”

    “또 뺏어 오시려구요?”

    “빌려오는 거다.”

    “쩝, 마음 같아선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은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되세요.”

    “왜?”

    “열쇠 조각은 플레이어에게 귀속되는 귀속 아이템이라 플레이어가 직접 일일이 모아야 되거든요.”

    “뭐?”

    “그뿐만이 아니에요.”

    “또 뭐가 남았느냐?”

    “예.”

    “후, 한번 설명해 보거라.”

    “옙, 우선은요…….”

    헨리의 명령에 재하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헨리는 점점 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방금 말한 것들을 다 해야지만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냐?”

    “네.”

    “나 참, 어이가 없군.”

    헨리가 열쇠 조각을 모으러 게이트에 입장하기 위해선 우선 가장 먼저 신분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물론 신분 자체야 헨리가 아닌 ‘신재하’로 활동할 테니 별문제가 없긴 했으나 문제는 회견장에서 헨리가 재하를 2차 각성자라고 선언해 버린 것.

    쉽게 말해, 재하는 현재 미등록 2차 각성자로서 제대로 된 헌터 활동을 하고 싶다면 협회에 가서 2차 각성에 대한 재검사를 받고 헌터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꼭 해야 하느냐?”

    “세계 각성법 때문에 무조건 하셔야 해요.”

    “만약 거부하고 마음대로 게이트를 드나든다면?”

    “그땐 범죄자로 표적이 되어 추적을 당하시겠죠? 아니지 아니지, 따지고 보면 제가 추적을 당하겠군요.”

    “…그래서, 그 2차 각성 재검사라는 것만 하면 되느냐?”

    “일단은요. 아, 그리고 하시는 김에 휴대폰도 하나 만드시죠.”

    “휴대폰은 왜?”

    “저랑 스승님이 항상 같이 다닐 순 없잖아요. 비상 연락을 위해서라도 휴대폰은 필수입니다.”

    “그런 것 때문이라면 굳이 안 만들어도 된다.”

    “예?”

    “이렇게 하면 되니까.”

    순간 헨리의 눈이 잠깐 푸르스름하게 빛나더니……

    - 이러면 되겠느냐?

    놀랍게도 재하의 머릿속에 헨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 놀란 모양이구나.

    “텔레파시? 텔레파시도 쓸 줄 아세요?”

    - 텔레파시가 뭐지?

    “정신으로만 대화하는 거요. 무협지에선 전음이라고 해요.”

    - 무협지는 또 뭐고 전음은 또 뭐냐?

    “무협지랑 전음은…… 아무튼 같은 말입니다.”

    - 텔레파시와 전음이라…… 둘 다 처음 듣는 말이지만 이건 영성이라는 것이다. 네 혼에 내 표식을 새겨 두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예? 영혼이요?”

    - 그래.

    “제 영혼에 표식은 언제 붙이셨는데요?”

    - 게이트 안에서 네 손바닥에 새긴 것, 그게 표식 각인이다.

    “예?”

    - 걱정하지 마라. 너를 강제하는 노예 각인 같은 게 아니니까. 단지 네 위치를 파악하고 소통하기 위해 붙여 둔 것뿐이다.

    “아, 네…….”

    그렇다면 다행이고.

    재하가 물었다.

    “근데 이 영성이란 건 스승님만 말씀하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 아니, 너도 할 수 있다. 정신을 집중해서 내게 한번 영성을 보내 보거라.

    “어, 음…….”

    재하는 요령이 좋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바로 영성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 이렇게요?

    - 곧 잘 하는구나.

    이로써 연락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럼 이제 무얼 하면 되느냐?”

    “이젠…… 어떻게 해야 2차 각성자로 속일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겠죠?”

    “속여?”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제가 강해졌다는 걸 보여 주셨잖아요. 그러니 그에 걸맞은 무력 수치를 검증해 줘야 면허가 갱신되죠.”

    “그렇군. 근데 그 재검사라는 건 과정이 어떻게 되느냐?”

    “보통은 타인의 정보를 엿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헌터가 검사원으로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란 거군?”

    “그렇죠?”

    “그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요?”

    “이런 방법.”

    헨리가 말을 마친 순간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지더니 재하를 덮쳤고 재하는 몇 초도 안 되어 망망대해에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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