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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04화 (404/522)

2부. 4화

“와…….”

휴대폰으로 실시간 중계를 보고 있던 재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리 약속한 것이라 더 놀랄 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헨리의 인터뷰를 보니 뒷일이 두려워진 것이다.

“저게 대체 무슨 컨셉이야…….”

평소 자신의 성격과는 굉장히 거리가 만 말투와 행동들.

마치 고고한 귀족처럼 행동하는 모양새가 재하의 입장에선 몹시 오글거렸다.

그때였다.

우웅!

울리는 휴대폰 진동.

그리고……

- 월간 플레이어의 박종진 편집장입니다. 혹시 신재하 씨 되시면……

- DBS의 임진하 국장입니다. 신재하 씨, 거두절미하고 제안……

- 오미스 대장간입니다. 신재하 씨에게 광고를……

- 천룡 길드입니다. 신재하 씨께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쏟아지는 문자와 톡들.

전화도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바람에 더 이상 방송도 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헨리가 돌아온 게.

인터뷰를 마치고 온 헨리가 재하에게 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은 잘 해결되었다.”

그 당당한 표정에 재하는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미리 협의된 상황에서 무엇을 더 따질 수 있으랴.

재하는 그냥 체념하기로 했다.

“아, 예.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너희 집으로 가자꾸나.”

“저희 집이요?”

“그럼? 우리 집에 가리?”

“아…….”

헨리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짓자 재하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정신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래. 그럼 얼른 집으로 안내하거라.”

“어…… 그런데요, 스승님.”

“왜 그러지?”

“저희 집이 여기서 좀 먼데, 괜찮으시겠어요?”

“마차를 타야 하나?”

“마차…… 비슷한 건 타야 해요.”

“그럼 타고 가면 되지 않느냐?”

“돈은 있는데, 아시다시피 이게 문제예요.”

재하가 말과 함께 자신의 얼굴을 가리켜 보였다.

그 제스처에 헨리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못생긴 게 왜?”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리고 저 안 못생겼습니다!”

“가우스의 기준으로는 추남이다.”

“아, 네. 그러셨군요. 아무튼 좀 전에 스승님의 인터뷰 때문에 저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 아……!”

재하는 그제서야 이 대화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헨리는 지구의 문명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니 방송 같은 미디어에 대한 개념도 없을 것.

결국 재하는 노인에게 스마트폰 조작법을 설명하듯 현재 자신이 처한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재하의 설명을 들은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문물이군. 아무튼 얼굴이 팔려서 돌아다니기 힘들다는 게지?”

“예.”

“그럼 얼굴을 바꿔 주마.”

말과 함께 헨리가 손가락을 탁! 하고 튕겼다.

그러자 헨리와 재하의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재하가 휴대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며 감탄했다.

“우와…….”

“지구에서 본 얼굴들 중 아무 이목구비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역시 마법이란 건 대단하네요.”

“마법은 위대하지. 아무렇게나 조합했는데도 네 얼굴보단 나으니.”

“……됐구요. 바꾸시는 김에 스승님의 옷도 좀 어떻게 안 될까요?”

“내 옷은 왜?”

“지구에선 그런 옷 안 입거든요.”

“까다롭구나.”

재하의 조언에 헨리는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아까 회견장에서 보았던 깔끔한 캐쥬얼 정장으로 의복이 바뀌었다.

헨리의 변장을 본 재하가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이제.”

“그래.”

*[ 다음 역은 신도림, 신도림 역입니다. ]

집으로 가기 위해 재하는 헨리를 데리고 신도림역으로 왔다.

그런데 헨리를 데리고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승님! 지금은 건너시면 안 됩니다!”

“왜?”

“빨간불이잖아요!”

“빨간불?”

“하, 그러니까 저건 횡단보도라는 건데…….”

미칠 노릇이었다.

헨리는 지구 문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흡사 야만인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무얼 하든 간에 네 살배기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일일이 모든 걸 알려 주어야만 했다.

“저건 뭐니, 제자야?”

“저건 전광판이라는 겁니다.”

“전광판?”

“그게 그러니까…… 티비 패널 같은 거에다가 광고를 띄우기 위해 만들어진 건데…….”

“티비 패널? 티비 패널은 아까 말했던 티비랑은 또 다른 것이냐?”

“…….”

마치 육아를 하는 기분.

허나 답답해 미칠 것 같은 재하와는 달리 헨리는 즐거웠다.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구나.’

마법사는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자신이 모르는 걸로 가득한 이 지구라는 곳은 헨리에게 있어 얼마나 가슴 뛰는 모험지란 말인가.

재하는 자취방이 있는 부천까지 가는 동안 헨리에게 많은 것들을 쉴 새 없이 설명해 주어야 했고.

그 덕에 헨리는 지구의 문물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되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부천역 인근의 원룸 자취방 건물에 도착했을 때였다.

“세상에…….”

자신의 자취방 앞을 본 재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냐하면 평소엔 인적이 드문 자취방이었는데 오늘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된 재하의 신상이 털려 집 주소지가 인터넷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몰려든 인파를 보며 헨리가 말했다.

“사람들이 많구나. 근처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냐?”

“무슨 일…… 예, 생기긴 했죠.”

“무슨 일이 생겼느냐?”

“저 사람들 전부, 저 보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 방송인지 뭔지 때문에?”

“예, 스승님.”

“흠,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구나.”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의 힘이라면 간접적으로나마 보여 주었을 텐데 저들은 겁이라는 게 없는 건가?

그게 아니면 자신쯤은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모든 게 다 자신의 불찰이라고 생각했다.

헨리가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본보기를 보이지 않아 이리 된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본때를 보여 주는 편이 맞을 것 같구나.”

“예? 아뇨아뇨! 스승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게냐?”

“사람들 막 함부로 해하고 그러시면 정말 큰일 나세요.”

“내가? 큰일이 난다고?”

“……따지고 보면 제가 큰일이 나겠죠. 아무튼 한국은 법치국가라 막 함부로 사람들 때리고 그러시면 경찰한테 끌려갑니다.”

“경찰이라면 아까 그 법을 집행하는 자들 말이냐?”

“예.”

“그럼 저들이 저러고 있는 건 위법이 아니고?”

“그건…….”

그렇게 물으니 할 말이 없었다.

저리 몰려 있는 건 분명 민폐가 맞았으나 법적으로 따지면 무어라 적용할 만한 게 없었으니까.

“그…… 아무튼 폭력은 안 됩니다.”

“그럼 집에는 어떻게 들어가고?”

“일단 변장을 했으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흠…… 알겠다.”

결국 재하의 권유대로 헨리는 인파를 뚫고 원룸 건물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난관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누구십니까?”

건물 입구 앞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경찰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

경찰의 물음에 재하는 순간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신분증을 꺼내 손짓으로 자신이 신재하임을 밝혔다.

허나 의심 많은 경찰은 그 사실을 쉽게 믿어 주지 않았다.

“잠시만 안으로 드시죠.”

경찰은 안으로 두 사람을 들였다.

신분증에 있는 사진과 변장한 재하의 얼굴이 달라 정밀 검문을 위해서였다.

다행히 헨리가 타이밍 좋게 얼굴에 걸린 마법을 지워 주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자취방이 있는 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그제서야 헨리가 말했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매번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냐?”

“아마 한동안은 그렇지 않을까요?”

“쯧.”

조용히 혀를 차는 헨리.

예나 지금이나 검문은 별로 유쾌한 의례가 아니었으니까.

이윽고 자취방 앞에 도착한 재하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간 직후였다.

“…….”

현관 앞에 선 헨리가 말없이 재하의 자취방을 보았다.

신발을 벗던 재하가 그 모습을 보고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여기가 너희 집인 게냐?”

“예, 그런데요?”

“아니다, 아무것도.”

“거, 이미 얼굴로 하실 말씀 다 하셔 놓고 아니긴 뭐가 아니십니까?”

“그럼 솔직하게 말하마. 제자야, 넌 굉장히 가난한 모양이구나.”

“……당당한 표정으로 그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듣는 가난뱅이 기분 나쁘다구요.”

“난 이런 집에선 못 지낸다.”

“아, 그럼 으리으리한 집이라도 한 채 지어 주시던가요.”

“그 편이 나을 것 같군.”

“예?”

“잠시 비켜 보거라.”

말을 마친 헨리는 양손을 들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켜 원을 그렸다.

그런 다음 돌리던 손을 맞잡아 박수치자 재하의 눈앞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와.”

재하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나지막한 감탄.

당연했다.

헨리가 손짓을 마친 순간, 좁디좁은 원룸 자취방 안이 순식간에 대저택의 그것으로 바뀌었으니까.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으리으리한 저택 내부의 위용에 감탄하고 있던 재하는 순간 정신을 퍼뜩 차리며 말했다.

“이, 이게 말이 돼요? 원룸 안에서 어떻게 대저택이 지어져요?”

“공간 마법에 대한 이해도만 높으면 이런 아공간을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니지.”

“아공간이요?”

“그래.”

“아공간…….”

아공간.

소설이나 게임에서만 듣던 단어였다.

그런데 그런 신비로운 힘을 직접 경험하는 날이 오다니.

장담컨대 이런 류의 힘을 가진 플레이어는 지구 어디에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가슴이 뛰었다.

재하가 물었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제자야.”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거요. 혹시 마법을 가르쳐 주신다는 뜻인가요?”

“그것도 포함되긴 하지.”

그 대답에 재하가 넙죽 허리를 접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배우겠습니다.”

“좋은 자세구나.”

재하의 가슴에 마법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종말이요?”

집만큼 심신의 안정을 취하기에 좋은 곳은 없다.

비록 헨리가 마련해 준 저택이 판타지풍의 인테리어이긴 하였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국의 휴양지에 와서 값비싼 테마 호텔에 지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하는 헨리가 마법으로 마련해 준 차를 마시며 헨리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래. 내가 살던 세상은 이름도 모를 종말들 때문에 멸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지.”

“그리고 놈들이 사용하던 힘이 에테르로 추정되시는 거고요?”

“확실하다. 종말들이 가진 것에 비하면 너희가 가진 건 희미하기 짝이 없지만 근간은 결코 다르지 않아.”

“종말이라…….”

헨리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그나저나 종말이라니.

에테르를 사용한다면 분명 어비스에서 비롯된 놈들일 것 같은데 어떤 놈들인지 참 궁금했다.

“종말에 대해 궁금한 모양이로구나.”

“엇…… 티 났나요?”

“얼굴에 대놓고 쓰여 있더구나.”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지.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종말들을 보여 주마. 어쩌면 네가 아는 놈들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을 마친 헨리는 손가락을 뻗어 재하의 미간을 톡 건드렸다.

그 순간……

화아아악!

수천 년에 달하는 종말에 대한 헨리의 기억들이 주마등 스치듯 재하의 머릿속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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