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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03화 (403/522)
  • 2부. 3화

    “자, 자, 잠시만요! 잘 부탁한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설마 낯선 이국에 연고도 없는 나를 그냥 방치해 둘 심산이었느냐? 네 생명의 은인인 나를?”

    “아, 아니, 그, 그건 아닌데요…….”

    “그럼 되었구나.”

    “…….”

    할 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헨리는 생명의 은인이 맞았으니까.

    헨리가 말했다.

    “내 이름은 헨리다. 부를 땐 반드시 님 자를 붙이도록.”

    “아, 넵…….”

    “그나저나 좀 전에 지켜보니 꽤나 곤란해 보이던데, 혹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게냐?”

    “예? 아뇨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괜찮다. 혹시라도 마녀 사냥을 당하고 있다면 내가 너를 도와 누명을 벗겨 주면 되니 솔직하게 한번 말해 보거라.”

    “진짜 그런 거 아닌데…….”

    “말해 보래도.”

    “하, 그게…….”

    재하는 어쩔 수 없이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재하의 사정을 들은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원래는 죽었어야 할 운명인데 자격도 안 되는 놈이 게이트를 클리어 해서 사람들이 진실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음.”

    사실 해결법은 간단했다.

    사람들에게 헨리의 존재를 밝히면 될 일.

    허나 헨리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일.

    재하는 앞으로 자신을 보필할 지구의 보좌관자 비서였으니까.

    얼마간 고민한 끝에 헨리가 말했다.

    “그냥 네가 해결한 걸로 하자꾸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2차 각성이란 게 있다며? 게이트 안에서 네가 2차 각성을 해서 해결한 것으로 하자고.”

    “거짓말을 하자구요?”

    “난 별로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어차피 넌 게이트 안에서 죽었어야 할 목숨이 아니더냐. 그러니 그냥 네가 해결한 걸로 하자는 게다.”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재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허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했다.

    ‘무작정 거절하는 건 통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반드시 논리를 장착해야 해.’

    판단을 마친 재하가 말했다.

    “하지만 얕은 거짓말이라 금방 들통날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해 줄 테니.”

    “어떻게요?”

    “이런 식이면 되겠느냐?”

    헨리가 말을 마친 순간 헨리의 외견이 순식간에 재하와 똑같이 변했다.

    간단한 의태 마법을 부린 것이다.

    “……어?”

    “네가 말하는 얕은 거짓말의 근거가 힘의 증명이라면 그건 내가 대신 해결해 주마. 그러니 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영웅 행세만 하면 된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헨리가 생각지도 못 한 패를 꺼내 들었으나 재하는 지지 않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임시 방편일뿐이잖아요?”

    “그렇지. 내가 지구에 영원히 있을 것도 아니니까.”

    “너무 무책임 하신 거 아니에요?”

    “뭐가 됐든 목숨값보단 싸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지만…….”

    목숨값과 생명의 은인……

    무적의 단어들 앞에 재하는 더 이상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재하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울상을 짓자 그것을 본 헨리가 생각했다.

    ‘흠, 너무 무책임했나.’

    그렇긴 했다.

    본인이 편하자고 보좌관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주는 셈이니.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재하는 자신을 보필할 보좌관이니 좀 더 편의를 배려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면 되겠느냐?”

    “근본적인 문제요?”

    “그래. 네가 강해지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게 무슨…… 진심이세요?”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마.”

    “예?”

    “난 마법사다. 그리고 여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대스승이기도 하지.”

    “마법사요? 설마 마법사셨어요?”

    “그래. 나는 가우스 역사상 최고이자 최강의 마법사였다. 그러니 내가 너를 강하게 만들어 주마. 그럼 모든 게 해결될 터이니.”

    재하는 할 말을 잃었다.

    게이트에서 만난 이계인의 정체가 사실은 마법사였다니.

    근데 나이는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데?

    재하가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자, 헨리가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리 하겠느냐?”

    헨리는 진지했다.

    두 사람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한 타협점은 현재로썬 이 방법밖엔 없었으니까.

    그리고 급작스런 제안이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나쁜 제안도 아니었다.

    아니, 보기에 따라선 엄청난 기회였다.

    ‘그래. 어차피 원하지도 않았던 헌터의 삶이었어. 이렇게 된 이상,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결심을 마친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게요.”

    “좋다. 그럼 지금부턴 날 스승님이라고 부르거라. 그럼 나 또한 널 제자라고 부를 테니.”

    “예, 스승님.”

    “그럼 다녀오마.”

    “예? 어디를요?”

    재하가 헨리의 제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순간이었다.

    재하의 대답을 들은 헨리가 만족스런 미소를 띤 채 자리에서 사라졌고 그것을 본 재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뭐가 됐든 좆됐다는 걸.

    *재하가 사라진 랜덤 게이트 앞 회견장.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진 재하의 행방에 폭주하며 의구심만 키워 갔다.

    “신재하한테 뭐가 있긴 있가 본데?”

    “정부는 뭐 하나! 얼른 신재하를 찾아서 사실을 규명해라!”

    “신재하는 D급인데 어떻게 A급 게이트에서 살아돌아왔나!”

    “정부는 뭘 감추고 있냐!”

    “음모가 있다! 음모를 밝혀라!”

    증명되지 않은 사실에는 늘 구설수가 뒤따르기 마련.

    현재 재하의 상황이 그랬다.

    덕분에 정부 관계자들만 바빠졌다.

    “신재하 지금 어딨어?”

    “얼른 추적해 봐!”

    “아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까?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

    “스킬 반응이나 에테르 사용 반응도 안 나왔어!”

    현장은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그때였다.

    “어! 신재하다!”

    “어디어디?”

    “어! 진짜로 신재하다!”

    “신재하가 나타났다!”

    “신재하가 다시 돌아왔다!”

    누군가의 외침대로였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로 신재하가 다시 돌아왔다.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물론 수많은 카메라들이 신재하 쪽으로 돌려졌다.

    그런데 다시 나타난 신재하는 지상이 아닌 허공에 있었다.

    “역시!”

    “내 말이 맞지? 뭐가 있긴 있다니까?”

    “설마 2차 각성?!”

    “와, 진짜 2차 각성한 거?”

    “와, 근데 어떻게 각성해야 저렇게 허공에 있을 수가 있냐?”

    “어쩌면 국내 랭킹에 변동이 생길지도……!”

    고작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마법으로 치자면 4서클 정도 되는 수준의 마법.

    그런데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헨리는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원래 재하가 있던 회견장 자리에 안착했다.

    그러자 다시금 사람들이 마이크를 들고 몰려들었고 정부 관계자들은 인간 펜스가 되어 그들을 막아섰다.

    그 틈에 협회에서 파견 나온 1팀장 한재호가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헨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재하 씨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현재 진행 중인 일이나 빨리 마무리 지었으면 합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현재 무리하고 계신 거라면 지금이라도 보호 시설로 이동한 뒤 차후에 인터뷰 스케줄을 잡으셔도 괜찮습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뷰는 강제가 아니니까요.”

    인터뷰 스케줄.

    처음 듣는 단어다.

    그렇기에 더더욱 미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지 모르는 일을 처리하려면 높은 확률로 자신이 또 나서야 할 테니.

    그건 싫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니.

    헨리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으니 다들 조용히 좀 시켜 주시지요.”

    “아, 네…….”

    재하의 요청에 한재호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잠깐 사이지만 묘하게 사람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러 사람들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한번 달아오른 열기는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다.

    특히 기자가 아닌 어그로성 유튜버와 BJ들을 제압하는 게 가장 곤혹이었다.

    결국 시끄러움을 참다못한 헨리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모두 조용.”

    마력이 담긴 외침.

    그 말에 회견장 전체가 침묵의 도가니가 되었고.

    “헐 대박…….”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가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헨리를 쳐다보자 그제서야 헨리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게이트에서 나와 몹시 피곤한 상태니 지금부터 질문 몇 개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헨리는 잘 알고 있다.

    모자란 것들에게 너무 많은 기회와 권리를 주면 어떻게 되는지를.

    그래서 과거, 인간일 적 시절의 방식대로 기자들을 다루었다.

    헨리가 주변을 살피던 중 머리가 빨갛게 염색된 남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는 ‘김뉴스’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이슈 유튜버였다.

    헨리의 턱짓과 동시에 봉해진 김뉴스의 입이 풀리자 김뉴스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프하! 갑자기 아봉권 맞은 거 실화냐?”

    “아봉권? 그게 뭐지?”

    “엥? 아봉권도 몰라요? 아봉권 그거잖아요. 아가리 봉인하게 하는 기술인데…….”

    “저급하군. 다음.”

    “읍읍읍!”

    아봉권이라니.

    이토록 저급한 단어가 있단 말인가.

    헨리가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김뉴스에게 아봉권을 시전하였고 그에 김뉴스가 온몸으로 억울함을 표출했다.

    이어서 지목된 건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어느 기자였다.

    “…헌터 데일리의 박광진입니다.”

    “헌터 데일리는 가문이나 길드의 이름입니까?”

    “예……?”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래서 질문이 뭡니까?”

    “어…….”

    기이하기 짝이 없는 말투.

    마치 중2병이 잔뜩 오른 어느 컨셉충 같은 말투에 박광진은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내 곧 프로 정신을 발휘하여 질문을 던졌다.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여쭙겠습니다. 신재하 씨, 세간에는 D급 플레이어로 알려져 계신데, 어떻게 홀로 A급 게이트를 클리어 하신 겁니까? 게이트 안에서 2차 각성이라도 하신 겁니까?”

    말 그대로 핵심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차원탑의 시대가 열린 이래로 2차 각성자는 전체 플레이어 인구 중 0.1%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기자의 질문에 헨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

    헨리의 대답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세상에 2차 각성자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엄청난 특종이었다.

    흥분한 박광진 기자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이어서 질문해 나갔다.

    “그럼 A급 게이트를 해결하신 것도 신재하 씨 본인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생존자는 정말로 신재하 씨 본인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새롭게 각성하신 능력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건…….”

    그 물음에 헨리는 잠시 고민했다.

    재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2차 각성자는 현 세상에서 굉장히 귀한 인적 자원이라 했다.

    그리고 정보는 그 어떤 재물보다도 더 귀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어느 세상이든지 간에 통용되는 진리.

    그래서 거절했다.

    “비밀입니다.”

    “왜죠? 그럼 하다못해 획득한 능력의 등급만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음.”

    박광진의 생떼에 헨리는 바로 기회를 박탈시키고 곧장 다음 사람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 단호한 태도에 사람들은 슬슬 헨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몰라.’

    ‘한 번뿐인 기회를 꼭 잡아야 해.’

    ‘선택만 받으면 무조건 떡상이다!’

    얼굴에 이글거리는 욕망들.

    참 알기 쉽다.

    그래서 더 이상 대답해 주기가 싫어졌다.

    헨리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모두에게 충고를 빙자한 경고를 했다.

    “이제 질문은 그만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미리 말해 두는데 혹여나 날 귀찮게 한다면 그 자가 누가 됐든 간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란 걸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먹었으리라.

    할 말을 마친 재하가 손가락을 튕겨 곁을 지키던 한재호의 입만 봉인을 풀어 주었다.

    “보아 하니 높으신 분 같은데 그럼 뒤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아, 넵……!”

    “그럼.”

    말을 마친 헨리가 다시 두둥실 자리에 떠올랐고, 이내 곧 전에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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