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화
‘하, 정말 이대로 끝인 건가…….’
재하는 절망했다.
세상에 랜덤 게이트라니.
랜덤 게이트 같은 건 정말 지지리도 운 없는 사람이나 휘말리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일 줄이야.
억울했다.
자신은 D급 플레이어로 사실 플레이어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각성되는 바람에 원치 않게 헌터로서 살아가고 있던 것뿐.
허나 개인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세상은 늘 멋대로였다.
“크하핫! 처음 들어 보는 놈들이 걸렸길래 내심 긴장했는데 이게 웬 떡일까, 세상에 이렇게 약한 종도 존재했을 줄이야.”
괄괄하게 웃는 이.
다름 아닌 이번 랜덤 게이트에서 인간팀과 매치된 요인족 플레이어였다.
녀석이 날카로운 창날로 재하의 목을 겨누며 말했다.
“자, 이제 네놈 혼자 남았다. 그동안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지? 근데 이걸 어쩌나 결국엔 이렇게 잡혀 버렸는 걸.”
“크윽……!”
“자, 그럼 피니쉬 보너스는 잘 받아가도록 하마.”
들어 올려진 알케르의 창날이 시퍼렇게 번쩍인다.
피할 방도는 없었다.
혹여나 운 좋게 피한다 해도 지금처럼 금방 붙잡힐 게 뻔했으니까.
이제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
재하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순간이었다.
펑!
무언가 터지는 소리.
그리고.
후두둑-
뜨뜻하고 기분 나쁜 무언가가 자신에게 점철됐다.
그것은 피였다.
다름 아닌 자신을 찌르려던 놈의 피.
놀란 마음에 고개를 들자 그 위로 녀석의 시체가 자신에게로 떨어졌다.
“으아아아!!”
목 터진 시체가 자신에게 떨어지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재하는 황급히 시체를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뭐지?
이 녀석은 갑자기 왜 죽은 거지?
그런 의문이 들기도 잠시.
재하는 금방 녀석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 사람?”
재하의 눈앞에 선 이.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게임에서의 생존자는 분명 자신 하나뿐일 텐데?
놀란 마음에 재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인간팀 생존자 - 1 / 100 ]
[ 남은 시간 - 07 : 45 : 12 ]
게임 안내창에 표기된 숫자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눈앞에 선 존재는 머리색만 백발일뿐, 누가 봐도 같은 동족인 사람처럼 보였다.
재하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음…….”
재하의 인사에 남자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남자의 나잇대는 자신과 비슷해 보였는데 자신과는 달리 키가 크고 체구가 탄탄해 보였다.
그런데 복장이 좀 이상했다.
그가 입고 있는 복장은 아무리 봐도 현대의 의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었기 때문.
당연했다.
남자는 지구인이 아닌 이차원에서 온 존재, 헨리였으니까.
헨리가 말했다.
“신기하군.”
“예?”
“난 분명 이 세상이 처음인데 이곳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말을 쓰고 있다니.”
“……예?”
헨리의 말에 재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 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허나 그러거나 말거나 헨리의 독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역시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해. 이거, 진작에 내가 나섰어야 했나…….”
“저, 저기요?”
“음?”
“호, 혹시 관리자님이세요?”
“관리자?”
그때였다.
“키르아아아아!!”
“키에에에에!!”
날카로운 하울링.
다른 요인족의 것들이었다.
놈들은 어느 순간 두 사람을 포위해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감히 우리 팀을 죽여?”
“겁도 없구나!”
“근데 왜 두 명이지?”
“그러게?”
두 사람을 둘러싼 요인족은 대강 어림잡아도 수십여 명.
요인족을 본 헨리가 이번에도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으음?”
헨리가 고개를 기울인 이유.
간단했다.
난생 처음 보는 요인족들 또한 자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허나 아무리 봐도 눈앞의 인간과 요인족들은 생김새부터가 다른 게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였다.
통역 마법이라도 발동되고 있는 걸까?
아님 저들은 원래 같은 동족이었던 걸까?
허나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전에 다른 것이 헨리의 관심을 끌었다.
츠즈즛!
요인족들의 몸에 붉은빛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헨리의 눈이 커졌다.
“찾았다.”
확실했다.
종말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옅고 하찮았지만 이차원의 바다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각이었다.
허나 헨리는 그들과 대화하지 못했다.
무어라 질문을 건네기도 전에 요인족들이 달려들었으니까.
“죽어라!”
“키에에에에!!”
요인족은 전사처럼 매끄럽게, 그리고 용맹하게 돌진해 왔다.
허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헨리는 이번에도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고……
퍼퍼펑!
그러자 수십에 달하는 요인족의 머리가 동시에 터져 나갔다.
“……!!”
아까는 눈을 감고 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확실하게 봤다.
처음에 죽은 요인족은 확실히 저 남자의 작품이었다.
일방적인 학살.
아니, 학살이라기엔 너무 깔끔했다.
그저 압도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요인족의 머리를 터뜨린 헨리가 재하에게 시선을 옮겼다.
“혹시 저놈들과 한패인가?”
“예? 아뇨아뇨! 절대 아닙니다!”
“그래?”
“예! 정말입니다!”
“그럼 뭐 좀 물어보자. 내가 궁금한 게 좀 많거든”
“예?”
“여기가 대체 어디냐?”
헨리의 물음에 재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구, 플레이어, 게이트…….’
재하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설명했고 헨리는 재하가 말하는 지식들을 토대로 이차원의 문명에 대해 파악해 나갔다.
참 신기했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헨리가 살던 가우스의 인간들과 모든 게 비슷했다.
허나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에겐 ‘마나’나 ‘마력’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것.
대신 과학과 에테르가 존재했다.
“에테르라…….”
에테르.
종말에게서 느꼈던, 그리고 요인족들이 사용하던 힘의 이름이었다.
에테르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언어에 대한 오해도 풀렸다.
이곳은 ‘어비스’라는 차원탑이 만들어 낸 수많은 미션 게이트 중에 하나로, 이름은 랜덤 게이트라 불리며.
게이트 속에 들어온 존재들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이 통일된다고 한다. 언어는 그중에 하나일 뿐.
‘살다살다 마법이 없는 세상은 또 처음 보는군.’
마법.
굳이 비슷한 걸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그걸 스킬이라고 불렀다.
에테르는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동력원이자 육체를 강화하는 힘이라 했고.
헨리가 물었다.
“그래서, 네가 사는 세상인 지구에 가면 에테르를 만든 어비스에 갈 수 있다고?”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네 고향인 지구에 가기 위해선 일단 이 게임에서 이겨야 하고?”
“예.”
“좋아. 넌 이름이 뭐지?”
“신재하라고 합니다.”
“이름이 신재하인가? 성은 없고?”
“아, 성이 신이고 이름이 재하입니다.”
“신? 넌 그럼 지구의 신인가?”
“예?”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군.”
성씨 때문에 혹시나 했는데 아무래도 단순한 의미로 지어진 성씨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재하한테선 신격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헨리가 말했다.
“손을 내밀어라.”
“손이요?”
“어서.”
“예!”
헨리가 목소리를 살짝 높이자 재하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내밀어 펼쳐 보였다.
그에 헨리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재하의 손바닥에 무어라 글씨를 써 내려 갔다.
허나 검지가 훑고 간 자리에는 글씨는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윽고 헨리가 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선 아까 그놈들을 전부 죽여야 한다고 했지?”
“네.”
“그럼 다녀오마.”
“어디를요?”
“이 게임을 끝내러.”
“예?”
허나 재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말을 마친 헨리가 바로 사라졌기 때문에.
그로부터 얼마 뒤……
[ 요인족이 모두 사망하셨습니다. ]
[ 인간족 최후의 생존자 1명. ]
[ MVP는 신재하 플레이어. ]
[ 축하드립니다. 게이트 미션을 종료합니다. ]
[ 보상 정산을 시작합니다. ]
[ 보상 정산 완료. ]
[ 귀환을 시작합니다. ]
“……어?”
게임이 끝났다.
그것도 재하 본인이 MVP로 선정된 채로.
*펑펑!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
기자들과 이슈 유튜버, 각종 BJ들이 터뜨리는 것이었다.
“신재하 씨! A급 랜덤 게이트에서 홀로 살아남으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신재하 씨! 협회에 등록된 건 D급이시던데 혹시 게이트 안에서 2차 각성이라도 하신 건가요?”
“재하 님! 안에 들어간 우리 오빠는 어떻게 됐나요!!”
“신재하! 오늘 팬티색 뭐야!!”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재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랜덤 게이트가 클리어 된 것도 모자라 게이트에서 귀환되자마자 수많은 언론인들을 감당해야 했으니까.
당연했다.
재하가 휘말린 게이트는 A급 게이트로, 클리어 확률이 몹시 희박한 것도 희박한 것이었지만.
그 게이트를 클리어 하고 나온 유일한 생존자가 고작해야 D급 플레이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어, 어떡하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게이트에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것도 모자라 돌아오자마자 급물살 같은 인터뷰 세례라니.
놀라운 건 정부 관계자들도 상황을 모두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재하 대답해!”
“신재하 씨!”
“재하 님!!”
사람들의 부르짖음.
그때였다.
“어?”
“뭐야?”
“어디로 간 거야?”
“신재하 씨!”
“야 신재하!”
갑자기 재하가 사라진 건.
기자들과 유튜버들이 미어캣처럼 재하를 찾았으나 그들은 물론 협회에서 파견 나온 요원들도 재하를 찾지 못했다.
당연했다.
재하는 누군가에 의해 소환된 것이었으니까.
뒤늦게 정신 차린 재하가 갑작스레 바뀐 풍경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rhsfksgo qhdlsmsrns.”
낯선……
허나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자 재하의 눈이 커졌다.
헨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djsdjrk ekfmrns.”
“……예?”
생전 처음 듣는 말.
당연했다.
이곳은 게이트가 아니므로 언어 통일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
헨리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갑작스레 재하의 손을 잡았다.
“이러면 들리느냐?”
“…어?”
“놀랄 것 없다. 너와 나의 의식을 연결한 것뿐이니까.”
“의식을요?”
“그래. 아무래도 여긴 게이트 안이 아니다 보니 언어 통일이 안 되는 모양이야.”
“아…….”
과연 헨리였다.
인류 최고의 두뇌였던 헨리답게 헨리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
헨리가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네 손을 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조금만 참거라. 그렇잖아도 이 세계의 언어를 계속 수집 중에 있으니.”
“언어를 수집하신다구요?”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외국어는 필수지. 걱정 말거라. 내가 만든 통역 마법이면 이런 것쯤은 금방이니까.”
정말이었다.
헨리는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재하의 손을 놓았다.
그러더니……
“자, 이 정도면 자연스럽지?”
“어, 어?!”
실로 마법 같은 일.
아니, 따지고 보면 마법이 맞긴 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근데 이곳에서 지내셔야 한다뇨?”
“말 그대로다. 사정이 있어 한동안 지구에 머무를 생각이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하마.”
“……예?”
재하가 헨리에게 간택당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