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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01화 (2부) (401/522)

2부. 1화

“이번에도 제가 이겼습니다.”

“끄응, 다시 하자꾸나.”

구름조차 산허리에 걸려 있는 아주 높은 산 위에 두 신이 체스를 두고 있었다.

두 신의 정체는 마법을 관장하는 마법의 신, 헨리와 이 세상 최고의 신, 주신이었다.

마법이 아닌 손으로 직접 체스 말을 정리하는 헨리를 보며 주신이 물었다.

“헨리야.”

“예, 주신님.”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

“무얼요?”

“세상 말이다.”

“또 그 소리십니까?”

“벌써 천 년을 넘게 기다렸잖느냐.”

“겨우 천 년입니다. 저는 방법만 찾을 수 있다면 만 년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쯥, 그놈의 고집은 예나 지금이나 꺾이질 않는구나.”

“체스에서 이기시면 고려 정도는 해 보겠습니다.”

“그래. 내가 치사하고 더러워서라도 꼭 이기마.”

그 말을 끝으로 경기가 다시 재개됐고 주신이 먼저 폰을 앞으로 옮겼다.

이후에는 헨리가, 그 다음에는 또 주신이 말을 움직였다.

두 신은 말없이 장기말을 움직였다.

한참 뒤, 또다시 헨리가 승리했다.

그것을 본 주신이 짜증을 냈다.

“쯧, 그래도 한 번쯤은 져 줄 법도 한데 참 너무하구나.”

“그 한 번이 크니까요.”

“이제 그만하련다.”

“저랑 체스 안 두시면 뭐 하시게요?”

“몰라도 된다.”

말을 마친 주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산 아래를 보았다.

산 아래에는 풍경 대신 다른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괴물.

그것들은 괴물이었다.

대충 헤아려도 속히 수천은 돼 보일 법한 괴물들은 금방이라도 두 신에게 덤벼들 것처럼 아가리를 벌린 채 허공에 정지해 있었다.

허나 놈들이 신들을 덮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세상의 시간은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모두 멈춰 있었으니까.

체스판을 정리한 헨리가 주신 곁에 다가와 괴물들을 보며 말했다.

“전보다 거리가 좀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지?”

“예, 몇 년 후면 시간을 한 번 더 되감아야겠어요.”

“그래야겠지. 그나저나 큰일이군. 시간을 되감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놈들에게 내성이란 게 생겼나 보죠.”

“꼭 남 일인 양 태평하게 말하는구나.”

“그럴 리가요.”

“그놈한테는 아직 소식이 없고?”

“예, 아직 못 찾았나 봅니다.”

“흠, 어쩌면 너무 무리한 임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저놈들과 상극인 존재를 찾으라니.”

“시간이 좀 걸릴뿐 별로 무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

“저놈들이 저희의 상극이듯, 이 넓은 우주 차원에 저놈들의 상극되는 존재가 없으란 법은 또 없잖습니까.”

발아래 널린 괴물들.

두 신은 저것들을 종말이라 불렀다.

종말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천계와 마계, 중간계까지 그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극을 펼쳤다.

당연히 그들을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마력과 신력은 물론이고 모든 차원의 기술자들을 끌어모아 사상 최강의 금속까지 만들어 보았지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허나 단 한 가지.

제아무리 종말이라 할지라도 주신의 시간을 다루는 권능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기에 저들이 지금 저리 멈춰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놈들을 막기 위해선 세상 전체의 시간을 멈춰야만 했는데 그리 되면 사실상 세상에 종말이 고해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심지어 종말은, 놀랍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을 다루는 힘에 내성까지 생겨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린 특단의 결론이 바로 공간의 힘을 가진 마신을 이차원으로 보내 저들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을 찾게 하는 것.

현재로써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종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힘들로는 절대로 죽일 수가 없었으니까.

“후…… 그래, 그건 또 맞지.”

헨리의 말에 주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헨리가 하고자 하는 건 말 그대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헨리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녀석은 항상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 왔다.

헨리가 인간이었을 적, 자꾸만 시간을 되돌리던 천신을 만났을 때도.

세상의 8할이 좀비 같은 맹신자로 뒤덮여 모두가 슬픔에 잠겼을 때도.

하물며 일평생 노력해도 9서클의 영역을 넘지 못했을 때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결국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걸 이뤄 낸 게 헨리였다.

헨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한숨 쉬지 마시고 와서 체스나 두시지요.”

“그래, 그러자꾸나.”

두 신은 다시 체스를 두었다.

*그로부터 다시 수백 년이 지났다.

천계의 끝자락에서 체스를 두던 두 신은 종말이 체스판 지척까지 다가오자 또 한 번 시간을 되돌렸다.

시간을 되돌리는 건 이 세상에 오직 주신과 천신만이 가진 특권.

허나 이제 시간의 권능을 가진 천신은 없다.

과거에는 그런 천신이 있었는데 자꾸만 세상을 포기하자는 말에 헨리가 짜증 나서 직위를 박탈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마법의 신이었던 헨리가 천신의 자리까지 겸직을 하고 있는 상황.

시간이 되돌려진 직후, 헨리가 말했다.

“이제는 완전히 되감아지지도 않는군요.”

“네 말마따나 내성이라도 생겼나 보지.”

“그래도 다행입니다. 놈들이 이젠 천계에만 몰려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헨리가 천신이 된 이후, 헨리는 천계 전체를 통째로 비웠다.

그리고 주신과 함께 천계 최고 높은 산인, 천산에 기거하며 종말을 이곳에 붙잡아 두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천산도 안전지대가 되지 못했다.

시간을 되돌리면 되돌릴수록 놈들이 천산으로 넘어오는 시간이 자꾸만 단축되어 갔기 때문.

자신들을 향해 손 뻗는 종말들을 보며, 헨리가 물었다.

“한번 싸워 볼까요?”

“뭘?”

“시간으로 따지자면 자그마치 천 년이 넘는 세월입니다. 그동안 저도 한가로이 체스만 두진 않았습니다.”

“아서라. 대충 헤아려도 일만이 넘는 숫자다. 운 좋게 한두 마리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놈들도 아니야.”

“그래도 궁금하긴 하잖아요?”

“싸우기만 해 봐라. 그때는 나도 더 이상 시간 되감기 같은 건 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죠.”

“장소나 옮기자꾸나. 아무래도 터가 안 좋아 내가 자꾸 지는 것 같다.”

“핑계입니다 그거.”

“시끄럽다. 이번엔 천산 말고 천운으로 가자꾸나.”

“예예.”

또다시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놈들이 이쪽으로 오면 저쪽으로 가고.

저쪽으로 가면 이쪽으로 오고.

물론 이 술래잡기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놈들에겐 시간의 힘에 대한 내성이 생겼고 그로 인해 갈수록 접근해 오는 시간 또한 단축되어 갔으니까.

그로부터 다시 수백 년이 지났다.

*“안 되겠습니다.”

“뭐가?”

“마신 놈을 보낸 지 벌써 2천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소식이 없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확인해 보면 되지 않느냐.”

“이미 확인해 봤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녀석의 기운조차 느껴지지가 않더라구요.”

“그 녀석, 네 권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 그랬었죠.”

“그랬었죠는 뭐야? 꼭 지금은 아닌 것처럼.”

“연락이 안 되니 알 수가 있나요. 그래서 말인데, 이젠 제가 직접 다녀와 볼까 합니다.”

그 말에 장기말을 옮기던 주신의 손이 멈추었다.

“네가 직접 가겠다고?”

“예.”

“네가 가면 뭔가 달라질 것 같으냐?”

“먼저 간 녀석보다는 낫겠죠. 그래도 전 주인이고 그 녀석은 제 권속되는 놈이었으니까.”

“너까지 떠나고 나면 이제 여기엔 나 혼자 남겠구나.”

“죄송합니다. 그래도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헨리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의 말마따나 헨리까지 이곳을 떠나고 나면 이제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수호자는 주신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헨리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잘 안다.

어쩌면……

지금까지 기다렸던 시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홀로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헨리의 부탁에 주신이 장기말을 마저 옮기며 대답했다.

“이번 경기에서 이겨 보거라. 그럼 네 제안에 응해 주마.”

“……예, 알겠습니다.”

경기는 보나마나였다.

이번에도 헨리의 승리였다.

허나 평소와 같은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정말 아까운 승부.

지난 수천 년간 치러진 수많은 경기들 중 단연코 최고의 명경기라 꼽힐 만한 그런 승부였다.

주신이 장기말에서 손을 떼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깝군.”

“예, 정말 아까웠습니다.”

“몇 판만 더 두면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됐다, 이제 가거라.”

“예?”

“내기는 내기잖느냐. 넌 내기에서 이겼고 나는 졌다. 그러니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마.”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주신.

그런 주신의 태도를 보며 헨리는 쓰게 웃었다.

헨리는 주신이 어떤 신인지 잘 안다.

그는 헨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존재였으니까.

주신의 허락에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인사는 길지 않았다.

마치 동네 마실이라도 다녀오는 것처럼 헨리는 가볍게 목례 한 후 그 자리에서 떠올랐다.

두 발이 지상을 떠나며 세상 전부가 점처럼 작아지기 시작한다.

헨리는 하늘을 넘어 우주처럼 보이는 새카만 영역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필멸자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

오직 공간의 힘을 가진 자만이 도약할 수 있는 이차원의 세계였다.

헨리는 주신에게 공간의 힘을 나눠 받았다.

시간의 힘은 받지 못했다.

만약 시간의 힘까지 나눠 주면 헨리는 수천 년이고 수만 년이고 놈들을 모두 죽여 없앨 때까지 홀로 싸울 것이란 걸 주신은 잘 알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주신에게 감사했다.

그의 현명함이 헨리를 고독한 고통 속에 빠지게 하지 않았으니까.

이차원을 영위하기 전에 한줌의 의식이 된 헨리가, 어쩌면 억겁의 세월이 걸릴지도 모를 긴긴 항해를 시작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을까?

시간을 세는 건 이미 아주 오래 전에 포기했다.

허나 헨리의 의식은 그 어느 순간에도 절대 흐릿함을 잃지 않았다.

이차원의 바다를 영위하며 참 많은 차원들을 보았다.

세상이 이리 넓을 줄 알았다면 진작 여행을 떠날 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헨리는 자신의 목적을 상기했다.

자신은 아버지와도 같은 주신의 희생으로 먼 길을 나설 수 있게 된 몸.

이차원 여행은 모든 일이 끝났을 때, 그때가 되면 떠나기로 했다.

그때였다.

‘이건…….’

망망대해를 누비는 조각배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허나 그런 무료함 속에서도 종말에게 느꼈던 감각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느껴지는 이 힘.

이 힘은 종말에게서 느꼈던 바로 그 힘이었다.

헨리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헨리가 찾던 건 종말에 상극되는 힘이었으나, 어쩌면 놈들과 같은 힘을 가지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결심을 마친 헨리가 느껴지는 힘의 감각을 따라 움직였다.

긴 항해 끝의 정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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