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97화 (397/522)

# 397

외전 (6)

딱!

두 개의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황궁 연무장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짧게 숨을 삼키는 소리 또한 불규칙적으로 흘러나왔다.

연무장에서 뒤엉키고 있는 검은 두 자루였다.

한참의 공방 끝에, 마침내 한쪽 목검이 손아귀를 벗어나며 하늘 높이 떨어져 나갔다.

“졌지?”

“그래, 졌다.”

상대의 졌다는 말에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녀석.

녀석은 다름 아닌 로난이었다.

로난은 땀으로 범벅된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겼다.

“241전 121승 120패. 이로써 내가 너보다 더 강하다.”

“크윽! 제기랄!”

로난이 희열 가득한 눈빛으로 패자를 내려다보았다.

패자의 이름은 하인 모리스.

헨리와 같은 헨리 모리스였다가 헨리의 권유로 이름을 개명한 아이였다.

두 사람이 모리스 차일드가 된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두 사람은 황궁 내 유명 인사가 되었다.

헨리의 성을 이은 두 사람은 황궁 내에서 검술과 마법을 배우는 유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무서울 정도의 재능을 보여 주었다.

특히 하인이 그랬다.

로난의 경우엔 마법을 익히는 것에 어려움을 보여 검술에 주력했지만, 헨리의 경우엔 마법도 어렵지 않게 곧잘 익혀 냈다.

헨리는 그런 하인을 보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의 하인이라면 마법은커녕 검술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텐데, 역시 주변 환경이 중요하단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로난이 손을 뻗어 하인을 일으켜 주었다.

로난이 말했다.

“다음엔 좀 더 연습해 오라고.”

“흥, 그럴 시간에 마법 연습이나 좀 더 하지 그래?”

“치사하게 검술 이야기 하는데 마법 들먹이기 있냐?”

“메롱이다!”

두 사람은 어느새 1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마냥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며 어느 정도 성인의 체격이 잡혀 가는 청소년이 된 것이다.

그때였다.

짝짝짝-!

어디선가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렸다.

로난과 하인이 고개를 돌려 박수가 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박수의 주인공을 발견하자마자 로난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형님!”

“좋은 검무였다. 둘 다 연습 좀 했는데?”

박수의 주인공.

그는 다름 아닌 제국의 황태자, 실버 잭슨 에드워드였다.

실버는 어느덧 약관의 나이를 지나 의젓한 20대가 되었다.

과거에 보았던 망나니 같은 20대가 아니었다.

실버는 골든과 헨리의 지도하에 바른 인성을 가진, 훌륭한 평판으로 자자한 제국의 황태자로 자라 주었다.

실버의 칭찬에 로난이 쑥스러운 듯 뒷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후후, 아닙니다. 형님! 형님에 비하면 한참 멀었는데요, 뭘…….”

“아냐, 난 너희 나이 때 너희들만큼 움직이지도 못했어. 역시 모리스 차일드는 다르구나.”

골든과 헨리가 형제처럼 지내니 세 사람 또한 형제처럼 지냈다.

동시에 친구처럼 지내기도 했다.

하인이 물었다.

“근데 연무장엔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은 검술 수업 없지 않으세요?”

“오늘은 없지. 근데 삼촌이 심부름을 좀 시키셔서 말이야.”

“대마법사님께서요?”

“응,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 나랑 같이 어디 좀 다녀오자.”

“저희들도요?”

“왜, 싫어?”

“아, 아뇨. 싫은 건 아닌데 무슨 심부름을 시키셨길래 저희들까지 가야 하나 싶어서요.”

“글쎄, 아무래도 너희에게 동생이 생기려는 모양이던데?”

“동생……요?”

동생이라는 말에 로난과 하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실버가 두 사람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긴말 할 것 없이 얼른 가서 씻고 와. 지금 당장 출발해야 되니까.”

“예!”

동생이 생길 것 같다는 말에 로난과 하인이 부리나케 움직였다.

* * *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 샤하트라.

실버와 로난, 그리고 하인은 샤하트라의 수도, 칸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이동 주문서를 사용해서 왔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칸에 도착하자마자 왕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궁으로 이동하던 중 로난이 물었다.

“형님, 정말 대마법사님께서 이곳에 저희 동생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응, 일단은 왕궁에 가면 데려올 수 있다고 하긴 하셨는데…… 나도 걔가 누군지는 잘 몰라.”

“그렇군요. 이왕 동생이 생기는 거 여동생이었으면 좋겠네요.”

“여동생은 왜?”

“그냥요. 귀엽잖아요.”

“쯧쯧, 괜한 소리 하지 말고 누가 동생이 됐든 잘 보살펴 줘.”

“옙!”

세 사람은 곧 샤하트라 왕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궁에 도착하자 환영단이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황태자님.”

환영단에는 샤하트라의 왕, 헤라볼라 칸도 있었다.

헤라볼라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을 반겨 주었다.

이에 실버 또한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환대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나저나 대마법사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셨나 보네요?”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환영단을 준비할 수도 없었겠지요. 근데 혹시 옆에 계신 분들이……?”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바로 대마법사님께서 키우시는 아이들, ‘모리스 차일드’들입니다.”

“오오! 소문으로만 듣던 모리스 차일드를 드디어 직접 보게 되는군요!”

실버의 소개에 헤라볼라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모리스 차일드는 황궁 내부뿐만이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알음알음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애정을 갖고서 직접 키우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헤라볼라가 로난과 하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곳 샤하트라를 통치하는 헤라볼라 칸이라고 합니다. 초면에 외람된 말이기는 하나 저에게 그대들과 비슷한 나이의 자식이 한 명 있는데 모쪼록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헤라리온! 얼른 와서 인사드리거라, 이분들이 바로 그 유명한 모리스 차일드분들이시란다.”

헤라볼라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들 헤라리온을 불렀다.

그러나 헤라리온은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환영단 사이에 숨어 쉬이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이에 헤라볼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아이고, 이런……! 죄송합니다. 하나 있는 아들놈이 저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원……!”

헤라볼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뒷통수를 긁어 보였다.

이에 로난과 하인도 얼른 자세를 낮추고 예를 갖추었다.

솔직히 얼떨떨했다.

샤하트라가 제국의 속국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동맹국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볼라는 자신을 낮추고 로난과 하인에게 존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난과 하인이 황궁에서 지낸지 좀 오래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각자가 가진 원래의 근본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런 마당에 한 나라의 국왕씩이나 되는 자가 자세를 낮추고 존대해 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실버가 말했다.

“친한 또래가 많아지면 저희로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엔 저희들이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야 하니까요.”

“후후, 역시 황태자님은 생각하시는 것도 어른스럽군요. 자,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드실까요? 그 아이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환영 인사가 끝난 후 헤라볼라는 세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안쪽에는 거대한 만찬회가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린 건 없지만 최대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환영 인사에 이어 만찬회가 시작됐다.

헤라볼라는 마음 같아선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으나 방문자들의 나이가 어린 것을 고려해 술 대신 왕국 최고의 진미들을 준비했다.

이윽고 만찬회에 준비된 음식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하나같이 처음 보고 듣는 음식들뿐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낯선 음식을 꺼리기보다는 되레 궁금증을 표했다.

음식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 후 헤라볼라가 말했다.

“그럼 이제 대마법사님께서 부탁하신 아이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헤라볼라의 말에 세 사람의 이목이 집중됐다.

실버가 헨리에게 전해 듣길, 지금 소개받을 이 아이가 모리스 차일드의 마지막 아이라고 했다.

물론 그 아이가 왜 마지막 모리스 차일드로 선택되었는지는 알려 주지 않아 알길이 없었다.

다만, 먼 훗날 실버가 제국을 이끌어 감에 있어 실버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는 말씀해 주기는 했다.

헤라볼라 옆에 아이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것이 전형적인 샤하트라인이었다.

아이가 실버에게 인사했다.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제 이름은 하울이라고 합니다.”

아이의 이름은 하울.

척 보기에도 어린 남자아이였다.

여동생이 아닌 남동생이라는 사실에 로난의 얼굴에 잠깐 동안 실망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본 하인이 로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실버가 말했다.

“그래, 네가 대마법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아이로구나?”

실버를 비롯한 로난과 하인이 반갑게 하울을 맞아 주었다.

헤라볼라가 말했다.

“혹 황태자님께선 하울에 대해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처음입니다. 사실 모리스 차일드에 막내가 생긴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후후, 대마법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어쩌면 이 아이가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 대마법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예? 이 아이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고 하더군요. 대체 이 아이의 재능은 또 언제 봐 둔 건지, 참 여러모로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헨리를 이을 차기 대마법사.

실버는 그제야 헨리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하울을 바라보던 실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차기 대마법사라니……!’

현 대마법사가 인정한 떡잎 중의 떡잎.

그야말로 모두가 탐낼 만한 인재.

헨리는 그런 아이를 모리스 차일드의 막내로 들인 것이다.

또한 하울에 대해 전해들은 로난과 하인은 그제야 왜 자신들이 이곳 샤하트라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울은 앞으로 로난과 하인, 그리고 실버까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될 것이기에 직접 데리러 오라는 뜻에서였다.

하울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이 여러 의미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똑똑-!

헨리의 연구실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헨리가 말했다.

“들어오게.”

헨리의 시선은 여전히 서류를 향해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헨리는 서류를 보다가 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드라칸이냐?”

방문자는 다름 아닌 드라칸이었다.

드라칸은 아크 메이지가 된 이후로 이따금씩 헨리의 연구실을 찾아 연구 성과에 대해 보고했다.

물론 연구에 대한 보고가 아니더라도 안부를 묻기 위해 헨리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헨리를 찾아온 드라칸의 얼굴이 묘하게 밝았다.

드라칸의 밝은 표정을 읽은 헨리가 물었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구나?”

“그렇습니다, 스승님.”

“허허, 이번엔 또 무슨 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는 게냐?”

밝은 표정의 드라칸.

그러나 그 표정 속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드라칸은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그런 드라칸에게 헨리가 재촉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머뭇거리는 게냐?”

“저, 그것이…….”

드라칸은 그렇게 얼마를 더 머뭇거렸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드라칸이 드디어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스승님. 결국 해냈습니다.”

“해내다니? 무엇을?”

“7서클, 제가 드디어 7서클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뭐……?”

순간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드라칸이 아크메이지가 된 지 이제 겨우 5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사이에 서클을 한 단계 더 상승시켜 내다니?

헨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입이 반쯤 벌어졌다.

‘드디어……!’

언젠가 드라칸이 7서클이 될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시기가 훨씬 더 앞당겨졌다.

헨리는 오래 전부터 드라칸이 7서클이 되면 꼭 하겠다고 결심했던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비로소 그때가 당도한 것이다.

‘이젠 정말로 은퇴해도 되겠구나!’

오래 전부터 결심했던 그것.

그것은 바로 헨리의 ‘은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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