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94화 (394/522)
  • # 394

    외전 (3)

    밤이 됐다.

    낮에 헨리는 킹턴을 칭찬하고 갔지만 킹턴이 그 안에 담긴 속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헨리는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양자들도 고된 훈련을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 별채로 돌아올 테니까.

    헨리의 시선이 별채로 옮겨졌다.

    별채 내부가 훤히 보였다.

    투시 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헨리는 별채 내부를 편히 관람할 수 있도록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은신 마법을 사용했다.

    저녁이 되자 식사를 마친 양자들이 좀비처럼 터덜터덜 별채로 돌아왔다.

    개중에는 식사를 한 아이도 있겠지만 밥을 먹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았다.

    밥을 먹지 못한 이들 중에는 로난도 포함되어 있었다.

    ‘쯧쯧, 가엾은 것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참 가엾은 신세다.

    원래대로라면 헤밀턴이 성인이 될 때까지 죽도록 훈련은 하겠지만 적어도 배는 곯지 않을 처지였다.

    하지만 헨리가 킹턴에게 양자를 이용한 편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으니, 이제 저들은 킹턴에게 가치를 잃은 잉여가 됐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킹턴은 저 아이들을 한꺼번에 내쫓지는 않을 것이다.

    킹턴이 수많은 양자들을 입양한 것으로 헨리가 훈장 하나를 내줄 테니까.

    그렇지만 아이들에 대한 대우가 전보다 더 박해질 것이란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따로 손을 좀 써 둬야겠어.’

    물론 박해진 대우를 그대로 방치할 생각은 없다.

    헨리의 선택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은 저기 있는 아이들일 테니.

    그때였다.

    갑작스레 별채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일대 다수의 싸움이었다.

    일은 로난이었다.

    로난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미래의 훈련소에선 천재라고 칭송받던 동기였지만 아직은 그 재능을 완전히 꽃피우지 못했다.

    이윽고 흠씬 두들겨 맞은 로난이 별채 밖으로 던져졌다.

    피가 떡이 되어 이불에 둘둘 말린 채 밖으로 던져진 꼴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로난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흐흑……!”

    로난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흐느껴 울었다.

    헨리는 그런 로난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안타까웠다.

    미래의 로난은 분명히 재능 있는 검사였다.

    하지만 제한된 가정환경 때문에 출세길이 막히고 평생 군대에서 썩을 처지였다.

    물론 칼리번에서의 복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환경에서 더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더라면, 어쩌면 로난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성장을 거둘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저런 처절한 유년기가 있었기에 미래의 로난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헨리는 사람이 가진 절대적인 재능을 믿는다.

    그리고 설사 로난이 재능을 꽃피우지는 못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헨리가 로난을 찾아온 이유는 로난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최고의 검사로 만들어 주려는 게 아니라 로난에게 행복한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였다.

    헨리가 은신 마법을 해제하고 손가락을 튕겨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따스함이 로난의 몸을 감싸안았고 로난은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꿈결 같은 상황에, 로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헨리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열 살의 로난에게 헨리는 모르는 사람이다.

    헨리의 명성과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사람이 헨리라는 것은 모른다.

    이에 헨리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널 구원해 줄 사람이란다, 로난.”

    “구원……요?”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 황궁의 마법사란다.”

    “헨리 모리스? ……설마?”

    이름을 들은 로난의 눈동자가 커진다.

    로난의 커진 눈동자를 본 헨리가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구원의 손길이었다.

    * * *

    “여기가 황궁이란다, 로난.”

    “허, 허어어……!”

    헨리는 로난을 데리고 황궁으로 왔다.

    마탑엔 일부러 가지 않았다.

    마탑은 아이들을 키우기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네프람 교단에 제공한 비밀 저택처럼 특수 공간을 만들어 키울 순 있었지만 그건 그다지 좋은 육아법이 아니었다.

    자고로 아이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최대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했으니까.

    황궁에도 밤이 깔렸다.

    하지만 밤이 깔려도 황궁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황궁’이었으니까.

    불이 꺼지지 않는 황궁에 도착한 로난은 난생처음 보는 화려한 풍경에 쉬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잘 봐 두어라, 로난. 여기가 바로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니.”

    “제가……요?”

    “그래. 그래서 내가 너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헨리는 킹턴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로난을 데려왔다.

    하지만 딱히 걱정하진 않는다.

    킹턴 성격에 쓸모도 없는 수십의 양자들 중 한 명이 사라졌다고 해서 딱히 신경 쓰진 않을 테니까.

    되레 입 하나가 줄었다며 좋아할 것이다.

    ‘그 전에 눈치나 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헨리는 한스를 찾아갔을 때처럼 화려한 정복으로 복장을 바꾸었다.

    로난에게 위엄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헨리가 로난을 데리고 불이 밝혀진 황궁을 거닐자 야간 경계를 서던 근위병을 포함해 시녀들이 헨리에게 인사를 올렸다.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던 헨리가 로난에게 물었다.

    “로난, 배가 고프지 않느냐?”

    지금은 신기함에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지만 헨리는 알 수 있었다.

    로난이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헨리의 물음에 로난이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꼬르륵-!

    로난의 뱃속에서 부끄러운 소리가 났다.

    대답하려던 로난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할 게 뭐가 있겠느냐?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황궁이 신기해도 우선은 배부터 채우자꾸나.”

    헨리는 시녀를 시켜 금방 상을 차리게 했다.

    식탁에 금방 화려한 만찬이 차려졌다.

    일부러 시녀들에게 신경 쓰라고 한 만찬이다.

    “히이익……!”

    소금 주먹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진수성찬이 눈앞에 펼쳐지자 로난은 쉬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토록 화려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헨리가 로난의 손에 수저를 쥐여 주기 전에 조그마한 환약 하나를 건넸다.

    “이걸 먼저 먹고 밥을 먹거라. 오랜만에 먹는 음식인데 갑작스레 기름진 것들이 배에 들어가면 탈이 날 테니.”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로난은 단숨에 환약을 입안에 집어 넣었다.

    꽤 쓴맛이 날 텐데도 환약을 으적으적 씹어 먹은 뒤 실성한 사람처럼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굶주린 짐승 같다.

    하지만 헨리는 그런 로난의 모습이 전혀 천박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로난은 어리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예절이 뭔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 경쟁했다.

    그런 곳에서 예법을 배웠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미소가 지어졌다.

    ‘가르쳐 줄 게 많겠어.’

    가르쳐 준다는 것.

    헨리가 로난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지식 따위가 아니었다.

    이 세상엔 어떤 즐거운 것이 있고 어떤 맛있는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행복을 좇아 즐거움에 충실하며 살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였다.

    헨리는 로난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으니까.

    이윽고 식사가 끝났다.

    짐승처럼 음식을 집어 먹기에 꽤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오랜만의 식사라 그런지 위장이 줄어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로난은 몹시 아쉬워했다.

    하지만 목구멍에서 음식이 튀어나올 만큼 음식을 밀어 넣었다.

    헨리가 기름기가 가득한 로난의 입가를 손수 닦아 주며 말했다.

    “자, 배를 채웠으니 이제 지낼 곳을 봐야겠지?”

    헨리는 로난을 데리고 로난이 지낼 거처로 이동했다.

    마법은 일부러 쓰지 않았다.

    거처로 이동하는 내내 조금이라도 황궁 구경을 하며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란 뜻에서였다.

    로난은 이동하는 내내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쉴 틈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던 중 용기를 내 헨리에게 물었다.

    “저…… 대마법사님?”

    “왜 그러느냐, 로난?”

    “대마법사님께 여쭙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편하게 물어보거라.”

    “왜…… 저였나요?”

    “무엇이 말이냐?”

    “저는 대마법사님을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대마법사님께선 제 이름도 알고 계셨고, 또…….”

    왜 자신을 황궁에 데려왔는지, 그리고 하고 많은 아이들 중에 왜 하필 자기였는지 로난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로난의 물음에 헨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이 답해 주었다.

    “그것이 그리도 궁금하더냐?”

    “아, 아닙니다! 대답해 주시기 곤란하다면 답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전 그저 저 같은 놈에게 어찌 대마법사님 같은…….”

    헨리의 반문에 로난이 황급히 대답을 늘어놓았다.

    헨리는 로난의 그런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다.

    헨리가 답했다.

    “네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기 때문이다.”

    “……예?”

    “그래서 네가 지금 보답을 받는 것이다.”

    미래에 헨리를 도와 필사적으로 싸웠던 로난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헨리가 그 뜻을 이어 세상을 구했으니 로난은 순국열사가 맞다.

    헨리의 대답에 로난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헨리는 모른 척, 미소를 머금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곧 여느 건물 앞에 섰다.

    이곳은 헨리가 로난을 위해 따로 마련한 별채였다.

    별채 앞에 선 헨리가 말했다.

    “이곳이 바로 앞으로 네가 살게 될 집이다.”

    “여, 여기서 말입니까?”

    “그래. 혹시 부족해 보이더냐?”

    “아, 아닙니다! 차고 넘칠 정도로 과분합니다!”

    로난의 두 눈동자에 담긴 별채.

    킹턴의 성보다는 작았지만 로난이 지내던 별채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곳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마탑과도 가까워 로난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마탑에 출입할 수도 있었다.

    로난의 시선이 별채 입구에 걸린 문패로 옮겨 갔다.

    문패에는 금으로 수놓아진 자그마한 글씨가 있었는데 로난은 그것을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모리스……차일드?”

    또박또박 한 음절씩 읽어 낸 이름.

    문패에는 ‘모리스 차일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로난이 문패에 적힌 이름을 읽어 내자 헨리가 조금 놀란 어투로 물었다.

    “로난, 글자를 읽을 줄 아느냐?”

    “부끄럽지만 조금밖에 모릅니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무지를 알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는 게 부끄러운 것이지. 그러니 넌 참 기특하구나.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글자를 읽을 줄 안다니.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넌 모리스 차일드가 무슨 뜻인 것 같으냐?”

    헨리의 물음에 로난은 얼마간 머리를 굴렸으나 결국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이곳은 내 성을 이은 아이들이 지낼 수 있게 별도로 마련된 공간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살려면 내 성을 이어야만 하지. 로난, 너도 내 성을 이어 로난 모리스가 되는 게 어떻겠느냐?”

    모리스 차일드.

    헨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애도 없었다.

    하지만 헨리가 세운 계획에 의하면 아이는 가져야만 했다.

    물론 헨리가 가질 아이들은 모두 헨리의 피를 잇지 않았다.

    하지만 헨리의 성을 이음으로써 공식적으로 헨리를 후견인으로 둘 수 있었다.

    헨리는 그렇게 모을 아이들을 아울러 모리스 차일드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모리스 차일드에 대한 사실은 이미 황궁과 마탑, 전역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헨리의 물음에 로난은 심히 당황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륙 최강의 대마법사의 성을 이으라니?

    놀란 마음에 로난이 쉬이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헨리가 되물었다.

    “아무래도 싫은 모양이구나.”

    “아,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뒤늦게 강한 긍정을 하는 로난.

    그 순간, 별채 안에서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목소리와 함께 별채에서 낯선 아이가 걸어 나왔다.

    로난의 시선이 아이에게로 옮겨졌다.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또래였다.

    아이의 등장에, 로난이 조금은 겁먹은 눈빛으로 헨리를 쳐다보자 헨리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인사하거라. 앞으로 너와 함께 이곳에서 지내게 될 나의 제자. 하인 모리스라고 한다. 하인, 너도 인사하거라. 이쪽은 로난 모리스다.”

    “로난이라고? 이름이 예쁘네. 만나서 반가워.”

    하인이 붙임성 좋게 로난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로난은 얼떨결에 하인의 손을 붙잡았고 하인은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로난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하인이 말했다.

    “그렇잖아도 혼자 지내기 외로웠는데 잘됐다. 내 이름은 하인 모리스야. 근데 그거 알아? 원래 내 이름은 하인이 아니었다?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내 원래 이름은 대마법사님과 같았어.”

    로난이 반가웠던 하인은 묻지도 않은 사실들을 떠벌리며 로난을 환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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