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
외전 (2)
‘여기로군.’
헨리는 대궐 같은 성문 앞에 섰다.
대궐 같긴 해도 황궁은 아니다.
그 어떤 성도 제아무리 화려해 봤자 황궁의 화려함에 비하면 수수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황궁과 비교했을 때지 일반적인 다른 귀족가와 비교하면 분명히 크고 웅장한 성임에는 분명했다.
헨리는 성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맞게 찾아왔네.”
오류는 없었다.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과 그 목적이 실패하지 않도록 내부 사정 또한 꼼꼼히 검토했다.
성문 앞에 선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쾅-!
단순히 손가락을 튕겼을 뿐인데 거대한 성문이 거칠게 열렸다.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헨리 주위로는 한 점의 먼지도 다가오지 않았다.
헨리가 바람 마법으로 진즉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콜록, 콜록!”
피어오른 먼지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침 소리 사이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놈이냐!”
그 물음에, 헨리는 손을 저어 먼지바람을 없애 주었다.
먼지바람이 사라지자 물음을 던진 사내는 그제야 헨리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헨리를 알아본 사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대, 대마법사님?”
“그래.”
얼굴이 하얗게 물든 사내의 이름은 톰슨.
제국 십검 중 서열 2위에 해당하는 ‘킹턴 포람’가의 경비대장을 맡고 있는 사내였다.
헨리가 짤막하게 대꾸하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헨리가 톰슨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톰슨이 바짝 얼어붙은 표정으로 자리에 굳었다.
톰슨 앞에 선 헨리가 물었다.
“킹턴을 만나러 왔는데. 킹턴은 지금 어디에 있지?”
“가, 가주님께선 지금 멧돼지 사냥을 나가셨습니다!”
“멧돼지 사냥?”
멧돼지 사냥이라, 참 팔자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집에는 황제에 버금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기습 방문을 했는데, 한가로이 멧돼지 수렵이나 하고 있다니?
헨리는 나중에 얼빠진 표정을 지을 킹턴의 얼굴을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조금 늦어도 상관없겠지. 그건 그렇고……. 너, 이름이 뭐지?”
“톰슨입니다! 포람가의 성을 지키는 경비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 집에 대해선 성내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겠네?”
“그, 그렇습니다만…….”
대답하는 목소리의 끝이 처졌다.
사정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그 사정이란 것들 중에는 가문의 비밀 또한 더러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단속을 잘해야 한다.
그것이 가문의 저택을 지키는 경비대의 덕목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사정 따위, 헨리가 알 바 아니었다.
“좋아. 톰슨, 이곳에 킹턴이 입양한 양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야, 양자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양자. 설마 양자가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하, 하지만 그게…….”
“왜? 안내 못 하겠어?”
“아, 아닙니다! 지금 즉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자들의 숙소로 향할수록 톰슨의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
킹턴의 양자들은 외부로 새어 나가선 안 되는 가문의 비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밀 누설에 대한 가주의 처벌보다는 지금 당장 눈앞에서 흉흉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제국 최강의 대마법사가 더 두려웠다.
공포에 굴복한 톰슨이 순순히 양자들이 지내는 별채로 안내했다.
별채까지 거리가 좀 됐다.
헨리는 톰슨에게 거리가 먼데도 왜 마차를 준비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 모든 책임은 킹턴에게 묻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별채가 나옵니다.”
헨리의 짜증을 톰슨도 느낀 것일까?
톰슨이 황급히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헨리를 다독였다.
과연, 톰슨의 말대로였다.
톰슨이 말한 지점부터 얼마간 더 걸어가자 어린 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앗!”
“더 크게!”
“하압!”
그 소리는 기합이었다.
여럿이 뭉쳐 만드는 군중의 기합.
기합에는 패기를 비롯한 악바리 근성이 제법 느껴졌다.
톰슨의 안내를 받아 어느 지점에서 코너를 돌자, 헨리는 진풍경을 보았다.
‘하?’
눈앞에 펼쳐진 광경.
그것은 머리색도, 체격도 다른 수십 명의 아이들이 널찍한 공터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정말이었군.’
공터에서 목검을 휘두르는 아이들, 저들 모두가 킹턴이 들인 양자들이었다.
대충 머릿수를 헤아려 봐도 서른이 훌쩍 넘는다.
헨리가 수집한 정보대로 킹턴은 정말 수십 명에 달하는 양자들을 제 아래로 들였다.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저…… 대마법사님? 전 안내를 마쳤으니 이제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자들을 바라보는 헨리의 눈빛이 차디찼다.
톰슨은 그런 헨리의 냉랭한 기색을 읽고서 서둘러 내빼려 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킹턴, 그놈이 돌아오는 대로 응접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응접실이요? 알겠습니다!”
헨리가 제국 십검 중 이검에 해당하는 최고위급 검사, 킹턴 포람을 그놈이라고 불렀다.
톰슨은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감지했다.
그는 헨리의 명령을 받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내뺐다.
헨리의 시선이 다시 아이들에게로 옮겨졌다.
다들 나이대가 비슷비슷해 보였다.
헨리는 저들의 나이가 왜 비슷한지 잘 안다.
저들의 연령대는 킹턴의 친아들인, 헤밀턴에게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헨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제도가 있다.
제국의 사회 지도층은 제국민들을 위해 명예로운 군복무를 하거나 막대한 기부금을 내어야 하는 제도다.
그리고 제도임과 동시에 지도층에게 부여된 의무이기도 하다.
킹턴은 제국 이검이다.
제국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위층 검사이니 지도층이 맞다.
그래서 막대한 기부금을 내거나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했는데 킹턴은 미래에 양자를 친아들 대신 군대에 보낸다.
그렇게 하면 막대한 기부금도 내지 않아도 되고, 피붙이인 헤밀턴의 군역 역시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밀턴을 대신해서 군대에 간 양자가 바로 로난이다.
헨리의 시선이 목검을 휘두르는 아이들에게로 다시 옮겨졌다.
아이들은 머리색과 체격, 눈동자 색까지 모두 달랐지만 헨리가 찾고자 하는 아이는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금발에 금안, 그리고 얼핏 보면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제법 탄탄하고 큰 키를 소유했던 사람.
로난이었다.
물론 지금은 나이가 어리니 체격은 논외로 쳐야 했지만.
하지만 체격을 제외해도 헨리는 금방 로난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 녀석이군.’
헨리의 시선이 한 군데에서 멈춰 섰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긴 하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두 눈에 독기가 가득한 게, 미래에서 봤던 로난의 그 눈빛이었다.
그 순간, 훈련을 지도하던 교관이 들고 있던 목검을 양자들 사이로 집어던졌다.
뻐억-!
묵직한 소리가 났다.
날아간 목검이 로난의 쇄골에 부딪혔다.
목검으로 쇄골을 강타당한 로난은 목검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교관이 말했다.
“똑바로 해라, 쓰레기.”
“음?”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헨리가 한동안 로난의 훈련을 지켜본 바로는 로난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관은 질타했고 목검에 맞은 로난은 묵묵히 교관의 목검을 주워다가 교관에게 갖다주었다.
그런 다음 자기 자리로 돌아와 다시 목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이런 대접을 받았던 건가?’
왜 첫만남에서 로난이 헨리에게 지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두 눈이 독기로 차 있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로난에게 지옥이었다.
헨리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리고 계획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바꾼 헨리가 등을 돌려 킹턴이 올 응접실로 향했다.
* * *
“대마법사님께서 오셨다고?”
“그렇습니다!”
톰슨은 헨리의 명령을 받자마자 곧바로 수렵을 떠난 킹턴을 찾았다.
원래대로라면 킹턴이 돌아올 때까지 저택에서 기다려야 했지만 헨리의 기에 눌려 양자들의 거처를 헨리에게 알려 주었으니 어떻게든 킹턴의 화를 덜어 내기 위함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킹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번졌다.
그리고 서둘러 말을 몰아 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응접실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헨리가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왔군.”
목소리가 건조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수렵복도 채 벗지 못한 킹턴이 땀을 뻘뻘 흘리며 헨리 앞에 불편함을 가득 안고 앉았다.
헨리의 시선이 킹턴을 훑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헨리가 자신의 집에 와서 톰슨에게 무엇을 보여 달라고 했는지 이미 들어 안다.
하지만 의아했다.
분명히 입단속을 잘 시켰는데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자신이 양자들을 많이 입양하긴 했지만 그 이유까지 바깥으로 새 나갔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위기의 불편함은 느껴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헨리가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킹턴 경.”
“예, 예?”
“듣자 하니 천애고아나 배를 곯는 아이들을 양자로 데려다가 검술을 가르치신다고 들었는데……. 어찌 그런 일을 하실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아…… 아, 그, 그렇습니다! 제가 워낙에 아이들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아이들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제국 이검에 빛나는 킹턴 경이십니다.”
갑작스러운 칭찬.
이어지는 헨리의 말들을 킹턴은 잔뜩 긴장하고서 들었다.
그러나 칭찬 이외에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래서 혹시 자신이 무언가를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확실히 모를 수도 있어. 내가 양자들을 많이 들이긴 했지만, 그 이유가 헤밀턴 대신 군대에 보낼 놈을 추려 내기 위함이란 걸 대체 어떻게 알아? 그 누구한테도 발설한 적이 없는데!’
킹턴이 양자를 많이 들였다는 사실은 그래도 포람가 저택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킹턴이 왜 양자를 많이 들였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한 번도 킹턴이 발설한 적이 없으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킹턴은 조금 뻔뻔하게 나가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가 말했다.
“이런 아버님 밑에서 자란 헤밀턴 군은 얼마나 총명할까요? 킹턴 경, 헤밀턴 군은 잘 자라고 있습니까?”
“예? 아, 아, 그럼요. 물론입니다! 저를 닮아서 그런지 검술에 꽤나 소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명히 저를 이어 훌륭한 기사가 될 것입니다.”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군요. 헤밀턴 군도 분명히 명예로운 아버님을 본받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 믿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당연히 그렇죠! 사회 지도층들의 솔선수범을 위해 만든 제도인데 당연히…….”
킹턴은 말끝을 흐렸다.
대답은 이렇게 해도 양자를 입양한 이유가 저 빌어먹을 제도 때문이니까.
물론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고도 저 의무를 지킬 방법은 있다.
그것은 막대한 양의 기부금을 내는 것.
하지만 그 기부금이란 게, 말이 기부금이지 사실 나가지 않아도 될 돈이 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킹턴이 돈이 많아도 그 킹턴마저도 부담을 느끼는 금액이 바로 기부금이다.
그래서 편법으로 양자를 들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고.
수십 명의 양자들을 먹여 키우는 데 드는 돈은 기부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기 때문이다.
킹턴의 거짓 대답에 헨리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렇잖아도 항간에 괴상한 소문이 돌아서 말입니다.”
“괴상한 소문이요?”
“예, 누가 친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양자를 들여 키운다는 소문이 돌아서 말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하마터면 딸꾹질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킹턴은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헨리의 말이 이어졌다.
“황제 폐하와 저의 뜻을 담아 만든 제도를 설마 그런 방법으로 악용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누군진 모르겠지만 실망이 아주 큽니다.”
헨리가 사뭇 진지해진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대마법사의 진지한 눈빛.
살기가 가득했다.
이어서 헨리는 그런 위법을 사용하는 자가 있다면 황제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죄목으로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킹턴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어색하게 웃는 킹턴의 얼굴을 보며 헨리가 방긋 웃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킹턴 경께선 모두의 귀감이 될 만한 일을 하고 계시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조, 좋은 소식 말씀입니까? 아, 아! 감사합니다! 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찌 상을……!”
“아닙니다. 모두의 귀감이 되셨으니 이런 일은 널리 알려야 마땅합니다. 그럼 조만간 황궁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킹턴 경.”
말을 끝으로 헨리는 킹턴의 성을 벗어났다.
헨리가 성을 떠난 후, 킹턴은 암담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그런 킹턴에게 그의 집사, 렐슨이 안부를 묻는다.
킹턴은 한참을 자신의 큰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빌어먹을!”
나직히 욕설을 내뱉는 킹턴.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이렇게 되면 킹턴에겐 더 이상 양자를 키울 이유가 사라진다.
하지만 헨리는 이미 수많은 양자들을 보았다.
그런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상까지 내린다고 말했다.
쓸모는 없지만 양자들은 계속해서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들의 양육비가 의무 때문에 낼 기부금보단 적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양육비가 적은 건 또 아니었다.
킹턴의 뒷목이 얼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