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
외전 (1)
“다시.”
검술 교관의 말에 아이는 다시 검을 들었다.
아이의 나이는 이제 겨우 두 자릿수에 접어들 만큼 어렸다.
한참 사랑을 받고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으며 뛰놀아도 모자랄 나이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는 장난감 대신 목검을 잡았다.
“마지막 기회다, 쓰레기. 이번에도 실패하면 오늘 저녁밥은 없다.”
말을 마친 교관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아이의 시선이 교관의 얼굴에서 손가락을 따라 아래로 옮겨 갔다.
시선이 도착한 곳에는 군홧발 옆에는 발로 짓뭉개진 수많은 주먹밥들의 잔해가 있었다.
“시작해라, 쓰레기.”
교관은 아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아이를 미워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곳에는 지금, 교관 앞에서 목검을 든 아이와 같은 사정을 가진 아이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의 이름은 외우고 있다.
그 아이들은 교관이 원하는 ‘가능성’을 가졌거나 교관의 비위를 잘 맞추기 때문에 외워진 것이다.
하지만 좀 전에 목검을 놓친 아이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름 대신 쓰레기로 불렸다.
“후우우…….”
마지막 기회.
그 말을 곱씹으며 아이는 다시 목검을 들었다.
아이의 양손에 굳은살이 가득했다.
그리고 몸 곳곳에 멍을 포함한 생채기들 또한 가득했다.
학대를 받은 게 아니다.
이 상처들은 모두 훈련의 흔적들이었다.
적어도 교관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기에 아이는 절대로 엄살을 부리지 않았다.
어차피 엄살을 부려 봤자 달라지는 현실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이는 독기를 가득 품고서 교관의 손에 들린 주먹밥을 노려보았다.
‘반드시 먹는다!’
교관의 손에 들려진 주먹밥의 정확한 명칭은 소금 주먹밥이다.
맨밥에 소금으로만 간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아이들의 주식이자 ‘밥’이라고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간혹 운이 나쁘면 소금이 뭉텅이로 든 주먹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
소금 주먹밥은 이곳의 유일한 먹거리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소금 주먹밥에 목을 맸다.
“일어나라, 쓰레기.”
교관의 입에서 다시 한번 이름 대신 쓰레기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꾸물거렸기 때문이다.
쓰레기라는 말을 들은 아이는 화가 났다.
하지만 끓어오른 분노는 금방 식고 말았다.
마치 정신이라는 검을 가슴 속 대장간에서 끊임없이 담금질하는 기분이었다.
쓰레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는 교관이 자신에게 왜 저렇게 못되게 구는지 안다.
저녁밥을 인질로 잡든, 욕설로 화를 돋우든 어떻게든 아이로부터 최상의 컨디션을 끌어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다시 목검을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그래, 그래야지.”
교관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마치 악마가 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악마 같은 교관의 미소보다 아이는 악마의 손에 들린 주먹밥에 더 시선이 갔다.
“후우우…….”
오늘은 그동안 배운 검술을 교관에게 검사받는 날이다.
아이는 분명히 검술을 완벽하게 외웠다.
검술을 외우지 못하면 밥을 굶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필사적으로 검술을 익혔다.
하지만 교관은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한지 벌써 아홉 번이나 ‘다시’를 외쳤다.
‘빌어먹을 새끼.’
아이의 눈빛에 독기가 잔뜩 어렸다.
마음 같아선 검술이 아닌 교관의 목젖에다가 콱 목검을 쑤셔 박아 넣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분노의 해소보단 배고픔의 해소가 더 절실했으니까.
아이가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외침과 함께 아이의 발이 움직였다.
검술의 기본이 되는 보법이다.
아이는 마름모꼴로 발을 놀려 보법을 시행했다.
이 빌어먹을 스텝을 연습하기 위해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얼마나 움직였는지 모른다.
미소가 걸려 있던 교관의 얼굴이 다시금 굳어지기 시작했다.
교관이 싸늘한 눈빛으로 아이의 보법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보법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검무의 증명뿐이다.
아이가 익히는 검술은 어느 귀족 가문에서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독자적인 검술의 ‘일부’이다.
원류를 배우면 좋겠지만 그것은 오직 적통만의 절대적인 권리라며 곁가지 같은 검술이나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원류니 곁가지니 하는 것들 전부 아이에겐 상관없는 것들이다.
아이가 이곳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알려 주는 검술을 완벽하게 외우면 배를 채울 음식을 준다고 해서였으니까.
아이의 검무가 이어졌다.
동작은 완벽했고, 검무는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아이의 검무를 지켜보던 몇몇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동글게 오므려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금만 더……!’
검무의 완성이 코앞이다.
이제 몇 바퀴만 더 돌고 목검을 몇 번만 더 내지르면 굶주린 배를 달래 줄 소금 주먹밥을 먹을 수 있다.
발이 원을 그렸고 허리축이 회전하며 몸 전체가 돌았다.
아이는 검을 내질렀다가 대각선으로 검 끝을 그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공중제비를 두 바퀴 돌았다.
이제 조금만 더, 목검 몇 번만 허공을 가르면 끝이 난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만!”
검무의 완성이 코앞이었을 때, 갑작스레 교관이 소리쳤다.
외침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교관의 외침은 아이에게 서슬 퍼런 비수가 되어 날아와 잔인하게 박혔다.
아이의 전신에 소름이 쭈뼛 돋고 식은땀이 났다.
아이는 즉시 동작을 멈추며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 순간, 교관의 군화발이 아이의 아랫배에 작렬했다.
“컥!”
털썩!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이의 몸이 저만치 멀리 떨어져 나갔다.
그렇잖아도 더러운 몸, 흘린 땀과 바닥의 먼지로 범벅되어 더더욱 더러워졌다.
교관은 내지른 발을 천천히 내린 뒤 입을 열었다.
“형편없는 자식.”
검무는 완벽했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검무를 되짚어 봐도 실수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교관은 무엇이 그리 불만족스러운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교관이 말했다.
“그따위 동작으로 무슨 밥을 먹겠다고……. 네놈이 먹을 밥은 없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말을 마친 교관은 손에 쥐고 있던 소금 주먹밥을 아이가 보는 눈앞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주먹밥에 흙과 먼지가 뒤엉킨다.
아이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들었다.
‘겉 부분만 조금 떼어 내면 먹을 수 있어.’, 같은 생각들 말이다.
하지만 주먹밥이 바닥을 나뒹군 순간, 교관은 가차 없이 그것을 군화발로 짓밟았다.
“혹시라도 주워 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아이의 희망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아이의 차례 또한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안구에 눈물이 글썽였다.
아랫배를 걷어차인 게 아파서가 아니었다.
벌써 몇 끼를 먹지 못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주먹밥을 먹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교관은 주먹밥을 뭉그러뜨렸다.
그것은 아이에게 희망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에 닿기 직전이었던 세상 그 자체였다.
그러나 교관은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이 턱짓으로 아이를 끌어낼 것을 명령했다.
주먹밥을 얻지 못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손아귀에 이끌려선 밖으로 이끌려 나갔다.
그리고 벽면 한쪽 구석으로 내던져졌다.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의 시선이 던져진 아이를 잠깐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려 다음 차례의 아이를 보았다.
교관이 말했다.
“다음 순번, 튀어나와!”
* * *
밤이 되었다.
아이는 잠을 이루고 싶었지만 온몸이 욱신거리고 낮의 일이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먹지 못한 굶주린 위장이 뱃속을 계속해서 울려 댔다.
괴로웠다.
처음엔 분명히 이곳에 들어오면 굶어 죽지 않게 해 준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로 굶어 죽지 않게만 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 중 굶어 죽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때였다.
“야, 쓰레기. 일어나 봐.”
익숙한 목소리.
콜론이었다.
콜론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검술을 익혀 소금 주먹밥을 얻어먹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아이는 콜론을 싫어한다.
콜론은 교관의 총애를 받는 몇 안 되는 아이들 중에 한 명으로 콜론 또한 자신이 교관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해 교관처럼 다른 아이들을 쓰레기라고 불렀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콜론을 몹시 싫어했다.
물론 이런 이유만으로 콜론이 미움을 받는 건 아니다.
다른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콜론이 밤만 되면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다른 아이들에게 린치를 가한다는 것이었다.
린치를 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고된 훈련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다.
콜론이 아무리 교관의 총애를 받는다고 한들 고된 훈련까지 면제받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콜론은 정확히 아이를 가리켰다.
하필이면 오늘 린치의 대상이 자신이 될 줄이야.
아이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콜론이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벌써 몇 끼를 건너뛰는 바람에 신경이 몹시 예민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콜론의 지목을 무시할 순 없다.
말없이 자는 척을 해도 콜론의 패거리들이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울 테니까.
아이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게 콜론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감히 내가 부르는데 한숨을 쉬어?”
같은 처지인 주제에 콜론의 권위 의식이 하늘을 찌르는 게 느껴졌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 주고 등받이가 되어 줘도 모자랄 판에 참 구역질나는 인성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말했다.
“덤벼.”
“……뭐?”
“덤비라고 망할 새끼들아. 어차피 너희가 만족하지 않으면 밤새도록 괴롭힐 거잖아.”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게 약자를 괴롭히는 놈들의 심보가 그러했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맞고 있기 보단 차라리 저항할 만큼 저항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얻어맞나 저렇게 얻어맞나 결과는 매한가지일 테니까.
아이의 시선이 콜론 패거리를 스쳤다.
숫자는 총 다섯.
목검 한 자루 없는 이 마당에, 더불어 밥도 몇 끼나 굶은 상황에 저놈들 전부를 이길 자신은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저항할 것이고 사용할 수 있는 저항의 방법은 모두 사용할 것이다.
콜론이 말했다.
“소원대로 해 줘. 죽여 버려.”
“이런 건방진 새끼!”
콜론의 명령에 패거리 일행 네 놈이 아이에게 몸을 던졌다.
우당탕 큰소리가 났다.
이곳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다 같이 잠을 자는 숙소.
그렇기 때문에 난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숙소에 누워 있는 아이들 전부가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쥐 죽은 듯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콜론의 심술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괜히 엮여 봤자 에너지만 낭비할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 타깃이 된 아이는 싸움이 끝날 때까지 고독하고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죽어!”
아이는 비록 교관에게 인정받진 못했지만 완벽하게 외운 검무만큼이나 박투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한 놈을 때려눕히고 다른 세 놈을 상대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이 패배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새끼가! 잡아!”
결국 두 놈을 때려눕힌 게 아이의 최종 성적이었다.
아이는 열세에 몰려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콜론이 합세한 순간부터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콜론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퉤! 이 빌어먹을 새끼, 이렇게 무너질 거면 처음부터 나대지나 말든가.”
아이의 저항에 콜론도 인중 한 대를 얻어맞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뱉은 침에 핏물이 섞여 있었다.
콜론이 말했다.
“나한테 대든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 주지. 야, 이놈 밖으로 쫓아내.”
콜론의 명령에 아이들이 아이의 이불로 아이를 둘둘 싸맨 다음 숙소 밖으로 집어던졌다.
숙소를 관리하는 어른은 없다.
어차피 이곳은 아이들이 잠만 자는 곳이었으니까.
바깥은 추웠다.
얼어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뱃가죽이 등가죽과 맞닿아 있고 몰매를 맞은 직후라 그런지 체력 소모가 너무 컸다.
아이는 말려진 이불 속에 웅크려 오들오들 떨었다.
두들겨 맞은 곳들이 아팠다.
낮에 군홧발에 채인 아랫배도 아팠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 가는 게 느껴졌다.
눈물이 났다.
만약 지옥이란 게 있다면 여기가 그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이가 중얼거렸다.
“난…… 난 대체 왜 태어난 걸까……?”
부모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으니까.
그래서 신세를 고치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것인데 딱히 신세가 고쳐질 것 같지도 않았다.
매일이 후회스러웠다.
물론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바깥이었다면 몸이라도 편했을 텐데…….
아이가 중얼거렸다.
“죽고 싶어…….”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냐, 로난?”
달빛이 드리운 포람 가의 성내.
그 안에 위치한 양자들이 묵는 숙소.
그곳에 헨리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