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90화 (390/522)

# 390

헨리 모리스 (1)

‘이걸로 된 건가?’

의탑의 증축은 쉬웠다.

라이징 그랜드 맨션 한 번이면 마탑만큼이나 크고 웅장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탑의 권위를 생각하여 마탑보단 작게 지었다.

이에 불만을 표하는 인간학 마법사는 없었다.

의탑으로 이주하는 마법사들에겐 탑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직 ‘인간학’ 마법사만을 위한 탑이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했으니까.

킬라이브 한쪽에 의탑이 지어지면서 킬라이브에는 때아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의탑으로 이주해 온 마법사들이 킬라이브 내부를 돌아다니며 실험체에 눈빛을 반짝였기 때문이다.

물론 죄수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잘 부탁하겠네.”

헨리가 드라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참 든든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적이었을 땐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는데, 아군이 되었을 땐 한없이 듬직했기 때문이다.

헨리는 드라칸이 하루 빨리 7서클이 될 수 있도록 그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헨리가 개탑식을 마친 의탑을 기대감이 잔뜩 부푼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의탑에 제국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 * *

“아오, 빌어먹을 도적놈들!”

칼슨이 피 묻은 칼날을 털어내며 말했다.

칼슨은 C급 용병으로 상단 호위 임무를 배정받고 리빌 상단과 함께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산맥을 넘는 지점에서 도적 떼를 만났고 가까스로 도적 떼를 쫓아낼 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드 마스터가 아닌 C급 용병이었기에 난투 끝에 수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칼슨이 피 묻은 칼을 바닥에 던져 둔 후 근처의 바위에 주저앉았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다.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내질러 오는 도적놈의 창을 미처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용병들에게 호위 임무를 맡겼던 상단주 리빌이 부리나케 칼슨에게 달려와 말했다.

“칼슨 님, 상처가 제법 깊습니다. 얼른 치료 주문서를!”

리빌의 품에서 손바닥만 한 종이 두루마기가 나왔다.

리빌은 그것을 치료 주문서라고 불렀다.

치료 주문서에는 ‘자상(刺傷)’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칼슨이 주문서를 받아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잖아도 주문서가 필요했는데.”

주문서를 받아든 칼슨이 그것을 펼쳐 환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화아악……!

황금빛 이채가 주문서로부터 새어 나오더니 환부를 감싸 안고 금방 흩어졌다.

주문서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칼슨이 환부로부터 주문서를 떼어 내자 그 자리에는 언제 상처가 있었냐는 듯이 마른 핏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칼슨이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완치됐네요. 감사합니다, 상단주님.”

“아닙니다. 이 정도 준비야 당연한 거죠.”

“그나저나 이 주문서, 참 물건이네요. 처음엔 이런 물건이 있다고 들었을 때 긴가민가했는데 말이죠.”

칼슨은 룬어가 사라진 텅 빈 주문서를 들어 요리조리 살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종이인데 룬어라는 게 적혔다고 이 정도 상처를 가볍게 치료해 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칼슨의 시선이 주문서에서 주변으로 옮겨 갔다.

함께 임무를 맡은 용병 모두가 주문서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리빌이 말했다.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무시했는데 값이 너무 저렴해서 한번 구매해 봤습니다. 그런데 웬 걸, 신전에서 판매하는 포션보다 훨씬 효과도 좋을뿐더러 보관도 용이하지 뭡니까?”

리빌이 주문서의 장점들을 늘어놓으며 주문서를 극찬했다.

칼슨이 말했다.

“이 주문서가 의탑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죠?”

“그렇습니다. 올해 개발된 거라고 들었는데, 오직 황궁에서만 독점 판매해 품질도 보장받았습니다.”

의탑이 개탑한 지 대략 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의탑은 헨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 예로 신전에서 판매되는 힐링 포션을 대체할 만한 물건이 나왔다는 것인데 좀 전에 칼슨이 사용한 치료 주문서가 바로 그것이었다.

치료 주문서.

정식 명칭은 ‘힐링 페이퍼’였으나 그것보다 치료 주문서가 훨씬 부르기 쉬워 세간에선 힐링 페이퍼를 치료 주문서라고 불렀다.

치료 주문서는 혁신이었다.

치료 주문서는 기존의 마법 스크롤처럼 빈 스크롤에 치유 마법을 담은 게 원리의 전부였다.

하지만 기존에 알려진 치유 마법 스크롤은 가격도 몹시 비싼 데다가 회복양이 포션보다 적어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의탑은 치유 마법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냈다.

적은 마력, 상처에 따른 다양한 치유 마법, 그리고 양산화를 통한 저렴한 공급.

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탄생한 것이 바로 현재의 힐링 페이퍼였다.

힐링 페이퍼는 제국민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힐링 페이퍼는 제국민들의 사망률을 비약적으로 줄여 냈으며 동시에 인구 증가율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각종 전염병을 물리치고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환자를 일으키는 등, 여러 가지 기적들을 제국민들에게 선사해 주었다.

바야흐로 의탑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 *

똑똑-.

황궁 옆 마탑의 꼭대기층에 위치한 헨리의 연구실.

누군가 헨리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책상 앞에서 서류를 보던 헨리는 손짓 한 번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방문자가 의외의 인물이었다.

“드라칸?”

서류를 뒤적이던 헨리의 손이 멈추었다.

방문자는 다름 아닌 드라칸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드라칸이 헨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드라칸이 말했다.

“위대하신 대마법사님을 뵙습니다.”

“위대하긴 짜식이, 얼른 와서 앉아!”

헨리는 반가움에 읽던 서류를 내팽개치고 드라칸을 앉혔다.

차가 금방 준비되었지만 둘에게 차보단 이야기가 먼저였다.

헨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요 몇 달간 너무 바빠서 시간 한번 내기 힘들다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직접 왔는가?”

꾸지람 같은 목소리였지만 애정이 듬뿍 담긴 질책이었다.

헨리의 물음에 드라칸이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드라칸 로티크.

한때는 귀신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사내였지만 이젠 머리도 짧게 자르고 살도 제법 붙었다.

무표정으로 일관됐던 얼굴에는 미소가 너울거려 훨씬 보기가 좋았다.

드라칸이 말했다.

“기쁜 소식이 있어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기쁜 소식?”

기쁜 소식이란 말에 헨리는 기대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드라칸이 기쁜 소식이라고 말한 것들은 하나같이 제국민들의 삶을 뒤바꾸어 놓을 만한, 예컨대 힐링 페이퍼 같은 수작들의 탄생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무슨 소식인데 그래?”

헨리가 입꼬리를 귀에 걸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드라칸은 무엇이 그리 쑥스러운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저 그게…….”

“아, 뭔데! 무슨 소식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여?”

“드디어 이룩해 냈습니다.”

“이룩하다니, 뭘?”

“서클을 한 단계 증진시켰습니다. 저도 이제 드디어 6서클 마법사, 아크 메이지입니다.”

“뭐?”

잠깐의 침묵.

의탑이 개탑한 지 이제 겨우 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3년 만에 서클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다니?

헨리의 입이 벌어졌고 두 눈이 토끼의 그것처럼 동그랗게 말렸다.

그리고 정확히 3초 뒤, 헨리의 입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이야앗! 그게 정말이야?”

“예, 사실입니다. 대마법사님.”

“이런 미친놈! 장하다! 아주 장해!”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드라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무려 아크 메이지였다.

어떤 이는 평생을 가도 이룩하지 못할 경지가 마도사라는데, 드라칸은 마도사에 접어든 지 고작해야 3년 만에 아크 메이지가 되었다.

이는 헨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독보적인 성장 속도였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몇 명의 마도사들이 저와 함께 아크 메이지가 되었습니다.”

“자네 말고도 아크 메이지가 또 있다고?”

“예. 큼직큼직한 연구는 다 같이 진행했으니까요.”

“허허, 경사도 이런 겹경사가 없구먼그래!”

말 그대로 겹경사였다.

헨리는 마치 자신의 친아들이 성공한 것처럼 진심으로 드라칸을 축하해 주었다.

‘됐어! 이걸로 된 거야!’

드라칸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그런 드라칸을 보는 헨리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얼마간 서로를 뜨겁게 축하했다.

그렇게 열이 조금 식고 난 뒤에야 느긋하게 근황을 나누었다.

헨리가 물었다.

“기특한 놈! 그래서, 요즘은 어떤 연구를 주로 하고 있나?”

“요즘은 사람의 정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

“예, 처음에는 폭력적 성향이 짙은 죄수들을 교화하기 위해 시작한 연구인데, 잘만 하면 정신병으로 고통받는 제국민들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드라칸의 대답에 헨리의 미소가 잠깐 동안 멎었다.

사람의 정신과 뇌에 관련한 연구.

순간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괜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 * *

“이제 이걸로 된 건가……?”

드라칸이 돌아간 직후, 헨리는 보던 서류도 내팽개치고 푹신한 의자에 길쭉이 몸을 내뻗었다.

참 개운하고 시원한 기분이었다.

의탑으로 이주하던 날, 고작해야 4서클이었던 놈이 갑작스레 마도사가 되어 나타나 자신의 의지를 증명한 것도 놀라웠는데, 3년 만에 아크 메이지가 되어 모두에게 자신의 노력을 증명해 내기까지 했다.

참 멋진 놈이라고 생각했다.

헨리는 한동안 의자에 누워 회귀한 이후 자신이 이룩한 것들을 음미하며 감회에 젖는 시간을 가졌다.

참 즐거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고마웠던 사람들 모두,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헨리의 인생에서 헨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니까.

헨리는 충분히 감회를 음미한 후 책상 서랍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서랍 속에서 꽤 오랫동안 꺼내 보지 않았던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럼 이제 슬슬 이놈을 만나도 되겠지.’

지난 몇 년간, 헨리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회귀한 직후에 세웠던 계획들을 차근차근 이루어 냈다.

하지만 계획표에 적힌 것들 중에는 아무리 시간과 여유가 넘쳐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제국을 건국하고 대략 8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슬슬 움직여도 되겠어.’

헨리는 계획표에 적힌 마지막 이름들을 확인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헨리는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이만하면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했다.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황궁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나 입을 법한 가장 화려하고 멋진 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허리에 예식용 칼까지 찼다.

준비는 끝났다.

준비를 마친 헨리가 중얼거렸다.

“텔레포트.”

시야가 하얗게 물들며 빛이 번쩍였다.

빛이 멎어들며 연구실 내부였던 풍경이 사라지고 초목이 가득한 어느 외부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흙바닥에 발을 내디딘 헨리가 중얼거렸다.

“여기가 아마…… 삼거리 교역소였던가?”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익숙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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