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
비운의 천재 (2)
‘친형?’
눈앞의 시체가 드라칸의 친형이라는 말에 헨리는 조금 놀랐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시체를 빼돌려 온 것일 줄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이거…… 괜히 미안해지는군.’
아마도 드라칸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리라.
거기에다가 다른 이유로도 좀 놀랐다.
생각해 보니 드라칸에게 가족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인명부에도 따로 기록이 안 되어 있었지.’
헨리는 드라칸을 찾기 전에 드라칸의 인명부를 미리 열람해 보았다.
과거에는 관심이 없어 드라칸이라는 마법사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현재의 헨리에겐 드라칸만큼 관심이 가는 마법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칸이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헨리에게 내밀었다.
“혹시 오해를 하실까 싶어 미리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친형이 제게 남긴 친필 유서입니다.”
드라칸의 친형이 남겼다는 유서.
솔직히 필체 따윈 마법으로 조작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법으로 조작한 필체는 일반인이나 자신보다 낮은 마법사들이나 속아 넘어가는 것.
헨리가 마음만 먹으면 마법으로 조작한 필체 따윈 금방 진위를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드라칸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헨리는 드라칸이 건넨 유서를 받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유서에는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시체를 드라칸의 학업을 위해 기증한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드라칸이 말했다.
“제 친형은 저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학을 전공한 마법사지만 정작 연구를 위한 실험용 인간이 없어 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 사정을 말이죠. 그래서 선뜻 자신의 몸을 저에게 유품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비밀 연구실을 만들고 시체가 부패하는 걸 막기 위해 마법 처리를 했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형의 시체로 얻어 낸 소득은 좀 있었나?”
헨리의 말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아무리 친형이 남긴 육체라지만 형제의 선택이 마탑의 지침에 반하는 비인륜적 행태라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에 드라칸이 말했다.
“예, 형님 덕분에 전 인간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을 손에 넣었는가?”
“바로 이것입니다.”
드라칸은 실험실 한쪽 구석에서 가죽 커버로 된 두꺼운 책 한 권을 헨리에게 내밀었다.
책의 커버에는 ‘인간 해부학’이라는 제목이 적혀져 있었다.
‘해부학? 시체 해부에 대한 지식이란 말인가?’
해부학이 무엇인진 안다.
하지만 ‘동물 해부학’은 들어 보았어도 ‘인간 해부학’은 처음 듣는 용어였다.
아니, 만들어선 안될 단어라고 생각했다.
헨리는 ‘해부’라는 단어를 발견하자마자 즉시 시선을 옮겨 뒤편에 놓인 형의 시체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시체 곳곳에 절개의 흔적이 보인다.
마법으로 다시 붙인 듯했지만 얼마나 자주 갈랐다가 붙였는지 부분부분 봉합이 어색한 곳들이 보였다.
‘설마?’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헨리는 서둘러 책을 펼쳐 들었고 목차에서 한 번, 내용에서 다시 한번 경악했다.
‘이런 미친!’
인간 해부학.
책에는 정말 인간 해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뼈는 몇 개인지, 뼈는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무슨 뼈가 있는지.
심지어 장기의 위치나 모양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헨리의 얼굴에 여러 표정들이 피었다가 사라졌다.
드라칸은 침묵을 유지한 채 묵묵히 헨리의 독서를 지켜보았다.
헨리의 독서는 계속됐다.
드라칸이 저술한 ‘인간 해부학’에 담긴 내용들은 확실히 마탑의 지침을 벗어난 비인륜적인 내용투성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 담긴 것들은 몹시 흥미로웠다.
‘게다가 유익해.’
책 속에는 쓸데없는 내용이 없었다.
비인륜적이라곤 해도 형의 시체를 장난이나 놀이 따위가 아닌 ‘인간학의 발전’을 위한 공부에 사용된 것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유익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헨리는 인간 해부학이 가진 매력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드라칸이 말했다.
“대마법사님?”
“…….”
“대마법사님?”
“아! 어, 음. 그래.”
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잠시 드라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헨리는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책을 덮은 뒤 드라칸에게 돌려주었다.
책을 돌려받은 드라칸이 그것을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그의 눈빛에는 긴장이 역력했다.
드라칸으로서는 앞으로의 처분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보다 헨리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대마법사의 평가’였다.
헨리도 드라칸의 눈빛을 읽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좀 모순되긴 했지만 웃음이 났다.
‘저놈이 이렇게나 학구적인 놈이었다니!’
앞서 말했다시피 과거의 헨리는 드라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단지 드라칸이라는 마법사가 광기에 물들어 아서스를 통해 자신의 마법적 염원을 이루려 했다는 것만 알았을 뿐.
그런데 그 마법적 염원이 다름 아닌 인간학 발전에 대한 열망이었을 줄이야.
그것도 자기 형의 시체를 비밀 연구소에 숨겨 두고 실험할 만큼!
또한 지금은 어떠한가?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헨리에게 자신의 비밀들을 털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에 대한 질책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평가를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순수한 놈일지도.’
생각을 마친 헨리가 말했다.
“자네.”
“예, 대마법사님.”
“그간 마음고생이 많았겠군.”
“……예?”
“자네가 집필한 인간 해부학, 비록 일부밖에 못 읽긴 했지만 아주 감명 깊게 읽었어. 인간을 해부할 생각을 하다니, 자넨 확실히 미친놈이야.”
‘미, 미친놈?’
혹평인지 호평인지 모를 평가가 이어졌다.
그런데, 드라칸의 시선이 헨리의 입에서 멈추었다.
‘웃어?’
헨리의 입에 미소가 걸려 있다.
저 미소는 결코 무시나 능멸, 그런 종류의 비웃음에서 나올 수 있는 미소가 아니었다.
헨리의 미소에선 따스함이 느껴졌다.
‘설마?’
헨리의 그 따스한 입꼬리 덕분에, 드라칸은 왠지 모를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근데 자네가 저술한 책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하나 빠져 있더군.”
“중요한 내용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계기가 없어.”
“계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그 일에 몰두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어떤 이는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이는 재미를 위해, 하지만 자네의 책에는 그 이유가 빠져 있더군.”
이유.
말 그대로였다.
드라칸이 저술한 인간 해부학은 말 그대로 인간 해부학에 대한 정보만을 담고 있을 뿐, 해부학을 집필하게 된 저자의 계기가 적혀져 있진 않았다.
헨리는 그 계기가 몹시 궁금했다.
한때는 대륙을 멸망시킬 뻔했던 최악의 마법사가 어떤 계기로 인간학에 집착하게 된 건지 말이다.
헨리의 물음에 드라칸이 답했다.
“사람을…… 고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고친다고?”
“예, 혹시 괜찮으시면 제 이야기를 조금 들려 드려도 되겠습니까?”
“좋아. 한번 이야기해 봐.”
“감사합니다. 우선 저는 어렸을 때 돌림병으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형님 손에서 자랐습니다…….”
드라칸의 가정사.
헨리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드라칸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라칸의 말이 끝날 때쯤 헨리는 드라칸이 왜 인간학에 집착하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렇군. 드라칸이 인간학에 집착하게 된 건 가족 때문이었어.’
당연한 말이겠지만 드라칸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드라칸의 부모님은 드라칸이 어렸을 때 돌림병으로 죽고 유일한 피붙이인 드라칸의 형이 드라칸을 돌보았다.
그러니 드라칸이 마법사가 될 수 있있던 건 형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인 셈이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드라칸의 친형 또한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것도 드라칸이 탑의 수석 마법사가 되어 드디어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말이다.
“저는 오래 전부터 병을 치료받는 것에 한이 맺힌 사람이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돌림병에 걸리셨지만 하급 사제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셨습니다. 또 제 형은 보통 사제의 치유력으로는 도저히 병을 치료할 수 없는 중병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학을 전공하게 됐다? 사제들의 치유술이 아닌 정밀한 마법으로 치료하기 위해?”
“그렇습니다.”
“그렇군. 왜 자네가 인간학을 전공했는지, 그리고 왜 연구용 실험체에 집착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
간단한 계기였다.
하지만 간단한 계기 속에 담긴 절박함은 그 누구보다도 짙었다.
헨리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천신을 죽이고 주신을 만났을 때만큼이나 말이다.
말을 마친 드라칸은 자신이 집필한 인간 해부학을 손에 꼭 쥐고서 긴장한 눈빛으로 헨리를 응시했다.
자신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으니 이제 대마법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도살장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가엾은 짐승 같았다.
그러나 헨리는 이미 드라칸의 처분을 결정해 둔 상태였다.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드라칸에게 헨리가 말했다.
“드라칸, 내게 그런 눈빛을 지을 필요는 없네. 자네는 죄인이 아니야.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할 위대한 마법사지.”
“……예?”
드라칸의 동공이 확장된다.
“잘못 들은 게 아냐.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의 인간 해부학은 정말 감명 깊었어. 그리고 나 또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지.”
헨리는 드라칸을 만나고, 드라칸에게 보고 들은 것들을 토대로 솔직하게 평했다.
“자네는 정말 순수한 사람이야. 마법사임을 떠나 자네의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자네 덕분에 내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네.”
헨리의 감상에는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헨리가 저지른 잘못.
그것은 헨리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규범이란 건 모든 분야의 마법사들과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난 내가 대마법사라는 이유로 멋대로 탑의 규범을 만들어 모두에게 강요했지. 마치 폭군처럼 말이야. 하지만 자네 덕분에 깨닫게 되었네,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 말일세.”
“대마법사님……!”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겠어. 부모님 같은 형의 장례도 제대로 못 치러 준 상태에서 수십 수백 번이나 형의 육체를 가르고 봉합했어야 할 자네의 심정을, 난 감히 헤아릴 수가 없네.”
귀신 같은 외모를 지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성까지 귀신일 리는 없다.
또한 드라칸이 사람을 기피하던 행동과 보조 마법사를 둘 수 없었던 사정까지 모든 게 이해됐다.
드라칸은 그동안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칸 이놈이 진정한 마탑의 역군이었어.’
헨리의 두 손이 드라칸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그러자 드라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껏 울어도 좋네. 자네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어깨를 두드리던 두 손은 곧 흐느낌에 굽혀진 등을 두드려 주었다.
헨리가 말했다.
“드라칸,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자네 형님의 장례는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참석해 축복 속에서 아주 성대하게 치러질 것이야. 그리고 앞으로 인간학 발전을 위해 쓰일 실험체는…….”
인간학의 발전을 위해 쓰일 교보재. 혹은 실험체.
이 부분에 대해선 헨리 또한 많은 생각을 했다.
드라칸이 아서스의 심복이 된 이유가 실험용 인간의 무한한 공급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헨리는 아서스와 마찬가지로 드라칸에게 실험용 인간을 무한히 공급해 줄 생각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내 반드시 약속하지. 앞으로는 숨어서 실험하지 않아도 되며 모든 인간학 마법사들이 자유롭게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드라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두 귀로 들었지만 직접 듣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드라칸이 놀란 눈초리로 반문하자 헨리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자네는 혹시 킬라이브에 대해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