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70화 (370/522)

# 370

신 (3)

어둠이 내려앉은 산장에서 하나뿐인 등불을 끈 듯한 기분이었다.

주위엔 별빛 한 점 없는 진짜 암흑이 내려앉았다.

이것은 천계 최초의 암흑이자 어둠이었다.

천계가 만들어진 이후, 천신의 태양에 의해서 천계는 단 한 번도 어둠을 맞이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천계의 백야는 자연재해 같은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그들만의 순리였다.

그런 천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오직 천신이라는 한 신의 죽음으로 인해서 말이다.

“라이트.”

어둠 사이로, 헨리의 목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헨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천계는 다시 빛을 되찾았다.

헨리가 외친 건 단순한 1서클의 기초 마법 라이트가 아니었다.

마법의 신이 외친 라이트는 눈앞의 어둠이 불편해서 외친, 일종의 짜증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짜증이 빚어낸 결과는 위대했다.

단순히 광명을 만들어내는 기초 마법, ‘라이트’는 마법의 신이 자신을 선택해 주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덕분에 어둠이 도래했던 천계에는 다시금 빛이 뿌려졌다.

-시시바바, 시시바바…….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시시바바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했다.

이제 녀석들은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이 역사적인 순간을 후손에게 오래도록 전할 것이다.

“그때까지 천계가 남아 있다면 말이지.”

헨리가 시시바바를 응시하자 시시바바들이 황급히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헨리의 시선이 싸늘하게 죽은 천신의 시체로 옮겨 갔다.

그의 머리 위에 얹어져 있던 황금빛 월계관이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떨어져 있다.

저 꼴을 보고 있자니 신도 인간과 별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졌다.

오래도록 천계를 호령하고 시간의 힘으로 누군가에게 개똥 같은 철학을 강요해 왔을 천신이 이런 식으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될 줄이야.

천계의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헨리는 식은 시선으로 죽은 천신을 내려다보았다.

죽음을 통해 완전한 신이 되었을 때, 헨리는 머릿속에 수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오직 신계의 주민만이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 정보들 하나하나는 누군가에겐 진리이고 율법일 수도 있는 그런 명제들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그런 자잘한 정보들보다 다른 두 가지 진리에 흥미가 갔다.

그 두 가지 진리는 바로.

‘신은 신을 죽일 수 있다.’

‘신은 주신에게 받은 능력을 다른 신을 해치는 데에 사용할 수 없다.’

이 두 가지였다.

그리고 헨리는 깨달았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그리고 신이 되어서도 포기할 뻔한 자신의 욕심을 다시 챙길 수 있음을 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은 헨리는 즉시 새로운 청사진을 그렸다.

마음에 드는 밑그림이었다.

그리고 밑그림은 이제 천신이 죽음으로써 완성품이 되었다.

헨리는 죽은 천신에게 즉시 흥미를 거두었다.

헨리의 다음 목표는 신들의 왕이다.

신들의 왕.

그는 신들에게 주신이라고 불렸다.

주신은 자신이 가진 힘들 중 일부를 여러 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신이 정의한, 세상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다.

물론 세상의 질서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깨달은 정보가 없어 자세히는 몰랐지만 주신의 뜻이 그러하니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헨리가 주목한 것은 세상의 질서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헨리가 주목한 것은 자신이 가진 힘의 일부를 다른 신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주신의 행동에 있었다.

그리고 헨리는 마신으로부터 차원의 힘을 나누어 받았던 과거를 떠올렸다.

힘의 나눔.

마신이 헨리 자신에게 차원의 힘을 나누어 주었다고 해서 마신이 차원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도 천신에게 시간의 힘을 나누어 받으려 했던 것이고.

그렇다면 천신에게 시간의 힘을 나누어 주었던 주신은?

주신 또한 천신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말이 됐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헨리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여겼던 시간의 힘을 실은 두 명이나 가지고 있다니.

그렇다면 자신에게 힘을 나누어 주지 않는 천신에게 더 이상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헨리는 마음 놓고 복수를 계획했던 것이다.

그 빌어먹을 천신을 베어 버리고 주신에게 직접 그 힘을 부탁하기 위해서.

물론 이번에도 천신 때와 마찬가지로 주신이 허락해 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버릴 뻔했던 욕심을 다시 챙긴 이 상황에서 한 번 더 욕심을 버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므로 헨리는 천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목을 맬 생각은 없었다.

이젠 지긋지긋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만약 주신이 헨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정 안되면 주신에게도 한번 도전해 보지, 뭐.’

두려움은 없었다.

불완전한 신일 적에 가지고 있던 마법의 힘과 완전한 마법의 신이 되고나서 갖게 된 힘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차이였으니까.

게다가 떠올린 정보 속에는 신은 다른 신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천신도 죽였는데 주신이라고 죽지 않을 건 또 무엇인가?

헨리의 시선이 죽은 천신으로부터 다시 하늘로 옮겨졌다.

신계.

모든 세상의 신들이 살아가는 신들만의 세상.

그곳에는 사막 국가 샤하트라의 수호신인 라도, 평화교가 섬기는 신인 아이린도 존재한다.

신계로 가는 법은 알고 있다.

신으로 각성하면서 그 사실을 떠올렸으니까.

그리고 신계에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는지와 주신을 만나기 위해선 또 얼마나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되는지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천신이든 주신이든, 누군가에게 머릴 조아리는 건 지긋지긋했다.

헨리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번에도 오직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든 걸 해결할 생각이었으니까.

헨리가 걸음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후우웅!

호수에 물감이 녹듯이 헨리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여기가 바로…….”

발을 딛고 있는 땅이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위는 분홍빛 풍경이 펼쳐져 있었으며 하늘 또한 분홍빛이었다.

이곳의 이름은 신계.

세상 모든 신들이 거주하는 오직 신들만을 위한 세상.

헨리의 시선이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끝없이 펼쳐진 분홍빛 지평선이 보인다.

헨리는 지평선 언저리쯤에 길쭉하게 뻗어 있는 울타리를 볼 수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저것은 울타리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수의 신들이 넓게 퍼져 있어 울타리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헨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겨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울타리처럼 퍼져 있는 신들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였다.

그들은 신이 맞았다.

보통의 인간처럼 생긴 이가 오히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그들을 본 헨리는 생각했다.

‘참 많기도 하다.’

얼핏 봐도 수십 명.

무슨 놈의 신이 이리도 많은지, 갑자기 신이라는 존재의 가치가 하잘것없게 느껴졌다.

자고로 귀함이란 적은 숫자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저들의 얼굴이 충분히 보일 때쯤이 되어서야 헨리는 걸음을 멈추어 섰다.

모두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이다.

그런데 누가 어떤 신이지 알았다.

신으로 각성할 때 받은 정보들 덕분이었다.

헨리의 시선이 신들의 뒤편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멀리서 봤을 땐 전혀 보지 못했던 하늘로 이어진 새하얀 계단이 있었다.

‘저거로군.’

신계의 오직 하나뿐인 계단.

저것의 이름은 없다.

그저 계단으로 불릴 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계에 계단은 오직 저것 하나뿐이니까.

그리고 저 계단 끝에는 헨리가 목표로 하는 주신이 있었다.

헨리가 능청스럽게 인사했다.

“다들 반갑습니다. 이제 막 신이 된 마법의 신, 헨리 모리스라고 합니다.”

아무도 먼저 인사를 해주지 않으니 헨리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러나 신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이에 헨리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하, 이렇게까지 격하게 환영해 주시다니, 다들 이제 막 신이 된 저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이신 것 맞죠?”

한 번 더 던지는 너스레.

그러나 그 누구도 웃지도 인사해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능청스럽게 표정 연기까지 해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에도 신들은 대꾸가 없다.

헨리는 저들이 왜 모였는지 안다.

천신이 헨리에게서 죽임을 당한 그 순간, 신계의 모든 신들이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살(神殺).

헨리는 신을 죽인 최초의 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죄가 중하다.

제아무리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신들이라지만 그 어떤 종족도 동족을 해친 놈은 환영받지 못한다.

아니, 환영받지 못할뿐만 아니라 죄를 물게 된다.

그 순간, 울타리처럼 퍼진 신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헨리…….”

라였다.

라는 심경이 복잡했다.

아끼던 이가 잠깐 사이에 대역죄인이 되어 나타났으니까.

그러나 라의 슬픈 표정을 본 헨리는 그에 반하기 위해 더더욱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라 아냐? 여긴 어쩐 일이야? 너도 내 신계 입성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온 거야?”

“헨리…….”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신들의 분노는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라 또한 그들을 따라 헨리를 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는 매가리 없이 계속 헨리의 이름만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헨리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목소리에 힘을 빼고 라에게 말했다.

“알고 있어.”

“……그렇겠지.”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난 신살을 저질러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

같은 차원에 사는 신이기에 헨리의 사정을 라는 잘 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헨리가 현세로 돌아갈 수 없음 또한 말이다.

또한 헨리의 바람은 내심 라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헨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옮겨진 곳에는 아이린이 있었다.

아이린의 표정 또한 어둡다.

그녀 또한 헨리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헨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신이 말했다.

“헨리 모리스.”

헨리의 이름을 부르는 존재.

그는 정수리를 따라 닭 벼슬처럼 내려오는 붉은 털이 인상적인 헬름을 착용했다.

또한 상체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서 근육질의 다부진 몸을 자랑했다.

그는 방패 하나와 짧은 창 한 자루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월밋. 전쟁의 신이었다.

전쟁의 신이 헨리의 이름을 부르자 헨리는 다시 능청스레 대꾸했다.

“반갑습니다. 당신이 바로 전쟁의 신이로군요. 그래서 당신이 가장 선봉에 선 건가요?”

저들의 목적을 헨리는 잘 안다.

그래서 반쯤 뼈가 담긴 농담을 던졌다.

월밋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러나 헬름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다.

월밋이 이어서 말했다.

“넌 신으로서 같은 신을 죽였다, 헨리. 이것은 우리들에게 있어 씻을 수 없는 불명예이며 치욕과도 같다. 그러니 율법에 따라 정당한 벌을 받아라.”

“율법이라고?”

“그렇다.”

“율법이라…… 그, 너네끼리 한 그 약속 말이지?”

“……뭐?”

“그냥 너네끼리 불문율처럼 지켜온 걸 왜 약속하지도 않은 내가 그 약속을 지켜야 하지? 너무 불공평하잖아, 안 그래?”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는 게냐, 네놈은!”

“쉿, 목소리 줄여. 힘은 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경어가 반말이 됐다.

헨리는 더 이상 장난은 그만 두기로 했다.

헨리가 월밋을 노려보며 말했다.

“라와 아이린은 빠져 있어, 같이 뒈지기 싫으면.”

“……고맙다.”

헨리의 말에 라는 고개를 숙이고 헨리를 지나쳐 갔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신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나 헨리의 눈에는 라가 가장 현명해 보였다.

헨리가 말했다.

“자신 있는 놈은 덤벼. 지금 이 자리에서 나보다 센 놈은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

“네놈……!”

“왜, 내 말이 틀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신은 나뿐이잖아?”

자신 있게 늘어놓는 엄포.

헨리는 수십 명의 신들을 상대로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아니, 필요하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신들을 죽일 의향도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자신 있는 놈은 지금 당장 덤비시라고. 아니면 꺼지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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