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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367화 (367/522)

# 367

천마대전 (5)

처음 보는 천신의 등장에 마계 출신의 네 존재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무려 신.

헨리 또한 신이기는 하지만 불완전한 신이었으니 사뭇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헨리는 곁눈질로 가니스엘의 표정을 살폈다.

가니스엘의 얼굴 근육이 금방이로 폭발할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꿈틀거림이 바로 저자가 천신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모습을 드러낸 천신이 껄껄 웃었다.

이 사달이 일어날 때까지 천계를 방치한 방관자치곤 가벼운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결국 참지 못한 가니스엘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네놈!”

쾅!

큼직한 발 구르기.

가니스엘이 흉물스러운 부츠를 들어 바닥을 내려찍자 대지가 갈라지며 폭포수가 흐르는 연못으로 뻗어졌다.

연못의 테두리에 균열이 일어나며 그 안에 담겨 있던 물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가니스엘은 이어서 마신의 성물, 릴샤웨인을 집어 들었다.

가니스엘이 마신의 삼신기를 모으는데 필사적이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이것은 마신의 신력이 깃든 물건.

그러니 어쩌면, 마신의 삼신기라면 천신을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릴샤웨인이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당장이라도 영혼을 뱉어 낼 것처럼 울었다.

가니스엘이 검을 휘두르기 위해 두 손으로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그만.”

천신이 손을 들어 가니스엘에게 멈출 것을 명령했다.

명령에는 다급함이 없었다.

마치 아이의 싸움을 말리는 듯한 그런 느긋함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로 가니스엘이 행동을 멈추었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머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현재 가니스엘의 분노는 그 누구도 막기 어려울 만큼 폭주하고 있는 상태.

그런데 단 두 음절만으로 폭주하는 가니스엘을 저지하다니?

그 광경에서 세 존재는 깜짝 놀랐지만 그 광경을 통해 각자 다른 감정들을 느꼈다.

그리고 다른 생각들을 했다.

세 가지 생각이 각기 다른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때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다름 아닌 기가탄이었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기가탄이 욕설을 내뱉으며 거대화를 시전했다.

몸집이 커지며 팔이 늘어났고 늘어난 네 개의 팔로 무기를 뽑아 들었다.

기가탄의 저런 행동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도 그럴 게 기가탄은 헨리 앞에서 몸을 사려 목숨을 연명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폭주한 기가탄마저 곧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천신은 가니스엘과 기가탄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정지시킨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헨리와 그레텔뿐.

그레텔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허허, 역시 시간의 힘은 어찌할 수 없나 보군요.”

그 말을 끝으로 그레텔 또한 석고상처럼 굳고 말았다.

그레텔은 앞서 덤빈 두 놈보다 더 성가신 놈이었으니까.

이제 신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오직 천신과 헨리, 두 신뿐이었다.

천신이 말했다.

“이제야 좀 차분하게 이야길 나눌 수 있겠군.”

천신의 태도는 한없이 평온했다.

마치 집에 온 손님을 위해 집 청소를 하듯이, 천신이 치운 세 존재는 천신에게 있어 딱 그런 존재였다.

천신이 손짓하자 곧 구름으로 빚어진 의자가 생겨났다.

의자는 천신 것 하나뿐이었다.

천신이 구름의자 위에 엉덩이를 얹은 후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헨리를 바라보았다.

천신이 말했다.

“어디 보자, 이번이 여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인자한 얼굴에서 튀어나온 수의 헤아림은 헨리의 피를 차갑게 만들었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이 자신을 시간의 굴레 속에 갖히게 만든, 이 모든 일의 원흉.

천신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산더미였다.

그러나 석고상처럼 굳어 버린 세 존재를 보고 나니 헨리는 그동안 축척해 왔던 분노를 알아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피가 차갑게 식는 이 와중에도 어쩌면,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한참의 고민 끝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해 결국 앙겔루스의 목을 베어 버렸지만 결과적으로 천신을 만나긴 했다.

천신과의 만남.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다.

그러니 천신에게 그간의 분노를 쏟더라도 그것은 좀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문제였다.

헨리에겐 지금부터가 본 게임의 시작이었으니까.

공손한 헨리의 태도를 본 천신이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군. 같은 일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말이지.”

“…….”

침묵은 금이다.

섣부른 대답보단 차라리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

천신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그거 아나? 여섯 번이나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날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그렇군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결국 너의 방식도 맞았군그래. 이렇게 나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폭력적인 성향은 아직 인간의 거죽을 다 벗지 못한 탓이겠지.”

“…….”

헨리는 이번에도 대답을 아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그 본성 덕분에 날 만나게 되었으니 너에겐 잘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래서 극과 극이 통한다고 한 거야.”

천신의 설명을 통해 헨리는 반복된 다섯 번의 시간 속에서 그간 헨리가 어떤 선택을 해 왔을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천신의 말대로 본능대로 움직이니 결국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천신님, 당신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시간의 힘을 빌려 달란 것이지?”

“……그렇습니다.”

어째선지 천신은 헨리의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헨리는 놀라지 않았다.

상대 또한 자신과 같은 신.

더불어 그는 불완전한 헨리와는 달리 완전한 신이었다.

게다가 다른 신들과는 달리 시간이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

헨리의 사정을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신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사연은 알고 있지. 야누스 그놈이 엎지른 물을 네가 치우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도. 그래서 나를 만나려 했던 게 아니냐?”

“그렇습니다.”

헨리의 사정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되레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헨리의 마음에 약간의 희망이 부풀었다.

“흐음, 이를 어찌한다……?”

천신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좁혀졌다.

그 눈매가 마치 뱀 같다.

처음 천계에 왔을 때 헨리를 노렸던 요르간의 눈처럼 말이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른침을 삼켰고 긴장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윽고 천신이 말했다.

“역시 안 되겠어, 그래선 형평성에 어긋나잖아?”

“……예?”

“너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 여럿 있었지. 시간이란 건 그 어떤 힘보다 전지전능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루어 주거든.”

“그게 무슨……! 아닙니다! 제가 제 사리사욕이나 챙기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이 벌여 놓은 일을 해결하기 위한 건데 어찌……!”

헨리가 다급하게 뒷말을 붙였다.

그러나 천신은 단호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힘을 빌려주는 건 좀 어렵겠어. 그리고 천마대전이라니, 너무 폭력적이잖아? 너 때문에 단 한 번도 패배해 본 적이 없었던 천계의 역사에 크나 큰 오점이 생겼다는 건 아나?”

“천신님!”

“그만. 떼는 어린아이나 쓰는 거지 다 큰 신이 할 짓은 못 돼. 보기 흉하거든. 그리고 마법의 신씩이나 됐으면 이제 인간들의 일에는 신경 끄지 그래?”

천신은 헨리의 고통을 공감하는 척하더니 끝끝내 헨리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되레 여느 늙은이처럼 말꼬리에 핀잔만 잔뜩 집어넣어 헨리를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허무했다.

너무 허무한 나머지 오금에 힘이 풀렸다.

“하…….”

헨리는 상념에 빠졌다.

난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발악했는가?

수많은 생각들이 헨리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천신의 생각이 이러하다면 더 이상의 노력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신이 손짓했다.

그러자 헨리의 엉덩이 밑으로 구름 의자가 만들어졌다.

오금의 힘이 풀린 헨리가 의자에 떨어지듯 몸을 기댔다.

얼굴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

그러나 그런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천신의 마음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적당히 깨달은 것 같군. 그런 의미에서 선물을 주마.”

“선물……? 지금 내게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

청을 거절당하자, 헨리는 더 이상 그를 존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천신은 그런 헨리의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네가 선물을 얼마나 잘 활용하기 나름이지. 그럼 이제 그만 시간을 되돌려 보자고.”

“시간을 되돌린다고? 어째서?”

“쯧쯧, 감정이 앞서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는구나.”

당황하는 헨리에게 천신이 혀를 찼다.

그리고 천신이 손뼉을 쳤다.

짝!

천신이 손뼉을 친 순간, 헨리의 눈앞에 광명이 번쩍였다.

* * *

띠리링-!

또다시 귓가에 리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리.

벌써 몇 번짼지 모른다.

헨리는 검을 빼 들었고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어디냐! 자꾸 숨어서 리라질만 하지 말고 당장 내 눈앞에 모습을 보여라!”

메아리는 없었다.

헨리의 목소리를 반사시켜 줄 만한 산이 천계에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잠깐의 침묵 끝에 아우성에 대한 대꾸가 돌아왔다.

“여깁니다.”

리라 소리가 아닌 육성에, 헨리는 번개같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수천에 달하는 완전무장한 천군이 헨리를 향해 창칼을 겨누고 있었다.

띠리링-!

다시 리라 소리가 들렸다.

천군의 중심에는 비르투스가 있었다.

헨리의 시선이 리라에 닿자, 비르투스가 앙코르를 하듯 한 번 더 현을 튕겼다.

그런 다음 튕기던 리라를 내린 후 천천히 헨리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불완전한 신이시여.”

비르투스가 헨리에게 인사한다.

헨리는 비르투스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었다.

그러나 기시감은 금세 짜증에 덮였다.

짜증이 솟구친 헨리가 소환한 콜소드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비르투스가 말했다.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불완전한 신이시여.”

“그만? 난 아직 제대로 시작한 적이 없는데 그만하라니,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네놈은.”

헨리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헨리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불구하고 비르투스는 미소를 잃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닙니다. 당신의 이름은 헨리 모리스. 당신은 당신이 사는 세상의 문제 때문에 이곳까지 온 최초의 마법의 신이 아닙니까?”

“……!”

비르투스의 설명에 헨리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걸까?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해 유추해 보기도 전에 비르투스가 말을 이었다.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저 또한 좀 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방금 전에 알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저는 천신님의 충실한 종. 저는 천신님의 명을 받아 당신에게 천신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로써 일곱 번이나 천계에 발을 들이게 되셨습니다.”

“일곱 번이라니? 난 그런 적이 없는…… 설마!”

비르투스의 설명에, 헨리는 천신이 가진 힘과 연관하여 지금 이 상황을 단박에 깨달을 수 있었다.

비르투스가 말했다.

“아 참, 그리고 이건 천신님께서 전달하라 하신 ‘선물’입니다.”

“선물?”

헨리는 천신이 주기로 한 선물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천신은 잊지 않고 비르투스를 통해 헨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비르투스는 헨리에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조그마한 약병 하나를 건네주었다.

헨리가 약병을 받아 들자 비르투스가 말했다.

“독약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면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약병을 받아 든 헨리가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독에 대한 내성과 천신의 뜻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단숨에 약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딱히 맛은 없었다.

그러나 황금빛이 약병에서 빛을 잃고 헨리의 배 속으로 사라진 순간, 헨리는 머릿속에 어떤 정보들을 강제로 주입받게 되었다.

헨리의 동공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아……아아!”

헨리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릿속에 주입된 정보들.

천신은 그것을 선물로 보냈다.

천신이 보낸 선물은 다름 아닌 여섯 번째 도전에서 가졌던 헨리의 ‘모든 기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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