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66화 (366/522)

# 366

천마대전 (4)

“이게 당신의 선택인가요?”

비르투스가 비련한 주인공 같은 질문을 했다.

이에 헨리가 답했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신님께서 다시 시간을 되돌리실 겁니다.”

“알아.”

“예?”

“안다고. 알고서 이러는 거야.”

“다, 당신……!”

앙겔루스의 목젖을 벨 때부터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재수가 없다면 이 빌어먹을 경험을 또다시 되풀이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도 헨리는 분명히 같은 선택을 할 게 뻔했다.

‘앙겔루스 그 개자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헨리가 취한 이 선택이 비록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헨리는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생각이었다.

그게 헨리의 본성이었으니까.

헨리가 말했다.

“리라 들어.”

“……예?”

리라를 들라는 말에, 비르투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헨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손에 쥐고 있는 그거, 그것도 성물이잖아. 이름이 아마 역천의 리라였던가? 그 리라라면 죽은 천군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걸로 아는데, 너야말로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는 게 어때?”

시간을 조종할 수 있다는 리라의 숨겨진 힘.

굳이 그 힘이 아니더라도 역천의 리라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헨리는 저 리라 소리로 다시 일어난 죽은 헤르헤르들을 보았으니까.

심지어 그렇게 되살아난 헤르헤르들은 죽기 전보다 더 강해졌다.

헨리가 약간의 조소와 함께 비르투스에게 리라를 사용할 것을 권했다.

비르투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시선이 가니스엘에게 옮겨졌다.

하지만 가니스엘은 무심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천신에게 받은 예언 중에는 가니스엘에 관한 것이 없었으니까.

덧붙여 이건 비르투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다른 선택을 권유했더니 헨리가 이런 식으로 천마대전을 일으킬 줄은 말이다.

한참의 장고 끝에 비르투스가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내린 비르투스는 이내 곧 찌푸렸던 미간을 풀었다.

헨리의 조롱이 기분 나쁜 건 사실이다.

또한 존경해 마지않는 상급 천사들의 죽음과 형제 같은 천군들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천계의 멸망 또한 같다.

그것들은 모두 비르투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애도와 기분 나쁨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곧 자신이 죽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 천신님에 의해 시간은 되돌려질 것이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올 테니까.

설령 자신이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신은 오직 천신님을 신실하게 믿는 5계급의 역천사장, 비르투스였으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쯤, 비르투스는 찌푸리던 인상을 활짝 폈다.

피우다 못해 미소까지 지어 가며 헨리에게 대꾸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뭐?”

“이 리라가 가진 힘은, 분명히 저 배신자에게 들었겠죠.”

비르투스의 시선이 날카롭게 날아가 가니스엘에게 박혔다.

가니스엘이 ‘배신자’라는 단어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비르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맞습니다. 이 리라에는 시간을 감아 죽은 이를 되살리고 되살린 이를 강하게 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르투스의 두 손이 리라를 집어 들었다.

“저는 제 형제들을 두 번 죽이는 짓 따윈…….”

“너 설마!”

양손으로 집어든 리라가 떨린다.

그것을 본 헨리의 동공이 일순간 확장됐다.

하지만 헨리의 저지보다 비르투스의 힘이 더 빨랐다.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안 돼!”

빠각!

척 보기에도 비실비실해 보이던 이가 비르투스였다.

하지만 그 또한 능천사들을 아우르는 한 명의 당당한 천사장.

나무로 만들어진 그까짓 리라쯤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부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리라로부터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리라의 머리와 꼬리가 부서지자 지탱할 곳을 잃은 현들이 제멋대로 춤을 췄다.

그리고 현들이 멋대로 춤을 추던 때에 헨리의 손이 비르투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네놈!”

역천의 리라가 가진 숨겨진 힘만 생각하고 이곳까지 왔다.

그런데 비르투스가 리라를 부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체 왜!’

비르투스에겐 리라를 부술 만한 명분이 없는데 어째서 성물을 부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을 잡힌 비르투스가 헨리의 완력에 괴로워하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발버둥 치진 않았다.

좁혀진 숨구멍에, 비르투스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모든……것은……천신님……의……뜻대로…….”

“천신이라고?”

그 순간, 비르투스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천신.

설마 천신은 헨리가 이럴 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비르투스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일까?

아니, 미리 예상한 게 아니었다.

천신은 대처를 한 것이었다.

다섯 번이나 반복된 과거 속에서, 어쩌면 헨리는 천마대전을 일으켰고 그 전쟁 속에서 역천의 리라를 노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한 사고를 방지하고자 미리 대처를 한 것이었다.

“으아아아아!”

결국 천신의 손바닥 안을 벗어났지 못했다는 생각에 헨리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것은 고함의 탈을 쓴 비명이었다.

비명은 순도 99%의 분노로 이루어진 절규였다.

분노에 찬 절규는 손아귀의 악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우드득!

손끝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분노에 찬 움켜쥠이 결국 비르투스의 목덜미를 부러뜨린 것이다.

부르르 떨던 천사장의 육체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헨리는 죽음과 함께 더 무거워진 비르투스의 시체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던졌다.

우득!

그 힘이 어찌나 셌는지, 집어던진 거리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르투스는 곤죽이 되었다.

몸뚱이가 기괴하게 꺾인 비르투스를 뒤로한 채 헨리는 엮인 현에 달랑거리는 역천의 리라를 주워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신의 신력을 머금어 한껏 성스러운 기운을 내뿜던 성물이 이젠 보잘것없는 쓰레기가 되었다.

안타깝고 아쉽고 슬펐다.

이 빌어먹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기에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 모습을 가니스엘이 보고 위로를 건네기 위해 다가왔다.

그레텔은 자리를 지켰다.

헨리가 왜 저렇게까지 절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레텔에겐 오히려 잘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레텔은 역천의 리라가 가진 숨겨진 힘이 발동되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마침 비르투스가 알아서 리라를 부수어 주니 그레텔에겐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가니스엘이 헨리를 위로했다.

“헨리, 단순한 성물일 뿐일세. 왜 이렇게까지 슬퍼하는 건가?”

가니스엘은 헨리의 자세한 사정을 몰랐다.

그래서 진짜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의 귀에는 가니스엘의 위로 따윈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절망과 분노가 머릿속에서 꿈틀댈 뿐이었다.

“헨리.”

헨리가 대꾸하지 않자 가니스엘이 몇 번 정도 더 헨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얼마가 더 지난 후에야 헨리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 수 있었다.

“후우……!”

묵었던 숨이 뜨겁게 토해졌다.

시간은 약이다.

잠시간의 시간이 활화산처럼 끓어올랐던 분노를 다시 잔잔한 강처럼 식혀 주었다.

물론 잔잔해졌다고 해서 그 강물이 차가워진 것은 아니었다.

강물은 여전히 뜨거웠다, 마치 용암처럼.

헨리는 단지 그 용암이 다시 끓어 넘치지 않도록 임시로 식혀 둔 것뿐이었다.

화를 식힌 헨리가 독기가 잔뜩 오른 눈빛으로 가니스엘을 바라보았다.

가니스엘은 말을 아꼈다.

여전히 헨리가 절망한 것에 대한 이유를 몰랐지만 독기로 화를 억누르고 있는 듯하니 그저 묵묵히 위로해 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니스엘에게 헨리가 물었다.

“가니스엘.”

“왜 그런가?”

“리라, 다시 고칠 순 없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헨리의 물음에 가니스엘이 고개를 저었다.

“후우…….”

차선책이 무너졌으니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헨리는 무너진 차선책에 대해 빠르게 마음을 정리했다.

어차피 못 먹을 감이라면 일찍이 포기하는 게 맞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말했다.

“그래. 여기서 절망하고 있어 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 가니스엘, 네 바람대로 천계는 지금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건 그대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니, 감사 인사는 아직이야. 우리가 여태껏 해치운 건 진짜가 아닌 조무래기들뿐이었잖아?”

말 그대로였다.

천계의 대부분을 천족들이 구성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천계의 진짜 주인이 아니었다.

천계의 진짜 주인은 오직 천계의 유일신 천신뿐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헨리와 가니스엘의 목표는 ‘천계’가 아닌 ‘천신’이었다.

“그렇다. 네 말이 맞다, 헨리.”

“이젠 정말 천신뿐이야 가니스엘. 너는 알고 있지? 천신이 어디에 있는지.”

“물론이다. 천신을 만나기 위해선 천계에 존재하는 그의 신전을 반드시 거쳐야만 하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가 우리의 부름에 응해 줄지는 알 수 없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신들은…… 제멋대로이지 않나?”

딱히 헨리를 겨냥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헨리는 그 말에 공감했다.

헨리가 본 신들은 대부분이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였다.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으니 그만큼의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가니스엘의 걱정에 헨리가 말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넌 그냥 신전이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 주기만 하면 돼.”

“알겠다.”

가니스엘의 이동에 마왕군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내내, 마왕군은 시시바바나 헤르헤르, 요르간들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죽였다.

모두들 살육하지 못해 안달 난 살인귀들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천마대전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강렬한 확신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왕군의 분위기는 사실상 축제에 가까웠다.

오직 헨리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 * *

신전에 도착했다.

신전은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곳곳에 구름들이 장식처럼 걸려 있었다.

헨리는 가니스엘과 그레텔, 그리고 기가탄과 함께 신전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신전의 중심에는 자그마한 폭포가 흐르고 있었다.

가니스엘은 저 폭포가 천신의 성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폭포라고 설명해 주었다.

폭포 앞에 선 가니스엘이 말했다.

“천계에서 태어난 모든 천족들은 이 폭포에 몸을 담가 세례를 받게 되어 있다. 왜냐면 이 폭포는 천신의 핏방울이 만들어 낸 폭포라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천신의 핏방울?”

“그렇다. 말인즉슨 이 폭포야말로 천계에서 유일한 천신의 흔적으로, 신이 아닌 천족과 천신 사이를 잇는 유일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말을 마친 가니스엘이 폭포수 앞으로 다가갔다.

폭포는 큼지막했지만 물거품이 일어날 정도로 유속이 빠르진 않았다.

폭포수에 가니스엘의 얼굴이 비쳤다.

비추어진 얼굴은 전 대천사장이라는 늠름한 자태가 아닌 독과 악으로 가득 찬 복수의 화신의 얼굴이었다.

가니스엘이 말했다.

“천신!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 가니스엘이 지옥에서 기어 올라왔소! 그러니 지금 당장 내 앞에 얼굴을 비추시오!”

쩌렁쩌렁.

그간 헨리에게 보여 주었던 차분한 음색은 없었다.

가니스엘은 분노를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물거품이 없는 폭포수 속에서 새하얀 물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하얀 거품은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리고 그렇게 불어난 거품 속에서 흐린 빛깔의 인영이 드러났다.

흐린 빛깔 속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

그는 다름 아닌 새하얀 천 자락을 걸치고 황금색 월계관을 쓴 노인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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