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64화 (364/522)

# 364

천마대전 (2)

돌풍이 일었다.

그러나 헨리는 눈을 감지 않았다.

어차피 바뀔 풍경이란 걸 아니 이젠 거리낄 게 없다.

그런데 바뀐 풍경의 하늘이 뭔가 좀 이상했다.

“음?”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던 하늘이 파란색이 아닌 연녹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연녹색이라니?

연녹색 하늘을 가진 구역은 분명히…….

그때였다.

슈아아앙!

날카로운 파공음이 지척에서 들려왔다.

헨리는 파공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왼손을 뻗었다.

파짓!

스파크가 튀었다.

왼손을 대신하여 응집시킨 에너지 덩어리가 관통된 탓이다.

시선을 옮겨 손바닥을 보니 파공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화살이었다.

고통은 없었다.

손에 결집된 것은 단순한 에너지 덩어리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헨리는 몸을 돌려 화살아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수천에 이르는 천사들이 자신의 키만 한 장궁을 들고 헨리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들을 이끄는 수장, 권천사 아르헤스가 있었다.

“어떻게……!”

아르헤스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녀의 손에 쥐여진 활과 모션을 미루어 보건데 방금 전의 화살은 아마도 아르헤스의 것인 듯했다.

놀란 아르헤스를 본 헨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놈, 끝까지 충의를 지켰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헨리에게 화형당한 대천사는, 천계의 존망을 대신해 비르투스를 헨리에게 팔아먹은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헨리는 그것에 대한 대가로 놈을 죽인 것이고.

하지만 죽은 대천사는 비르투스가 아닌 권천사장 아르헤스가 있는 공간으로 연결된 날개깃을 주었다.

자신이 모시는 대천사장이 죽었으니 그 다음으로 강력한 권천사장에게 뒤를 맡기려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죽은 대천사에게 경의를 표했다.

덧붙여 고마움을 느꼈다.

리라에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잊을 뻔했기 때문이다.

헨리의 양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치솟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헨리는 손바닥으로 받은 화살을 한손으로 부러뜨리며 그것을 태워 재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목 근육을 휘휘 풀었다.

헨리가 말했다.

“이야, 역시 천계야. 시시바바라고 했던가? 벌써 소식이 여기까지 전해졌을 줄이야.”

“닥쳐라!”

후웅!

질책과 함께 다시 한번 화살이 날아들었다.

쏘아진 화살은 정확히 헨리의 목젖을 노리고 날아왔다.

아니 날아왔었다.

헨리는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날아든 화살은 헨리의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헨리가 허공에 멈춘 화살로 다가가 손을 올렸다.

그리고 화살을 쓰다듬으며 아르헤스에게 말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면서…… 준비한 게 고작 화살?”

“어, 어떻게……!”

“너무하네. 날 저지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부하들을 끌어 모아 온 모양인데 겨우 이 정도로 날 막을 수 있겠어?”

“그, 그런……!”

천신의 비호 아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말을 내뱉으며 헨리를 희롱했던 아르헤스의 얼굴에 공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헨리는 살기 한 점 내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헤스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지나치게 겁을 먹었다.

인과응보.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둔다.

지금 아르헤스가 헨리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딱 자신이 뿌린 만큼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었다.

헨리가 한 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겨우 이 정도가.”

또 한 걸음을 내딛으며.

“네가 날 막겠다는.”

말했다.

“네 의지의 증명이냐?”

“무, 뭣들 하고 있어! 당장 공격하지 않고서!”

고작해야 세 걸음.

헨리는 단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르헤스를 향해 세 걸음을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르헤스는 헨리가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듯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그래서 권천사장이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죽여!”

“옛!”

아르헤스의 궁수 부대가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포물선을 그리며 쏟아지는 수천 발의 화살 비.

그것들은 단순한 화살 비가 아니었다.

천족 특유의 성스러운 기운이 담긴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화살 비였다.

수천 발의 성스러운 화살 비가 헨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헨리는 날아드는 화살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

화살이 쏟아졌다.

무수한 파공음이 뿜어졌다.

그러나 그 화살들이 대기를 찢고 헨리를 꿰뚫으려는 순간, 모든 화살들이 거짓말처럼 허공에 멈추어 섰다.

마치 공포에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쏘아진 화살 비는 허공에 박제되어 꼼짝하지 않았다.

“쏴! 계속 쏴! 쏘라고!”

그 광경을 본 아르헤스가 더더욱 미친 듯이 소리쳤다.

오른 다리를 내놓으라던 그 기고만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정신이 돌아 버린 여자처럼 활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추했다.

저 여자가 전에 보았던 그 권위 넘치던 천사장이 맞았단 말인가?

아르헤스의 명령에 천사들의 손이 더더욱 분주해졌다.

후두둥!

인간들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그런 속사였다.

그러나 뿜어지는 화살의 양이 늘어나든 말든, 포물선을 그리던 화살들은 헨리의 지척까지 와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뚝 멈추어 섰다.

헨리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르헤스가 있는 곳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그래서 헨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헨리가 지나온 길을 따라 기다란 화살 길이 그려졌다.

장관이었다.

그 어떤 전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오직 헨리만이 그려 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의 걸음이 겁에 질린 아르헤스의 지척까지 당도했을 때였다.

아르헤스의 얼굴은 거의 졸도하기 직전의 그것이었다.

헨리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걸어 두었다.

그 순간, 화살을 쏴 재끼던 권천사들이 일제히 허리의 검을 뽑아 들어 헨리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말했다.

“지금부터.”

멈칫!

“나에게 덤비는 놈은 반드시 죽는다.”

한 줄의 경고.

내뱉은 한 줄의 경고는 높낮이가 없는 보통의 음역대였다.

하지만 높낮이 없는 음성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은 거대한 산맥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검을 뽑아 든 권천사들이 부들거렸다.

죽음이 두려워 달려들지는 못하겠고 아르헤스를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어서였다.

헨리가 다시 한 걸음을 내딛자 지척까지 다가왔던 권천사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 풍경이 몹시 가관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마물보다 못한 놈들.”

맞는 말이었다.

마물들은 겁을 상실해 일단 덤비고 보는 타입이었으니까.

하지만 관점을 달리 한다면 천사들은 아는 것이 많아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헨리는 이 같은 풍경에 다시 한번 가니스엘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위선적인 놈들.”

독설은 이것이면 족했다.

헨리는 알아서 길을 터주는 권천사들 사이를 지나 공포에 꽁꽁 얼어붙은 아르헤스 앞에 섰다.

그녀는 손에 쥔 활을 부적처럼 꼭 붙들고서 어떻게든 졸도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노력이 가련하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헨리가 보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했다.

헨리가 시선을 내려 아르헤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살고 싶으냐?”

덜덜덜덜…….

극심한 공포에 질린 나머지 그녀는 쉬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간신히 남아 있는 이성이 그녀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미미한 끄덕임을 본 헨리는 좀 더 깊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르헤스에게 제안했다.

“그럼 어디 한번 보여 봐. 살고자 하는 너의 의지를.”

“예, 예……?”

“난 너의 다리 두 짝이면 너를 살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을 마친 헨리는 콜소드를 소환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아르헤스 앞에 던져 주었다.

아르헤스가 검 줍기를 머뭇거렸다.

그것을 본 헨리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턱짓했다.

잔인한 응원에 떠밀려 아르헤스가 힘겹게 검을 들어 올렸다.

콜소드는 재질과 더불어 불카누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

그렇기 때문에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아니, 어린아이도 쉽게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무게를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 아르헤스에게 콜소드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검처럼 느껴졌다.

“어서.”

헨리가 재촉했다.

아르헤스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동시에 수천 개에 달하는 권천사들의 시선이 아르헤스에게로 쏟아졌다.

쏟아지는 시선이 날카로워 아르헤스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 않으면 죽는다.

유리처럼 잘 벼려진 콜소드의 칼날에 아르헤스의 얼굴이 비춰졌다.

잔뜩 겁에 질린 아르헤스의 얼굴.

그녀조차도 이런 표정을 짓는 자신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권천사장의 위엄과 존엄, 그리고 자신의 목숨의 무게가 저울질 됐다.

저울질은 얼핏 보면 비등한 듯 보였으나, 목숨이 걸려 있는 추에 신을 능멸했다는 공포를 더하자 금방 결과가 판가름되었다.

목숨이 걸려 있던 추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는 떨리는 두 손으로 콜소드를 붙잡았다.

그런 다음 주저앉은 두 다리를 앞으로 내뻗었다.

콜소드의 절삭력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그녀의 다리를 쉽게 잘라 낼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콜소드는 이제 한낱 마법검 따위가 아닌 마법의 신의 축복을 받은 성물이 되었으니까.

두 눈을 꼭 감은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커헉!”

불에 지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허벅지를 강타했다.

그 말 못할 고통에 아르헤스는 결국 감은 눈을 뜨고 말았다.

휘둘린 검이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절반쯤 베었다.

자세가 엉성했던 탓인지 한 번 만에 다리를 잘라 내지 못했다.

“아, 아…….”

아르헤스가 상처 입은 짐승 새끼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순간, 헨리가 그녀의 허벅지에 박힌 칼날 위로 발을 올렸다.

저걱!

“끄아아아아!”

강렬한 발길질에, 움푹 파여 있던 살갗이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났다.

그러나 아직 왼쪽 다리가 남아 있다.

아르헤스가 검을 놓쳤다.

헨리가 아르헤스가 놓친 검을 주워 들며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신을 능멸한 죄…… 이제 좀 파악이 돼?”

“사, 살려 주십시오! 제가 감히 고결하신 분을 몰라뵙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권천사장의 피가 흘러 나와 대지를 적셨다.

그러나 그녀는 피가 쏟아지든 말든 자신의 피로 이루어진 피 웅덩이 위에 납작 엎드려 헨리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땅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쳐들기를 몇 번.

그 아름다운 얼굴이 자신의 피로 피 칠갑이 되며 쳐다도 보기 싫은 끔찍한 흉물이 되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여전히 입은 웃고 있었다.

쿡쿡.

즐거웠다.

자신을 능멸하던 자에게 이렇게나 잔인한 복수라니, 설사 천신이 다시 한번 시간이 되감겨 이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최고로 짜릿한 기분이었으니까.

헨리가 말했다.

“살고 싶으냐?”

“사, 살려 주십시오! 시키시는 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아르헤스가 미친 듯이 자신의 목숨을 구걸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가 뱉었을지 모를 권천사들의 한숨이 들려 왔다.

한숨 소리를 들은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콰득!

한숨을 내쉰 몇 명의 권천사의 머리가 폭발해 살점을 튀겼다.

헨리가 말했다.

“죽는 게 두려워 뒷걸음질 쳤던 머저리 같은 놈들이…… 감히 한숨을 쉬어?”

헨리는 이어서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박제되었던 수천, 아니 수만 발이 된 화살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딱!

그리고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긴 순간, 화살들이 자신을 쏜 주인을 향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되돌아갔다.

“끄아아악!”

“으아악!”

“커헉!”

곳곳에 비명이 난무했다.

어떤 천사는 벌집이 되었고, 어떤 천사는 죽은 동료의 시신을 방패 삼아 어떻게든 화살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헨리는 비명으로 가득 찬 아비규환을 뒤로 하고 가여운 척 몸을 떠는 아르헤스의 날개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날개깃이 필요하다. 비르투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드, 드리겠습니다!”

아르헤스가 급한 마음에 한 웅큼의 깃털을 뽑아 헨리에게 내밀었다.

헨리는 그것을 주워든 후 아르헤스를 뻥 걷어찼다.

아르헤스가 멀찍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나 바닥에 처박힌 아르헤스는 짐승처럼 걷어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성한 이처럼 실실 웃음을 흘렸다.

“사, 살았어…… 힉, 히히힉!”

그 웃음은 다리 한 짝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아르헤스는 몰랐다.

헨리의 콜소드에는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고 무서운 맹독이 발려 있다는 것을.

“컥, 커허억! 어, 어떻게 이런!”

새하얀 피부 결을 자랑하던 아르헤스의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마치 마족을 연상케 하는 피부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헨리의 독을 견뎌 내지 못하고 중독사하고 말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이 구역의 모든 권천사들이 죽었다.

죽음으로써 침묵을 맞이한 7계급의 구역에 다시금 광풍이 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