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56화 (356/522)

# 356

천계 (1)

‘이걸로 준비는 대충 끝난 건가?’

아직 그레텔과의 거래를 끝마친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레텔을 굴복시켰으니 계획의 대부분은 완료한 셈이다.

헨리는 그레텔로부터 받아 든 마왕의 증표를 가져다가 가니스엘에게 전달했다.

가니스엘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게 그……!”

지난 몇 년간, 가니스엘은 이 조그마한 구슬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고생도 끝이었다.

비록 온전히 혼자서 이뤄낸 쾌거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마왕의 증표를 손에 넣는 것에는 성공했으니까.

헨리가 구슬을 넘김과 동시에 종이 한 장을 가니스엘에게 내밀었다.

호출지였다.

그러나 그 호출지는 기존에 헨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것과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헨리가 호출지를 내밀며 그레텔과의 관계를 비롯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받아. 이걸 가지고 있으면 내가 너를 필요로 할 때 이 종이가 널 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거야.”

“그대는 꼭 금방 떠날 것처럼 얘기하는군.”

“떠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곧 떠나. 일전에 말한 대로 난 천계에 볼일이 있으니까.”

“그렇군.”

“그리고 그레텔은 너의 부관으로 남아 새로운 마왕군의 전력으로 남아 주기로 약속했어. 그레텔이 너의 수하가 되긴 했지만, 그는 훌륭한 마족이니 그에게 부족한 것들을 배웠으면 해.”

헨리는 가니스엘이 오만해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이로써 헨리가 가니스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모두 해 주었다.

헨리는 가니스엘을 유일한 마왕 후보로 만들어 주었고, 부족한 힘을 기가탄이나 그레텔을 통해 채워 주었다.

남은 건 가니스엘이 마왕의 증표를 온전히 흡수하여 마신에게 정식으로 인정받는 것뿐이었다.

가니스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고맙다, 헨리.”

“상부상조하는 거지 뭘.”

헨리가 대수롭잖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가니스엘이 마왕의 증표를 손에 꼭 쥔 채 말했다.

“헨리, 그대는 천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무것도 몰라.”

“음? 그럼 어떻게 천신을 만나겠다는 건가?”

“글쎄. 일단은 그냥 찾아가 보는 거지, 뭐. 그리고 어디가 됐든 이름도 모르는 존재를 찾는 것보단 모두를 거느리는 윗대가리 찾기가 더 쉬운 법이잖아?”

가니스엘은 헨리의 간단명료한 논리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천신은 강력한 존재다.

아니, 강력한 존재를 넘어서서 천계의 유일한 신이다.

천신을 제외한 천계의 모든 천사들을 거느렸던 가니스엘조차도 어찌하지 못했던 천계의 유일한 신!

그렇기 때문에 가니스엘은 그 누구보다도 천신의 강력함에 대해 잘 알았다.

덧붙여 천신의 힘을 잘 알았기에 마왕이 되려고 발버둥 친 것이었다.

마왕이 되면 천신의 옷깃이라도 건들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 이유로 가니스엘은 헨리의 저 이유를 알 수 없는 당당함이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가니스엘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자 헨리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가니스엘의 심정은 이해가 됐다.

지금 헨리가 만나러 가는 상대는 다름 아닌 천계의 하나뿐인 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가니스엘은 아직까지 헨리가 신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나타나면 다들 놀라 자빠질 텐데, 뭐.’

마신의 대리자였던 라니아가 그랬다.

그래서 헨리는 천계 또한 라니아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냅다 천신을 소환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느 집단이든 아랫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일에는 반드시 윗사람이 강림하기 마련이니까.

가니스엘이 말했다.

“그대의 뜻은 잘 알겠다, 헨리. 그래도 그대에게 이것 한 가지만큼은 말해 주고 싶군.”

“뭔데?”

“그대가 어떤 생각을 가졌든 간에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족은 훨씬 더 위선적인 존재들이다.”

“그래?”

가니스엘이 짐짓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천족의 습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헨리는 아직 가니스엘이 천계에서 추방당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가니스엘의 말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진 않았다.

‘그래도 참고는 해 두자.’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필요는 없었다.

우직한 성격의 가니스엘이 절친한 친우에게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았으니까.

헨리는 가니스엘과의 대화를 마친 후 다시 그레텔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레텔에겐 사정을 충분히 설명해 두었다.

기가탄 같은 놈과는 달리 그레텔은 가니스엘만큼이나 실속이 넘치는 녀석이었으니까.

헨리의 사정을 모두 전해 들은 그레텔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고결한 존재, 당신 같은 위대한 마법사와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복하였습니다.”

“빈말은 됐고.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그때가 되서 약속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게.”

“알겠습니다, 고결한 존재이시여.”

헨리가 그레텔에게 마왕의 자리를 양보받는 것으로 내건 대가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리치는 발전을 꿈꾸는 마법사의 욕심으로 탄생한 존재.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그레텔에게 오랫동안 답보되어 있던 마법적 성장을 대가로 약속했다.

정리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헨리는 그레텔에게 가니스엘을 부탁한 뒤 차원 문을 열었다.

헨리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모두들, 나중에 보자고.”

인사를 마친 헨리가 차원 문 속으로 사라졌다.

* * *

천계(天界).

말 그대로 하늘에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알려진 곳.

그러나 실제로 인간계의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다.

천계는 말 그대로 마계와 같은,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으니까.

천계 어딘가에 차원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차원 문에서 나온 것은 헨리였다.

헨리는 마신에게 받은 좌표 값을 대입하여 천계로 입장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천계에 도착한 헨리는 이방인처럼 주위를 흘긋거렸다.

‘여기가 천계인가?’

헨리는 마계에 이어 천계에 입성한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물론 본질은 신이지만 헨리는 아직 스스로를 반쯤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의 헨리는 인간의 영역에서 몇 발자국 벗어난 위대한 존재이기는 했으나 아직 신이라고 불리기에는 불완전한 존재였으니까.

헨리가 폐부 가득히 천계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상쾌했다.

공기 중에 독기가 가득한 마계와는 달리 이곳은 삼림욕을 연상케 할 만큼 산뜻한 공기로 가득했다.

헨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에는 커다란 태양이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었고, 그 주위로 수많은 구름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어서 헨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계의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풍경에 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흔한 수풀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는 흙바닥과 비슷한 빛깔을 가진 고동색의 토양이 깔려 있었으나 돌멩이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환경 탓인지, 천계는 묘하게 깨끗하다는 느낌을 자아냈다.

그 깨끗함은 곧 순결이나 고결함을 떠올리게 했다.

끝으로 주위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신이 준 천계의 좌표는, 어쩌면 말 그대로 그저 단순한 천계의 좌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가 뒤통수를 긁으며 생각했다.

‘직접 찾아가야 하는 건가?’

지나가는 천족이라도 있다면 붙잡아 길이라도 물어볼 텐데 아무도 보이질 않으니 그게 조금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이 드니 괜히 마신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기왕 줄 거면 좀 제대로 된 좌표나 좀 주지.’

헨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천신의 구역에 발을 디디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우선은 그것으로 만족키로 했다.

헨리가 말했다.

“엘라곤.”

-뀨우!

부름과 동시에 손목에 찬 청록색 팔찌가 번쩍이며 엘라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엘라곤은 부쩍 키가 커져 있었다.

전에 보았던 예닐곱 살의 모습 따위가 아닌 이젠 아카데미에 다녀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보기 좋게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엘라곤의 외형은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키가 어려웠다.

‘뭐, 정령에는 성별이 없으니까.’

헨리가 엘라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혼자 이동하기 적적하구나. 안장을 좀 얹고 싶은데 부탁해도 되겠니?”

-뀨뀨뀨!

엘라곤은 헨리의 부탁을 가볍게 수락했다.

그리고 즉시 모습을 변화시켜 자신의 부모를 닮은 거대하고 길쭉한 수룡, ‘엘리라곤’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했다.

-큐큐큐!

모습이 거대해지니 성대 또한 굵어졌다.

그래서 자그마할 때나 내던 앙증맞은 울음소리 대신 굵직굵직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헨리의 눈에는 그마저도 귀엽게 느껴졌다.

헨리는 엘라곤의 등허리 중 적당한 곳에 안장을 얹은 후 몸뚱이를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이것저것 속도 마법을 부여해 엘라곤의 속력을 높여 주었다.

“가자.”

-큐우우우!

출발 신호에 힘차게 대꾸하는 엘라곤.

그렇게 엘라곤은 헨리 덕분에, 정령 최초로 천계에 입성한 정령이 될 수 있었다.

엘라곤과 헨리가 떠난 직후였다.

-시시바바, 시시바바…….

헨리가 떠난 자리에 바닥으로부터 고동색을 띤 흙덩이들이 서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솟아오른 흙덩이들은 이내 어떤 형태로 모습을 변형시켰는데, 그 모습은 다름 아닌 ‘눈’과 ‘귀’였다.

그들의 이름은 ‘시시바바’.

천계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은 천족의 한 종류로, 마계로 따지자면 최하급 마물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시시바바.

그들은 얼핏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다름 아닌 천계의 모든 것들을 보고 들은 뒤 다른 천족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천계 소문의 근원지라고도 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시시바바, 시시바바…….

헨리와 엘라곤이 사라진 직후, 시시바바들이 한동안 그 자리를 맴돌았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고동색 바닥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얼마나 이동했을까?

헨리는 제법 먼 거리를 이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주위는 허허벌판이었다.

그 때문인지 헨리는 어쩌면 마신이 좌표를 잘못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아무리 그래도 마신 그놈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신들의 왕인지 뭔지 하는 놈의 명령까지 떨어진 마당에 굳이 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마신을 믿는다기보다는 마신조차 두려워하는 신들의 왕이 가진 위엄을 믿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시아아아!

익숙한 울음소리.

소리는 바닥으로부터 들려왔다.

들려온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지척에서 들린 소리 때문에 엘라곤은 황급히 몸체를 틀어 공중으로 부양했다.

헨리가 시선을 돌려 바닥을 주시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엄청난 크기의 뱀 떼가 헨리와 엘라곤을 노려보고 있었다.

‘뱀?’

뱀이라기엔 그 크기가 몹시 거대한 게 구렁이를 연상케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구렁이도 저들의 덩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엘라곤을 높이 부양시킨 헨리가 자신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뱀 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물 같은 놈들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천계에서 뱀이라니?

왠지 모르게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이번엔 위쪽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시이이잉!

“이런!”

정수리가 화끈했다.

화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라곤이 기지를 발휘해 뿜어지는 화염을 회피했다.

“뭐야?”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짜증이 확 일었다.

시선을 돌려 뜨거움의 원인을 살피니 그곳에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는 ‘불꽃의 고리’가 있었다.

“고리?”

그러나 고리라기엔 마치 그 모양이 무언가를 연상케 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바퀴?”

바퀴였다.

그것도 불꽃으로 범벅이 되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화염의 수레바퀴!

헨리가 바퀴라는 단어를 외친 순간, 바퀴의 수가 수십 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헨리를 향해 바퀴들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이런!’

-시아아아아!

수레바퀴를 피해 아래로 몸을 내리려니 밑에선 구렁이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그래서 소리쳤다.

“클레버!”

-예, 마스터.

쿵!

헨리의 믿음직스러운 권속.

마왕을 삼킨 유일한 마물, 클레버가 천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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