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55화 (355/522)

# 355

서열 정리 (4)

‘브릴린테?’

차원의 틈이 뱉어 낸 존재는 분명히 브릴린테가 맞았다.

그런데 어떻게?

죽은 브릴린테의 시체는 분명히 클레버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

그런데 어떻게 브릴린테가 또다시 나타날 수 있는 걸까?

헨리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중엔 놈에게 쌍둥이 형제라도 있었나 하며 중얼거리던 찰나, 헨리는 소환된 브릴린테의 눈빛이 암녹색으로 빛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거였군.’

암녹색 눈빛.

그것은 언데드들이 가지는 대표적인 특징들 중 하나였다.

물론 데스나이트처럼 붉은 안광을 가지는 언데드도 있었다.

하지만 데스나이트를 만들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전생에 기사였던 자의 육체가 필요했다.

스켈레톤이나 좀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사자의 육체를 제물삼아 다시금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

그러나 소환된 브릴린테의 안광은 암녹색이었다.

그 말인즉슨.

‘영체만을 빌려 왔단 얘기지.’

대표적으로 고스트나이트가 암녹색 눈빛을 가진 언데드의 좋은 예였다.

사자의 육체가 아닌 그 령(靈)을 흑마술로 붙잡아 언데드로 만들어 낸 존재들.

그러나 척 보기에도 브릴린테는 고스트나이트와는 달리 실제 물리력을 가진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몸뚱이를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브릴린테의 육체는 본연의 것이 아닌 그렐텔이 만든 가짜라는 뜻.

간파를 마친 헨리가 씨익 미소 지었다.

‘그래도 대단하네. 전 마왕 후보의 영혼을 언데드로 만들 생각을 다 하다니, 어쩌면 브릴린테보다 더 강한 놈일 수도 있겠어.’

헨리는 그레텔의 능력을 칭찬했다. 그리고.

‘기대가 돼.’

말 그대로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브릴린테를 꺼내 들었다는 건 나름대로 강수를 두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저것이 네오리치의 특기 중에 하나라면, 어쩌면 생각보다 더 재밌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가 시선을 틀어 그레텔을 바라보았다.

그레텔이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깔보았다.

재밌는 상황이다.

헨리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린 후 손아귀에 콜소드를 소환했다.

황금빛 이채가 결집되며 콜소드가 소환됐다.

브릴린테가 완전히 마계에 강림했다.

거대한 덩치를 보니 사뭇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헨리는 플라이를 사용해 고속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브릴린테의 거대한 다리를 훑고 지나가 허리를 지나친 다음, 쇄골쯤에 다다랐을 무렵, 소환한 칼을 안쪽 방향으로 활시위처럼 당겼다.

그레텔의 명령을 받은 브릴린테가 뒤늦게 헨리의 접근에 반응했다.

그러나 브릴린테에게 헨리는 고작해야 참새 정도의 크기.

반응하기엔 반 박자, 아니 한 박자 정도 늦었다.

촤아악!

뒤늦게 휘둘린 브릴린테의 팔보다 헨리의 칼끝이 더 빨랐다.

검 끝으로부터 황금빛 파도가 뿜어졌다.

뿜어진 파도는 휘둘린 팔뚝에 기다란 수평선을 그렸다.

그러나 그 순간.

콰과과과!

수평선처럼 갈라진 팔뚝의 상처로부터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어났다.

화마가 헨리를 덮쳤다.

지켜보던 기가탄과 가니스엘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뜨겁네.”

활화산처럼 폭발한 화마 사이로, 금빛 구체가 튀어나왔다.

매직 실드를 두른 헨리였다.

지켜보던 두 구경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헨리는 거리를 조금 벌리며 화마를 뿜어낸 브릴린테의 상처를 보았다.

꾸물꾸물.

흘린 피는 없었다.

대신 뿜어진 화마가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자 화마가 곧 사그라들며 상처가 아물었다.

‘좀비? 아니 그것보단 좀 더 능동적인데…….’

자신이 겪어 본 브릴린테가 아니었다.

기존의 브릴린테에겐 저런 능력이 없었으니까.

원래의 브릴린테는 순수한 무투꾼이었다.

거대한 육체, 날렵한 몸짓, 그리고 어마어마한 파괴력.

그런데 그런 브릴린테에게 사술처럼 보이는 것들을 잔뜩 집어넣은 듯했다.

‘없애기엔 좀 아쉬운데?’

그래서 왠지 모르게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초강수라고 빼 든 놈일 테니 만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헨리는 다시 그레텔을 바라보았다.

검은 유골이 매끈하게 반짝거린다.

그 반짝거림이 묘하게 이죽거림처럼 느껴졌다.

‘방식을 바꿔 주지.’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브릴린테를 없애 그레텔의 기를 좀 꺾어 볼까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게 개량해 놨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 다른 방식으로 콧대를 꺾어 주기로 했다.

생각을 다잡은 헨리가 콜소드를 역소환시켰다.

콜소드가 사라지자마자 브릴린테의 주먹이 곧장 헨리에게로 날아들었다.

부우웅!

거대한 풍압.

주먹이 채 닿지도 않았는데 태풍 같은 풍압이 먼저 헨리를 덮쳤다.

그러나 헨리는 피하지 않았다.

마력을 송출하지도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마신에게 받은 힘을 사용했다.

붕!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눈앞에 거대한 암흑구가 만들어지며 바람이 더 이상 불지 않게 되었다.

그 광경을 본 그레텔이 깜짝 놀랐다.

헨리가 눈앞에 꺼내 든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브릴린테를 소환할 때 사용했던 ‘차원의 틈’이었다.

헨리는 브릴린테의 주먹에 딱 들어맞는 차원의 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수챗구멍이 물을 빨아들이듯 뻗어지는 관성 그대로 집어삼켰다.

닿는 것 없이 빨려 들어가자 브릴린테의 거대한 몸뚱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주먹과 손목, 그리고 이어서 팔뚝까지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갔을 무렵, 헨리는 틈의 크기를 더욱 더 크게 벌렸다.

후웅!

단 한 번.

브릴린테는 단 한 번 중심을 잃고 앞으로 주춤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실수로 브릴린테의 상체 절반이 차원의 틈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말았다.

남은 하반신이 버둥거렸다.

그러나 헨리는 늪지대의 그것처럼 벌린 틈이 마저 브릴린테를 먹어치울 수 있도록 그대로 두었다.

“이 무슨!”

당황한 검은 해골이 뒤늦게 덜그럭거리며 가부좌를 풀었다.

그리고 황급히 손을 휘저으며 대비 술식을 개방했지만 헨리가 한손을 들어 놈의 마력 흐름을 역류시켰다.

빠각!

네오리치인 그레텔은 살점 한 점 없는 해골이라 신경 계통이 없다.

그래서 역류한 마법으로 인해 살점이 터져 나가고 피가 역류하진 않았지만, 대신 마력의 송출을 담당하고 있던 뼈들이 부러지고 바스러졌다.

펄럭이는 그레텔의 로브.

커다란 마법을 준비했던 만큼 역류한 마력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브릴린테가 곧 허공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눈앞에는 브릴린테가 딛고 있었던 거대한 크기의 발자국들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헨리는 손을 털어 낸 다음 고개를 돌려 그레텔을 바라보았다.

그레텔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일곱 빛깔의 구체가 아닌 여덟 빛깔의 구체가 허공에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검은색으로 빛나는 그레텔의 해골이었다.

역류한 마력이 그레텔의 전신을 짓이겨 놓은 탓이었다.

“쯧쯧, 성급한 놈.”

물론 저렇게 되도 그레텔에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놈의 근간은 리치.

리치를 직접적으로 죽이려면 신줏단지 모시듯이 숨겨 놓은 놈의 생명의 근원, 라이프 베슬을 부숴야만 했으니까.

헨리가 미끄러지듯이 허공을 내려와 그레텔 앞에 섰다.

검은 해골 속의 텅 빈 눈두덩에 암녹색 안광이 번뜩였다.

헨리가 안광과 시선을 섞었다.

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해골만 남은 그레텔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해골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안광이 촛불처럼 번들거렸다.

번들거리던 촛불은 잠시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한참의 눈맞춤 끝에 해골 속에서 타오르던 안광이 파삭! 하고 사라졌다.

안광이 사라지자 해골은 평범한 해골이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해골 주위를 멤돌고 있던 일곱 개의 수정구는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그 순간, 일곱 개의 수정구가 각각의 꼭짓점이 되어 그 사이에 칠각형 모양의 새하얀 공간을 만들어 냈다.

공간은 새하얀 빛을 내뿜더니 이내 곧 광명을 잦아들게 했다.

잦아든 광명 사이에 회색 공간이 얼핏 보였다.

회색 공간 사이로 흑발의 미남자가 나타났다.

나타난 미남자는 비단으로 지은 듯한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뒤로 넘긴 장발은 사라진 해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남자는 암녹색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 속에서 걸어 나온 남자는 헨리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고결한 자를 몰라 뵀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미남자의 정체는 그레텔이었다.

그레텔은 라이프 포스 베슬 속에 담가 두었던 자신의 진짜 육체를 꺼내다가 헨리 앞에 보였다.

그것은 네오리치가 격 높은 존재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였다.

털썩!

그레텔이 예를 표하자 기가탄이 숨을 크게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마터면 숨이 막혀 죽을 뻔했다.

기가탄은 여전히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을 다독이며 생각했다.

‘미치겠네, 대체 저 인간은 정체가 뭐야? 어떻게 기운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살이 떨리는 거지?’

기가탄의 말대로였다.

브릴린테를 다른 차원으로 넘겨 버린 직후, 헨리는 단순히 그레텔과 시선 교환을 한 것이 아니었다.

헨리는 브릴린테를 처리한 직후, 헨리가 내뿜을 수 있는 최대치의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단연코 마력과 신력이 합쳐진 헨리만의 특별하고 위대한 존재감이었다.

기가탄이 자신과는 달리 멀쩡하게 서 있는 가니스엘을 보며 말했다.

“넌 왜 멀쩡하냐?”

“무엇을 말인가?”

“좀 전에 너도 느꼈잖아. 헨리 님이 그레텔을 상태로 진심을 내비치신 거.”

“아아, 그것 말인가…… 그런 거라면 난 괜찮다.”

“대체 왜?”

“그건 나도 모르겠다.”

반면에 가니스엘은 멀쩡했다.

하지만 분명히 가니스엘도 헨리의 진심 어린 존재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니스엘이 멀쩡했던 이유는 가니스엘은 헨리가 정식으로 인정한 친우였기 때문이다.

기가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니스엘을 한번 바라본 뒤 다시 허공에 선 두 존재로 시선을 옮겼다.

헨리가 말했다.

“알면 됐어. 그보다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헨리는 그레텔의 깍듯한 태도에 쉽게 용서했다.

그리고 곧바로 본론을 언급했다.

“좋은 태도야. 그럼 본론만 이야기할게. 내가 키우는 마왕 후보가 한 명 있어.”

키우는 마왕 후보.

그 말에 그레텔이 가니스엘과 기가탄을 흘깃 내려다보았다.

“근데 내가 보기에 그 녀석이 널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래서 말인데, 마왕 후보 자리를 그 녀석에게 양보해 줬으면 좋겠어. 물론 그에 걸맞은 대가를 너에게 약속할게.”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말 그대로였다.

사실 그레텔의 힘을 체험해 본 헨리 입장에선 가니스엘이 그레텔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헨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신사답게 대화로 해결하려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레텔이 그에 응해 주었다.

헨리가 말했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그럼 부탁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데, 딱히 다른 목적이 없다면 네가 마계 서열 2위 자리를 맡아 줬음 좋겠어.”

“혹시 그 이유가 키우고 계신다는 마왕 후보의 안전 때문입니까?”

“응, 비슷한 이유로 좀 전에 기가탄도 수하로 들였거든.”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천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혹시라도 일이 꼬이면 그냥 엎어 버릴 생각이긴 한데, 내가 직접 엎는 것보단 오랫동안 천계를 목표로 하는 너희들이 엎는 게 그림이 더 보기 좋잖아?”

“단지 그뿐이십니까?”

“뭐…… 물론 저 녀석에게 미안한 것도 좀 있고 말이야. 그리고 넌 사실 마왕 자리 같은 감투에 별로 관심도 없잖아?”

“역시 위대한 존재다운 안목이십니다.”

헨리의 예상대로 그레텔은 마왕 자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만약 마왕 자리에 관심이 있었다면 기를 쓰고 헨리에게 저항했을 테니까.

그레텔은 헨리가 숨기고 있는 진정한 힘을 엿보았다.

헨리 또한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레텔의 흥미가 동할 만한 대가를 약속했다.

덧붙여 그레텔 같은 진짜 마왕급 인재가 있다면 여러모로 편리할 터였다.

거래가 성립되자 그레텔이 오른쪽 검지를 들어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천천히 관자놀이로부터 손가락을 멀리 하자 그의 관자놀이로부터 새빨간 기운이 거미줄처럼 늘어지며 머릿속으로부터 뽑혀져 나왔다.

그레텔은 그것을 조그마한 구슬처럼 뭉쳤다.

그리고 헨리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마신님께서 제게 주신 마왕 후보의 증표입니다. 제가 이것을 포기함으로써 저는 마왕 후보의 자격이 박탈되며 이것을 가진 자는 새로운 마왕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신의 점지라는 걸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어?”

“물론 마신님께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왠지 마신님께선 이러한 저의 행동을 이해해 주실 것만 같군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뭐.”

마왕 후보의 자격을 포기한다는 건 더 이상 차원의 힘을 사용할 수 없음을 뜻했다.

하지만 그레텔에겐 아무렴 상관없는 문제였다.

마신에게 부여받은 차원의 힘 따위보다 눈앞의 존재가 곧 자신에게 지급해 줄 대가가 더 탐났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진보를 꿈꿔 오던 네오리치의 사념이 흥분으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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