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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354화 (354/522)

# 354

서열 정리 (3)

포효하는 본 드래곤을 보며 헨리가 생각했다.

‘음, 이번에는 정말 좀 마왕다운 놈인가 보네.’

초고위급 마물인 본 드래곤을 부리는 걸 보니 이번 마왕 후보는 아무래도 제법 마계 군주다운 위엄을 갖춘 모양이다.

‘솔직히 브릴린테 그놈은 좀 어설프긴 했어.’

동시에 헨리는 죽은 브릴린테를 회상했다.

브릴린테.

놈은 마왕답게 차원의 힘을 일부분 다룰 줄도 알고 덩치도 거대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놈의 공격은 솜방망이처럼 가벼웠고, 몸체도 물렁하기가 종이뭉치보다도 못 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네오리치에게 묘한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헨리가 본격적으로 그레텔의 영역에 발을 내딛자 하늘을 배회하던 본 드래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포효를 내질렀다.

-캬오오오!

좀 더 높고 날카로운 포효.

그것은 마치 늑대가 자신의 동료들을 불러들이는 듯한 그런 울음이었다.

본 드래곤이 포효를 마치자 곧 사방에서 그와 비슷한 포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

-캬오오오오!

본 드래곤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수십 기에 달하는 본 드래곤들이 그레텔의 영공에 흩어져 있었고 좀 전의 울음으로 한 곳으로 밀집되기 시작했다.

밀집되는 용 떼를 보며 헨리가 말했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지?”

“……예?”

헨리는 몰려드는 본 드래곤을 보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런 다음 미소를 지으며 기가탄에게 턱짓해 보였다.

“뭘 봐? 가서 처리하지 않고.”

“아…… 넵! 알겠습니다.”

헨리의 눈빛에 기가 죽어 곧바로 꼬리를 내렸지만 기가탄의 서열은 마계 2위에 해당하는 초거물급 마족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든든한 가니스엘의 동료였다.

물론 헨리의 명령에는 복종해야 한다.

처음부터 기가탄은 헨리에게 목숨을 구걸했으니까.

헨리가 몸을 푸는 기가탄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좀 쓸 만해야 할 텐데.’

일전에 한방에 나가떨어진 카이린에겐 여러모로 실망했다.

그래서 어찌 됐든 가니스엘의 동료가 된 기가탄만큼은 좀 쓸 만한 힘을 지녔으면 하는 게 헨리의 바람이었다.

‘본 거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덩치가 커지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래서 이 기회에 한번 제대로 보고 싶었다.

기가탄이 얼마나 잘 강한 놈인지를 말이다.

헨리의 명령에 기가탄이 앞으로 나섰다.

그것을 본 가니스엘도 검을 뽑으려 했지만 헨리가 막아섰다.

“기다려 봐.”

어차피 헨리와 가니스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혼자서라도 그레텔에게 도전했을 놈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가니스엘이 나설 필요는 없었던 것.

앞으로 나선 기가탄이 심호흡 끝에 능력을 발휘했다.

“흡!”

기가탄이 짧게 숨을 끊어 삼키자 순식간에 육체가 비대해졌다.

언제 봐도 신기한 능력이었다.

물론 헨리도 몸체를 키우려면 얼마든지 마법으로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효율적이니까.’

육체가 거대해짐과 동시에 등에 2개의 팔이 추가로 돋아난 기가탄이 각 손에 다른 무기들을 쥐었다.

-캬오오오오!

갑작스러운 기가탄의 등장에 본 드래곤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가탄에게로 몰렸다.

그러나 몰려든 것은 본 드래곤뿐만이 아니었다.

수십 기에 해당하는 본 드래곤과 더불어 수백 기의 본 와이번들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멀리서 보면 한 덩이의 구름을 연상케 했다.

드래곤과 와이번들이 일제히 기가탄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흡!”

기가탄이 다시 한번 숨을 끊어 삼켰다.

그리고 네 개로 늘어난 팔을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붕! 붕! 붕!

콰쟈쟉! 콰쟉! 콰쟈쟈쟉!

뼈가 분쇄되는 섬뜩한 소리가 허공 멀리 울려 퍼졌다.

기가탄의 공격은 몹시 빠르고 정확했으며 날카롭기까지 했다.

덩치가 크면 행동까지 둔할 거라고 생각한 헨리의 추측이 무색할 만큼 말이다.

쿵! 쿠궁! 쿵!

하늘에서 분쇄된 도마뱀들의 유골이 유성처럼 바닥에 떨어지며 자욱한 흙먼지와 크레이터들을 만들었다.

기가탄에게 피해는 없었다.

오히려 모기나 파리를 내쫓듯 몹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학살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비행체를 모두 전멸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학살을 마친 기가탄이 다시 몸집을 줄였다.

그런 다음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았다.

“쓸 만하네.”

칭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기대를 채워 주기 위해 가볍게 칭찬해 주었다.

기가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헨리가 고개를 들어 지평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눈앞에 보이는 건 없었으나 본 드래곤과 본 와이번들이 전멸당했으니 곧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쿠득, 쿠드득-!

“왔네.”

예상대로 비행 병력이 전멸하자마자 눈앞의 대지로부터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땅으로부터 솟아나는 것들.

감자나 고구마 같은 뿌리 식물들이 아니었다.

네오리치의 자랑스러운 언데드 군단들이었다.

곧 그레텔의 영역을 빽빽이 채울 만큼의 언데드 군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마치 금역에서 보았던 스켈레톤 군단들을 떠올리게 했다.

군단을 구성하고 있는 언데드의 종류는 다양했다.

스켈레톤부터 좀비나 구울, 데스나이트, 듀라한 등등…….

헨리가 아는 대부분의 언데드들이 하나의 군단이 되어 헨리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그 광경을 보던 헨리가 말했다.

“가니스엘.”

“왜 그런가.”

“원래는 이놈들도 네가 싸워야 할 전투의 일부이니 끼어들어선 안 되겠지만…… 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아?”

“많은 것 같긴 하다.”

“그렇지? 그러니 길 정도는 내가 터 줄게.”

“길 정도라면…… 알겠다.”

1분 1초가 아까운 마당에 잔챙이들을 상대로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니스엘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런 다음 헨리는 기가탄을 바라보았다.

‘또 내가 나서야 하나?’

분명히 헨리는 좀 전에 자신이 길을 터 주겠다고는 했으나 그게 굳이 자신의 힘일 필요는 없었다.

기가탄은 헨리와 눈을 마주쳤고 본능적으로 또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언데드 군단은 척 보기에도 귀찮은 놈들이었으니까.

그러나 헨리는 의외로 기가탄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잘 봐.”

지잉!

헨리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곧 일행 전체를 감싸 안는 커다란 황금빛 구가 생성되었다.

신력을 머금은 매직 실드였다.

매직 실드를 전개한 헨리가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키아아아!

헨리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앞서 걸어 나가자 일행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일행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치지지짓!

헨리의 매직 실드에 닿은 언데드들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황금빛 스파크를 일으키며 저만치 멀리 튕겨져 나갔다.

혹은 번갯불에 구워지듯 새카만 잿더미가 됐다.

탄내가 났다.

그러나 헨리는 어느 고급 향수를 즐기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이럴 수가……!’

실드의 보호를 받으며 앞으로 걸어 나가는 동안 기가탄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테렐의 언데드 군단은 최소가 중상급 마물들로 이루어진 마계의 최정예 군단.

그런 언데드병들이 전력을 다해 덤벼들고 있는데 타격은커녕 자신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쿵! 쿵! 쿵!

그 순간, 네오리치의 네오 골렘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화한 자신보단 작았지만 그래도 골렘의 명성에 걸맞게 모두들 한 덩치씩 하는 놈들이었다.

그놈들이 언데드 군단 사이를 헤치며 다가왔다.

기가탄이 자신의 무기를 빼어 들며 생각했다.

‘저놈들만큼은 내가 나서야……!’

그러나 기가탄의 생각을 읽은 헨리가 손을 들어 기가탄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 순간, 네오 골렘들의 주먹이 헨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쿠웅-!

실드 전체가 진동할 만큼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그러나 들려온 굉음과는 달리 실드 안은 한없이 안락했다.

네오 골렘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쿵-! 쿠웅-! 쿵!

다른 언데드병들이 파괴의 여파에 휩쓸리든 말든, 네오 골렘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 헨리의 실드를 두드렸다.

그러나 헨리의 실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자신들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자존심이 상한 네오 골렘들이 자신들의 핵을 원료로 삼아 ‘자폭’을 시도했다.

번쩍!

네오 골렘 한 기의 자폭이 가지는 파괴력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졌다.

번쩍이는 광명의 행렬이 이어졌고 일행의 코앞에서 닿는 모든 것들을 녹여 버릴 만큼 끔찍한 열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변한 게 있다면 네오 골렘의 폭발에 휘말린 수많은 언데드 군단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는 것 정도.

그러나 그레텔의 언데드병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땅 속에서 기어 나와 죽은 병사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 광경을 본 헨리는 여전히 직진을 고수했다.

의미 없는 휘두름이 반복되었고 헨리는 놈들에게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헨리는 어서 빨리 이들의 주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차피 백날 죽여 봤자 다시 살아날 놈들이 바로 언데드 군단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확실하게 도발해 두는 편이 낫다.’

전생에서 헨리는 리치 또한 한 중대쯤은 죽여 본 몸이었다.

그래서 리치들의 습성을 잘 안다.

리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마법사들이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 선택한 욕심의 결과물.

그렇기 때문에 리치가 된 마법사들은 리치가 된 시점부터, 잘못된 방법이긴 해도 목표를 이룬 고위급 마법사들이 많았다.

그런 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도 마법에 대한 자부심도 강한 놈들이었다.

하물며 그런 놈들의 최상위 계층이라고 알려진 네오리치는 어떠할까?

그렇기에 헨리는 매직 실드를 제외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놈의 자존심이 충분히 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일행은 한참을 걸었다.

그 동안 몇 군단에 해당하는 언데드들이 끊임없이 덤벼들었지만 파도는 바위를 깎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몰려든 언데드병의 질이 네오 골렘 따윈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드높아졌을 때, 그제야 네오리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네오리치가 말했다.

그러자 미친개처럼 달려들던 언데드 군단이 일시에 동작을 중지했다.

모습을 드러낸 네오리치는 허공에 있었다.

마치 벌레를 내려다보듯 그런 시선으로 헨리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헨리가 고개를 들어 새로운 마왕 후보라 불리는 네오리치, 그레텔을 올려다보았다.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앉아 있는 검은 해골의 스켈레톤.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품의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일곱 빛깔의 수정구가 수호 요정처럼 네오리치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흐음.”

확실히 브릴린테와는 또 다른 위압감을 가진 놈이었다.

만약 저런 놈이 후보가 아닌 진짜 마왕이 된다면 헨리가 살던 세상은 또다시 아비규환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들었다.

놈이 가진 군대와 그 군대를 거느린 저 오만한 눈빛.

어딜 봐도 새로운 마왕군의 전력으로 손색이 없는 놈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레텔을 지켜보던 헨리가 가니스엘의 이름을 불렀다.

“가니스엘.”

“왜 그러지?”

“생각이 바뀌었어.”

“무슨 생각을 말인가?”

“저놈한테 흥미가 생겼어.”

“양보해 달란 이야긴가?”

“맞아.”

“……알겠다.”

가니스엘은 잠시간 고민 끝에 부탁을 승낙했다.

사실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수 없었다.

헨리의 눈빛이 워낙에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가니스엘의 승낙이 떨어지자 헨리가 가볍게 도약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테텔의 시선이 도약하는 헨리를 따라 포물선을 그렸다.

그리고 포물선을 따라 움직이는 헨리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레텔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헨리의 겉모습은 인간이 맞았고, 풍기는 기운 또한 인간이 맞았다.

헨리의 정체가 파악되자 그레텔은 허탈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어떤 건방진 놈이 실드 하나로 자신을 도발하나 했더니, 다른 리치도 아니고 고작해야 인간 마법사일 줄이야.

그러나 다른 마족들처럼 섣불리 분노를 표하지 않았다.

헨리를 죽이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곧 헨리가 그레텔 눈앞에 섰다.

아니, 가부좌를 튼 그레텔보다 조금 더 높이 솟아올라 그레텔이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위치를 선점했다.

그 건방지고 오만한 행동에, 그레텔은 억제해 두었던 분노를 표출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가 말했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걸? 지금 하려는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을 수도 있어.”

“……하하, 그래?”

헨리의 경고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경고가 기폭제가 되었다.

그레텔은 단순히 사출형 흑마술로 헨리를 벌집으로 만들어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대꾸를 해 주기로 했다.

마침 가니스엘과 기가탄 같은 훌륭한 구경꾼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레텔이 말했다.

“그럼 어디 이것도 한번 평가해 보거라.”

그레텔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레텔의 드높은 영공 중앙에 거대한 틈이 생겨났다.

‘차원의 힘?’

다른 이는 몰라도 헨리는 명백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차원의 힘이었다.

그리고 벌어진 차원의 틈으로부터 익숙한 외견을 볼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발부터 뻗어져 나와 차원의 틈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존재.

그것은 다름 아닌 전 마왕 후보, ‘브릴린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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