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50화 (350/522)

# 350

단서 (3)

헨리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문장이 반복됐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다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자고로 사람은 무언가에 대한 후회를 할 때 가장 먼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부터 해 왔으니까.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문제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시간.

그것은 공간과는 달리 독자적인 영역이었다.

공간의 경우, 블링크를 기점으로 텔레포트나 기타 잡다한 이동 마법뿐만이 아니라 아공간 같은 여러 가지 공간 마법들이 이미 존재했으니까.

물론 식량난을 해결했던 ‘고속 성장’처럼 얼핏 보면 시간을 활용한 것 같아 보이는 마법도 있다.

하지만 고속 성장의 원리는 씨앗의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한 것이 아니라 마력으로 여러 가지 영양소를 공급해 준 것뿐이었다.

헨리는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문장을 곱씹어 보았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긴 했지만 시간을 되돌린다는 상상 자체는 답이 보이지 않는 이 실험에 지름길을 엿본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시간이라…….”

언젠가 시간과 관련된 마법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비단 헨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마법사들이 한 번쯤은 상상해 본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들 상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말 그대로 독자적인 영역.

시간은 그 어떤 원소나 자연에도 포함되지 않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마법과 관련된 아주 자그마한 원리조차도 단서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평생 이루지 못할 줄로만 알았던 9서클의 영역을 기연으로나마 손에 넣었다.

더불어 시간만큼이나 독자적인 영역에 속했던 차원의 힘까지 손에 넣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시간 마법 또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뜻 시간 마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니 조금은 두려웠다.

시간 마법이 맹신자 연구의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었지만 시간 마법에 대한 연구 또한 맹신자 연구와 마찬가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을까? 왠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헨리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마법.

그렇기 때문에 단서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헨리가 처음 8서클에 도달했을 때 그때도 분명 더 이상은 진전의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이루어 냈고 두 번째 인생에선 더더욱 쉽게 8서클을 이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시간 마법의 터득이 더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이 필요해.’

생각 끝에 헨리는 좀 더 능동적으로 자료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현재의 연구 팀에서 잠시 빠질 필요가 있었다.

‘로어에게만 살짝 귀띔해 줘야겠군.’

물론 로어를 비롯한 연구 팀의 마법사들은 아무 이유 없이 무작정 기다려 달라고 해도 충분히 기다려 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헨리는 현재 모리스의 왕이라는 책임감이 무거운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헨리의 거취는 헨리 개개인만의 거취가 아니다.

결심을 마친 헨리는 곧바로 로어를 찾아갔다.

* * *

“시간 마법…… 말씀이십니까?”

“응.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한번 파헤쳐 볼 필요가 있겠어.”

헨리의 계획을 들은 로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 마법에 대한 연구라니?

여태껏 상상 속에서만 생각해 오던 시간 마법에 실제로 도전하는 마법사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마법의 신으로 불리는 헨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로어는 묘하게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로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자릴 비우시는 동안은 제가 대표로 연구를 맡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클레버는 두고 가도록 할게. 맹신자들의 포획은 알게 모르게 심력 소모가 많이 드는 일이니까.”

“아닙니다. 맹신자 포획에 필요한 권속이나 서번트 정도는 저희들도 충분히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선 저희 걱정일랑 마시고 하시려는 연구에 집중해 주십시오.”

“고마워. 우선은 일주일이야. 먼저 일주일 정도만 자리를 좀 비울게.”

“더 길게 잡으셔도 됩니다.”

“아냐, 우선은 일주일 정도의 자료 조사 기간을 갖고 그 후에 행보를 정하도록 할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알지?”

“물론입니다. 팀원들에게도 이 일에 대해선 함구하도록 할 터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어가 저리 말해 주니 참 믿음직스러웠다.

헨리는 로어의 믿음직스러운 눈빛을 재차 확인한 후 어깨를 두어 번 정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금방 모습을 감추었다.

헨리가 모습을 감춘 직후, 로어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돌아가신 초대 탑주시여, 부디 당신의 제자를 가엾이 여겨 그를 돌보아 주소서.”

원래는 신에게 빌어야 할 기도였다.

하지만 로어가 믿는 신인 헨리가 행하는 일이니, 로어는 헨리의 스승이라고 알려진 원조 대마법사, 헨리에게 기도를 올렸다.

두 사람이 동일인물인 줄은 꿈에도 모른 체 말이다.

‘귀엽네.’

로어의 기도를 들은 헨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 * *

헨리가 첫 번째 자료 조사지로 정한 곳은 다름 아닌 마계였다.

첫 조사지로 마계를 선택한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마계를 관장하는 마신으로부터 9서클에 해당하는 차원의 힘을 부여받았다.

공간의 극의인 차원의 힘을 알고 있는 마신이라면 시간의 힘에 대한 행방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하나 차원의 힘을 얻었다고 한들 덜컥 마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찾아갈 순 없었다.

왜냐하면 차원의 힘을 얻었다고 한들 마신이 지내고 있는 공간의 좌표는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우선은 마신의 유일한 대리자인 라니아를 찾았다.

헨리는 어렵지 않게 마계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금역에 존재하는 마신의 제단이 아니었다.

헨리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한참 사냥 중인 ‘가가’의 뒤였다.

가가는 헨리가 나타난 줄도 모른 채 자신의 창을 꼬나 쥐고서 먹잇감의 뒤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가가 투창하려던 순간, 헨리가 말했다.

“야.”

-히이익!

인기척도 없이 뒤에서 소리가 나자 가가가 화들짝 놀랐다.

그 때문에 가가가 노리고 있던 먹잇감이 가가의 존재를 눈치채고 말았다.

-꽈아악?

가가가 노리고 있던 먹잇감은 왜가리를 닮은 거대한 조류 마물이었다.

이름은 몰랐다.

헨리도 처음 보는 종이었으니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조류 마물이 성을 내며 가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앞에선 분노한 먹잇감이 다가오고 뒤에는 마왕보다 무서운 존재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가가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짧게 혀를 찼다.

“쯧.”

혀를 찬 헨리는 오른쪽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파작!

가벼운 소리와 함께 조류 마물의 머리가 터지고 말았다.

조류 마물의 터진 머리의 잔해가 가가의 얼굴에 튀었다.

그러나 가가는 얼굴에 묻은 잔해를 닦을 새도 없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헨리를 올려다보았다.

-어, 어, 어쩐 일이십니까?

가가는 당황한 게 아니었다.

도리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헨리에겐 고작해야 반년 만이었지만 가가에겐 근 5년 만에 헨리가 나타난 셈이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떠는 가가를 보며 헨리가 말했다.

“나랑 어디 좀 가자.”

-어, 어디를요?

“와 보면 알아.”

헨리는 가가의 뒷덜미를 덥석 붙잡았다.

그런 다음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두 사람의 신형이 흐릿해졌다가 금세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겁먹은 가가가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헨리는 가가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가가의 뒷덜미를 붙잡은 채 어디론가로 휙 던졌다.

바닥을 구르는 가가.

도착한 곳은 마신의 제단이었다.

가가를 집어던진 헨리가 제단을 향해 말했다.

“라니아.”

마신의 유일한 대리자인 라니아.

라니아의 소통 방식은 전에 겪어 봐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라니아와 대화하기 위해 소통의 수단으로 가가를 잡아온 것이다.

제단 위로 던져진 가가의 몸이 일순간 번쩍였다.

미라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가.

눈빛이 죽은 것처럼 흐리멍덩해졌다.

라니아가 빙의에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말했다.

“아무래도 잘 데리고 온 것 같네.”

-……배려엔 감사드립니다만, 실례지만 무슨 연유로 이곳을 다시 찾으신 것입니까?

라니아는 헨리의 배려에 일단은 감사 인사를 표했다.

어쨌거나 라니아 입장에서 헨리는 신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신에게도 미리 전해 듣지 못한, 갑작스러운 헨리의 방문이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헨리가 냉큼 용건을 말했다.

“너의 상관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어.”

-마신님께…… 말입니까?

“응. 그러니 마신 좀 불러 줄래?”

불필요한 사족이 없는 간결하고 담백한 요청이었다.

이에 라니아가 몹시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헨리가 무례하게 느껴진다고 한들 라니아는 고작해야 마신의 대리자였다.

그렇기에 라니아가 신이 아닌 이상 헨리를 어찌할 힘은 없었다.

그때였다.

츠즈즈즛!

가가의 전신에서 새어 나오는 탁한 기운. 헨리가 보고 싶어 하던 기운이었다.

헨리는 입꼬리를 비틀며 자신을 위해 손수 강림하는 마신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낯익은 외모의 마신이 마계에 완전히 강림했다.

강림한 직후, 마신이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헨리가 라니아에게 한 짓은 아까 전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론 없이 곧바로 분노를 표했다.

마계의 진정한 지배자가 분노를 표하자 마계의 하늘이 소용돌이치며 곳곳에 천둥번개가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헨리의 반응은 평이했다.

그래서 뭐?

헨리는 그까짓 천둥번개 따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 신이라면 저 정도는 해 줘야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마신의 강림을 반겨 주었다.

“오랜만이야, 마신.”

-대답해라! 이게 지금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텐데?

“뭐긴 뭐야? 널 만나기 위해 라니아한테 부탁 좀 한 거지. 그러니 너무 화내지 말라고. 같은 신끼리 얼굴 붉히면 쓰나.”

-네놈!

헨리는 능글맞게 분위기를 넘기려 하였으나 마신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불호령과 함께 헨리의 머리 위로 벼락 한 줄기를 떨어뜨렸다.

꽈릉!

인간계에서나 볼 법한 벼락과는 차원이 다른 굵기를 가진 벼락이었다.

그러나 벼락의 작렬이 끝난 직후에도 헨리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인사가 좀 과격하네.”

-뭐라고?

마신의 벼락은 헨리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헨리가 가진 신력의 양이 마신보다 더 많고 진했으니까.

마신은 눈밑 살을 꿈틀거리며 조금 당황했다.

이에 헨리가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가진 신력이 너보다 훨씬 더 많은 모양이네. 그러니 평소에 신도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

-하? 이 무슨……!

헨리의 말을 들은 마신이 허탈함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헨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용건을 진행시켰다.

“화풀이는 이쯤하고 이제 그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좀 나누는 게 어때? 나도 너 하나 놀려 먹자고 여기까지 행차한 건 아니거든.”

마신은 도를 넘은 헨리의 뻔뻔함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뻔뻔하든 말든, 헨리는 방금 말한 대로 마신이나 놀려 먹자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니었다.

미간을 찌푸리는 마신에게 헨리가 물었다.

“너 혹시 시간의 힘도 다룰 줄 아냐?”

헨리의 말을 들은 마신의 미간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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