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47화 (347/522)

# 347

새로운 시작 (3)

실험은 계속됐다.

실험이 길어질수록 토악질뿐만이 아니라 현기증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

다들 강인한 척해도 인체 실험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어만큼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로어가 말했다.

“맹신자의 정신 복구 실험, 아흔여덟 번째 실험, 실패.”

사각사각.

눈앞에는 이번에도 역시 터져 나간 머리통의 잔해와 분수처럼 핏물이 치솟는 몸뚱이만이 남아 있었다.

로어는 익숙한 모양새로 시체를 전소시켰다.

로어의 무뎌진 감정이 닳다 못해 완전히 마모되었다.

이젠 눈앞에서 터져 나가고 있는 게 사람인지, 아니면 사람의 탈을 쓴 고깃덩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기 굽는 냄새가 사라진 직후, 로어는 다음 실험체를 데리고 오라며 손짓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적막을 깨고 익숙한 목소리가 로어를 두드렸다.

“로어.”

“아, 대마법사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헨리였다.

헨리는 이제 막 회의를 마치고 설탑에 도착했다.

곧 시작될 대규모 농사의 소식을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그전에 얼굴을 비출 사람들이 있어 연구실에 들렀다.

연구실에 발을 들인 헨리는 코를 찌르는 피 냄새에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헨리가 지시한 일이다.

그러니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들 앞에서 실험과 관련해선 어떠한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

헨리가 로어에게 물었다.

“좀 어때?”

헨리의 물음에 로어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헨리의 시선이 작성 중이던 실험 보고서로 옮겨 갔다.

헨리는 집어 든 보고서를 빠르게 넘겼다.

실험은 정석대로 착실히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발견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무지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주먹구구식으로 일일이 모든 경우의 수를 대입해 봐야 하는 것이 바로 발견의 첫걸음이다.

물론 간혹 가다 깔끔한 계산과 유추를 통해 한 번에 원하는 결론을 도출할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건 위대한 발견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은 아무것에나 함부로 붙는 게 아니었으니까.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서를 훑던 헨리는 서류 더미를 탁 소리 나게 닫았다.

그런 다음 손가락을 튕겨 연구소 책상을 정리한 다음 그 위에 보고서를 올려 두었다.

헨리가 말했다.

“실험에 열중해 주는 건 고맙지만 잠시 좀 쉬는 게 어때? 전해 줄 말도 있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휴식 시간을 배분해 적절하게 멘탈 관리를 했다.

하지만 로어는 특유의 성격 때문에 막중한 사명감을 느껴 잠시도 쉬지 않았다.

만약 헨리가 휴식을 권하지 않았더라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몽땅 맹신자 실험에 시간을 소비했을지도 몰랐다.

헨리의 제안에 연구실에 있던 마법사들이 우르르 연구실 바깥으로 나왔다.

연구실 밖으로 나서자 상쾌한 공기가 폐부에 들어찼다.

고작해야 벽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임에도 느껴지는 공기층이 달라졌다.

모두의 안색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감옥을 탈출한 무기징역수들 같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헨리는 눈에 띄게 안색이 밝아지는 이들을 보며 문득 미안함을 느꼈다.

‘역시 버티기 힘든 건가?’

연구실로 발걸음하기 전에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휴마니아를 보았다.

그녀는 안색이 몹시 좋지 않았다.

안색이 좋지 않은 이유는 얼추 예상됐다.

헨리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를 충분히 다독인 후에야 연구실에 들어섰다.

회장에 들어선 헨리는 길쭉한 회의 테이블의 상석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런 다음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연구에 참여한 이들의 노고부터 치하했다.

“다들 상관을 잘못 만나서 고생들이 많아.”

“아닙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인류의 존망을 위한 일인데 저희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겸손한 대꾸였다.

“그래도 일평생 인체 실험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을 텐데 아무리 사명감을 가졌다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잖아. 이 부분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닙니다, 대마법사님.”

신께서 자신들의 노고를 알아주니 그저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지금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됐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팀을 좀 나눌까 해.”

“팀을…… 나눈다니요?”

연구에 참여한 이들은 탑의 학파장들과 부학파장들 전원.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탑의 최고 지식인들을 일부러 모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소집된 마법사들 모두 동의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막상 실험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실험 과정들을 지켜보니, 이들 모두를 실험에 참여시킬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율도 효율이지만 이들은 소모품이 아니다. 실험 끝에 원하는 걸 얻게 됐다고 해도 이 중의 한 명이라도 실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생기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해.’

헨리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생기지 않길 바랐다.

물론 누가 들으면 풋내기 용사 같은 바람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헨리가 생각하는 희생자들 중에는 맹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야말로 헨리의 바람은 이상향에 가까운 것.

물론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은 잘 안다.

하지만 힘들 뿐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희생으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최대한 이상적인 방향으로 일들을 지시했다.

로어가 물었다.

“혹시 연구 이외에 저희가 해야 될 일들이 또 생긴 것입니까?”

날카로운 질문.

헨리는 수긍했다.

“응, 그것과 관련해서 방금 무슈에서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야.”

“무엇입니까? 저희가 해야 할 새로운 일들이란 게.”

“좋아, 알려 주지. 지금부터 여기 있는 사람들을 세 팀으로 나눌 거야. 한 팀은 계속해서 맹신자를 원래대로 되돌릴 연구를 진행하면 되고, 한 팀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식량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헨리의 입에서 준비된 말들이 술술 나왔다.

모두들 새로운 소식에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헨리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마지막 팀은 새로운 나라를 이끌어 갈 새로운 법령들을 제정할 거야.”

“……!”

“……!”

담담하게 내뱉는 말은 어지러웠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큼은 화끈한 빅뉴스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직 헨리의 입에서 중요한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격 급한 스탠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곧장 질문했다.

“새로운 나라라면…… 혹시 누가 통치하는 나라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다.

새로운 나라는 혼란에 빠진 이 시국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 지평선을 의미했고 새로운 시대는 곧 새로운 역사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명예로운 새로운 역사의 첫 주인공이 누가 될지는 마법사들에게도 몹시 중요한 문제였다.

스탠의 질문에 헨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야.”

“이야아앗!”

짧은 한 마디.

이에 화끈한 성격을 가진 몇몇 마법사가 용수철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다.

침착하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끌벅적해진 분위기 속에서 헨리와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로어가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응, 생각을 해 봤는데 나 이외엔 그 누구도 못 믿겠더라고. 그래서 새롭게 만들 나라에는 국교를 없애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했어. 국교 같은 거, 만들어 봤자 새로운 권력밖에 더 되겠어?”

“하하, 대마법사님께서 권력에 욕심이 있으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게 욕심으로 보여?”

“국교를 없앤다는 건 언뜻 보면 현명한 정책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달리 말하자면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니까요.”

“맞아, 똑똑하네. 난 최소한 내가 왕으로 있는 동안에는 권력이 분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스승님의 죽음을 통해 배운 게 좀 많거든.”

“무엇을 배우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간단해. 권력 앞에선 누구든 변한다는 것. 그 아서스도 처음엔 순한 양이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권력 앞에서 변하지 않을 존재가 있다면 그건 딱 하나뿐이라고 생각해.”

“그게 뭡니까?”

“더 이상 인간 세상에 욕심이 없는 신.”

“……맞는 말씀이시군요.”

인간 세상에 욕심이 없는 신.

그것은 헨리 자신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인간은 미물들의 먹이 다툼을 보며 보통은 관찰을 하지 미물들의 먹이를 탐내진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물은 짐승일 수도 있고 곤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분이 나뉘어 있다면 그 대상은 인간이 되기도 했다.

같은 이치였다.

권력이든 재화든 그것은 인간들이나 탐내는 것들이다.

신이 된 헨리는 미물들이 가진 부가적인 요소들을 탐내지 않는다.

헨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자신이 못다 이룬 미련에 관한 것들이었다.

로어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헨리에게 목례하며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축하드립니다. 인간들의 새로운 왕이 되신 것에 대해서.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저희 같은 우매한 인간들을 보살펴 주셔서.”

축하와 감사 인사 속에 로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헨리는 로어의 인사에 미소로 화답했다.

분위기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모두들 연구실의 피비린내는 잠시 잊은 듯했다.

하지만 회의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저 즐거움을 깨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흥을 깨는 것 같아 좀 미안한데, 그런 이유로 지금부터 각 팀에 어울리는 팀원들을 선별할 생각이야.”

“팀원은…… 대마법사님께서 정해 주시는 겁니까?”

“아니. 하루 정도 여유가 있어. 그러니 이 일은 전적으로 너희들에게 맡길게. 난 아직 너희들을 자세하겐 모르니까.”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저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밑에서 수학해 온 마법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근거도 없는 알은체를 하는 것보단 차라리 저들에게 팀원 선별을 맡기는 편이 낫다.

헨리는 연구 팀을 제외한 법 제정 팀과 식량 팀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대략적인 정보들을 넘겨주었다.

다행히 식량 팀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알려 주었을 때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리어 즐거워하는 표정들이었다.

적어도 식량 팀이 되면 이 피비린내 나는 비인륜적인 실험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로어가 물었다.

“어디 둘러볼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응. 연구실을 좀 둘러볼까 해. 아무래도 난 실험 팀을 맡을 것 같거든.”

“함께 가시죠. 저도 실험 팀에 잔류할 것 같습니다.”

“괜찮겠어?”

“다른 어린 마법사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보다야 낫습니다.”

역시 로어였다.

헨리는 기특한 눈빛으로 로어를 바라보았다.

로어는 스탠에게 팀 선별에 대한 일을 맡긴 후 헨리와 함께 연구실로 이동했다.

연구실은 누가 치웠는지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실 구석에 쌓인 혈액 큐브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큐브 더미를 본 헨리가 말했다.

“남은 실험체는 몇 명이나 되지?”

“잡아 둔 맹신자는 이제 둘 남았습니다.”

“하나만 데리고 와 봐.”

헨리의 명령에 로어는 직접 맹신자를 끌어 올렸다.

끌려 올라온 맹신자는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난 것 같은 아가씨였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동자와 더불어 얼마나 굶었는지 피골이 몹시 상접해 있었다.

-키아아아…….

허공에 박제된 맹신자는 헨리를 향해 침을 질질 흘리며 울음소리 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안타까웠다.

아서스만 아니었더라면 청춘을 만끽하며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허나 현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곧바로 실험을 시작하지. 제일 마지막에 진행된 실험 지표를 가지고 와.”

헨리의 눈빛에 사명감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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