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44화 (344/522)

# 344

희보 (2)

환호성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어떤 이는 아직 잠이 덜 깬가 싶어 볼을 꼬집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깨달았을 때, 병사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너 나 할 것 없이 정문을 개방시켜 마물의 숲으로 뛰어갔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말이다.

“정말이다! 정말이야!”

“내가 여길 맨몸으로 오게 되다니!”

“퉤! 이 빌어먹을 놈들! 그동안 우릴 잘도 괴롭혔겠다!”

모두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이셀란과 헨리가 저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셀란이 말했다.

“내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어.”

“축하드립니다, 그 일이 현실이 됐네요.”

“흐흐흐, 고맙다. 그나저나 이로써 한시름 덜게 됐군.”

“왜 한시름입니까?”

“당연히 한시름이지. 물론 마물들이 사라지고 마왕이 죽은 건 기쁜 일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차적인 문제일 뿐. 우리에겐 아직 저놈들이 남아 있잖아?”

이셀란은 말과 함께 엄지로 뒤편을 가리켜 보였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요새의 후문이 있었다.

아마도 맹신자들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긴 하죠. 아직 저조차도 저놈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뭐, 저놈들 때문에 이동에 문제가 있거나 하진 않잖아요?”

“이동에 문제가 없다니? 저놈들이 저렇게 길을 떡하니 막고 있는데 뭐가 문제가 없어?”

“음? 제가 누군지 그새 잊어버리셨어요?”

헨리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어보이자 이셀란이 그제야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자꾸 깜빡깜빡해.”

“노화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저놈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해서 고립되었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무슈와 텔레포트 게이트를 연결해 드릴 테니 한동안은 그렇게나마 이동하도록 하시죠.”

“고맙다, 헨리.”

새벽이 저물 동안, 헨리가 마냥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헨리는 새벽이 저무는 동안 엘라곤에게 바통을 넘겨받았다.

인간계의 시간으로는 잠깐이었지만 그 사이에 벌써 꽤 많은 숫자의 맹신자들이 요새로 몰려 있었다.

헨리는 그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며칠 만에 보는 놈들이었지만 여전히 징글징글했기 때문이다.

“고생했다, 엘라곤.”

-뀨뀨뀨!

엘라곤에겐 고작해야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헨리에겐 며칠이나 지난 터였다.

그래서 엘라곤에게 노고를 치하한 후 바통을 넘겨받았다.

헨리는 꽁꽁 얼어있는 맹신자 무더기들을 보았다.

엘라곤의 작품이었다.

꽁꽁 얼어있는 맹신자들을 바라보는 헨리의 눈빛이 매섭다.

맹신자.

이제 남은 문제는 저놈들뿐이었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부하 마법사들에게 해결책 논의를 지시하긴 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큰 성과를 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실질적으로 일을 해결해야 하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바통을 넘겨받은 헨리는 꽤 오랫동안 공을 들여 방향 감각을 상실케 하는 마법진을 그렸다.

이렇게 하면 주기적으로 맹신자들을 얼리지 않아도 요새로 접근하는 맹신자들을 막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으어어…….

-크어어…….

감각을 잃고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며 길을 헤매는 맹신자들.

지금으로썬 이 방법뿐이었다.

헨리는 날이 밝는 대로 후문에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겨 두고 나머지를 철수시켰다.

어차피 후문으로 접근하지 못할 놈들이었으나 ‘혹시나’를 위해서였다.

맹신자들을 막을 마법진을 그린 헨리는 이셀란에게 후문의 상황을 보여 준 후, 요새의 중심에 무슈와 연결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해 주었다.

게이트를 바라보는 모두의 눈빛에 기대가 잔뜩 어려 있었다.

그들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헨리와 게이트를 바라보는 이유.

그 이유는 바로 드디어 말린 육포나 시든 야채 따위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모든 병사들의 응원을 받으며 무슈로 연결된 게이트 앞에 이셀란과 헨리가 섰다.

그러고는 개선장군의 행진처럼 주위를 둘러싼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희망의 메시지들을 속삭여 주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럼 신선한 야채와 맛있는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말이다.

이윽고 게이트 안으로 두 사람이 올라서자 광명이 번쩍였다.

마물과의 전쟁이 종식되었고 더불어 마왕까지 죽었다는 희보를 안고서 말이다.

* * *

무슈의 시청 옆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모두들 갑작스런 게이트의 생성에 의아함을 표했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또 어느 마법사가 게이트를 열었겠거니 했으니까.

게이트가 생성된 직후 곧바로 빛이 번쩍이며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와 이셀란이었다.

이셀란은 게이트 바깥으로 걸어 나오며 마치 다른 나라로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한껏 들뜬 얼굴을 해 보였다.

그 얼굴을 본 헨리가 물었다.

“그리 좋으십니까?”

“아, 좋다마다! 너 같으면 안 좋겠냐, 몇십 년을 요새 안에서 썩었는데? 그나저나 무슈도 참 오랜만에 와 보는군. 옛날에 맞춤 무구 때문에 한번 온 적이 있긴 하지만 워낙 옛날이다 보니 뭐…….”

이셀란은 감회가 새로운지 어울리지 않게 주저리주저리 말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헨리는 그런 모습조차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늘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셀란의 신경이 완화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때였다.

“헨리?”

누군가 헨리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린 쪽에는 맥도웰이 있었다.

“오!”

“음?”

시선이 마주친 맥도웰과 이셀란.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하자마자 서로 놀란 얼굴을 하고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맥도웰?”

“이셀란?”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물론 많은 교분을 나누며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궁극기라는 비기를 가진 소드 마스터가 대륙에 몇 되지 않았으므로 최상급 소드 마스터끼리는 다들 알음알음 안면을 익혀 둔 것이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악수했다.

그런 다음 짐짓 반가운 얼굴로 안부를 교환했다.

“이거, 용사 이셀란 경이 아니십니까? 이곳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용사.

맥도웰은 이셀란을 용사라고 불렀다.

용사는 말 그대로 용맹한 사람을 일컫는 말.

하지만 보통은 삼대사선 같은 대륙의 재앙과 맞서 싸우는 이들을 부르는 호칭이기도 했다.

그러니 용사는 그야말로 명예로운 군인을 뜻하는 말이 된다..

맥도웰이 반가운 어투로 이셀란을 맞아 주자 이셀란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희보를 전하러 왔습니다, 맥도웰 경.”

“희보요?”

“예, 헨리에게 소식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 아서스 놈이 드디어 죽었다지요?”

“하하, 그렇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긴 하지만 골칫덩어리였던 놈이 죽었으니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희도 드디어 골칫덩어리였던 것들이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바로 이놈 덕분에 말이죠!”

이셀란이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헨리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이에 맥도웰이 저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았다.

이에 헨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히 말했다.

“방금 마왕을 죽이고 오는 길입니다.”

“……뭐?”

“마물들을 모두 토벌하고 1급 구역 끝에 있는 마계의 틈도 닫았습니다. 마왕은 덤으로 처리한 것이고요.”

“……어?”

헨리는 담담히 희보를 전했다.

그러나 헨리의 담담한 목소리와는 달리 맥도웰의 동공에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 정말이냐, 헨리?”

“그럼요, 그러니까 요새의 사령관이신 이셀란 경을 여기까지 모셔 온 게 아니겠습니까?”

“하, 하하하! 기쁜 소식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 이런 겹경사가 다 있나……!”

맥도웰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래서 이셀란을 안아 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이셀란도 그의 축하를 마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토닥이며 그간 서로가 겪었을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헨리가 말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더 이상 요새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져 요새의 처분 계획과 더불어 잠시 미뤄 두었던 문제들 때문에 사령관님을 모시고 무슈로 오게 됐습니다.”

“그렇지, 마물들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 요새를 유지할 이유가 없으니까. 한데 막상 요새를 해체하려니 좀 아쉽긴 하군. 그래도 제국군 내에서도 가장 명예로운 정예군들 중 하나였는데 말이지.”

“역시 맥도웰 경이십니다, 뭘 좀 아시는군요.”

칼리번 요새는 실무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막상 요새를 해체하려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해서 그 거대한 요새를 지속시킬 이유는 없었다.

요즘 같이 물자가 부족한 시국에 쓸데없는 자원의 낭비는 죄악이었으니까.

헨리가 물었다.

“불카누스 님은 어디 계신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아마 공방에 계실 거다.”

“한결같네요. 아마 곧 회의가 소집될 겁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다른 분들께 회장으로 모일 것을 전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 정도야 쉽지. 어차피 그놈들 보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그럼 이따 회장에서 보는 걸로 하지.”

아서스가 죽은 이후, 더 이상 칼을 잡을 이유가 사라졌으니 맥도웰과 같은 칼잡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 모두 하루하루 시간을 때우며 보내는 중이었다.

헨리는 그들의 한가함이 안타까웠지만 내심 나쁘게만 여기지는 않았다.

저들의 한가함이 곧 평화의 증거였으니까.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맹신자들에 대한 문제를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헨리는 이셀란을 데리고 불카누스의 공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깡- 깡-

공방에 가까워질수록 규칙적으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쇠 두드리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이셀란의 입꼬리가 한껏 치솟았다.

헨리가 불카누스를 부르려 하자 이셀란이 그것을 막아섰다.

장인의 모습을 좀 더 구경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한동안 불카누스의 망치질을 구경하던 끝에 인기척을 느낀 불카누스가 헨리를 발견하고 알은체를 했다.

“오! 자네 왔는가!”

일전에 헨리의 언질 덕분이었을까?

불카누스는 헨리에게 경어를 사용하지 않고 늘 그래 왔듯 편안하게 말을 건넸다.

이에 헨리도 반가움을 표한 후 그에게 이셀란을 소개해 주었다.

희보는 금방 전달되었다.

마물의 숲이 명을 다했다는 소식을 들은 불카누스는 맥도웰이 그랬던 것처럼 놀란 토끼 눈이 되어서 이셀란을 축하해 주었다.

“정말 잘됐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불카누스는 이셀란의 노고를 잘 알아주었다.

그래서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이셀란이 불카누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역시 장인들의 귀감이십니다. 이런 시국에도 늘 쇠를 두드리고 계시니 참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나저나 지금은 뭘 만들고 계셨습니까?”

“아, 별것 아닙니다. 놀면 뭐 하나 해서 요즘엔 농기구 개량에 한참 몰두하고 있습니다.”

“농기구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한동안은 손에 칼을 쥘 일이 없을 테니, 칼보다는 농기구를 만드는 게 현 시국에 걸맞지 않을까 해서요.”

불카누스의 말에 헨리와 이셀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불카누스였다.

이제 한동안은, 아니 어쩌면 꽤 오랫동안 칼 대신 쟁기를 잡아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나저나 요새에서 무슈까진 꽤 거리가 될 터인데 무슨 연유로 이곳까지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덕담이 끝나고 난 뒤 불카누스가 헨리에게 방문의 이유를 물었다.

이에 헨리가 답했다.

“우선은 꽤 오랫동안 요새에 식량 보급이 끊긴 터라 당장 병사들을 먹일 식사를 수급하기 위해 무슈로 온 것입니다.”

“식사라……. 하긴 외부의 보급으로 생활을 영위해 오던 곳이었을 터이니 누적된 기근으로 인한 병사들의 고통이 막심하겠어. 알겠네, 내 당장 저장고의 식량을 내주도록 하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무슈라고 해서 형편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무슈 또한 완전한 자급자족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체적인 식량 자급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긴 했다.

하지만 맹신자들이 대륙을 점거하며 피난민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막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졌다.

맹신자들도 문제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건 당장 사람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불카누스 님, 그래서 말인데 칼리번 요새로 보급해 주실 식량뿐만이 아니라 맹신자 문제를 비롯한 앞으로의 식량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말인가?”

“예, 그렇잖아도 오는 길에 맥도웰 경을 만나 회장에 소집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군. 알겠네. 그럼 나도 금방 정리하고 따라가도록 하지.”

식량 문제는 오래 전부터 헨리가 쭉 생각해 왔던 문제들 중 하나였다.

사람은 의식주에 기반해 살아가니까.

물론 의복이나 주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지만, 최소 하루 한 끼를 먹는다고 가정해도 식(食)의 문제는 마냥 방치해 둘 문제가 아니었다.

회장에는 곧 원정대 간부였던 이들을 포함해 낯익을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 무거울 이유가 없었다.

긴 싸움이 끝났으니 이들에게 남은 문제는 전쟁 이후의 회복에 관한 것들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분위기는 도리어 밝았다.

모두들 매일같이 희망을 노래했으니까.

또한 모두들 칼리번의 희보를 맥도웰에게 접한 덕에 이셀란이 회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해 주었다.

물론 헨리의 공을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윽고 회의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식량 문제를 비롯한 현 시국의 문제점 및 그에 대한 해결 방안들에 대해 여러분들께 몇 가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헨리의 새로운 임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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