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43화 (343/522)

# 343

희보 (1)

날이 밝았다.

그러나 날이 밝았다고 해서 헨리는 곧장 이셀란을 깨우지는 않았다.

그동안 이셀란이 못 다 잔 잠을 충분히 누린 후 자연스럽게 잠에서 깰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력한 수면 마법을 걸었어도 습관은 무서웠다.

이셀란은 12시간이나 지속되는 수면 마법을 깨고 정확히 7시간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이셀란은 뒤척이던 끝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대체 얼마만의 단잠인지, 이제 막 일어난 잠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미소도 잠시, 이셀란은 문득 자신의 단잠과 맞바꾼 요새의 야간 경계를 떠올렸다.

그것도 헨리가 자신하며 외쳤던 야간 경계.

그래서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악몽이라도 꾸셨나 봐요?”

눈앞에 헨리가 있었다.

“헨리?”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이셀란이 헨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헨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잠은 충분히 주무셨습니까?”

“어, 그래. 잠은 충분히 자긴 했는데……. 미안하다, 내 너무 피곤한 나머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야.”

이셀란은 정말로 헨리가 자신을 대신해 야간 경계에 나간 듯싶어 우선 사과부터 했다.

그러나 헨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가 일부러 재운 건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일부러 재우다니?”

“할 일이 있어서 요새 전체에 수면 마법을 시전했습니다. 아마 단잠을 잔 건 사령관님뿐만은 아닐 겁니다.”

“너, 그게 무슨……!”

“하하, 흥분하지 마세요, 사령관님. 푹 주무셔 놓고 지금 혈압 오르면 푹 자고 일어난 의미가 없잖아요?”

새벽이 저무는 동안 모든 일들을 해결했기에 헨리는 뺀질거리는 어투로 이셀란을 놀려 먹었다.

이에 이셀란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가 다시 원래 색으로 되돌아왔다.

이셀란이 말했다.

“후…… 그래, 다른 놈도 아니고 신씩이나 되는 놈이 감행한 일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 그래서 그 할 일이란 건 다 했고?”

“물론이죠. 덕분에 아주 여유롭게 일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이런 망할 놈이! 아침부터 장난질이야? 시끄럽고 얼른 말해!”

“푹 주무셔 놓고 성질은……. 그럼 나쁜 소식부터 말씀드릴게요. 오늘부로 칼리번 요새는 요새로써의 기능을 정지할 예정입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요새로써의 기능을 정지한다니?”

“말 그대롭니다. 더 이상 요새가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거든요.”

“이유가 사라지다니! 넌 요새 출신이라는 놈이 이 요새가 대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더냐!”

“너무 잘 알고 있죠. 근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겁니다. 나쁜 소식은 이렇고, 이제 좋은 소식을 말씀드릴게요. 숲의 마물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뭐?”

“사령관님께서 주무시는 동안 제가 모두 죽였습니다.”

“뭐, 뭐?”

헨리는 능청스러운 표정과 태연한 목소리로 대륙을 뒤흔들 만한 빅뉴스를 전했다.

숲에 있는 마물들을 모두 죽였다니?

그런 일은 마왕이 토벌되던 당시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물이란 놈들은 벌레처럼 끊임없이 생겨나는 족속들이었으니까.

하지만 헨리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미, 믿을 수 없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뭐?”

“가시죠.”

“가다니, 어딜?”

“못 믿겠다면서요? 사령관님께서 못 믿으시니 직접 보여 드리는 수밖에.”

헨리는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침대 위에 있던 이셀란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텅 빈 대지.

거무죽죽한 초목들.

숲의 7급 구역이었다.

“여, 여기가 마물의 숲?”

이셀란이 놀라움에 말을 더듬자 헨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셀란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교차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숲의 흙바닥에 무릎 꿇었다.

이셀란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만큼이나 숲의 흙바닥을 더듬는 두 손도 떨렸다.

숲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말로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이 이렇게나 반가운 것인지 이셀란은 처음 알았다.

“아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에 물기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이셀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신음했다.

두 손으로 숲의 거무죽죽한 흙을 쥐고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에서 아래로 흙을 떨구었다.

분명한 흙의 촉감.

이 모든 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셀란은 실성한 사람처럼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촉촉했으며 안구에도 습기가 차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목구멍에서 넘치려고 했다.

그러나 기쁨만큼이나 흘러넘치는 것은 다름 아닌 슬픔이었다.

마물의 숲.

이셀란이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이곳은 흡사 지옥의 아가리와도 같았다.

한낱 숲 주제에, 끊임없이 사람을 집어삼켜 그 피를 마셔 댔으니까.

삼켜진 피는 차가운 공기에 식어 흙을 검게 만들었고, 마물들이 먹고 남긴 시체들은 지독한 악취가 되어 요새의 병사들을 벌벌 떨게 했다.

선임, 동기, 후임.

얼마나 많은 이셀란의 동료들이 저 괴물 아가리 같은 마물의 숲에서 죽어 나갔는지 모른다.

같은 기수에 살아남아 아직까지 요새를 지키는 건 오직 이셀란뿐이었다.

살아남은 자.

그것은 축복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목숨은 건졌지만 죽은 이들의 피와 눈물을 등에 업고 그들의 비탄과 원한을 삼키며 강제로 성장해 나갔다.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발버둥 치기 위해서.

그렇기에 숲에서의 생존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살아남은 병사들 중 많은 수의 병사들이 정신병이 생겨 환청을 듣고 헛것을 보았다.

그런 병사들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해 숲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퇴역하는 군인들은 요새에서 몇 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이셀란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 지긋지긋한 지옥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하자, 그간 억지로 외면했던 감성이 물밀 듯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조용히 흐느끼는 이셀란을 보며 헨리는 잠시 침묵했다.

이셀란.

숲의 악귀를 비롯해 무수한 별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헨리는 슬픔에 젖은 이셀란의 뒤를 잠시간 바라보았다.

비록 자신보단 어렸지만 그래도 이셀란 정도면 숲의 고통을 대부분 겪어 본 세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이셀란이 느끼는 슬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더 일찍 끝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셀란.’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헨리는 인류를 대표하는 대마법사였고 그렇기에 그에 걸맞은 사명감 또한 가지고 있다.

헨리는 이셀란이 충분히 슬픔을 쏟아 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이셀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눈이 붉다.

눈물을 훔쳐 낸 이셀란이 헨리에게 말했다.

“고맙다, 헨리.”

짧은 감사 인사였지만 그 안에 함축된 진심의 깊이는 그 누구보다도 깊었다.

그래서 헨리도 미소로 화답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사령관님.”

“……아냐, 너에게 이럴 의무는 없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긋지긋한 전쟁의 종지부를 찍어 주어 고맙다. 근데…….”

“마왕이 신경 쓰이시는 거죠?”

“그래, 숲의 마물들을 전부 죽였다고는 해도 마왕이 강림하면 모두 허사거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왕도 죽였습니다.”

“……뭐?”

“새벽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전 요새가 잠든 사이 숲의 마물들을 토벌하고 강림하려던 마왕을 무찔렀으며 1급 구역 끝에 열려 있는 마계의 틈까지 닫는데 모두 성공했습니다.”

헨리는 장난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헨리 스스로가 행한 일들 전부를 이셀란에게 말해 주었다.

어차피 밝혀질 사실들이다.

그러니 괜히 공적을 숨겨 봤자 뒤만 귀찮아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헨리의 말을 들은 이셀란은 선 채로 굳어 버렸다.

이셀란의 두 눈이 껌뻑거렸다.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

그러나 그 눈빛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어 갔다.

이미 씨가 마른 숲의 마물들을 보았다.

그랬기에 헨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헨리는 다른 존재도 아닌 무려 ‘신’이었으니까.

“자, 잠깐……!”

놀랍고도 아찔한 사실들의 나열에 이셀란은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짚을 데가 없어 헨리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마물 전부를 토벌한 것도 모자라서 마왕을 무찌르고 대륙의 재앙으로 남아 있던 마계의 틈까지 닫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이다.

인지부조화가 온 듯 두통까지 일었다.

“헤, 헨리 넌 대체……!”

이는 두통에 머리를 붙잡고 이셀란은 헨리를 올려다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는 헨리.

그러나 이젠 그런 헨리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당황한 표정의 이셀란에게 헨리가 말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도록 하고, 우선은 요새로 돌아가 승전보부터 올려야겠죠?”

“그, 그래! 그게 좋겠다!”

그 냉철하던 이셀란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심히 당황했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감정이 어떻든 간에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서 돌아가자고! 어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셀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 있었다.

* * *

요새는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병사들 중 야간 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묘하게 조용한 숲의 이상 징후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요새에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숲의 침묵은 최근 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니까.

경계를 서던 병사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설마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뭐 이런 건 아니겠지?”

“개같이 떠들던 놈들이 조용하니까 오히려 더 불안하네, 제길!”

그만큼 요새는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데 그 순간, 정문의 뒤편으로부터, 그러니까 요새 내부로부터 고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

들려오는 고함은 한 명이 낸 목소리가 아니었다.

떼거리로 뭉쳐 만들어 낸 아우성이었다.

“와아아아!”

“뭐야? 무슨 일이야?”

아침 댓바람부터 대체 무슨 일일까? 드디어 병사들이 미쳐 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숲의 침묵만큼이나 보기 드문 현상에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더욱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함이 가까워질수록 경비병들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마왕을 무찔렀다아아!”

“……뭐?”

환청 따위가 아니었다.

“마왕이 죽었다!”

“마계의 틈이 닫혔다!”

“전쟁이 끝났다아아!”

저것은 진짜 육성이었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마왕이 죽었다니?”

“틈이 닫혔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환호성은 이내 곧 성벽 위의 병사들을 덮쳤다.

소식을 물고 온 요새의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성벽 위로 올라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희보를 전했다.

그리고 그렇게 덮쳐진 희보는 이내 곧 성벽 위에 새로운 환호성을 범람하게 만들었다.

“우와아아아!”

너나 할 것 없이 내지르는 환호성.

소식을 전해들은 병사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율과 기쁨.

그것은 얼핏 보면 광기에 가까운 쾌락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병사들은 모두들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대륙의 오랜 전쟁들 중 하나가 마침내 영원한 종식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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