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39화 (339/522)

# 339

새로운 마왕 (1)

사실 가가가 해 준 이야기 중에는 가니스엘이 천계에 복수를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헨리는 알 수 있었다.

천계에서 추방된 천족이 이를 악물고 힘을 기르고 있다는 뜻은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헨리는 예상하기 쉬운 뻔한 목표에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다루기 쉽겠어.’

가니스엘이 가가와 같은 최하급 마족이었다면 단순히 힘으로 억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가니스엘은 무려 마계 서열 2위에 해당하는 최상위 포식자에 해당하는 마족이었다.

가가와는 쓸모가 달랐다.

그러니 무턱대고 힘으로 억누르는 것보단 적당히 회유하여 스스로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헨리의 제안에 가니스엘의 동공이 옅게 떨렸다.

이 인간은 지금 자신이 내뱉는 말이 대체 어떤 뜻인지나 알고서 지껄이는 걸까?

그러나 가니스엘은 헨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복수를 도와주겠다며 협업을 제안하는 헨리의 눈동자에서 확고한 욕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날개를 여섯 짝이나 뜯어낸 놈이다. 힘으로 억누르려면 충분히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점이 가니스엘에게 신뢰를 주었다.

가니스엘은 곧 스스로의 힘으로 육신을 지탱해 세웠다.

힘의 원천이라 불리는 날개가 여섯 짝이나 뜯겼지만, 아직 두 짝이 남았기에 완전히 힘을 잃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똑바로 선 가니스엘은 말없이 헨리의 두 눈을 응시했다.

헨리 또한 그 시선을 받아 주었다.

기 싸움 같은 게 아니었다.

살기 한 점 없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건 상대의 역량이나 진심의 깊이를 확인하는 행위란 걸 아니까.

두 사람은 한동안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가니스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정을 먼저 들어 보도록 하지.”

“탁월한 선택이야.”

누그러진 태도에, 헨리가 입꼬리를 올리며 악수를 청했다.

가니스엘은 헨리가 내민 손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마지못한다는 듯 붙잡았다.

손이 두어 차례 흔들렸고 헨리는 곧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헨리의 말이 끝나 갈 때쯤, 가니스엘이 말했다.

“마계의 틈?”

“일단 우리 쪽에선 그걸 마계의 틈이라고 불러. 아무튼, 그 틈을 통해 브릴린테가 날 납치했고, 난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 틈이 안 보인단 말이지.”

마계의 틈은 헨리가 붙인 이름이다.

그렇기에 마계에선 그 틈을 무어라 부르는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은 마계의 틈이라고 부르되 자세한 부연 설명을 통해 그게 어떤 것인지 알려 주었다.

한참이나 설명을 듣던 끝에 가니스엘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아마도 너는 차원재해에 대해 말하는 것 같군.”

“차원재해?”

“그래, 인간계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마계에선 이따금씩 일어나는 재해들 중 하나다. 이를테면 갑자기 생성된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도 차원재해들 중 하나다.”

“재해라고? 아냐, 재해라고 보기엔 브릴린테는 확실하게 날 노렸어.”

헨리는 가니스엘의 말을 부정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재해라기엔 브릴린테의 의도는 납치가 분명했다.

또한 가니스엘의 말대로 마계의 틈이 차원재해의 한 종류라면 브릴린테는 대체 어떻게 재해를 뚫고 자신을 납치할 수 있단 말인가?

헨리가 합리적인 의심을 내놓자 가니스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능하다. 브릴린테는 마신이 점지해 준 차기 마왕 후보였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 넌 잘 모르겠지만 마신이 점지해 준 마왕 후보는 생각보다 많은 권능들을 갖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차원을 다룰 수 있는 힘. 내가 마왕이 되려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차원을 다루는 힘.

맞는 말이었다.

마계에서 천계로 진출하기 위해선 차원을 넘어갈 만한 힘이 필요했으니까.

가니스엘의 설명에 헨리는 그제야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 헨리는 곧장 생각 정리에 들어갔다.

“그럼 마왕 후보가 되면 차원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건가?”

“적어도 여태까진 그랬다. 인간계로 진출해야 했으니까.”

“그래? 그렇단 말이지…….”

헨리의 마법이 마계의 틈에 통하지 않았던 이유는 차원 마법 자체가 헨리의 실력을 훨씬 웃도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원을 다루는 마법은 헨리에게 있어 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굳이 마법의 수준을 높이지 않아도 차원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명쾌하게 결론이 나자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정됐네. 내가 새로운 마왕 후보가 되면 차원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렇……긴 하다.”

“왜, 내가 마왕이 된다니 아쉬워? 하지만 네 목적은 엄밀히 따지자면 천계에 대한 복수지, 마왕이 되는 게 아니잖아?”

헨리는 기분대로 내뱉지 않았다.

경쾌한 어조긴 했어도 헨리가 직접 마왕이 되려는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날개를 뜯은 게 영향이 좀 컸던 모양이네. 이 정도로 힘이 줄어들 줄이야.’

가니스엘의 날개를 잘라 낸 직후, 헨리는 눈에 띄게 줄어든 가니스엘의 힘을 느꼈다.

그래서 가니스엘을 마왕 후보로 만들 바엔 차라리 자신이 직접 마왕이 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차원의 힘.

원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차원의 힘’이란 걸 마왕이 되는 것만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헨리가 직접 마왕이 될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래야 마계의 틈도 닫을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헨리는 마계의 틈을 닫는 데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가 마계에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차원재해를 통해 어떤 마물들이 마물의 숲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을지 몰랐다.

“……알겠다.”

가니스엘 또한 헨리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헨리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날개를 여섯 개나 잃은 상황에서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새로운 마왕이 된다는 것은 지금으로썬 불가능에 가까운 일.

차라리 조력자를 통해 자신의 염원을 이루는 편이 간접적이긴 해도 훨씬 나았다.

헨리가 말했다.

“근데 그 마왕 후보라는 거…… 아니지, 마신이란 놈은 어디서 만나 볼 수 있는 거지?”

“그건 왜 묻는 거지?”

“생각을 해 봐. 난 차기 마왕 후보였던 브릴린테를 죽였고, 그다음 후보였던 너까지 꺾었어. 근데 그 마왕 후보란 게 마신이 점지해 주는 거라면 지금 당장 내가 후보로 점지되어야 하는 게 정상아냐?”

“그렇군. 마계의 순리대로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마신의 점지라는 건 정확히 말하자면 마신이 직접 후보를 점지해 주는 게 아니다.”

“그럼?”

“마신의 대리자가 마신의 신탁을 대신 전달해 준다. 마신의 점지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대리자? 마신을 섬기는 단체라도 있다는 거야?”

“교단이 아니다. 마신의 입이 되어 주는 대리자가 있다. 우린 그를 ‘라니아’라고 부른다.”

“라니아? 그럼 더 고민할 것도 없겠네. 당장 라니아가 있는 곳으로 가자.”

“아니, 거긴 갈 수 없다.”

“왜?”

“라니아는 마신의 하나뿐인 대리자. 그렇기 때문에 마신의 사도들이 라니아를 지키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마왕보다 더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한다.”

“난 또 뭐라고……. 그러니까 네 말은 사도들이 지키고 있으니 함부로 라니아를 만날 수 없다는 것 아냐?”

“그렇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리고 소문은 소문일 뿐. 다들 그 소문에 겁먹어서 진위도 확인해 보지 않았을 게 뻔해.”

사도.

사도들이라면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물론 헨리가 겪은 사도들은 아서스의 개들이었지만 어찌 됐든 야누스의 힘을 이어받은 자들이었으니 신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는 사도들을 모두 격퇴시킨 이력이 있었다.

또한 마신 또한 어찌 보면 신계의 주민들 중 한 명일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라는 호칭이 붙은 거겠지.’

그래서 헨리는 더더욱 마신이 두렵지 않았다.

‘마신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신력이라면 나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

“음?”

가가였다.

가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때쯤, 곁에서 잠자코 눈치를 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가가가 말했다.

-저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도망도 상대를 봐 가면서 치는 것이다.

그런데 헨리와 가니스엘을 상대로 도망치는 건 솔직히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

그래서 가가는 얌전히 자신의 처분을 기다렸다.

부디 죽음만큼은 아니길 기도하면서 말이다.

헨리는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가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사실 가니스엘을 확보한 이상 가가는 더 이상 쓸모없는 짐짝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전에 맡았던 수상한 냄새가 마음에 걸렸다.

물론 그 수상한 냄새가 헨리의 존위를 위협할 것 같진 않았지만 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좀 더 곁에 두고 괴롭히기로 했다.

기분이 찝찝했으니까.

“어쩌긴? 한번 길잡이는 영원한 길잡이지. 우린 지금부터 라니아를 만나러 간다. 너, 라니아가 어디 있는지 아냐?”

-알…… 고는 있습니다.

라니아가 있는 곳.

그곳은 마계에서도 금역으로 지정된 곳이었기에 마계의 주민들이라면 모두들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금역들의 위치를 알아야 혹시라도 실수로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테니까.

금역의 위치를 안다는 말에 헨리가 빙그레 웃었다.

“잘됐네. 그럼 어서 길 안내 시작해.”

-……알겠습니다.

거부권은 없다.

모든 게 다 가가가 자초한 일이었으니까.

이동이 시작됐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8등급의 헤이스트가 사용되었다.

세 사람은 광풍을 일으키며 이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역으로 불리는 라니아의 땅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여깁니다.

금역의 경계선에 도착하자마자 가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고작해야 땅덩어리에 불과한 영역이었지만 가가는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란 걸.

그리고 그러한 위협을 감지한 건 가니스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날개 잃은 타천사는 서열 2위 시절일 때보다 확연하게 소극적이 됐다.

가니스엘이 짐짓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모한 짓이다.”

“그건 대봐야 아는 일이고.”

두 마족의 만류에도 기어코 헨리는 금역 안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금역 안에 발을 들였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헨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두 마족에게 말했다.

“거 봐. 멀쩡하잖아.”

그런데 그때였다.

딱딱딱딱…….

무엇인가가 주기적으로 부딪치는 소리.

그것은 이명처럼 아주 조그맣게 울려 퍼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다.

낯선 소리에 헨리는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소리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땅 밑에서 거대한 손아귀가 튀어나와 헨리를 붙잡았다.

콰득!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강력한 악력.

헨리의 발목을 감싸 쥔 것은 다름 아닌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손아귀였다.

떨그럭, 떨그럭, 떨그럭……!

이명처럼 들리던 소리는 어느새 선명하게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축이 뒤흔들리더니 이내 새하얀 투구를 쓴 것들이 하나둘씩 땅속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 나타났다!

새하얀 투구.

그것은 새하얀 투구가 아니었다.

투구처럼 보이는 새하얀 두개골이었다.

뼈째로 살아 움직이는 녀석들.

땅속에서 솟아오른 놈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스켈레톤’들이었다.

솟아오르는 스켈레톤들을 보며 헨리가 말했다.

“이야, 손님 대접 한번 확실하네. 한 발자국 들이자마자 이렇게 많이 튀어나온단 말이야?”

헨리가 손님 접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 사이에 수백, 수천의 해골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뼈로 만들어진 병장기들을 손에 쥐고서 말이다.

이에 헨리는 금역에 빼곡히 들어찬 해골병사들을 뒤로 한 채 가가와 가니스엘에게 말했다.

“잘 봐.”

짤막한 말과 함께 헨리는 팔을 들어 귀 옆에 붙였다.

그런 다음 주먹을 쥐고서 망치질을 하듯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그 순간.

쾅-!

헨리의 눈앞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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