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
지옥의 구원자 (5)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뻗친 손은 헨리를 우악스럽게 거머쥔 후 순식간에 마계의 틈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헨리의 시야에 어둠이 가득했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곧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헨리는 밝아진 시야에 조심스럽게 부서진 것들을 확인했다.
부서진 것은 헨리가 무의식적으로 산개한 매직 실드의 잔해들이었다.
신변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헨리는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주위의 풍경을 인지한 순간, 헨리는 문득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여긴……!’
보랏빛 은하수가 우주를 닮은 검을 하늘을 수놓고 있으며 주위는 노을이 지듯 붉디붉었다.
그림자를 닮은 바위들은 벼락의 잔해처럼 멋대로 뻗쳐 있었고, 공기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금방이라도 상대를 말려 죽일 법한 독소들로 가득했다.
꿈에서도 보지 못한 이 신비로운 풍경들은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랬다.
마계.
이곳은 마계였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곳이었지만, 헨리는 이곳이 본능적으로 마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계라니……!”
헨리의 입에서 감탄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헨리는 어쩌면 자신이 인류 최초로 마계에 발을 들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감탄도 잠시,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헨리는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에 본능적으로 매직 실드를 산개했다.
콰아아앙!
굉장한 파괴력과 더불어, 고막을 찢어 놓을 법한 진동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지독한 두통이 일었다.
헨리를 덮친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주먹이었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크기의 주먹.
헨리는 본능적으로 저 주먹이 자신을 이곳으로 납치한 손아귀의 주먹임을 알아차렸다.
-크라아아아악!
들짐승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모골이 송연해지는 울음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풍압이 일었다.
풍압으로 인해 헨리의 옷깃이 펄럭이고 머리가 휘날렸으며 사방에 퍼져 있던 흙먼지들이 울음소리에 휘말려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착검.”
헨리는 콜소드를 소환했다.
그런 다음 금방이라도 자신의 매직 실드를 부술 듯이 짓누르는 주먹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고속으로 휘둘리는 검.
헨리는 콜소드에 마력과 신력을 함께 내뿜었다.
그러자 황금빛 이채가 무지개를 닮은 기다란 궤적을 그렸다.
궤적의 끝에는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의 그것처럼 아름다운 잔해들을 토해 내고 있었다.
검이 휘둘린 직후, 거인의 주먹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헨리의 검격이 먹혀들었다는 뜻이었다.
주먹의 주인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주먹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헨리의 시야를 덮쳤던 그림자가 사라지며, 헨리는 그제야 자신을 이곳에 납치해 온 납치범의 얼굴을 볼 기회가 생겼다.
헨리의 시선이 위로 향해졌다.
그러나 헨리는 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슨 놈의 키가……!”
거대하다.
그것 이외엔 어떠한 표현도 용납할 수 없었다.
놈의 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키가 4~5미터에 육박하는 오우거나 트롤 같은 마물들은 놈에게 있어 고작해야 어린아이 수준일 정도였다.
또한 놈이 가진 육체가 너무나도 강건하다 보니 튀어나온 근육이 너무 많아 얼굴이 가려져 있었다.
“플라이.”
헨리는 즉시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놈과 시선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끝없이 비상했다.
헨리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놈과 시선의 높이가 같아졌지만 헨리는 놈의 눈을 볼 수 없었다.
놈은 석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두건을 착용하고 있었다.
아니, 두건이라기엔 재질이 딱딱했으니, 오히려 투구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놈은 눈을 가리고 있었고 떠돌이 방랑자들의 머리처럼 제멋대로 자란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산발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부우웅!
거대한 소리를 내며, 반대편에서 손바닥이 다가왔다.
놈의 손바닥이었다.
헨리는 플라이 마법을 응용해 고속 비행을 시전했다.
그러나 놈은 끊임없이 팔을 휘둘렀다.
‘제기랄, 이래선 꼭 파리나 모기가 된 것 같잖아!’
팔을 휘저으며 헨리를 쫓는 모양새에 헨리는 그만 기분이 더러워졌다.
모양새가 꼭 여름 모기를 쫓는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기분이 좀 더러울 뿐이었지 충분히 회피할 만한 공격들이었다.
오히려 익숙해지니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헨리는 고속으로 비행하는 와중에 고개를 내저었다.
‘뻔하고 지겨워.’
파괴력 있고 빠른 휘두름이었지만 패턴이 뻔하고 단조로웠다.
회피 끝에 헨리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놈보다 훨씬 더 높이 비상했다.
그런 다음 놈의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비상한 후, 위에서 놈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커다랗게 느껴지던 놈이 조막만 하게 보였다.
헨리는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마음 같아선 화끈하게 마법 포격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자신을 모기 취급한 녀석에게 마법은 좀 어울리지 않는 복수처럼 느껴져 검을 선택했다.
헨리가 겨눔세를 취한 후 정신을 집중하자 칼끝으로부터 황금빛 이채가 뿜어졌다.
화려하게 뿜어진 이채는 곧 정돈되었고 정돈된 이채는 그 끝을 모르고 무한하게 뿜어졌다.
마치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평선을 떠올리게 했다.
그 지평선은 헨리의 신력이 휘감겨진 오러 블레이드였다.
헨리는 그렇게 뽑아낸 오러 블레이드를 치켜들며 나지막이 외쳤다.
“은하수 내리기.”
후웅!
마법 포격을 포기한 시점에서 헨리의 성을 채울 만한 일격필살.
그것은 반의 결전기로 잘 알려진 은하수 내리기였다.
헨리의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순식간에 반원을 그리며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무게가 없는 에너지의 집합체였기에 기나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검흔이 궤적을 그리며 반달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반원을 그리며 반대편으로 오러 블레이드가 회수되었을 땐 그 힘이 다하여 그믐달처럼 비춰졌다.
검을 거둔 헨리는 완벽하게 거인을 베었다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쿠웅-!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거인이 세로로 쪼개지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거대한 육신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노을빛으로 물든 붉은 지면에 거인의 육체가 쓰러졌고, 쓰러진 육체 사이로 검은 피가 흘러나와 새로운 강이 만들어졌다.
“별것도 아닌 놈이.”
깔끔한 한 방.
나름대로 화려하다고 생각되는 마계 데뷔전이었다.
헨리는 검을 역소환시킨 후 쓰러진 놈의 육체로 내려섰다.
“그나저나 마계라니…… 근데 정말로 이놈이 나를 이곳으로 납치한 놈이라고?”
마계의 틈에서 임팩트 있게 등장한 놈치곤 너무 허망하게 죽어 버려서 더더욱 믿기가 힘들었다.
헨리는 혀를 차며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죽은 놈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이질적이지만 아름답기 짝이 없는 마계의 풍경을 얼마 동안 감상했다.
풍경의 감상을 끝낸 헨리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번에도 난 마계의 틈을 봉하는 것에 실패했다. 더불어 숲의 마물들이 폭주하는 이유도 아직 찾지 못했고. 1, 2급 구역이 텅 빈 이유조차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마계로 납치까지 됐다.’
헨리는 자신이 겪은 일들에 대한 결과들을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 나열된 결과들을 확인한 후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겪은 사건 사고들은 많은데 이렇다 할 쓸 만한 정보들은 조금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어디 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부분이 없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마스터.
클레버가 먼저 헨리에게 말을 건 것은. 이에 헨리가 대꾸했다.
“무슨 일이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를 소환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클레버는 정중하게 헨리에게 소환을 요청했다.
이에 헨리는 흔쾌히 부탁을 수락해 주었다.
클레버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헨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된 클레버는 먼저 헨리에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환해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올렸다.
헨리가 말했다.
“인사는 됐고,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네가 먼저 소환을 다 요청하고.”
-마스터께서 꽤 곤란해하시는 것 같아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소환을 부탁드렸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마계 출신이었지?”
-그렇습니다.
“잘됐네. 근데 마계 출신이기 이전에 마계에서 떠나온 지도 꽤 됐으면서 내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지?”
-마스터께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정보?”
-예, 저에게 10분만 시간을 주신다면 마스터께서 만족하실 만한 정보들을 수집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10분? 좋아, 뭐. 10분 정도야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지.”
-감사합니다, 마스터.
잠시 시간을 달라며 정중하게 부탁을 올린 클레버는 헨리에게 허락을 받자마자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 다시 헨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녀왔습니다, 마스터.
“딱 10분 걸렸네. 그럼 이제 어디 한번 말해 봐. 대체 무슨 정보를 어떻게 수집해 왔다는 거야?”
헨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클레버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그러자 클레버가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저는, 마스터께서 주신 10분의 시간 동안 인근의 마물들을 사냥했습니다.
“사냥?”
-예, 제가 가진 능력들 중에는 ‘포식’이라는 힘이 있는데 포식이 가진 능력들 중에는 상대가 가진 기억까지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
헨리는 그제야 클레버가 자신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는지 알 수 있었다.
심드렁했던 헨리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헨리의 표정을 본 클레버가 헨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말을 잇기 시작했다.
-먼저, 좀 전에 마스터께서 쓰러뜨린 저 괴물은, 인근 마물들의 기억에 따르면 마신이 점지한 새로운 마왕 후보라고 합니다.
클레버는 자신이 수집해 온 기억들을 토대로 헨리가 가장 궁금해할 만한 사실에 대해 먼저 답변해 주었다.
그런데 클레버의 설명을 들은 헨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마왕이라니?
덩치만 무식하게 컸지, 단칼에 나가떨어진 저런 놈이 무려 마신이 점지한 마왕 후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헨리는 좀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클레버와 시선을 맞추었다.
헨리의 표정을 본 클레버가 말을 이었다.
-물론 제가 수집해 온 정보들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스터께서 제게 주신 10분의 시간 동안, 저는 총 열두 종류의 마물들을 포식하는데 성공했고, 그중에서 가장 공통되는 정보들을 종합해 마스터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열두 종류의 마물이 가진 기억.
그 정도 숫자의 마물들이라면 꽤나 신빙성 있는 근거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래서 더더욱 믿기가 힘들었다.
“……그럼 내가 지금 10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는 마신이 점지해 준 마왕을 단칼에 때려잡은 거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하?”
-마왕 후보로 점지된 저 녀석의 이름은 ‘브릴린테’로, 원랜 저렇게까지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턴가 갑작스레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더니 주위의 마족과 마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말이야?”
-예,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후론 오직 파괴와 포식만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그럼 혹시…… 잡아먹힌 놈들 중에 나처럼 마계의 틈을 통해 납치되어 온 놈들도 있나?”
-틈을 통해서라면…….
헨리의 질문에 클레버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잡아먹은 마물들의 기억을 한참이나 검토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제발 아니길 바랐던 사실들이 거짓말처럼 딱딱 맞아떨어졌다.
‘설마 브릴린테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건 내가 메시아를 죽였기 때문인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헨리는 이 사실을 클레버에게 물었지만 애석하게도 잡아먹은 마물들의 기억 중에는 이것과 관련된 기억이 없어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그 대답을 듣지 못했어도 헨리는 맞지 않던 퍼즐들이 한방에 모두 끼워 맞춰진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맞아떨어졌다.
메시아가 죽었음에도 마물들이 여전히 폭주하던 이유, 그리고 1급과 2급 구역이 텅 비었던 이유, 마지막으로 마계에서 끊임없이 폭식하며 행패를 부리던 브릴린테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마왕 후보까지…….
이 모든 것들을 이런 식으로 해결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헨리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종지부를 찍게 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온 헨리가 클레버에게 말했다.
“그래 수고했다, 클레버. 그럼 이제…… 돌아가야겠지?”
남은 목표는 귀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