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33화 (333/522)

# 333

지옥의 구원자 (4)

“뭐가 있긴 있나 보네.”

좀 더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좀 무안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신경을 좀 썼다고 생각한 선물이었으니까.

물론 그것들이 헨리가 가진 총력은 아니었다.

헨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인 후 1급 구역으로 향하는 경계선에 발을 걸치는 그 순간.

욱신!

“오?”

고작해야 발의 절반이었다.

고작해야 발의 절반 정도가 경계선에 걸쳐졌을 뿐인데도 헨리는 걸친 발끝으로부터 굉장히 강력한 물리적인 압박감을 느꼈다.

이에 헨리는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느끼는 1급 구역 특유의 압박감이 몹시 반가웠기 때문이다.

헨리는 곧 안개 같은 흐릿한 지역, 1급 구역 속에 몸뚱이 전체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발끝에서 느껴졌던 굉장한 압박감이 이젠 헨리의 전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야가 바뀌었다.

공기 중에 가득 찬 독소 때문에 보랏빛 안개가 둘러진 듯한 시야가 이제는 캄캄한 밤처럼 어두워졌다.

익숙했다.

이러한 현상은 1급 구역 특유의 특징들 중 하나였으니까.

헨리는 경계선을 통과하자마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태양도 달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우주와 같은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제대로 들어왔네.’

헨리는 자신의 두 눈에 마법을 시전했다.

짙은 어둠과도 같은 1급 구역 속을 제대로 헤쳐 나가기 위해선 단순히 시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헨리는 과거에 마왕을 토벌했을 때 사용했던 마법을 다시금 사용했다.

수십 년 전에 딱 한 번 사용했던 뒤로 그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마법이지만, 헨리는 여전히 그 마법의 주문식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딱!

헨리가 손가락을 튀기자 마법이 발동되며 캄캄했던 시야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지자마자 헨리는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붉은 호수와 마주할 수 있었다.

‘호수?’

호수 외엔 달리 표현할 만한 단어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붉은 호수는 사실 붉은색이라기 보단 먹색에 가까운 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헨리는 그것이 곧 호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호수가 아닌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피 웅덩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2급 구역에서부터 이어진 핏물이 눈앞의 호수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그것이 호수가 아닌 피임을 알아채자마자 지독한 악취가 느껴지는 듯 했다.

‘이만한 핏물이라니…… 여긴 1급 구역인데?’

1급 구역은 2급 구역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 차이들 중에는 제아무리 먹이 사슬의 정점에 달한 최상위권의 마물이라 할지라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곳은 오로지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믿는 나름대로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마족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이곳의 마족들은 대부분 새로운 마왕이 강림하는 순간, 사천왕이나 대장군 같은 마왕을 보좌하는 거물급 수뇌부들이 결정되는 구역이기도 했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악취에, 헨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앞의 핏빛 호수 이외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2급 구역처럼 말이다.

헨리는 의아함을 느꼈다.

이곳마저 2급 구역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체 헨리의 파괴 전차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부글부글부글…….

눈앞의 피 웅덩이가 갑작스레 들끓기 시작했다.

끓기 시작한 호수는 곧 뿌연 거품들을 만들어 냈고 만개한 거품 속에서 조그마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소용돌이는 곧 비슷한 색을 지녔지만 핏물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무엇인가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검고 끈적이는 것, 그리고 지독한 악취가 나는 것.

마치 오물을 연상케 하는 그것을 지켜보던 헨리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검은 양수?’

검은 양수.

새로운 마왕의 출현을 알리는 최악의 징조들 중 하나.

그런 검은 양수가 지금 핏빛 호수 속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아니, 갑자기 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 뿜어지기 시작한 검은 양수는 곧 호수 전체를 장악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호수는 더 이상 피 웅덩이가 아닌 검은 양수로 이루어진 호수가 되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이 땅에서 호수가 물결치고 있었다.

검은 양수가 가진 특유의 탄력성이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었다.

헨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더욱더 악취가 심해진 호수를 보고 생각했다.

‘검은 양수는 마왕의 출현을 알리는 최악의 징조들 중 하나다. 한데 메시아가 죽었으니 새로운 마왕이 나타날 리가 없을 텐데?’

마신과 교감하는 메시아가 죽었으니 적어도 몇 년간 새로운 마왕의 탄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양수는 보란 듯이 마왕의 출현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에 헨리는 더 이상 꾸물대지 않기로 했다.

‘마계의 틈을 찾아야 한다.’

1급 구역의 끝에 존재하는 마계의 틈.

마계의 틈은 말 그대로 인간계와 마계 사이에 연결된 차원의 틈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옛날,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마왕 또한 그 빌어먹을 마계의 틈에서 기어 나왔다.

헨리는 혈투 끝에 마왕을 쓰러뜨렸지만 마계의 틈만큼은 닫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간계 마법의 극의를 달리는 차원계의 마법은 8서클 대마법사의 지식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물론 틈을 닫으려는 시도는 했었다.

틈을 닫기 위한 전용 마법까지 개발을 마친 상태였고.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마법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헨리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이쯤이었는데?’

수십 년만의 방문이었지만,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일들 중 하나였으니 위치만큼은 똑똑히 기억했다.

하지만 마계의 틈이 있다고 생각한 곳에 다다랐으나 헨리는 마계의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없어졌다고?’

이상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마계의 틈이 사라졌다면 진즉에 마물의 숲 또한 사라졌을 테니까.

마계의 틈은 마물의 숲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종의 생태계 장치였다.

하지만 몇 번이나 위치를 확인해 보았지만 마계의 틈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면 골치 아파지는데…….’

마계의 틈을 확인하러 왔는데 정작 마계의 틈이 사라졌다면 그것만큼 큰 문제도 없었다.

헨리는 추적을 멈추고 잠시 자리에 서서 추리를 시작했다.

‘있어야 할 곳에 마계의 틈이 없다. 하지만 검은 양수는 샘솟고 있고 마물들 또한 여태껏 유지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보지 못한 장소로 틈의 위치가 옮겨졌다는 것 이외엔 설명할 길이 없는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갔다.

헨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계의 틈이 있을 법한 유력한 장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헨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이젠 한 방울의 핏물도 보이지 않는 검은 양수로 가득 채워진 호수였다.

“여기밖에 없지.”

건방진 초대에 응하기 위해 화끈하기 짝이 없는 파괴 전차를 쏘아 보내 주었다.

하지만 도착한 1급 구역에는 파괴의 흔적 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을씨년스러운 핏빛 호수만 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계의 틈과 더불어 1급 구역 특유의 고위 마족들도 보이지 않으니 수상한 곳은 이곳뿐이었다.

헨리는 손을 들었다.

그런 다음 전신에서 마력을 끄집어내 검은 양수가 꾸물럭거리는 호수 속으로 쏘아 보냈다.

헨리의 마력이 닿자 검은 양수가 파르르 진동했다.

마치 소금 세례를 맞은 지렁이 같은 몸짓이었다.

떨림은 곧 거대한 파장을 만들었고 만들어진 파장은 해수의 용오름처럼 한군데로 검은 양수들을 집결시켰다.

쿠와아아!

용오름이 되어 솟은 양수들이 마치 물로 빚어낸 용처럼 하늘로 승천했다.

헨리는 두 손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런 다음 고구마 줄기를 땅 속에서 뽑아내듯 있는 힘껏 당기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하늘로 승천한 검은 양수들이 헨리의 제스처에 이끌려 호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텅 빈 호수.

그곳엔 거대한 크레이터가 있었다.

그리고 크레이터 속에는 헨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계의 틈’이 숨어 있었다.

“찾았다.”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헨리는 기분 좋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마도 검은 양수는 마계의 틈을 통해 나온 것일 것이다.

헨리는 틈 사이로 반짝이는 흑색과 보라색의 신비로운 교차 현상을 응시했다.

저게 마계의 틈만 아니었다면 자연의 천혜라며 아름답다고 여겼을 풍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넘치는 곳이었다.

‘저 화려한 자태로 얼마나 많은 재앙들을 낳았던가.’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저 빌어먹을 틈을 닫고 싶었다.

저 비좁은 틈 하나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틈을 닫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터였다.

헨리는 크레이터 쪽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렇잖아도 지독하기 짝이 없는 1급 구역이었는데, 틈이 생겨난 크레이터 속으로 한 발을 내디디니 온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몇 배나 상승했다.

‘리버스 그래비티!’

이에 헨리는 역중력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것도 8서클에 달하는 초고위 등급의 역중력 마법을.

역중력 마법을 시전하자 헨리를 짓누르던 지독한 압력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이번에도 이게 최선인 것 같군.’

최대치의 역중력 마법을 사용해도 고작해야 압력을 더는 것이 효과의 전부였다.

헨리는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헨리는 다시 한번 한 발 내디뎠다.

그러자 좀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압력이 헨리의 전신을 짓눌렀다.

하지만 버틸 만했다.

그래서 헨리는 두 눈에 힘을 주고 부릅떴다.

그리고 자신을 짓이기려는 저 빌어먹을 틈을 노려보았다.

두려움은 없었다.

그래서 한 발씩 더 내디뎠다.

그 걸음걸음마다 압력이 몇 배나 더 증가했지만, 그럴 때마다 헨리는 마력을 더더욱 두텁게 둘러 압력을 상쇄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드디어 마계의 틈 앞에 바로 설 수 있었다.

고오오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마계의 틈은 묘하게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는 알고 있었다.

마계의 틈이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한낱 공기 따위가 아닌, 예컨대 헨리의 마력이나 생명력 같은 헨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파괴 전차를 집어삼킨 것 역시 마계의 틈이란 것을.

엄청난 압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하지만 헨리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틈 앞에 섰다.

그리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날카로운 눈매로 틈을 노려보았다.

헨리의 당당한 자태에서 황금빛 이채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에메랄드 빛 이채만 풍겨져 나왔던 것은 헨리가 조금의 신력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신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곳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달랐다.

지금 신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과거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신력을 꺼내 들었다.

전에 없던 새로운 힘이 생겼기에.

그리고 그런 힘과 함께 다시 한번 마계의 틈에게 도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헨리는 가진 신력의 전부를 해방시켰다.

그러자 헨리의 전신을 짓누르던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에 헨리는 미소를 지었다.

긍정적인 신호였기 때문이다.

헨리는 한결 가벼워진 육체와 함께 과거에 사용했던, 개방된 마계의 틈을 닫기 위해 개발한 주문을 다시금 읊어 내기 시작했다.

발음하기조차 힘든 룬어들이 헨리의 입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준비한 마법이 이번에는 먹혀들지는 미지수였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들었다.

이윽고 주문을 모두 외웠다.

그러자 헨리의 손끝으로부터 손가락 굵기만 한 황금빛 광선이 쏘아졌다.

광선은 틈으로 뻗쳤다.

광선은 살아 있는 뱀처럼 벌어진 마계의 틈을 휘감았다.

그러고는 실로 천 자락을 꿰듯이, 천천히 마계의 틈 사이를 지그재그 형식으로 꿰매 가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났다.

8서클이 되면서 바다와 같은 마력을 가지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력 소모가 굉장히 많아 현기증이 일었다.

곧이어 틈 전체가 황금빛 실로 가득 채워졌다.

채워진 실은 다시 헨리에게로 돌아와 튼튼한 손잡이가 되었다.

헨리는 실의 손잡이에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이번에는 제발……!’

마법의 신이 된 이후, 헨리는 기도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동안 형체를 알 수 없는 여신에게 기도를 올렸다면 이젠 스스로의 믿음을 되짚었다.

그것이 신이 된 자의 기도법이었다.

헨리는 곧 기도와 함께 양손에 힘을 주어 있는 힘껏 손잡이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키에에에에에!

귀가 찢겨 나갈 듯한 비명.

마계의 틈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 강렬한 고통에,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데 그 순간.

투두두둑-!

틈을 조이던 황금색 실들이 허무하게 끊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거인보다 훨씬 거대한 손아귀가 튀어나와 귀를 막고 있던 헨리를 단숨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콰지직!

섬뜩한 소리.

뻗친 손이 다시 틈 속으로 사라졌다.

손아귀에 헨리를 꼭 쥔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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