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32화 (332/522)

# 332

지옥의 구원자 (3)

어스름한 새벽, 마물의 숲에 군림한 파괴 전차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말 그대로 재앙 그 자체.

헨리가 한 걸음을 내딛으면 딱 그만큼의 재앙이 번졌고, 헨리가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하면 주위는 삽시간에 황무지가 되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죄책감 따윈 조금도 없었다.

이곳은 인륜 따윈 조금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대륙에서도 몇 안 되는 무간지옥들 중 하나였으니까.

헨리는 파괴 전차의 발동 이외에도 조금이라도 더 마물들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가진 지식을 총동원하여 숲 내에서 가장 큰 소란을 일으켰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밤새도록 마물들이 소음을 낼 것이라면, 차라리 헨리가 선수를 쳐 소음의 근간을 없애 버리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눈 깜짝할 새에 9급 구역을 지나쳤다.

8급과 7급 구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헨리는 순식간에 위험 구역이라고 일컬어지는 5급 구역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 큰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아직이야.’

고작해야 5급 구역이었다.

누군가에겐 평생 발도 못 붙여 볼 만큼 위험한 구역이겠지만 헨리에겐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만도 못한 곳이 바로 5급 구역이었다.

헨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토양은 이미 화산재의 그것처럼 거무죽죽했고 하늘은 알게 모르게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대기 중의 독소가 헨리의 시야에 착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파괴 전차는 여전히 발동 중에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원소의 고리는 어떤 존재가 헨리에게 다가오든 간에 헨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신속하고 조용하게 암살을 이뤄 냈다.

헨리는 곧 4급 구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4급 구역부턴 이젠 정말로 웬만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이어 나갔다.

아직도 맹렬하게 회전하는 원소의 고리로 헨리는 어렵지 않게 4급 구역을 황무지로 뒤집어 놓았다.

헨리가 지나간 곳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헨리는 3급 구역 안으로 발을 들이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설마 3급 구역까지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겠지.’

솔직히 말해 좀 실망했다.

마물의 숲에 유래 없는 폭주가 일어났다기에, 사실 5급 구역 정도만 되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무언가를 구경해 보기도 전에 파괴 전차에 휘말려 사라졌으니 그저 허무할 따름이었다.

3급과 4급 구역의 경계선에서, 헨리는 다시 한번 일말의 기대심을 품고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츄쥬쥬죽!

헨리가 3급 구역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사방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들려온 파공음은 소리를 기점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이에 헨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무슨 소리가 났는데?’

마법의 신이 된 이후 신체의 감각은 유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 들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헨리는 감각을 끌어올려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그래서 또 한 번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츄쥬쥬죽!

선명하게 들리는 파공음.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헨리는 기민해진 감각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했다.

헨리의 시력이 초인의 영역에 들어서며 인간의 감각으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 주었다.

빠르게 뻗쳐 오는 파공음의 주인공들.

헨리는 파공음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난 또 누구라고, 너희들이었냐?”

뻗쳐 오던 것들은 헨리의 파괴 전차에 휩쓸려 다시금 사라졌다.

그러나 헨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 똑똑히 보았다.

분명하게 자신을 노리고 들어오던 것.

그것은 바로 3급 구역에만 서식하는 암살종(暗殺種), 그림 패러리스였다.

헨리는 자신을 암살하려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입꼬리를 내렸다.

그러고 나서는 그들을 위로하듯이 말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긴 한데 지금은 좀 바빠서 말이야.”

정체를 확인한 헨리는 더 이상 주위를 경계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금 시원시원하게 발걸음을 내뻗었다.

츄쥬쥬죽!

쏟아지는 그림 패러리스들의 암기(暗機)들.

암기의 정체는 다름 아닌 독침이었다.

그림 패러리스들은 원래 마계에 서식하는 설치류 마물의 한 종류로 본래 이름은 패러리스였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만큼의 지능을 갖추고 집단생활을 시작했으며 부족한 힘을 도구로 보완할 만큼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사회를 이룩한 그들은 혼자라면 결코 잡지 못할 대형 마물의 사냥에까지 성공했고, 그런 식으로 수집한 성장치를 바탕으로 설치류 마물의 최종 진화를 이뤄 낼 수 있었다.

헨리는 그림 패러리스들이 쏟아내는 폭포수 같은 독침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완벽하게 그림 패러리스들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이에 그림 패러리스들 또한 슬슬 약이 올랐는지, 이젠 숨어서 독침을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채 독침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헨리에겐 한낱 시궁쥐에 불과했다.

헨리는 시궁쥐들의 곡예를 즐기며 2급 구역의 경계선에 당도했다.

경계선에 당도한 헨리가 등을 돌려 그림 패러리스 떼를 보았다.

여전히 열과 성을 다해 헨리의 목숨을 노리는 그림 패러리스들.

2급 구역의 입구까지 오는 동안, 그림 패러리스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최상급 마물들이 헨리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모두들 하나같이 2초를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 패러리스들은 꽤 오랫동안 헨리에게 달라붙은 셈이다.

독침을 쏟아붓는 패러리스들에게 헨리가 말했다.

“놀이는 여기까지다.”

말을 마친 헨리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가장 처음에 만들어 놓았던 화염의 고리가 다시 뱀처럼 길쭉하게 풀어졌다.

풀어진 고리는 생긴 것처럼 정말로 뱀이 되었다.

집어삼키는 모든 것들을 위장 속에서 불태우는 화염의 뱀.

생쥐 사냥에 딱 적합한 염사(炎蛇)였다.

“물어.”

화르륵!

헨리의 명령에 염사는 마치 정말로 살아 있는 뱀처럼 그림 패러리스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식사는 금방 끝났다.

포식을 마친 염사는 다시 자신의 꼬리를 무는 우로보로스가 되어 몸에 닿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재앙의 고리가 되었다.

헨리는 2급 구역에 발을 들여놓기 전, 자신이 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다시 살펴보았다.

돌아본 시야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새카만 재가 되어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그 광경을 본 헨리가 조그맣게 미소 지었다.

‘이만하면 병사들도 만족하겠지.’

그동안 폭주한 마물들로 인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병사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설마 2급 구역마저 아무것도 못 건지는 건 아니겠지?”

3급 구역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하지만 아직 두 개의 구역이 더 남아 있다.

헨리는 한 번 더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기대를 품고 2급 구역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2급 구역.

바닥의 토양이 거무죽죽할 뿐만 아니라 질척거리기까지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기 중의 독소가 넘치다 못해 바닥의 토양에까지 스며든 것이다.

헨리는 신발에 쩍쩍 달라붙는 촉감이 싫어 마력으로 밑창을 코팅했다.

2급 구역부턴 마물의 숲 특유의 마계목들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가파른 절벽 아니면 날카롭게 솟은 바위들이 전부였다.

헨리는 황량한 사막을 걷듯이 2급 구역을 걸었다.

그리고 2급 구역을 거닐면서 점점 더 의아함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사방이 몹시 조용했다.

본디 2급 구역이라 함은 최상급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어중간한 마족들은 감히 어찌해 보지도 못할 재앙급 마물들이나 최소 중급에 해당하는 마족들이 포진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래 2급 구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림 패러리스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상대하기 위해 기습 공격들이 쏟아지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벌써 몇 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파고 천차는 아무것도 파괴하지 못했다.

헨리는 꼭 비가 온 뒤의 숲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퀴퀴한 냄새, 질척이는 바닥, 안개처럼 뿌연 시야.

그 속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헨리의 발걸음 소리와 원소의 고리가 회전하는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끝에 헨리는 어느새 1급 구역의 경계선이 지평선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1급 구역을 가르는 경계선이 보이자 헨리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이게 끝이라고?’

경계선이 가까워질수록 헨리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실망과 뒤엉켰던 허무라는 감정이 알코올의 그것처럼 가볍게 휘발되어 날아가자, 헨리는 그제야 이러한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뭔가 일이 생기긴 생겼구나.’

텅 빌 리가 없는 2급 구역이 거짓말처럼 텅 비어 있다.

이건 단순히 혀를 찰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어쩌면, 그토록 헨리가 찾아 헤매던 마물의 숲이 보이던 이상 징후에 대한 단서일지도 몰랐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헨리의 걸음이 한층 더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1급 구역의 경계선에 다다르려던 순간.

찰박!

헨리는 진흙이 아닌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밟게 되었다.

‘물?’

토양이 거무죽죽해서 그 흙에 고여 있는 물의 색깔 또한 거무죽죽한 듯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이곳은 2급 구역.

마계목도 살 수 없는 곳인데 하물며 물이라니?

헨리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고 있자 의아함을 느꼈다.

헨리는 의아함에 손을 뻗어 물웅덩이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런 다음 냄새를 맡았다.

‘피?’

진한 피 냄새가 났다.

그것도 마물들이나 흘리는, 마물들 특유의 지독한 피 냄새가.

다른 냄새와 혼동할 이유는 없었다.

헨리는 과거에 마왕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질리도록 마물들의 피 냄새를 맡아 봤으니까.

‘여태 한 놈도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핏물이 발견된다고?’

헨리의 시선이 바닥에 고여 있는 피 웅덩이로 옮겨졌다.

피 웅덩이는 제법 그 규모가 컸다.

그 규모가 어찌나 크던지, 시냇물처럼 연결된 웅덩이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1급 구역의 경계선에 닿아 있을 정도였다.

헨리는 시선을 들어 경계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경계선 너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안개 같은 것이 껴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다른 구역들은 몰라도, 헨리가 정의한 ‘1급 구역’은 말 그대로 다른 구역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답을 알고 싶으면 그리로 넘어오란 뜻이냐?’

헨리는 마치 거만한 집주인으로부터 무례한 초대를 받은 것처럼 승부욕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차피 이변이 없는 이상 1급 구역까지 끝없이 전진할 생각이었다.

원래부터 헨리의 최종 목적지는 1급 구역에 있었으니까.

헨리는 손끝에 묻은 핏물을 닦아 냈다.

그런 다음 오른손을 들어 여전히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파괴 전차들을 하나의 고리로 뭉쳤다.

파지지지짓!

상반되는 속성들이 억지로 하나의 고리로 뭉쳐지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굉장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폭발하진 않았다.

헨리가 혹시 모를 사고를 통제하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고리들을 하나로 합친 헨리가 합쳐낸 고리를 손끝으로 조종하며, 고리를 시위에 걸린 화살처럼 잡아당겼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초대를 받았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말을 마친 헨리가 당긴 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맹렬하게 회전하던 하나의 고리가 이내 곧 경계선 너머로 쏜살같이 쏘아졌다.

훙!

패러리스의 독침과는 차원이 다른 파공음을 내며, 당겨진 고리가 경계선 너머로 사라졌다.

…….

그러나 파괴 전차의 최종 목적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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