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26화 (326/522)

# 326

마법의 신 (1)

사방에 탄내가 가득했다.

그리고 검은 연기들이 매캐하게 들어찼으며 대지는 화산재가 내려앉은 것처럼 어둠으로 가득했다.

해가 진 것이 아니었다.

대지를 뒤덮고 탄내를 가득 풍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법 결계에 감전돼 죽은, 맹신자들의 육체였던 것이다.

두두두두……!

땅이 울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그렇게 일어난 지진은 바닥 빼곡히 깔려 있는 재 가루를 허공에 흩날리게 했다.

마치 흩어지는 눈처럼, 허공을 떠도는 재 가루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했다.

그리고 그러한 잿더미를 헤치며 지진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 아닌 ‘맹신자’들이었다.

“이럴 수가…….”

맹신자들 따위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로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벌써 몇 시간째 마법 결계가 발동되며 맹신자들을 튕겨 내고 있었지만 맹신자들의 수는 도무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아니,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고작해야 수천이었다.

그러나 수천으로 시작됐던 맹신자들이 마법 결계에 의해 모두 죽어도 얼마 후면 수만에 이르는 맹신자들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누적된 맹신자들이 어느새 수백만에 달했다.

물론 마법 결계는 여전히 발동 중에 있었다.

마법 결계는 여전히 푸른 번개를 내뿜으며 달려드는 맹신자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음의 문턱 너머로 집어 던졌다.

하지만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몰려든 맹신자들은, 몰려든 숫자가 너무 많은 나머지 이젠 입구뿐만이 아닌 무슈 전체에 흩어져 도시 자체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중에서 바라본 무슈의 모습은, 무슈에 갇힌 사람이 아니었다면 가히 장관이라며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맹신자들로부터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나 즐길 수 있는 것.

처음엔 마법사들의 결계를 보고 안도했던 무슈인들은, 몇 시간이고 지속되는 비명에 서서히 질려가기 시작했다.

극심한 정신력 소모였다.

급기야 심력이 약한 어떤 이는 반쯤 미치기까지 했다.

그만큼 끊임없이 늘어나는 맹신자들은 살아 있는 공포 그 자체였다.

마법사들은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고 사제들은 끊임없이 기도했다.

사제들의 기도는 성법 따위가 아닌 정말로 단순한 기도였다.

제아무리 맹신자들이 괴물처럼 보여도 이따금씩 맹신자들 사이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잊고 있었던 그들의 근간을 떠올리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지휘관들 사이에서도 무거운 침묵만이 전염병처럼 맴돌았다.

‘어쩌면…… 정말로 직접 나서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군.’

바할드를 비롯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결계 너머의 세상은 살아 있는 지옥도를 방불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진짜 지옥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던 중 마침내 넓게 포진되어 있던 부학파장들 중 하나가 현기증을 일으키며 마법진 위에 쓰러졌다.

“프, 플래티나 부학파장님!”

쓰러진 마법사는 설탑에서 생물학파의 부학파장직을 맡고 있는 플래티나 라는 마법사였다.

플래티나 부학파장.

그녀 또한 마도사에서 아크 메이지의 경지에 오르긴 했다.

하지만 아크 메이지라는 엄청난 경지를 이룬 직후, 그에 적응할 새도 없이 곧바로 무리한 작전에 투입된 탓에 그만 육체가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가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곧바로 사제들이 다가와 그녀를 치료했다.

그 모습을 본 스탠이 침음을 삼키며 로어에게 말했다.

“로어 님, 이제 그만 부학파장들을 물리고 저희가 직접 투입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스탠의 제안에 로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7현자로 불리는 학파장들.

고작해야 몇 시간이긴 했지만 리자르크 언덕에 다녀온 이후로 그래도 어느 정도의 휴식을 취하긴 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부학파장들과 바톤 터치를 해 줄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헬 라이징.”

그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잠시 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무슈 전체에 엄청난 온도의 열풍이 불어닥쳤다.

투구를 쓰지 않은 사람들 대다수의 머리가 헝클어졌다.

어떤 이는 뜨거운 열풍을 정통으로 맞는 바람에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물론 사람에게 해를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열풍이었다.

그러던 중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한 병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저기!”

모두의 시선이 병사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마법 결계를 기점으로 점점 지평선에 가깝게 휘몰아치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불꽃 파도’를 볼 수 있었다.

“……!”

“……!”

그 엄청난 장경에 모두가 선 채로 굳었다.

그리고 입을 반쯤 벌리고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휘몰아치는 화염의 파도를 응시했다.

“대체 이게 무슨……?”

현자들 그 누구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학파장들이나 다른 마법사가 쓴 것도 아니었다.

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슈에 있는 마법사 전부를 로어가 통제하고 있었으니까.

불어닥친 화염의 파도는 무슈를 기점으로 소용돌이쳤다.

지평선을 향해 빠르게 회전하는 불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채 새카만 잿더미가 되었다.

대지를 울리던 거대한 진동이 멎었다.

불어닥친 불의 파도가 거대한 땅울림을 만들던 맹신자들을 모조리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사방에는 불의 파도가 만들어 낸 고요한 바람소리만 들렸다.

휘오오오-.

몰아치는 열풍.

무슈의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굽이치는 열풍을 맞으며 그저 멍한 표정으로, 화염과 함께 사라지는 수백만의 맹신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계 너머에 더 이상 단 한 명의 맹신자도 보이지 않은 순간이었다.

타닥!

침묵이 내려앉은 성벽 위에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발걸음 소리를 들은 몇 사람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정지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발걸음 소리를 낸 자의 정체를 확인한 이들은 바깥에서 휘몰아치는 불의 파도 못지않은 충격을 받은 듯,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굳은 얼굴로 그 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그러한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남자는 시선을 즐기면서 유유자적한 걸음걸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남자가 발걸음을 옮기는 방향마다 사람들이 황급히 길을 터 주었다.

남자는 그 사이를 걸었다.

침묵은 여전히 유지됐다.

마치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남자에 대한 소식은 빠르게 성의 간부들에게 보고되었다.

이에 소식을 들은 간부들이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고서 보고받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남자를 발견한 순간, 가장 먼저 소리친 것은 다름 아닌 맥도웰이었다.

“헨리!”

몇 명의 기사가 한달음에 튀어나와 헨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맥도웰의 외침을 기점으로 침묵을 끼얹었던 성벽 위가 다시금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 저분이 바로……!”

“마법사님이 여기 오셨다는 건!”

“아아, 제발……!”

아직 어떠한 결과도 밝혀지지 않았기에 군중은 불안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러나 맥도웰은 그런 소곤거림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재빨리 가장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아서스는? 그놈은 어떻게 됐어?”

맥도웰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헨리에게 질문을 종용했다.

이에 헨리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저, 그게…….”

“아, 괜찮으니까 뜸들이지 말고 얼른!”

“죽었습니다.”

“뭐?”

“제 손으로 아서스를 죽이고 오는 길입니다.”

헨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승전보를 전했다.

결코 낮지도 높지도 않은 그런 톤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헨리의 입에서 승전 소식이 흘러나온 순간, 그 대답이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우와아아아아아!”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들.

대지를 떨게 하던 맹신자들이 사라지니 이번엔 무슈의 생존자들이 성벽을 떨게 했다.

비명, 고함, 포효.

기쁨, 아우성, 울음, 분노.

갖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소리들이었지만 그것들이 빚어내는 것은 확실한 ‘환희’였다.

그리고 그런 환희 끝에 사람들은 너나없이 헨리에게로 달려들었다.

돌아온 인류의 영웅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 * *

모두들 아서스의 악행을 오감으로, 그것도 실시간으로 체험한 탓에 광란에 가까운 환희 파티는 해가 지고 어둠이 들어차서야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그 때문에 달이 환하게 고개를 내밀었을 때, 헨리는 그제야 성의 간부들을 한데 불러 모아 낮에 미처 전하지 못한 상세한 말들을 전할 수 있었다.

헨리는 먼저 자신과 성녀를 제외한 모두가 아서스의 손에 죽었다는 끔찍한 비보를 동료들에게 전했다.

“……그렇군.”

헤라리온과 후슬러, 그리고 헥터와 로난의 죽음.

아무리 전쟁 중이었다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는다.

그 탓에 테이블 위의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침울해진 분위기 사이로 반이 중얼거렸다.

“킹턴, 그놈은 끝까지…….”

비보에는 킹턴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킹턴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마지막까지 어리석은 선택을 했으니까.

‘멍청한 놈.’

킹턴을 떠올리며 헨리는 짧게 혀를 찼다.

끝까지 인내하고 멋진 선택을 했더라면 다시 한번 가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정도로 후한 대접을 받았을 텐데.

헨리는 킹턴의 소식을 뒤로 밀어낸 후, 동료들에게 본격적으로 질문을 받았다.

아서스를 어떻게 죽였는지, 신력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났을 때, 테이블 앞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어지는 침묵.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마실라였다.

“……자, 잠깐만요. 그, 그러니까, 대마법사님께선 이젠 한낱 인간 따위가 아닌 아이린이나 라와 같은 ‘신’이 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농담이시죠……?”

“글쎄요, 저도 농담이나 꿈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이린 님과 라 님께 직접 설명을 들은 거라…….”

“지, 직접이요?”

“예, 그렇습니다. 아참, 혹시 그거 아십니까? 라 님의 머리는 사람이 아니라 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헨리가 농담처럼 라에 대한 목격담을 풀어내자 곧바로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샤하트라의 대제사장, ‘비람’이었다.

흥분한 비람에게 헨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역시 대제사장님께서 가장 크게 놀라실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전 이제 ‘마법의 신’이라는 거창한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헨리의 담담한 서술에, 테이블 앞의 사람들은 도통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테이블 앞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신을 직접 목격한 적도 없었을뿐더러 가깝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신이 됐다는 경우도 난생처음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말을 마치자 마실라가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으며 실성하듯 중얼거렸다.

“하, 하하……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책사였기에 지금 그녀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다소 믿기 힘든 것일 수도 있었다.

헨리는 그런 그녀의 중얼거림에 가볍게 동의해 주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실라 님.”

모두가 얼빠진 사람처럼 허허거리고 있자, 헨리는 물 한 모금을 들이켠 후 의자에 등을 붙였다.

그런 다음 모두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 뒤, 그나마 심력을 회복한 로어가 조심스럽게 헨리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 대마법사님, 아, 아니 마법의 신이시여. 그럼 신님께선 이제 행보를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색하기 짝이 없는 뉘앙스였다.

헨리는 그런 로어의 어색한 태도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런 다음 평소와 조금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어투로 로어에게 대답했다.

“글쎄, 생각 안 해 봤는데?”

“예, 예?”

“생각 안 해 봤다고. 나도 신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말이야.”

헨리의 발언에 모두가 다시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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