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
The New God (2)
아서스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한 움큼의 핏물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뱉어진 핏물이 발치로 떨어지면서 아서스의 당황한 얼굴이 비추어졌다.
아서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된다는 표정.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서스는 시원하게 바람구멍이 난 가슴팍에 손을 올려 서둘러 구멍을 막았다.
울컥울컥 쏟아지는 핏물.
헨리에겐 고작해야 2서클에 불과한 가장 기초 단위의 마법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숙련된 궁수의 화살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었다.
아서스가 서둘러 구멍 난 가슴에 신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뚫린 살갗이 메워지며 점차적으로 상처가 아물어 갔다.
아서스는 생각지도 못한 당황스러움에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아서스가 아문 상처에서 손을 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드높여 따지듯이 말했다.
“방금 뭘 어떻게 한 거지? 네놈이 대체 어떻게……!”
그러나 아서스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항의하듯 헨리에게 따지려던 찰나, 눈앞의 헨리가 다시 한 번 검지를 치켜들고 을씨년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정말이군.”
피웅-!
헨리의 손끝에서 다시 한번 섬광이 번쩍였다.
이에 한 토막의 빛줄기가 전방으로 발사됐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아서스는 서둘러 결계를 생성했다.
피빗-!
매직 미사일과 결계가 부딪치자 의외의 소리가 났다.
분명 ‘퍼엉’ 하고 귓전을 긁어놓는 끔찍한 폭발음이 날 줄로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결계가 두 번 정도 번쩍이더니 이내 곧 매직 미사일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그 광경을 본 헨리가 말했다.
“신력의…… 차이인가?”
처음에 헨리의 마법이 아서스의 가슴을 관통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아서스가 방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자신에게 마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에 의거한 방심 때문.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헨리에게 모종의 변화가 생겼음을 알아챈 아서스는 더 이상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가진 신력을 있는 힘껏 방출하여 헨리의 매직 미사일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결계를 통해 흡수했다.
그리고 매직 미사일을 흡수하면서 아서스는 확신했다.
‘갑자기 신력이 생겼어?’
마력이나 오러 따위가 아니다.
물론 매직 미사일 자체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에너지 덩어리였지만, 그것을 두르고 있는 것은 확실한 신력이었다.
‘대체 어떻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여태껏 갖고 놀았던 것이 조막만 한 개미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꽤 아프게 물 줄 아는 강아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헨리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아직 부족해.’
지금도 귓가에는 자신을 믿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신망 어린 기도가 메아리쳤다.
하지만 제아무리 기도가 많다고 한들, 아무래도 신력이란 건 한순간에 ‘뻥’ 하고 차오르는 게 아닌 듯했다.
그렇기에 부족함을 느꼈다.
현재 헨리의 몸에 쌓이고 있는 신력의 속도는 빗물이 장독을 채우는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전에 느끼지 못한 힘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헨리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라와 아이린의 말대로 이제 자신은 정말로 한낱 인간 따위가 아닌, 어엿한 한 명의 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헨리는 여전히 느릿하게 차오르는 신력을 보면서도 전혀 초조해하지 않고 여유 있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이윽고 아서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군. 반지였어.”
“음?”
“쾌락에 취해 잠시 잊고 있었다. 네놈에겐 헤라볼라에게서 받은 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아서스의 지적에 헨리 또한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한때는 사도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했던 헤라볼라의 반지들.
헨리는 품속에서 여덟 개의 반지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아서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요행이 통한 건 방금 전의 한 번뿐이다.”
헨리가 꺼내 든 반지를 보고 아서스는 그제야 묵은 숨을 토해 냈다.
사납게 짖어 대는 강아지의 목에서 미처 보지 못한 목줄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로, 아서스는 상황 자체에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시나마 주춤했던 오만함이 다시금 고개를 들이밀고 기지개를 폈다.
지잉!
매직 실드처럼 펼친 아서스의 결계가 다시금 강화됐다.
결계의 두께는 헨리가 가진 반지 여덟 개 분량의 신력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신력만큼 두꺼워졌다.
결계를 본 헨리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이제야 보이는군.’
선명하게 보이는 강화된 결계의 두께.
우스웠다.
두려움에 사무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단지 누군가 귀띔해 준 것만으로도 저리 선명하게 보이다니.
새삼 믿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헨리는 다소 허탈함이 느껴질 정도로 우스웠다.
‘그나저나 많이도 모았네, 아서스 놈.’
헨리의 시선은 두텁게 늘어난 결계에서 곧 아서스 자체에게로 옮겨졌다.
물론 헨리가 보고자 한 것은 역겹기 짝이 없는 놈의 낯짝 따위가 아니었다.
헨리가 보고자 한 것은 낯짝을 포함한 놈의 전신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야누스’로부터 하사받은 신력의 흐름이었다.
헨리는 그 흐름을 보고 마법사들이 주로 애용하는 마나 호흡을 통한 마력의 흐름을 떠올렸다.
전신 자체에 스며들었다가 천천히 다시 바깥으로 배출되는 미지의 힘들.
그러한 공통점들 때문인지 신력과 마력은 참 여러모로 닮은 점들이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헨리는 아서스의 전신에 흐르는 신력의 기류를 보며 마나 호흡뿐만이 아니라 마치 한 줄기의 강물이 떠올랐다.
강.
좋은 의미로 보자면 강처럼 풍부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쁜 의미로 해석하자면 그 한계는 겨우 강물 정도에 국한된다는 말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은 아서스가 가진 신력의 양이 더 많을지 몰라도 헨리가 가진 그릇의 크기는 한낱 ‘강’ 따위가 아닌 드넓은 ‘바다’에 가까웠으니까.
그것이 신과 인간이 가지는 명백한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눈에는 확실하게 보인다.’
또한 헨리는 확실하게 보았다.
아서스가 자신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이다.
그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아서스가 대륙 전체에 널린 신도들의 믿음을 모두 흡수해 내지 못해 남은 믿음들을 바깥으로 흘러넘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너와 나의 차이점이지.’
아서스는 맹신자라는 신앙 자판기를 만들어 가면서까지 자신의 힘을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결국 음식도 배가 부르면 먹지 못하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서스의 그릇은 고작해야 강줄기 정도.
바다 같은 헨리의 그릇에 비하자면 간장 종지만큼이나 작은 것이었다.
헨리는 자신의 그릇에 신력이 천천히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아서스의 오만한 발언에 대꾸해 주었다.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게 아닐까?”
“멍청한 소리. 척 보기에도 차이가 확연한데도 고집을 부린다는 건 그저 치기 어린 객기일 뿐이다.”
“그렇게 믿으시든지.”
헨리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딱!
지잉!
무영창.
주문을 외우지 않고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 헨리의 주위에 무수한 양의 매직 스피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 놀음이라면 나도 기꺼이 어울려 주지.”
딱!
그 모습을 본 아서스도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흑색으로 일렁이는 다크 스피어들이 아서스의 주위에 무수히 소환됐다.
서로 상반되는 색의 창들이었다.
창을 소환한 두 사람은 더 이상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않았다.
대신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그것을 시발점으로 고개를 쳐들고 있던 창들이 상대방의 목덜미를 향해 날카롭게 고개를 숙였다.
씨익.
창들이 상대를 향해 조준되자 아서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이어서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휙-!
후우웅!
휘파람 소리와 함께 흑색 창들이 뻗어졌다.
동시에 헨리의 창 또한 기다란 빛의 궤흔을 그리며 전방을 향해 앞으로 뻗어졌다.
상반되는 색을 가진 두 개의 창들이 허공에서 별똥별처럼 뻗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모든 창들이 거짓말처럼 제 짝을 찾아가듯, 극이 다른 자석처럼 순식간에 짝을 찾아 서로 격돌했다.
그러나 그 격돌에는 소음이 없었다.
폭발도 없었고 그로 인한 풍압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빛과 빛이 뒤엉키듯, 부딪힌 양측의 창들은 그대로 소용돌이치며 휘감아지더니 사막의 신기루처럼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연기조차 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흩뿌려지는 궤적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한 침묵의 충돌이 늘어갈 때마다 점점 더 눈동자를 부릅뜨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아서스였다.
‘대, 대체 어떻게……?’
분명히 일전에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양의 신력을 부여한 다크 스피어들이었다.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약 9% 정도에 달하는 신력이었다.
물론 1% 단위로 계량된 계량 값의 기준은 헨리가 가진 반지 한 개 분량의 신력이었다.
그래서 헨리가 가진 8개의 반지보다 딱 한 개 더 많은 분량의 신력을 담아 창들을 만들었다.
창에 배분된 신력의 양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헨리가 가진 반지가 총 8개였으니 그보다 딱 하나가 더 많은 9%의 신력을 담았다.
그렇기에 원래 계획대로라면 헨리의 것보다 1%의 신력이 더 높은 자신의 창들이, 단숨에 헨리의 창을 꿰뚫고 헨리의 몸에 숱한 벌집을 내 놓았어야만 했다.
그러나 양측의 창들은 서로에게 끌리듯이 맞부딪힌 후 소음 한 번 내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창에 담긴 신력의 양이, 눈앞에서 번쩍이는 헨리의 창과 같은 양의 신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냐, 뭔가 계산이 잘못됐어!’
그래서 아서스는 창에 배분한 신력의 양을 1% 더 늘렸다.
혹시 모를 계산 착오를 만회하기 위해서 말이다.
추가 배분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추가 배분이 이루어지자마자 생성되던 다크 스피어의 길이가 조금 더 길어지고 색이 좀 더 짙어졌다.
담긴 신력이 늘었으니 외형 또한 변한 것이다.
그렇게 추가 배분된 신력을 가지고서 다시 한번 격돌이 일었다.
그러나.
“……!”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가만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놀란 자라눈을 한 아서스와 시선을 맞추었다.
씨익.
“너, 너……!”
“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보지?”
당황하는 모양새를 보고서 헨리는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받아쳤다.
그러자 아서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속았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아서스가 애써 대꾸했다.
“내가 실수했군.”
아서스는 말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노기를 뿜는 눈빛에서 이다음에 행할 행동들은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지만 말이다.
이윽고 아서스는 오만함이 듬뿍 담긴 유희를 가장한 놀이를 집어치우고 뿌리는 창에 천천히 신력의 양을 늘렸다.
그러자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신력의 퍼센티지는 어느새 두 자릿수가 되며 천천히 상승곡선을 타고 치솟았다.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나도 바라던 바야.”
전이었다면 섬뜩해 마지않았을 아서스의 경고를, 헨리는 이번에도 여유롭게 되받아쳤다.
그리고 눈에 띄게 늘어나는 아서스의 신력 양에 맞춰 헨리 또한 천천히 신력의 양을 늘려 갔다.
소리없는 전쟁이 계속 됐다.
배분되는 신력의 양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마침내 그 퍼센티지가 30%를 돌파했을 때, 허공을 휘젓고 있는 것들은 이미 창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창의 이름을 빌린 여느 거대한 공성 병기, 발리스타의 쇠뇌와도 같은 형상이 되었다.
“죽어라!”
스피어에 담긴 신력이 30%가 넘어가면서, 아서스가 호기롭게 외쳤다.
30%라는 신력의 양은 아서스가 가진 신력의 힘들 중 절반이 넘어가는 엄청난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서스는 호기롭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헨리 또한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얼마든지.”
마침내 거대한 쇠뇌를 닮은 두 개의 신력덩어리가 빚어졌다.
그리고 두 개의 영체가 허공에서 격돌한 그 순간.
콰아아아앙-!
두 사람 사이에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