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20화 (320/522)

# 320

아포칼립스 (4)

전신이 아리는 고통에 헨리는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의식 사이로 성녀를 다그치는 아서스에게 칼날을 내뻗은 헥터를 보았다.

‘헥터……!’

내장에 가득 찬 핏물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헨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빛으로 헥터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헥터.

히든카드 정도로 준비했던 헥터는 다른 기사들에 비해 분명히 큰 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 활약상도 사도들에 한해서였다.

아서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였다.

8서클에 이른 마법, 전생에는 가지지 못했던 소드 마스터의 경지의 헨리도…….

그리고 최상급 워록과 더불어 무슈 최고의 장인, 불카누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육체의 데스나이트 헥터도…….

야누스의 대척점이라고 불리는 라의 대리자 헤라리온마저도…….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칼날을 보며 아서스가 말했다.

“재밌네.”

말 그대로였다.

아서스는 자신의 가슴이 관통한 것에 대해 미소를 지으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마치 길바닥의 개미를 갖고 놀다 개미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었을 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다.

분노, 그리고 비웃음. 그런 다음 다시 분노.

그러니 아서스는 일단 개미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긴 했으니 잠깐이지만 화가 나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손가락을 문 것은 고작해야 개미였고 자신은 이 정도 상처에 죽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덧붙여 자신을 문 개미는 곧 그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운명이란 것도 말이다.

그리고 헥터는 아서스에게 있어 개미 같은 존재였다.

아서스는 곧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칼날을 손으로 붙잡았다.

칼날에 베이는 일 따윈 없었다.

제아무리 칼날의 예기가 극에 달했다고 한들, 그런 예리함 마저 무시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아서스였기 때문이다.

아서스가 칼날을 붙잡자 헥터의 칼날이 옅게 진동했다.

그리고.

카앙-!

……하며 접시 깨지는 소리가 나며 칼날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역시…….’

이변은 없었다.

노쇠한 후슬러는 진즉에 시커먼 창에 꿰뚫려 생사를 오가고 있었고, 그런 후슬러의 지원이 없는 헥터는 제아무리 뛰어난 검사라 할지라도 아서스에게 별다른 타격을 줄 수가 없었다.

헨리는 그 광경을 보며 점점 더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대체, 대체 뭘 더 어떻게……!’

헨리는 위대한 마법사였다.

그가 위대한 마법사가 된 것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늘 불가능이라고 여겨 왔던 일들을 거짓말처럼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헨리가 처음으로 궁지에 몰렸다.

‘신력’이라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여태껏 하찮다고 여겨 왔던 힘 때문에 말이다.

신력.

말 그대로 미지, 그 자체였던 힘.

하지만 급한 자가 우물을 판다고, 급한 것은 헨리였기에 멸교 직전에 놓인 교단까지 찾아 헤매며 신력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이루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노력하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에 실패자는 단 한명도 없을 테니까.

결국 헨리는 갖은 노력을 퍼부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방법을 찾지 못한 헨리는 급한 대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라도 최대한 준비해 두어야만 했다.

예컨대, 마탑의 제자들의 서클을 한두 단계 증강시킨다던가 하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서라도 말이다.

……물론 이젠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지만.

투쾅!

쇳덩이가 일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헥터의 갑옷이 일그러지는 소리였다.

아서스가 자신의 손을 문 개미를 눌러 죽이듯이 헥터의 갑옷을 일그러뜨렸다.

갑옷을 일그러뜨리자 텅 빈 내부가 보였다.

내부에는 흑마술의 언어가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아서스가 몇 번 더 손짓하자 그마저도 무참히 일그러지며 꼬깃꼬깃 접혀졌다.

아서스가 말했다.

“용기는 인정해 주마, 데스나이트.”

투구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일그러뜨린 아서스는 흥미를 잃은 듯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성녀를 응시했다.

성녀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서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쯧.”

공포에 질린 대상은 길들이는 맛이 없기에 금방 질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서스에게 성녀는 헥터와 같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한 마리의 개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지금 당장 죽이지 않아도 굳이 상관없다는 이야기였다.

아서스는 고개를 돌린 후 좀 더 반응이 신선할 만한 개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헤라리온’이 있었다.

헤라리온은 여느 나무에 기대어 죽어 가고 있었다.

아서스는 무릎을 굽혀 헤라리온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생기를 잃은 두 눈.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풍전등화의 눈빛이었다.

헤라리온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헐떡이는 숨소리조차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아서스가 말했다.

“당신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칸 왕조는 대체 왜 야누스 님을 숨겨 온 거죠?”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이었다는 이유로 아서스는 헤라리온에게 존대를 해 주었다.

아서스의 물음에 꺼져 가는 촛불은 남은 힘을 쥐어짜 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죽어가는 생기를 억지로 쥐어짜 옅은 살기를 띠어 내며 아서스와 두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지금…… 네놈의 행태가…… 모든 걸 말, 해 주고…… 있잖아…….”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아서스는 헤라리온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변변찮고 얄팍한, 천편일률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사막에 국한된 ‘라’ 따위 보다는 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춘 야누스를 라처럼 모셨다면 어쩌면 지금 이 대륙의 주인은 골든 잭슨이나 아서스가 아닌 헤라리온이었을지도 몰랐을 일이기 때문이다.

대답을 들은 아서스가 대꾸했다.

“참 한심하네요. 아니면 그게 당신네 왕조의 한계겠죠.”

그래도 성녀보단 나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식상하고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서스는 더 들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재미없는 쇼는 금방 지루해지기 마련이니까.

이에 아서스가 한쪽 손을 들어 올리자 손끝에 새카만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어둠의 창이 생성됐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죠.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네 왕조의 그 멍청함에 대해.”

“……!”

“잘 가요.”

아서스의 인사에, 헤라리온의 두 눈동자가 일순간 확장되었다.

그러나 확장된 두 눈 그대로, 헤라리온의 고개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칸의 죽음.

사막 왕국을 수호하던, 유라시아 제국보다 더 길고 찬란했던 역사를 가졌던 샤하트라 왕국의 마지막 왕은 그렇게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흐음…….”

아서스는 이어서 창을 하나 더 소환했다.

그런 다음 아직까지 숨을 헐떡이고 있는 후슬러를 향해 창을 쏘아 보냈다.

“커헉!”

던져진 창이 관통되며 단말마와 함께 후슬러의 육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로써 후슬러까지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다.

“왕께서 저승으로 행차하시는데 시종이 없어서야 쓰나?”

그것이 후슬러를 죽인 이유였다.

이로써 리자르크 언덕에 남은 다섯 중 셋이 죽었다.

아서스는 이어서 창 하나를 더 소환해 냈다.

그리고선 활시위를 겨누는 궁수처럼 헨리를 겨냥했다가, 이내 다시 거두었다.

“너는 좀 달랐으면 해, 헨리.”

그것이 헨리의 죽음을 유예시킨 이유였다.

아서스는 발걸음을 옮겨 성녀를 지나친 후 자신의 핏물 위에 쓰러져 있는 헨리를 내려다보았다.

“헨리.”

아서스가 헨리의 이름을 불렀다.

헨리의 귓가에 물에 잠긴 듯한 아서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의식 사이로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서스가 보였다.

‘아서스…….’

헥터와 헤라리온, 그리고 후슬러까지 모두가 죽었다.

헨리는 그 세 사람이 죽어 가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 가는 동안, 헨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서스가 헨리의 아킬레스건과 손목 힘줄을 모두 끊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헨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절망했다.

절망이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누적된 절망은 곧 헨리의 의식 전체를 집어삼켰고 헨리는 스스로가 만든 절망이라는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절망의 감옥에 갇힌 무기력한 얼굴을 한 헨리를 보며 아서스가 말했다.

“낯짝을 보니 너도 꼭 내게 실망을 안겨 줄 것 같구나. 하지만 그렇겐 안 되지. 넌 내 마지막 장난감이거든.”

말을 마친 아서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멀찍이서 흐느끼던 성녀가 헨리 앞으로 끌려와 내동댕이쳐졌다.

“흑흑, 흐흐흑……!”

절망의 감옥에 갇힌 것은 헨리뿐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희망을 외치던 성녀조차도, 이제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듯 산산이 부서진 정신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흐느껴 울었다.

성녀를 끌고 온 아서스가 성녀에게 말했다.

“헨리를 치료해라, 성녀. 만약 헨리를 치료해 준다면 지금 무슈로 향하고 있는 내 신도들의 이동을 멈추어 주지.”

“……!”

성녀는 아서스가 왜 헨리를 치료하려는지 알고 있다.

죽어 가는 헨리를 되살려, 다시 한번 헨리를 처절한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기 위함이란 걸 말이다.

그렇기에 성녀는 헨리를 치료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헨리에게 누적된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하니까.

하지만 성녀가 마지막까지 여신의 뜻을 따라야 한다면 성녀는 어쩔 수 없이 헨리를 치유해야만 했다.

무슈에는 신성국의 주민들을 포함해 자신을 따르던 수많은 사제들과 성전사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아직까지 맹신자가 되지 않은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있으니까.

지독한 딜레마였다.

“시, 신이시여……. 흐흑, 어찌 제게 이런…… 흑, 끔찍한 시련을……흐흑!”

아이리네는 실성한 것처럼 중얼거리며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에 흐느꼈다.

아서스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여신의 대리자인 성녀가 미쳐 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여신으로부터 받았던 치욕이 조금씩 씻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녀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하염없이 목 놓아 울기만 했다.

이에 아서스가 짜증을 내려던 찰나, 헨리가 가까스로 팔을 들어 올려 힘줄이 끊긴 손목을 아이린의 무릎 위에 올렸다.

“성녀님…….”

“마, 마법사님!”

헨리가 말라비틀어진 지푸라기 같은 목소리로 성녀를 불렀다.

이에 성녀는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진 헨리의 손을 붙잡으며 더욱더 크게 흐느껴 울었다.

헨리가 말했다.

“저를……치료해……주십시오…….”

“하지만……!”

“부탁……입니다…….”

헨리는 남은 힘을 쥐어짜 성녀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자신을 치료해 달라.

헨리 또한 성녀의 입장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성녀에게 치료받은 직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헨리의 말을 들은 성녀는 더욱더 크게 흐느꼈다.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성녀를 위해, 헨리가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헨리는 팔을 축 늘어뜨렸다.

죽은 것이 아니다.

이젠 정말로 남은 기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성녀가 죄책감을 곱씹으며 통곡했다.

그리고 끝없는 사죄와 함께 헨리에게 자신의 신력을 불어넣었다.

화아악!

성녀의 전신으로부터 밝은 빛무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성녀의 신력을 전해 받은 헨리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사이로 마치 어머니의 뱃속과도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 모리스.

헨리의 시야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낯선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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