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16화 (316/522)

# 316

위대한 원정대 (18)

원정대 앞에 남은 사도들이 소환되고 난 후, 아서스에 의해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난 뒤였다.

로난은 시야를 다시 되찾았을 때, 풍경이 변함을 알게 되었고 곁에는 킹턴만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이윽고 킹턴까지 시야를 되찾은 직후였다.

“여긴……?”

시야를 되찾은 킹턴이 방어 자세를 취하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선 환경이었다.

로난은 물론 킹턴조차도 처음 보는 그런 곳 말이다.

로난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널린 흙을 집어 들어 토양을 살폈다.

‘얼지 않았으니 북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찰기가 없으니 동쪽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쪽이나 서쪽이란 뜻인데…….’

물론 이곳에 대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둘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사전에 나누어 받은 로그 스톤이 있으니 몸만 성하니 보존하고 있으면 곧 작전대로 현자들이 자신들을 데리러 와 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때 동안 두 사람이 몸을 성히 보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로난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언제든지 방어 기제를 펼칠 수 있도록 주변 기척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때였다.

“꼭 사자 새끼들을 보는 것 같군.”

챙캉!

일순간 어느 방향에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칼을 뽑아 들어 검격을 날렸다.

부자지간.

비록 같은 핏줄은 아니었지만 한때는 부자 관계였고, 한 지붕 아래서 오랫동안 같은 검술을 나누어 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거울처럼 거의 동시에 반응했다.

뿜어진 두 검격이 상어 지느러미처럼 날아가 어느 지점쯤에서 동시에 폭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우뚝!

형체를 본적이 없는 낯선 이가 점잖은 목소리로 그만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치 마비 독에 중독된 것처럼 말이다.

“정정하지. 사자 새끼가 아니라 미친 개였군. 이렇게나 사나워서야 원……! 뭐, 그래도 짐승 싸움은 투견 싸움이 제일이라지?”

낯선 목소리의 혼잣말은 계속됐다.

그러나 그의 혼잣말이 계속될수록 두 사람은 모골이 송연해져 옴을 느꼈다.

그것은 낯선 목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원정대가 그토록 찾아 헤매며 증오해 마지않던 바로 그자의 목소리였다.

“아서스 하이랜더……!”

“정답이야.”

로난이 아서스의 이름을 부르자, 아서스는 그제야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서스는 모든 사도들이 입었지만 조금은 장식이 다른 정복을 입고 있었다.

아서스의 미모는 여전했다.

그는 여전히 길고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고 왕족 못지않은 고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딱!

그가 손을 튕기자 곧 앉을 의자가 나타났다.

물론 의자는 오직 아서스만을 위한 것이었다.

의자를 소환한 아서스는 곧 망부석처럼 굳은 두 사람 앞에 앉아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기랄……!’

그 일련의 과정이 벌어지는 동안, 로난은 어떻게든 움직여 보기 위해 안간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 보아도 움직일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동공 정도가 전부였다.

애처롭게 움직이는 로난의 동공을 본 아서스가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지그래? 괜히 지금 체력을 낭비했다간 좀 이따 후회하게 될 테니까.”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얼마 뒤에 꽤 성가신 일이 벌어질 것이란 것 정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로난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 빌어먹을 상황을 대체 어떻게 타개하느냐였다.

아서스는 한동안 두 사람의 속박을 풀어 주지 않았다.

그리곤 여느 예술가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와인 한 잔을 손에 쥐고서 두 사람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몹시 기분 나쁜 행위였다.

이윽고 아서스는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의 감상을 끝내고 난 후에야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력은 이래서 좋아. 세상 어느 힘이 상대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게 해 주겠냐고.”

‘뭐라고?’

“아아, 방금 전에 한 말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너희 두 사람만 이리로 따로 부른 건 마냥 기다리고만 있기엔 좀 심심해서 말이야. 물론 그동안 너희들의 행보를 모두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결과가 똑같아지다 보니 흥미가 좀 떨어졌거든.”

말 그대로였다.

여태껏 리자르크 언덕에서 편안히 원정대의 행보를 지켜보아 왔지만 연이은 사도들의 패배로 인해 흥이 식어 버렸다.

물론 헨리의 돌발 제안으로 상황이 좀 흥미롭게 돌아가긴 했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관전만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신의 오락거리가 되어 줄 두 사람을 따로 추려 낸 것이었다.

“서 있기 힘들지?”

딱!

아서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뻣뻣하게 굳어 있던 두 사람의 결박이 드디어 해제되었다.

그 틈에 로난이 다시 검을 뽑아 들려 했지만 아서스가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긴 순간, 두 사람의 허리에 차고 있던 검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검을 없앤 아서스가 다소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비를 베풀 때 눈치껏 기는 게 좋을 거야. 너희들은 내가 특별히 선별한 장난감들인만큼 다른 놈들과는 다른 특혜를 제공해 줄 생각이니까.”

딱!

아서스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세 사람의 눈앞에 큼지막한 화면 여러 개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화면을 본 로난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저, 저건……!’

“그래. 보이는 그대로다.”

아서스는 아끼는 보물을 자랑하듯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화면 속에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원정대원들이 있었다.

생생한 얼굴들이었다.

모두들 갑작스럽게 이동된 것에 대해 크게 당황해하고 있었다.

“어때? 모두들 내 자랑스러운 부하들과 하나씩은 꼭 진부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서 소원대로 해후를 즐길 수 있게 융통성을 좀 발휘해 봤지.”

‘융통성이라고? 설마……!’

사연, 융통성.

그 두 가지 단어에서 로난은 왜 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런 식으로 나뉘게 된 것에는 아서스의 흥미뿐만이 아니라 사도들의 취향도 섞여 있음을 알게 됐다.

“후후, 곧 재밌는 판이 벌어질 거야.”

딴에는 융통성을 발휘했다며 킬킬 웃었다.

하지만 로난이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이건 대놓고 원정대를 와해시키겠다는, 그리고 원정대가 처참하게 박살 나는 과정을 즐기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정대에는 반지 하나짜리 신력은 고사하고 신력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대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대비한 계책 또한 사전 회의에서 미리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대비책은 충분했다.

‘믿을 건 현자들뿐인가?’

로난은 불안한 눈빛으로 화면에 송출되어 나오는 현자들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해결책은 현자들과 나누어 가진 로그 스톤뿐이었으니까.

로난과 킹턴이 불안한 눈빛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자 그 모습을 본 아서스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어때? 그냥 보기엔 좀 심심하지 않겠어?”

“……무슨 뜻이지?”

“간단해. 모처럼 함께 보는 사람도 생겼는데 이 좋은 구경거릴 내기 하나 없이 그냥 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의 낭비잖아, 안 그래?”

아서스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로난은 아서스의 그런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자신감을 보고서 다소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헨리를 포함해 원정대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마지막에 웃는 것은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로난은 몹시 분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로난은 그런 오만한 생각을 가진 아서스에게, 조그마한 생채기조차 하나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괜한 객기도 자존심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비록 아서스를 쓰러뜨리는데 있어 자신이 조금의 도움도 안 될지는 몰라도 괜한 객기로 인한 개죽음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움이 못 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것이 헨리를 돕는 것이다.’

그래서 로난은 아서스의 제안에 순순히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바를 말해라.”

힘겹게, 동시에 아주 천천히.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로난이 대답했다.

그러자 로난의 대답이 몹시 만족스러운 듯 아서스가 쾌활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크하핫! 좋아!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겁먹을 필욘 없어. 너에겐 조금도 손해 볼 것이 없는 내기니까 말이야.”

아서스는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곁에서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킹턴이 순식간에 결박되어 허공 위로 떠올랐다.

“읍읍읍!”

게다가 입까지 틀어막은 것인지 킹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얼굴을 붉혔지만 단 한마디의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서스가 말했다.

“내기는 간단해. 너도 보면 알겠지만 짝을 찾은 놈들은 곧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결투를 벌일 거다. 그리고 난 내 부하들을 믿는다. 그러니 만약 곧 이루어질 대결에서 내 부하들이 이긴다면 너를, 반대로 너의 동료들이 이긴다면 이놈의 몸을 한 번씩 자르는 거야, 어때? 간단하지?”

“자르다니? 그게 대체 무슨……!”

“왜? 자신 없어서 그래? 걱정하지 마. 이놈은 몰라도 적어도 너는 몸이 잘려 나갈 때마다 바로바로 치료해 줄 테니까.”

아서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어린아이가 장난치는 수준 정도로 이야길 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어이가 없는 걸 넘어 녀석의 생각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서스의 제안에 로난이 잠깐 동안 주춤했다.

그 모습을 본 아서스가 악마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너한텐 여러모로 유리한 내기잖아? 네가 너의 동료들을 믿듯이 나 또한 내 부하들을 믿는다. 그리고 마침 넌 킹턴을 싫어하는 편이고. 게다가 이놈이랑은 다르게 너는 내가 치료까지 보장해 주기로 했으니 이만큼 너에게 유리한 게임이 어디 있지? 자, 그러니까 그런 표정일랑 짓지 말고 얼른 선택해. 이마저도 내 흥이 식어 버리면 내기의 수위를 더 올려 버릴 테니까.”

강요 아닌 강요.

협박 아닌 협박.

악마가 잔인한 내기를 제안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로난은 악마의 그림자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로난에게 주어진, 로난 몫의 ‘싸움’이었다.

* * *

로그 스톤의 발신지가 리자르크 언덕임을 확인한 헨리는 대원들과 함께 천천히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상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절했던 성녀가 깨어났고 덕분에 그녀로부터 좀 더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신차린 성녀의 입에선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기억이…… 안 나신다구요?”

“예…… 죄송합니다. 로거 님께서 저를 지키기 위해 페일로와 맞서 싸우셨다는 것까지가 제가 가진 기억의 전부입니다.”

그녀의 표정에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모두에게 미안해했고 특히나 자신 때문에 죽어 나간 로거와 아난다에게 말로 이루 표현 못할 죄책감과 감사함을 느꼈다.

이에 헨리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을 정리했다.

‘성녀의 말대로라면 아난다가 죽은 것은 확실하다. 그럼 로거가 페일로를? 아냐…… 그랬다면 그의 로그 스톤이 사라지진 않았겠지. 하지만 페일로가 로거를 쓰러뜨렸다면 성녀는 대체 왜 그냥 놔둔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난다의 죽음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었지만 로거와 페일로, 그리고 로그 스톤에 대한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동에 제약이 생겼다.

아직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로난과 킹턴의 좌표가 표시되고 있는 리자르크 언덕으로 텔레포트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헨리가 입술을 물어뜯으며 고심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발락이 말했다.

“사령관님.”

좀처럼 의견을 내지 않는 발락이었기에 그의 부름은 다소 의외의 것이었다.

발락의 목소리에, 고뇌하던 헨리가 고개를 돌려 부름에 답했다.

“왜 그러시죠?”

“정신 좀 차리십시오.”

“……예?”

“대체 뭘 망설이시는 겁니까? 당신은 우리들의 리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작해야 로거의 목숨 같은 작은 불확실성 때문에 대의까지 그르쳐서야 되겠습니까?”

“그건…….”

냉철하기 그지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발락의 말대로 아서스의 손아귀에 넘어갈 대륙의 존망에 비하면 로거의 목숨은 아주 작은 가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헨리는 그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싶지 않았고, 그런 생각 때문에 답답한 충돌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발락의 말을 곱씹을수록 헨리는 발락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발락의 말은,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잔잔한 개울 같은 대원들의 마음에 한 덩이의 바위를 던진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대원들 또한 발락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발락 님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들은 모든 사도들을 쓰러뜨렸고 이제 남은 건 아서스 그놈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장 리자르크 언덕으로 쳐들어가 놈의 숨통을 끊어야만 합니다.”

발락을 기점으로 모두의 뜻이 하나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뜻의 접점은 결국 은연중에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던 헨리의 마음에 용기라는 작은 불씨를 지피게 되었다.

결정을 내린 헨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원정대는 지금 즉시 아서스가 있을, 그리고 그곳에서 포로가 되어 잡혀 있을지도 모를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바로 리자르크 언덕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헨리는 모두에게 뜻을 전했다.

그리고 손안에 위즈덤을 소환했다.

그리고 곧바로 리자르크 언덕으로 연결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소환했다.

“갑시다.”

번쩍!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위대한 원정대의 마지막 발자취가 빛무리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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