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
위대한 원정대 (17)
페일로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단순한 따귀 세례로 성녀의 얼굴을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피떡을 만든 후에, 아서스 님께서 잘 볼 수 있도록 천천히 능욕을 진행하려 했다.
물론 개인적인 성욕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키메라가 된 이후 페일로는 삼대 욕구라고 불리는 수면욕과 식욕, 그리고 성욕 전부를 잃어버린 쪽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니까 그의 계획은 말하자면 얼마나 효과적으로 성녀의 정신을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진 셈이었다.
첫 번째 따귀를 날린 직후, 페일로는 성녀의 얼굴로부터 굉장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따귀를 날린 직후 성녀의 고개가 돌아간 반대 방향으로 핏물까지 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음?”
페일로의 손끝이 저릿했다.
의아함을 느낀 페일로는 그제야 저릿함이 느껴지는 자신의 손바닥을 펴 저릿한 이유를 확인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확인한 직후, 페일로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확장되었다.
손바닥 가죽살이 몽둥이에 두드려 맞은 것처럼 죄 터져 있었기 때문이다.
뚝- 뚜둑-.
심지어 터진 손바닥 가죽을 타고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페일로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손이…… 다쳤다고?”
분명히 따귀를 때린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손이 다친 것일까?
심지어 손바닥은 아직도 얼얼했다.
페일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연의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런……!”
콰아앙!
성녀를 붙잡고 있던 페일로의 눈앞에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흡사 마법사의 화력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의 폭발이었다.
인근의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폭발에 휘말린 것은 페일로뿐만이 아니었다.
로거에 의해 바닥에 쓰러져 경기를 일으키던 수많은 맹신자들 또한 폭발에 휘말려 곤죽이 되었다.
후두둑!
폭발에 휘말려 곤죽이 된 맹신자의 잔해들이 화산재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이에 페일로는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를 가르며 서둘러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자욱한 흙먼지를 걷어 냈을 때, 페일로는 흙먼지 사이로 뿜어지는 굉장한 양의 황금빛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태양처럼 황금빛을 내뿜는 존재.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성녀 아이리네였다.
“당신이 어떻게……?”
일전의 폭발로 인해 페일로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정돈된 옷깃들이 넝마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폭발 전체를 받아 내야만 했던 신체 전면부의 살이 터져 화상 환자의 그것처럼 끔찍한 상처들을 드러내 보였다.
“크윽……!”
페일로는 서둘러 ‘재생’을 시도했다.
재생은 키메라 특유의 특성들 중 하나였지만, 빠른 속도로, 그것도 완벽하게 다시 상처를 회복하고 재생해 내는 것은 오직 사도만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페일로가 서둘러 재생을 시도하려는 순간, 전신이 타는 듯한 작열통이 환부에 작렬했다.
“크아아악!”
굉장한 고통.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렇기에 페일로는 아찔한 고통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의아함은 배가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페일로의 고통을 지켜보던 성녀 아이리네가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하지만 몹시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페일로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페일로.
“당신이 어떻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페일로를 질책하는 아이리네.
그런 아이리네를 보며 페일로는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아이리네가 답했다.
-내 이름은 아이린. 이 아이가 모시고 있는 평화교의 주신이다.
“아, 아이린……?”
순간 페일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이린.
성녀와 비슷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 비슷한 이름이 가지는 개체의 속성은 완전히 다른 영역의 것이었다.
신.
그녀는 신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라시아 대륙민의 대부분이 믿었던, 사랑과 평화의 여신이 성녀 아이리네의 몸을 빌려 페일로 앞에 현신했다.
“이런 제길!”
쾅!
페일로는 다른 사도들에 비해 똑똑했다.
그래서 재빠르게 머리 회전을 끝낸 페일로는 두 손으로 바닥을 내리쳐 자욱한 흙먼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와의 거리를 벌린 후, 어떤 고통이 밀려오든 간에 억지로나마 상처를 재생시켰다.
“크아아아악!”
작열통 따윈 가볍게 비웃을 만한 엄청난 고통들이 해일처럼 페일로를 덮쳤다.
하지만 페일로는 견뎌 내야만 했다.
견뎌 내고 체력을 회복한 다음, 서둘러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꾸려 내야만 했다.
‘아서스 님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
여신의 현신은 그의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스의 신력을 높이기 위해 맹신자들을 늘릴 때, 페일로가 가장 신경 썼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대륙 신앙의 대부분을 점거한 평화교의 와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대륙의 절반이 넘는 대륙민들을 맹신자로 만든 이 타이밍에 여신이 강림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흐허억!”
페일로가 고통에 가득 찬 숨을 토해 냈다.
어찌 됐든 재생에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저 계획에도 없는 여신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그런데 그 순간.
피칭-!
콰과과과과!
페일로가 일으킨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수십 가닥의 황금빛 줄기가 날아와 페일로의 전신을 꿰뚫었다.
“우으읍, 커허억!”
날아온 황금빛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창과도 같았다.
흙먼지를 뚫고 들어온 황금빛 창들은, 페일로가 가진 전신의 급소를 포함해 신체 그 어느 한 군데도 빼먹지 않고 골고루 관통되었다.
관통한 뒤에도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되려 실재하는 물질처럼 점점 더 딱딱하게 굳는 바람에 마침내 페일로의 꼬락서니는 선인장에 처박힌 생쥐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허…… 허떻헤……!”
빛줄기가 관통한 것들 중에는 성대를 포함해 입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볼품없는 모양새로 빛줄기에 매달린 페일로는 줄줄 새는 발음과 함께, 운 좋게 관통되지 않은 두 눈동자만을 열심히 굴릴 수밖에 없었다.
화악-!
황금빛 파도가 뿜어지며 옅게나마 깔렸던 흙먼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성녀는 허공에 부유해 있었다.
그녀는 꼭 감았던 두 눈을 뜨고 있었다.
그 눈에는 전신에서 내뿜어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황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완벽하게 여신이 강림한 것이다.
이윽고 여신이 페일로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런 다음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가련하게 매달린 페일로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지나친 욕심이다, 야누스.
야누스.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다.
이윽고 할 말을 마친 그녀는 시선을 아주 조금 튼 다음 이번에는 정말로 ‘페일로’를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페일로를 위로했다.
“너 또한 불쌍한 영혼이로구나. 너를 이해한다, 페일로.”
“…….”
그녀가 페일로에게 위로를 건네자, 빛줄기에 꿰여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페일로의 두 눈에 새카만 동공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 죽음 짐승의 시체처럼 빛줄기에 꿰인 채 아래로 몸을 축 늘어뜨렸다.
페일로의 몸이 아래로 늘어지자, 여신은 성녀의 오른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작은 짐승의 머리를 쓰다듬듯,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이 가진 신력을 발했다.
사아아…….
그녀가 손을 움직이자 들바람에 낙엽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를 기점으로 페일로를 포함한 맹신자들, 그리고 로거와 아난다까지 모두들 한줌의 재가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이어서 노을을 연상케 하던 황금빛이 사라졌다.
허공에 떠올랐던 성녀는 천천히 대지 위로 떨어졌다.
휘오오오오!
모두가 재가 되어 날렸다.
모두가 사라진 북방의 얼어붙은 땅에는 여신이 현신했던 성녀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녀는 차디찬 언 땅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익숙한 광명이 번쩍였다.
광명이 잦아들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7현자들 중 하나인 링키 블락이었다.
“서, 성녀님!”
쓰러진 성녀를 발견한 링키가 서둘러 그녀를 들쳐 업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 * *
“이제 누가 남았지?”
하이랜더에서 바할드에게 치욕을 주었던 른다.
그리고 페이실링에서 모든 용병들을 살해하고 알렌에게 치욕을 주었던 시온까지.
이제 막 원정대에 의해 모두 살해되었다.
사도들의 부활은 없었다.
혹시 모를 두 번째 변신을 포함해 아일라처럼 흑마술로 부활하려는 놈들까지 모조리 숨통을 끊어 시체까지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물론 이렇듯 파죽지세로 사도들을 처리할 수 있었던 까닭에는 로그 스톤을 이용한 각개격파와 드라칸을 쓰러뜨리고 합류한 헨리의 힘이 컸다.
사도 시온을 쓰러뜨린 직후, 허공에서 링키 블락이 성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물었다.
“다른 분들은?”
“일단 제가 배분받은 로그 스톤이 성녀님의 것뿐인지라 성녀님만 모셔 왔습니다.”
“그래?”
개개인마다 모두 다른 로그 스톤을 주었으니 그것들을 담당하는 현자들도 모두 달랐다.
그렇기에 지금도 자리에 없는 현자들이 몇 명 정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이동하지 않고 자리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제 막 시온까지 처치하였으니 이제 정말 남은 사도가 몇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뒤에 모습을 드러낸 현자들은 의문스럽게도 모두들 하나같이 ‘빈손’으로 나타났다.
빈손으로 나타난 현자들을 보고 헨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왜 다들 빈손으로 와?”
“저 그게…….”
뒤늦게 원정대에 합류한 현자들은 모두 넷.
그들 중에는 스탠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를 대표해 스탠이 대답했다.
“로그 스톤이…… 사라졌습니다.”
“……뭐?”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로그 스톤들 중에 일부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스탠은 뒷말을 잇기 전에 헨리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대답하기 몹시 곤란하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하며 머뭇거렸다.
이에 헨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을 종용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말해!”
“로, 로그 스톤 두 개의 좌표가 리자르크 언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뭐라고?”
스탠의 보고에 자리에 있던 모든 대원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피어났다.
아니, 놀라운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악이었다.
이에 헨리가 문제의 로그 스톤을 스탠에게서 빼앗아 직접 좌표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입에서 튀어나오는 탄식.
두 개의 로그 스톤에는, 스탠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리자르크 언덕에 대한 좌표 값이 송출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리자르크 언덕으로 좌표가 송출되고 있는 두 개의 로그 스톤
두 주인들은 다름 아닌, ‘킹턴’과 ‘로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