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08화 (308/522)

# 308

위대한 원정대 (10)

“여긴…….”

시야가 바뀌었다.

바뀐 시야에 주변을 둘러보던 원정대원들은 이곳이 예의 그 골짜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곁을 지키던 동료들 또한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맥도웰이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역으로 당해 버린 것 같구먼그래.”

몇 명의 사도를 해치우고 기세 좋게 일망타진의 의견을 내놓기가 무색하게 원정대 전체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아마도 원정대의 뜻대로 휘둘리는 게 싫어 저들 나름대로 조치를 취한 듯했다.

맥도웰은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도 사전 회의 때 이야기하긴 했지만 정말로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부웅!

“……!”

화살처럼 쏘아진 살기에, 맥도웰은 자기도 모르게 몸뚱이를 비틀었다.

비튼 몸뚱이 곁에 아슬아슬한 간격 차로 거대한 풍압이 일었다.

맥도웰의 옷깃이 조금 잘려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맥도웰이 백 텀블링으로 거리를 벌린 후 허리의 검 집에 손을 올렸다.

“누구냐?”

그러나 상대는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까보다 더욱더 고요해진 침묵으로 응답했다.

맥도웰의 전신에 푸른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왼쪽.’

부웅!

맥도웰은 느껴진 기척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왼편에서 예의 풍압이 다시 한번 일었다.

‘오른쪽 아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맥도웰은 숨을 참고 느껴지는 방향을 따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비틀어 무형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경합 끝에 맥도웰이 말했다.

“네놈이군.”

맥도웰의 눈동자에 더더욱 짙은 살기가 어렸다.

보이지 않는 외형과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귀신과도 같은 기척을 기반으로 암습을 즐기는 녀석.

녀석은 비발디 타운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글러트니.”

“딩동댕.”

맥도웰이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마치 붓으로 색을 채우듯이 숨겨져 있던 녀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글러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야, 대단한데? 어째 못 본 사이에 더 강해진 것 같다?”

녀석은 넉살 좋은 아저씨처럼 말했다.

그러나 맥도웰에겐 어김없는 조롱과 비아냥으로 들릴 뿐이었다.

맥도웰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글러트니.

지난 한 달간 그 빌어먹을 이름을 가슴에 품고서 단 하루도 편히 자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처참하게 패했던 당시의 대결을 복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녀석에게 대항하기 위한 맞춤 트레이닝 또한 복기만큼이나 열심히 병행했다.

글러트니가 자신의 회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인간은 참 대단해. 분명히 숨만 겨우 붙여 놨는데 이렇게 다시 펄떡거리며 살아났잖아? 참 대단한 생명력이야. 혹시 너네…… 바퀴벌레랑 결합한 거 아냐?”

실로 키메라다운 화법이었다.

물론 제 딴에는 순수한 감탄이었겠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선 영 껄끄러우니 그다지 좋은 화법은 아니었지만.

이에 맥도웰이 말했다.

“웃기는군.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은 오히려 짐승 수십 마리를 붙여 놔도 살아남은 네놈에게나 더 어울릴 텐데?”

사실이었다.

키메라는 다른 생명체들을 한데 이어 붙여 만들어진 족속들이니까.

그러자 글러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인간인 너희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 생물의 장점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난 기꺼이 바퀴벌레의 생명력도 마다하지 않을 거거든.”

녀석은 진정한 키메라였다.

드라칸에게 상식을 전수받고 인간들을 잡아먹으며 지식을 흡수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참고 자료일 뿐.

그가 가진 키메라 특유의 사고방식은 조금도 그것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에 역겨움을 느낀 맥도웰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본 글러트니가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괜찮겠어? 너, 저번에도 나한테 볼품없이 당했잖아. 근데 반지도 하나밖에 없는 마당에 무슨 수로 나를 상대하겠다는 거지?”

글러트니는 맥도웰의 사정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러자 맥도웰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잘 알고 있네. 네 말대로 나는 지금 반지가 하나밖에 없다.”

“그렇지? 처음에 너희들이 아서스 님께 그런 제안을 했을 땐 얼마나 우스웠는지 몰라. 고작해야 여럿이 힘을 합쳐 사도 한 명이나 겨우 쓰러뜨리는 주제에 무슨 수로 우리 전부를 감당하겠다는 건지…… 너무 건방지잖아?”

글러트니는 맥도웰이 뿜어내는 살기에서 그가 과거에 겪었던 치욕과 자신에 대한 진심 어린 분노를 읽었다.

그래서 더더욱 빙글거리며 웃었고 분노를 자극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해 조롱했다.

그래야지만 맥도웰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덤벼들 테니까.

그러나 맥도웰은 찌푸렸던 인상을 펴며 글러트니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건방지다라……. 주제에 꽤나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는군. 그리고 우린 네놈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생각 없이 굴진 않아.”

“뭐?”

맥도웰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 순간, 맥도웰의 등 뒤로 무형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익숙한 낯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전 부탑장, 스탠 하디라디였다.

“맥도웰 님, 모시러 왔습니다.”

스탠이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후 맥도웰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맥도웰은 스탠의 손아귀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글러트니에게 말했다.

“잘 있어라. 망할 식충이 자식아.”

“이런!”

텔레포트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맥도웰을 보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글러트니가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나.

번쩍!

글러트니가 손을 쓰기엔 그땐 너무 늦어 버렸다.

광명과 함께 스탠과 맥도웰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광명이 다시 번쩍였을 때, 맥도웰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해 있는 이들은 바할드와 알렌 그리고 그의 부관인 워커와 헤라리온을 비롯한 몇 명의 현자들이었다.

도착한 맥도웰이 물었다.

“도착한 사람은 이게 전부야? 나머지 사람들은?”

“글쎄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뭐, 금방 오겠지. 그나저나 아서스 놈.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더니 이런 식으로 뿔뿔이 갈라놓을 줄이야. 헹, 그런다고 우리가 쉽게 당할 줄 알아?”

맥도웰은 멍청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글러트니의 표정을 떠올리며 희열을 느꼈다.

훌륭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 또한 자신들의 작전이 멋지게 먹혀들었음에 진한 희열을 느꼈다.

작전.

그것은 사전 회의에서 발제된 비책들 중 하나로, 혹시라도 아서스가 원정대를 갈라놓는 불상사가 생길 경우, 미리 짝지어 놓은 마법사들과 함께 지정된 장소로 모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헨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도착한 현자들 중 로어가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모두들 나누어 드린 로그 스톤을 반드시 소지하고 계셔야지만 저희가 여러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이게 저희 생명 줄인데 잃어버리면 곤란하죠.”

로어의 신신당부에 알렌이 조그마한 조약돌 하나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조약돌의 이름은 ‘로그 스톤’으로 마탑에서 만든 아티팩트들 중 하나였다.

로그 스톤의 기능은 간단하다.

로그 스톤은 기본적으로 한 쌍으로 제작되며 한 쌍의 로그 스톤은 서로가 어디에 위치해 있든지 간에 서로의 위치를 소지자에게 좌표 값으로 송출해 주었다.

그래서 헨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원정대원 전부에게 로그 스톤을 지급하고 7현자들에게 나누어 준 로그 스톤의 절반을 배분해 주었다.

그때였다.

번쩍!

사방에 광명들이 연이어 번쩍였다.

미리 교육 받은 대로 좌표를 보고 찾아온 현자들이었다.

그런데 텔레포트를 사용해 나타난 현자들을 보며 먼저 도착한 원정대원들이 의아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먼저 도착한 로어가 뒤늦게 도착한 현자들에 물었다.

“왜 자네들뿐이지?”

“저 그게…… 거절당했습니다.”

“뭐?”

“저희가 담당했던 분들은 모두 그곳에 남아 사도들과 싸우겠다고 하시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분명히 작전대로라면 이곳에 한데 모인 후 차례대로 사도들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었나?”

“그분들은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분들이 누구지? 지금 여기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아!”

로어는 자리에 없는 대원들이 누구인지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자리에 없는 이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난 후에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군. 하지만 작전 외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그분들뿐이니……. 서둘러 다른 분들을 모셔 오도록.”

“알겠습니다.”

로어는 빠르게 상황판단을 마치고 여전히 복귀하지 못한 인물들을 데려올 것을 명령했다.

다시 사라지는 몇 명의 현자들.

사라진 현자들을 보며 맥도웰이 물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로어 님?”

“알겠습니다. 사령관님께선 저와 로그 스톤을 공유하고 계시니 나중에라도 합류하실 것입니다. 그럼 저희들은…… 먼저 누구부터 치는 게 좋겠습니까?”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이번 원정을 위해 헨리가 원정대에게 내건 슬로건이었다.

그리고 지금, 뿔뿔이 흩어졌던 대원들 일부가 다시 한데 뭉쳤으니 사도 한 명쯤은 상대할 여력이 생겼다.

그러니 원정대의 술책에 사도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빠르게 빈틈을 파고들어 ‘사도 사냥’에 나설 생각이었다.

로어의 물음에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가장 먼저 대답했다.

“당연히 그놈부터지!”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첫 번째 사냥감이 될 사도가 정해졌다.

* * *

“제길! 제길! 제길!”

글러트니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맥도웰의 행방에 몹시 분노했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을 정도였다.

“그놈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분명히 아서스의 권능과 드라칸의 마법으로 원정대 전체를 대륙 곳곳에 쪼개 놓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 위치를 알았는지, 놈들 중 이동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들이 나타나 일부러 나누어 놓은 놈들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으아아아, 열 받아!”

쾅! 쾅! 쾅!

글러트니는 주변 지형을 부수며 자신의 분노를 마음껏 표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글러트니는 일부러 맥도웰을 골라 이곳에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여흥이 되어야 할 녀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글러트니가 아서스에게 하소연하듯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아서스 님! 이런 경우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이제 어찌해야 좋단 말입니까!”

글러트니는 알고 있다.

자기가 모시는 전지전능한 아서스라면 반드시 이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걸.

그래서 최대한 억울하다는 모양새로 아서스에게 하소연했다.

이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서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자신의 수하가 한 방 먹어 얼굴을 붉히는 것 자체가 몹시 우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이젠 정말로 조치를 취해 줘야만 했다.

‘흐음, 이를 어쩐다……?’

아서스는 고민했다.

자신에게 제안을 건 헨리가 괘씸하여 원정대를 일부러 갈라놓은 것인데, 놈들이 도리어 이것을 역이용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금지시켰던 텔레포트까지 사용하다니, 더더욱 괘씸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텔레포트의 대상이 자신이 있는 리자르크 언덕이 아니었으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명령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구슬프게 하소연하는 글러트니 앞으로 거대한 광명이 번쩍였다.

번쩍!

빛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사그라든 빛무리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글러트니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씨익.

허리의 검 집에서 검을 뽑아 들며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이, 그는 다름 아닌 맥도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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