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위대한 원정대 (8)
흑마술.
최초에는 흑마법이라 불렸지만 마탑에서 다른 마법들이 흑마법과 같은 마법으로 취급되는 게 싫다는 이유로 마법에서 마술로 이름을 바꾼 것이 이름의 유래였다.
마법과 흑마술은 그 근간부터 궤를 달리한다.
마법은 최소한의 인륜을 지키며 순수하게 마력으로 만들어 낸 힘을 마법이라 부른다.
하지만 흑마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굳이 순수한 마력일 필요가 없다.
혈액, 생명력, 정기 등등.
에너지라 일컬어지는 모든 것들을 원동력삼아 인륜과는 관계없이 모든 초월적인 힘을 일컬어 흑마술이라고 칭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마력만으로 불로장생의 비밀을 파헤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로장생은 늙고 병들지 않으며 영원히 산다는 뜻인데, 늙고 병듦의 근간에는 시간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칸은 타인의 생명력을 원동력 삼아 불로장생을 이루어 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칸의 리본을 ‘마법’으로 인정해 주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크하하하! 소용없습니다! 이까짓 공격 따윈!”
하늘을 가득히 수놓았던 매직 애로우들이 마치 피라냐처럼 끊임없이 드라칸의 육신을 뜯어 놓았다.
하지만 육체가 뜯기거나 말거나 드라칸은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아했다.
헨리가 쏘아 보낸 마력 화살들 중에는 최악의 고통이라 불리는 작열통을 일으키는 화살들 또한 대거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좀 전부터 헨리는 자신의 마음을 우롱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한층 더 고통스럽게 마력 화살을 강화시켰다.
그래서 헨리는 여전히 여유를 부리는 드라칸에게 더더욱 맹렬한 마력 화살들을 퍼부었다.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비웃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
드라칸의 육체는 쉴 틈 없이 뜯겨져 나가며 허공에 피를 뿌렸다.
그러나 그 피가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다른 화살들에 의해 증발되기 일쑤였다.
매직 애로우는 쉴 틈 없이 쏟아졌다.
화살이 부족하면 헨리는 추가로 더 많은 화살들을 만들어 냈고, 추가로 만들어 낸 화살들에 더더욱 고통스러운 주문을 부여했다.
“실망스럽군요! 고작해야 이것이 8서클의 힘이란 말입니까?”
쏟아지는 화살 때문에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상황에서도 드라칸은 순전히 리본의 힘을 믿는 것인지 여전히 배짱을 부렸다.
이에 약이 바짝 오른 헨리는 더더욱 냉소 짙은 표정을 하고서 매직 애로우 생성에 집중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수많은 마법들을 쏟아 내도 드라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래서 헨리의 화 또한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헨리의 매직 애로우는 어느새 ‘화살’의 형태가 아닌 ‘창날’의 형태로 바뀌어 갔다.
매직 스피어.
같은 맥락의 마법이었지만 길이가 더욱 더 길어짐으로써 대상에게 전해지는 고통의 시간도 길어진 것이다.
그리고 길어진 마법의 길이만큼이나 헨리의 분노 또한 짙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대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계속해서 연이어 터져 나갔다.
드라칸은 자신의 살결을 때리는 마법이 애로우에서 스피어가 됐음을 알자마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웃음을 터뜨리는 중간에도 그의 얼굴 일부가 날아가고, 어깻죽지가 관통되었으며, 허벅지가 찢겨져 나갔다.
헨리의 마법 세례를 온몸으로 견뎌 냄으로써 쉰 명 정도에 해당하는 여분의 목숨을 사용했다.
이윽고 드라칸이 말했다.
“정말이지 못 봐 주겠군.”
드라칸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목숨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쉰 명의 목숨을 대가로 리본의 위대함을 증명해 냈으니 꽤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드라칸이 폐부 가득히 공기를 들이켰다.
그러자 드라칸의 가슴이 개구리의 그것처럼 거대하게 부풀었다.
이에 헨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뒤로 물러나면서도 쏟아 내는 화력은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그러나 드라칸의 몸뚱이가 복어처럼 점점 더 커질수록 헨리의 매직 스피어들은 점점 더 힘을 잃었다.
아니, 매직 스피어가 힘을 잃었다기보다는 드라칸의 몸뚱이가 몹시 단단하게 강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라칸에게 매직 스피어가 통하지 않게 되자, 헨리는 어쩔 수 없이 쏟아 내는 창날 세례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부푼 몸에 의해 목이 거의 파묻힌 드라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이윽고 복어처럼 거대하게 부푼 드라칸의 몸뚱이가 아랫배부터 갈라지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
드라칸의 몸뚱이가 갈라지며 엄청난 에너지의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바람처럼 무색에 가까웠으나 폭발 속에 담긴 열기는 굉장히 뜨거운 것이어서 인근에 자라나 있는 초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굉장한 온도의 열풍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열풍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헨리는 매직 실드로 그것을 막아 냈다.
그러면서도 헨리의 두 눈은 여전히 드라칸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열풍을 쏟아 낸 드라칸의 몸뚱이가 물에 젖은 가죽처럼 축 늘어졌다.
그리고 늘어진 가죽 사이로 우뚝 솟은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형상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굴곡이었다.
굴곡이 움직였다.
그리고 굴곡 너머로 날카로운 꼭짓점이 하늘로 치솟으며 축 늘어진 드라칸의 살가죽이 꼭짓점을 따라 팽팽하게 늘어났다.
꼭짓점에 걸린 살가죽은 드라칸의 등가죽이었다.
등가죽은 점점 더 날카롭게 치솟았다.
그리고 마침내 날카로움을 견디지 못한 살가죽이 찢어졌을 때쯤, 헨리는 벌어진 살가죽 사이로 여느 마물이 가진 날카로운 발톱을 볼 수 있었다.
‘발톱?’
발톱을 기점으로 늘어난 살가죽이 아래로 떨어지며 가죽이 감싸고 있던 실루엣이 정체를 드러냈다.
그러나 형체를 드러낸 그것은, 전에 보았던 드라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안에 든 것은 괴물이었다.
그것도 헨리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태의 ‘괴물’ 말이다.
“저건…….”
눈앞의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괴물 이외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만큼 눈앞의 존재는 정말 해괴하기 짝이 없는 외형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헨리의 입에서 알맞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키메라?”
불현듯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괴물 대신 ‘키메라’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키메라.
저것은 키메라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헨리의 말에 드라칸이 대답했다.
“후후, 키메라가 아닙니다. 저는 다시 태어난, 그리고 훨씬 더 위대하고 우월하게 진화한 ‘인간’입니다.”
괴물의 형상을 하고서 자신을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드라칸.
무지막지한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만큼은 그대로였기에 오히려 그러한 점이 더욱 더 그로테스크 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드라칸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쭉 내밀고 진화 과정에서 묻어 나온 전신의 체액들을 털어 냈다.
뱀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구렁이 같은 하체.
그 위에 달려 있는 오우거 특유의 비대하고 강건한 상체.
등에는 어느 생물의 것을 떼어 왔는지 모를 엄청난 크기의 날개가 두 쌍이나 달려 있었으며, 가슴팍에는 보통 사자의 것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사자 머리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최정상 위에는 핏기가 창백하다 못해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는, 귀신같이 긴 머리를 가진 드라칸의 ‘원래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드라칸이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터질 듯한 가슴 근육에 붙은 사자머리가 그 위용을 뽐내려는 듯 아가리를 벌려 보였다.
드라칸이 말했다.
“이것이야 말로 리본이 가진 진정한 힘! 저는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인간학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진리는, 바로 더 나은 생물체로써의 진화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랬다.
순수 인간학만을 고집해 온 드라칸이 내린, 그만의 철학이자 그만의 고집이 만들어 낸 결정체가 바로 눈앞의 저 이름 모를 괴물이었던 것이다.
드라칸은 허물이 된 자신의 살가죽을 뜯어낸 날카로운 손톱을 들어 헨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백 명의 생명! 그리고 백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장점만을 끌어모아 만든 이 육체! 이 육체야말로 세상 그 어떤 생명체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바로 진보된 인간학의 정점입니다!”
쩌렁쩌렁!
단순한 외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고막이 터질 뻔했다.
만약 미리 전개해 둔 매직 실드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고막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이에 헨리가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매직 실드를 강화했다.
흉흉한 기세.
드라칸은 그간 숨겨 왔던 진짜 육체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굉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던 헨리는 그제서야 확실하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
‘확실해. 저놈은 미쳤어.’
지식의 저주에 광기와 오만이 뒤섞여 만들어진 탐욕의 결과물.
그것이 바로 현재의 드라칸이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군.’
헨리는 손을 뻗어 콜소드를 소환했다.
그리고 전신에 에메랄드 빛 오러를 방출시키기 시작했다.
‘녀석이 오만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서스에게서 받은 신력을 꺼내 들었을 테니까.’
녀석은 지금 자신이 이룩한 결과물에 심취, 아니 만취해 있었다.
그래서 분명히 헨리와 한 등급씩이나 서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수제자라는 이유만으로 8서클을 이룬 헨리쯤은 가벼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착각은, 드라칸이 오랫동안 꿈꿔 왔던 인생의 최종 목표이기도 했다.
헨리가 소환한 콜소드를 바로 쥔 후 바닥에 발을 굴렸다.
그러자 좀 전부터 방출되고 있던 에메랄드 빛 오러가 더욱 더 맹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드라칸이 말했다.
“에메랄드 빛 마력! 그러고 보니 당신은 순수한 마법사가 아니었죠?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 위대한 대마법사의 수제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명성을 드높이진 못할망정 마법사가 검술 따위를 익힐 생각을 하다니!”
“착갑.”
지이잉!
그러나 드라칸이 헨리를 비웃든 말든 헨리는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콜소드를 쥐고 콜아머를 착용한다.
그리고 환생한 직후부터 줄곧 애용해 왔던 마법 무장을 온몸에 둘렀다.
“크하하하! 어디 한번 해 보십시오! 마검사라구요? 웃기지 마십시오! 당신의 그 비겁한 선택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지 똑똑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콰앙!
헨리의 전신에 투명한 에메랄드 빛을 뛰어넘어 소나무 이파리 색과 같은 짙은 녹색의 오러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라칸의 육신에는 녹색 빛과는 확연하게 대조되는 핏빛보다 훨씬 더 짙은 붉은 오러가 지옥의 혓바닥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키아아아아!
드라칸이 포효하자 드라칸의 가슴팍에 달린 사자 또한 목청껏 포효하기 시작했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소름 끼치는 울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포효가 끝남과 동시에 드라칸은 두 쌍의 날개를 펼쳐 헨리에게로 날아들었다.
헨리는 정자세를 취했다가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첫 발짝을 내디딤과 동시에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일으켰다.
콰직!
포효하는 괴물에게로 몸을 내던지는 대륙 최초의 마검사.
속도는 괴물이 더 빨랐다.
그 덩치에서 나오는 속도라곤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대비되는 색체의 두 존재가 포개어지는 순간, 짙은 녹색 빛이 붉은 대해를 갈랐다.
화아아악!
대해와도 같은 붉은 오러가 갈라지며 녹색 빛이 드라칸을 집어삼킨 순간, 두 개의 광명을 기점으로 거대하고 새하얀 광휘가 번쩍였다.
그리고 얼마 뒤 안개가 걷히듯이 광명이 잦아들었을 때, 헨리는 드라칸의 뒤편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리듯 콜소드를 대각선으로 치켜들고 있었다.
“어, 어……떻게……?”
헨리의 뒤편에서,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드라칸이었다.
드라칸은 가슴팍에 달린 사자의 아가리부터 뱀의 꼬리까지 이어진 기다란 검흔을 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분명하게 확신했던, 육체 진화의 집합체라고 믿었던 자신의 육체가 베어진 것에 대한 충격 때문에 목소리가 떨린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그래 봤자 넌 7서클이라고.”
“허튼 소리이!”
나지막이 자신을 비웃는 헨리를 향해, 드라칸은 갈라진 몸뚱이의 하체가 기울어지든 말든, 붙어 있는 날개를 이용해 헨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드라칸이 헨리를 향해 몸을 날린 그 순간, 헨리가 말했다.
“클레버.”
-예, 주인님!
텁!
순식간에 사라진 드라칸.
헨리의 눈앞에는, 이제는 인간의 그것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 드라칸의 하반신만이 꿈틀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