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
위대한 원정대 (7)
‘붉은 빛?’
전신에 흐르는 기운이 마나 특유의 푸른색이 아닌 붉은색임을 본 헨리는 잠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란 헨리의 얼굴을 본 드라칸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손뼉을 쳤다.
짝!
박수 소리가 울리자 드라칸 주위의 공기가 소용돌이처럼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공기층 사이로 창날을 닮은 가시들이 토해져 나왔다.
“예거람프의 질투.”
파샤샤샤!
드라칸은 기마병들의 랜스를 닮은 날카로운 가시들을 소환했다.
그러고는 곧장 솜씨 좋은 궁수 부대처럼 끊임없이 헨리를 향해 가시들을 쏘아 냈다.
그러나 헨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무언으로 매직 실드를 전개해 드라칸의 가시들을 막아 냈다.
매직 실드에 가시들이 부딪히며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가시들이 헨리의 매직 실드를 뚫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소용없어.’
이에 헨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나마 놀라긴 했다.
푸른색 마력이 아닌 다른 색채의 마력을 가진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녀석은 자신처럼 검술을 수련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색체만 특별했지 가진 성질 자체는 자신의 마력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기대했던 것 자신에게 허탈함을 느꼈다.
헨리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맹수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
상대가 한 단계 낮은 등급의 7서클의 마법사라지만 사실 7서클이라는 등급 자체는 결코 무시해선 안 될 경지다.
또한 녀석은 아서스에게 붙은 마탑의 더러운 변절자, 그렇기에 방심해선 안 될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속셈을 드러내라, 드라칸.’
가시는 여전히 매직 실드에 부딪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헨리는 전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이 다른 술수를 부리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녀석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헨리가 하늘 위로 두 손을 뻗었다.
그런 다음 흡사 천장에 붙은 가죽을 떼어 내듯 허공을 한껏 움켜쥐고서 아래로 잡아끌어 당겼다.
그것도 드라칸을 향해서 말이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그 흔한 경고음조차 없이 순식간에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파지지지짓!
아서스가 무슈에 나타났을 때와 같은 그런 종류의 벼락이었다.
영창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 벼락쯤은 헨리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자연의 마력과 호흡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파지짓!
벼락은 3초 정도 지속된 후에야 비로소 기세가 한풀 꺾여 나갔다.
헨리는 시선을 옮겨 벼락이 떨어진 자리를 보았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는 작은 크레이터와 더불어 까맣게 타들어 간 큼지막한 석탄 같은 물체가 있었다.
드라칸이었다.
적어도 헨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죽은 건가?’
매직 실드를 두드리던 가시는 어느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만큼 헨리가 쏘아 보낸 벼락이 굉장히 위협적이었단 뜻이었다.
헨리는 크레이터 주변에 여전히 흐르는 전류를 눈으로 한 번 흘겨본 후 석탄을 닮은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탄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바닥의 흙마저 검게 타 버렸다.
그 어떤 생물체라도 좀 전에 내리쳤던 벼락을 버텨 내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헨리는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다.
대신 허공에 한 번 더 손을 휘저어 석탄 위로 거대한 암석을 소환했다.
그런 다음 ‘드라칸이었던’ 까맣게 탄 물질 위로 그것을 떨어뜨렸다.
슈우웅!
소환된 암석의 목적은 단연코 완전한 압사였다.
암석은 중력과 뒤섞여 제법 무서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까맣게 탄 물질 위로 사정없이 낙하해 움푹 파인 크레이터 위로 자신의 몸을 끼워 넣었다.
사방에 벼락에 탄 재와 더불어 흙먼지들이 가득하게 일었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하지만 헨리는 좀처럼 찝찝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내가 놈을 너무 과대평가한 건가?’
자력으로 7서클을 이뤄 낸 놈치곤 전투 센스가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그래서 헨리는 급기야 자신이 놈을 너무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때쯤 헨리가 떨어뜨린 암석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그리고 균열 끝에 암석이 정확히 두 쪽으로 쪼개졌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듯했다.
헨리는 쪼개진 암석 사이로 까맣게 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드라칸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걸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좀 전에 석탄이 되었던 드라칸에게서 맡았던 죽음의 향기는 진짜였다.
이에 헨리가 물었다.
“어떻게 한 거지? 너는 분명히 죽었는데?”
살아오면서 숱한 목숨을 쥐락펴락했던 인물이 바로 헨리였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헨리는 분명히 드라칸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드라칸은 부활했다.
그것도 아무런 마력의 파동도 일으키지 않은 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의아했던 것이다.
헨리의 물음에 드라칸이 답했다.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립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전 분명히 죽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났죠. 바로 제가 발명한 힘에 의해서 말입니다.”
“발명한 힘? 아서스의 힘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아, 물론 제가 가진 마력의 색체를 보고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다곤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보여 드린 이 힘은, 분명히 제가 독자적으로 만든 ‘저의 힘’입니다.”
“그렇군.”
마법사들은 대게 자기애가 강하다.
특히 그러한 성향은 고위 등급의 마법사가 될 수록 더욱더 심해지며 혹여 위대한 발견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사랑은 절정에 치닫게 된다.
드라칸이 지금 딱 그랬다.
드라칸은 스스로 7서클을 이뤄 낸 인물.
더불어 마탑의 만년 마도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힘의 구분은 절정에 치달은 자기애 때문에라도 확실하게 구분 지어야만 했다.
게다가 드라칸은 헨리에 대한 열등감 또한 절정에 치달은 상태.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헨리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각인시키고 싶어 했다.
이어서 드라칸이 말했다.
“그러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저는 아서스 님께 하사받은 힘이 아닌, 순전히 제 스스로 터득한 힘만으로 당신을 쓰러뜨릴 생각이니까요.”
자신감에 찬 두 눈.
드라칸의 그런 두 눈을 본 헨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마음, 절대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군.”
헨리는 저런 드라칸의 모든 행동들이 순전한 객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반가운 발언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드라칸의 성향이 겸손하여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서스의 신력이라도 빌리려 한다면 그것이여말로 헨리에겐 진정한 위기였으니까.
그렇기에 드라칸이 보여 주는 저런 식의 열등감은 헨리에겐 그저 승리를 완성시키는 결정적인 퍼즐 조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헨리가 한쪽 손을 반쯤 들어 올렸다.
우웅!
단지 손을 들어 올려 의지를 발산했을 뿐인데 헨리의 주변으로 극심한 마력 파장이 일어났다.
이로써 대자연에 녹아든 마나들이 얼마나 헨리의 반응에 잘 공명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그럼 어디 그 잘난 힘으로 이것도 한번 막아 보지 그래?”
화악!
헨리의 경고가 끝난 순간, 헨리와 드라칸의 주위에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엄청난 수의 마력 화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지지짓……!
화르륵!
휘오오오……!
소환된 마력 화살들은 매직 애로우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직 애로우들은 마치 성난 맹수처럼 각기 다른 속성들을 띠고서 거칠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어려운 마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가지 속성이 아닌 수백 개의 속성을, 그것도 한꺼번에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매직 애로우는 가장 기초적인 공격 마법들 중에 하나이니만큼, 술자가 가진 마법적 역량을 보여 주기엔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이를 테면 그런 것이다.
나는 이만큼 어려운 일을 손쉽게 해내니 네가 보여 준 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법사들 특유의 기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이번에는 헨리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드라칸을 내려다보았다.
그 광경을 본 드라칸이 말했다.
“각기 다른 속성들을 띤 매직 애로우라……. 얼핏 보면 매우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마도사 정도만 되도 활용할 수 있는 테크닉들 중에 하나라죠?”
“그래? 그렇담 이 정도 화살 세례쯤은 우습게 막아 내겠군.”
“제가 보통의 마법사였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곧 유일한 대마법사가 될 특별한 존재입니다.”
“건방이 지나치군.”
건방짐도 처음에나 귀엽게 느껴지지 지속되면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헨리는 거침없이 오만함을 표출하는 드라칸을 향해 들어 올린 손을 앞으로 그었다.
정직하게 그어지는 선.
헨리가 손을 휘두른 방향을 따라 허공을 가득 메운 매직 애로우들이 폭포에 휩쓸린 물고기 떼처럼 무수히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흡사 수억 개의 별똥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떨어진 별들은 감히 인간의 병기 따위로는 낼 수 없는 파괴적인 소리들을 내며 무참히 드라칸의 존재를 지워 나갔다.
* * *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조종하며 헨리는 팔짱을 낀 채 무심한 표정으로 드라칸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쏟아지는 화살 세례가 만들어 낸 자욱한 흙먼지뿐이었다.
물론 뿜어진 흙먼지들은 헨리의 옷자락을 조금도 더럽히지 못했다. 헨리에겐 매직 실드가 전개되고 있었으니까.
헨리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헨리의 눈동자가 보고 있는 것은 매캐한 흙먼지 따위가 아니었다.
‘확실히 이상하군.’
헨리가 주시하고 있는 것은 흙먼지 속에서 사라졌다가 생겨났다가 하는 드라칸의 ‘생명력’이었다.
신기했다.
아니, 신기하다기 보단 실은 기괴한 느낌에 가까웠다.
헨리는 분명히 자신의 마법으로 인해 드라칸이 죽었음을 느꼈다.
매직 애로우는 여전히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쏟아지는 파괴의 화살 사이로 드라칸의 생기는 무수히 꺼졌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헨리는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향해 흙먼지 전체를 거둬 낼 거대한 돌풍을 일으켰다.
휘오오오!
돌개바람이 파괴의 현장을 급습했다.
그러자 흙먼지 사이에 가려져 있던 파괴 현장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파괴 속의 민낯이 드러났을 때 헨리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 저게 지금 무슨…….”
너무 어이가 없어서 육성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헨리의 시선이 닿은 자리에는 매직 애로우에 의해 전신이 꿰뚫리고 곤죽이 된 드라칸의 시체가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탈피’되고 있었다.
헨리는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한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그것은 폭주하는 마법 세례를 중단시키는 명령이었다.
이에 날카롭게 날아들던 화살 세례가 멈추고 그사이에 드라칸은 채 벗지 못한 껍데기를 마저 벗으며 매끈하게 돋아난 새로운 몸뚱이를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드라칸이 새롭게 탈피한 직후,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헨리와 시선을 마주쳤다.
“후후.”
이에 녀석은 제법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니 자랑스러운 게 아닌 몹시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한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보셨습니까?”
“지금…… 뭘 한 거지?”
“방금 보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는 이 같은 과정을 일컬어 리본(Reborn)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리……본?”
“그렇습니다, 리본입니다! 저를 7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게 해 준, 제가 만들어 낸 세상에 단 하나뿐이며 독자적이고 위대한 마법! 단언컨대 이 마법은 세상에 퍼진 인간학 마법들 중 단연 최고의 마법으로 칭송받을 것입니다!”
드라칸은 자신 있게 외쳤다.
리본!
말 그대로 술자를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그리고 드라칸은 리본을 개발함과 동시에 모든 마법사들이 꿈꾸는 7서클의 경지에 도달하며 새롭게 육체가 재구성되는 ‘각성 현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에 드라칸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헨리를 보며 더더욱 기세등등해진 목소리로 ‘리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 마법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죄수들이 희생되었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허물을 벗음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는, 위대한 파충류의 마법을 보고서 리본의 비밀을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인간 또한 파충류처럼 허물을 벗으면 된다는 것을 말이죠! 그렇게 해서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인간의 불로장생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
탈피, 재탄생, 그리고 불로장생의 비밀.
지금 드라칸이 말하고 있는 것들은 아군과 적군임을 떠나 마법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말이지 대단한 발견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헨리는 깜짝 놀랐다.
아니, 깜짝 놀란 정도가 아니라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그 말이 이렇게 적용될 줄이야…….’
삐뚤어진 천재의 위대한 발견.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드라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성향이 어찌 됐든 난제라고 불렸던 불로장생의 비밀을 풀어 낸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에 흥이 오른 드라칸이 말했다.
“지금 제 몸속에는 오백 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어떤 상처를 입어도 최대 오백 번까진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셈이죠.”
“……뭐?”
“뱀의 탈피를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린 파충류가 아니기에 새로운 육체가 없다면 결코 탈피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여분의 육체를 제 몸 안에 심어 두는 것! 이것이 바로 리본의 비밀입니다!”
“이런 미친놈이……!”
헨리는 쥐었던 주먹을 다시 펼쳤다.
그러자 자랑스레 외치던 드라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서 멈추었던 매직 애로우들이 다시금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헨리가 경멸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이런 미친 ×끼……! 잠시나마 감탄했던 내가 바보였지!”
감탄했던 헨리가 욕지거리를 뱉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드라칸이 개발해 낸 마법이 마탑에서 절대적으로 금지시켰던 흑마술의 한 종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