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
위대한 원정대 (5)
“정의는 승리한다.”
흑마술로 다시 부활한 아일라에게 두 사람은 예고했던 대로 신성한 가르침을 내려 주었다.
잿더미가 된 아일라.
후슬러의 말대로 아일라는 흑마술로 다시 부활하였기에 절대로 로거와 아난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걸로 네 명째로군요.”
헨리는 아일라였던 잿더미를 내려다보며 수를 헤아렸다.
이로써 네 명의 사도를 해치운 셈이었다.
“사도가 모두 아홉이었으니 이제 그럼 다섯이 남은 겁니까?”
“변수가 없다면 그렇겠죠.”
“귀찮은 놈들……. 왜 한꺼번에 덤비지 않고 쥐새끼처럼 한 마리씩 나오는 건지, 원.”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우릴 어지간히 깔보지 않는 이상, 반절이 죽어나갔으니 이제 그만 한꺼번에 덤빌 때도 됐잖아!”
기세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에 원정대원들 중 일부가 한놈씩 해치우는 것에 굉장한 귀찮음을 느꼈다.
하지만 제법 일리가 있는 귀찮음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그럼 막연하게 기다리지 말고 저희가 먼저 사도들을 습격하는 건 어떨까요?”
“예?”
“뭐?”
분명히 불만을 내뱉긴 했지만 이렇게나 쉽게 해결책을 내놓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맥도웰을 포함해 불평을 내뱉던 이들 모두가 크게 당황했다.
그들의 표정을 본 헨리가 말했다.
“여러분들의 말씀이 맞습니다. 좀 전의 아일라는 자기 스스로를 사도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위력과 더불어 저희들의 전력 또한 어느 정도 비견될 터이니 아주 불가능한 전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불평이 의견이 되었고 의견은 곧 추진력 있는 리더에 의해 재빠르게 검토되었다.
그리고 결론으로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조차 얼마 걸리지 않았다.
헨리의 의견에 모두가 수긍했다.
“저는 그 의견에 찬성합니다. 어차피 해치워야 할 놈들이라면 저희가 먼저 기습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헨리의 의견을 강력하게 수긍하는 건 발락이었다.
발락은 한 시라도 빨리 아서스 그놈에게 정의의 철퇴를 먹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 다들 수용하는 걸로 알고 사도 탐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저, 잠시만!”
“음?”
사도 탐지를 시작하려는 그때, 누군가 어정쩡한 목소리로 흐름을 방해했다.
이에 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향해졌다.
킹턴이었다.
“무슨 일이지, 킹턴?”
헨리는 한숨을 내쉬며 킹턴에게 물었다.
킹턴은 원정대원들 중에서도 헨리가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존재.
더불어 원정대 내에서도 서열이 제일 낮고 신뢰가 낮은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헨리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헨리를 기점으로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며 킹턴을 흘겼다.
“그, 그게…… 실은 좀 전에 아일라를 격퇴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반지를 몰아주어서 그런 게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의 절반을 해치워서 사기가 높아진 것은 알겠지만,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하나씩 격파해 나가는 쪽이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대마법사님?”
다른 원정대원들의 눈총이 쏟아졌지만 킹턴은 끝끝내 자기가 뱉고 싶은 의견을 말했다.
그리고 그 의견은, 킹턴의 성격에 기반한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다.
헨리가 답했다.
“맞아. 그 말도 일리가 있어.”
“그,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여느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쟁 같은 게 아니라 아서스 한놈을 잡아 죽이기 위한 신중한 토벌이니만큼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헨리가 킹턴의 의견에 공감을 표하자 킹턴은 그것에 용기를 얻어 더욱더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그러나 킹턴이 말하는 내내 다른 대원들 모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왜 웃는 거지?’
정론대로라면 킹턴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킹턴이 제법 옳은 의견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이 킹턴을 비웃는다는 건 킹턴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헨리가 말했다.
“킹턴, 너는 로난 덕분에 무슈에서 지낼 수 있게 됐어. 그렇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네가 가진 검술 실력을 인정받아 이번 원정대원으로 발탁된 것이기도 하고.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모르는 것들이 좀 있어. 너 또한 원정대원이니만큼 최종 회의에 들이긴 했지만 우리에게 신용을 잃은 만큼 회의 정보를 전부 알려 주지는 않았단 뜻이야.”
“예? 그렇다면…….”
“네가 걱정하는 부분은 이미 사전 회의에서도 나온 이야기야. 하지만 우린 몇 번의 전투를 통해 실력을 확신하게 됐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작전을 펼치려는 것뿐이란 소리지.”
헨리의 조곤조곤한 답변에 킹턴의 얼굴이 금방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곧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을 내놓았다.
“……그렇군요.”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군. 그럼 더 이상 질문은 없는 걸로 알고 사도 탐지를 시작해도 될까?”
“무, 물론입니다, 사령관님.”
“좋아. 그럼 지금부터 사도 탐지를 시작해야 하니 뒤로 몇 발자국만 좀 물러나 주겠어?”
킹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아마도 바보 취급을 받은 것에 대한 수치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킹턴을 위로해 주지 않았다.
‘자업자득이지, 뭐.’
헨리 또한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윽고 킹턴을 뒤로 물린 헨리는 곧바로 ‘스칼’을 소환했다.
그렇다.
스칼이 바로 숨어 있는 사도들의 위치를 알아낼 사도 탐지기였던 것이다.
-사도 탐지 때문에 날 불렀지?
“역시 알고 있었네?”
-그럼. 나는 이계에서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알면 바로 시작해. 대가는 나중에 줄 테니까.”
-알겠다.
헨리가 전생의 경지였던 8서클에 접어들게 되면서 스칼은 더 이상 헨리에게 거래에 대한 대가를 독촉하지 않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8서클씩이나 되는 마법사는 스칼에게 있어 최고의 신용을 가진 고객인 셈이었으니까.
스칼이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스칼의 힘이 발동되면서 대원들 눈앞으로 커다란 지도가 나타났다.
스칼은 능숙한 모양새로 지도 위에 헨리가 설정한 루트들을 표기했다.
그리고 그 루트 위에, 아서스가 나누어 심어 놓은 사도들의 위치가 차례대로 드러났다.
사도들의 위치를 확인한 맥도웰이 말했다.
“정말 정직하게 가는 길목마다 한 명씩 배치해 놨군.”
예상대로였다.
아서스는 자신이 있는 리자르크 언덕까지 길목마다 사도들을 수문장처럼 배치해 두었다.
이에 반이 말했다.
“이러한 배치는 역시 우리들을 깔보아서겠지. 아서스를 포함해 죄다 오만한 놈들뿐이로군.”
“음, 사도들의 위치를 파악한 건 좋지만 이렇게 되면 사도 놈들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계획은 좀 힘들겠는데요?”
“그렇습니다. 사도들에게 직접 초대장이라도 발부하지 않는 이상, 녀석들은 배정받은 길목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쯧, 여러모로 귀찮게 됐군.”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위치라도 확인했으니 이동 중에 긴장은 좀 덜 수 있겠어요.”
사도들의 위치를 확인한 대원들은 확인된 위치들을 토대로 새롭게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에 언급했던 대로 사도들에게 직접 초대장이라도 발부하지 않는 이상 사도들을 한 군데로 불러 모으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뭐 좋은 방법 없나?’
지름길을 눈앞에 두고 굳이 번거롭게 돌아가려 한다고 생각하니 헨리는 효율을 따지는 마법사의 체질상 몹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마음을 접고 원래 계획대로 이동하려고 했다.
아니, 이동하려는 찰나에 헨리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모두들 잠시만요.”
좋은 생각을 떠올린 헨리는 대원들의 이동을 저지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떠오른 의견을 모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헨리가 말을 마쳤을 때 헨리의 의견을 들은 대원들 중 일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그게 과연 통할까요, 사령관님?”
“어차피 시도해 봐도 잃을 게 없는 장사입니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래 하려던 대로 이동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 계획은 당연히 사령관님께서 하시겠지요?”
“물론입니다.”
헨리의 의견이 곧 수렴되었다.
그리고 의견을 발의한 헨리가 직접 그 계획을 실행키로 마음먹었다.
이에 스칼 또한 헨리가 말한 계획을 듣고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며 이계로 돌아가는 것을 잠시 보류하였다.
제이드 위에 올라탄 헨리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아서스, 좀 전에 내가 모두에게 설명했는데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네 의견은 어때? 이대로 가다간 네가 아끼는 사도들 전부가 우리 손에 격파될 것 같은데 말이야.”
헨리의 초점은 무언가에 특정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하늘을 보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도들에게 직접 초대장을 발부하지 못한다면, 사도들을 통제하는 아서스에게 직접 제안을 하면 될 일이었다.
“…….”
이어지는 침묵.
얼핏 들으면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를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아서스가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확신도 없었을뿐더러 이런 식으로 적과 소통한다는 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는 확신했다.
아서스는 자신의 여흥을 위해 일부러 리자르크 언덕이라는 먼 곳으로 헨리를 초대했고 조금이라도 더 여흥을 즐기기 위해 길목마다 사도들을 배치했다.
게다가 좀 전에 흑마술로 다시 부활한 아일라를 미루어 보건데, 아서스는 분명히 어디선가 원정대를 지켜보며 상황에 개입하고 싶어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침묵은 좀 더 이어졌다.
헨리가 하늘을 바라본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방향에서 아서스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진 모르겠지만, 신 흉내를 좋아하는 놈이니 왠지 모르게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아서 하늘을 본 것뿐이었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질수록 마침내 민망함을 참지 못한 맥도웰이 헛기침을 하며 헨리에게 말했다.
“흠흠, 사령관님. 꽤 신선한 발상이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이런 식의 요청은 아서스도 무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맥도웰이 제법 상식적인 말을 했다.
그러나 헨리는 조금만 더 반응을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이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7현자들을 비롯한 성녀까지 민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음?
제아무리 최고 등급의 고객이라지만, 스칼조차 민망함을 이기지 못해 이제 그만 포기하고 이계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조금 전까지 허공에 띄워 놓았던 지도 위에, 사도들의 위치가 표시된 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
이 같은 변화에 깜짝 놀란 스칼이 헨리의 이름을 불렀다.
-헨리!
슈우우우웅!
스칼이 헨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원정대원들 모두의 귓전에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화살처럼 스쳐 지나갔고.
콰아아앙!
곧 대지를 뒤흔들 정도의 무엇인가가,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원정대원들 앞에 나타났다.
“윈드.”
후우웅!
헨리가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거두었다.
그러자 뽀얗게 번진 흙먼지 사이로 제법 반가운 얼굴들이 드러났다.
씨익.
그들의 얼굴을 본 헨리가 미소 지었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원정대원들이 그토록 애타게 부르던 ‘사도’들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