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02화 (302/522)

# 302

위대한 원정대 (4)

“어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짝사랑 상대가 이렇게 다시 살아나니.”

체액으로 범벅이 된, 그리고 이젠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법한 모습의 헬라를 알렌의 눈앞에 데려다 놓은 아일라는 알렌을 조롱했다.

알렌의 표정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알렌의 표정을 보며 아일라는 더욱더 큰 흥분을 느꼈다.

“왜 그런 표정을 짓지? 반갑지 않아? 이 내가 자비를 베풀어서 너희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 주었는데? 아! 혹시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 이 녀석은 내 말에 절대복종하니까. 자 봐, 보라구.”

딱!

아일라가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그러자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어 있던 헬라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흡사 언데드를 보는 기분이었다.

고인 능욕과 더불어 알렌에 대한 조롱.

아일라는 그 두 가지에서 큰 희열을 느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흥밋거리가 생겼는걸? 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절대로 죽일 수 없다지?’

인간일 때의 기억은 말끔하게 말소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칸에게 전수받은 지식과 더불어 인간들을 잡아먹고 그들이 가진 기억을 토대로 지식과 상식을 새로이 쌓았다.

그래서 아일라는 확신하고 있었다.

알렌이 정말로 헬라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면 알렌은 헬라를 절대로 베지 못할 것이란 걸 말이다.

‘후후, 재밌겠어.’

아일라는 아서스에게 제대로 된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쿠어어어…….

생기가 바짝 뽑혀 허수아비 같은 몰골을 하고 전신에 체액을 뚝뚝 흘리는 헬라를 보며 알렌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런 알렌에게 헬라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목적은 하나였다.

아일라의 명령을 받들어 알렌을 물어 죽이는 것.

그리고 물어 죽인 다음 자신과 같은 맹신자로 만드는 것.

알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헬라를 상대로 아무런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알렌이 중얼거렸다.

“……군.”

“뭐라고?”

“역겹군.”

“뭐?”

“역겨워서 돌아가시겠다고, 이 개자식아!”

슈아앙!

가만히 헬라를 바라보던 알렌은 욕지거리와 함께 허리의 바실리포를 뽑아 들었다.

검 집에서 뽑혀 나오는 거대한 태도(太刀).

그것은 뽑아지는 모양새가 아닌 마치 불이 뿜어지는 것처럼 검 집으로부터 태도를 분출했다.

알렌은 검을 뽑음과 동시에 전방을 향해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바실리포를 휘둘렀다.

후웅!

마치 맥도웰의 발도처럼 검은 순식간에 휘둘렸다.

그러나 바실리포의 검 날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말 그대로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던 것뿐이다.

그 모습을 본 아일라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역시 베지 못하는구나! 그럴 줄 알았어!”

자신의 예상대로 알렌은 검을 휘둘렀지만 헬라를 베진 못했다.

그래서 방금 전의 발도가 단순히 헬라를 위협하기 위한 휘두름 정도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였다.

쩌적, 쩌저적-!

“……!”

검을 휘두르고 얼마 뒤, 헬라의 전면으로부터 새하얀 성애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돋아난 성애는 곰팡이처럼 퍼져 나가며 순식간의 헬라의 전신을 덮쳤다.

헬라는 냉기로 인해 선 채로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하?”

얼어붙은 헬라를 보며 아일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대체 왜?”

“왜는 무슨, 당연한 결과지. 설마 정말로 내가 여제님을 짝사랑했다고 생각한 거냐?”

아일라의 의아한 반응에 알렌은 도리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알렌이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너, 역겨우니까 인간 흉내 좀 그만 냈으면 좋겠다, 괴물.”

“뭐, 뭐? 괴, 괴물이라고?”

괴물.

인간들에 비친 모습은 영락없는 괴물의 모습이 맞았지만 사도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진화된 존재.

보통의 인간들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신체적 능력을 가졌고 심지어 아서스로에게 인정과 더불어 신력까지 하사받은 몸이었다.

그리고 드라칸과 인간들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자신 또한 과거에는 인간이었음을, 사도들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아일라의 반문이 끝난 순간, 아일라가 딯고 있는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아일라가 이를 앙 다문 채 말했다.

“괴물이라고……!”

괴물.

특히 그녀는 괴물이라는 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아니, 콤플렉스라기보단 그 말이 병적으로 싫었다.

지식을 습득하면 습득할수록 인간들이 생각하는 괴물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 더욱더 정확하게 이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분노하건 말건 알렌은 한결같은 반응을 유지했다.

“그래, 이 괴물아.”

“입 닥쳐!”

쩌렁쩌렁!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아일라가 초고주파에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그녀가 고함을 내지르자 균열이 일던 바닥은 완전히 부서졌고 인근에 있던 초목들은 그 줄기가 꺾여 나갔다.

“이 미친년이……!”

덕분에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던 원정대원들 중 일부는 고막이 손상돼 성녀에게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알렌은 멀쩡했다.

이에 귀에 피가 흐르는 원정대원들을 보며 알렌은 생각했다.

‘이게 신력의 차이인가?’

자신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일라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알렌은 모두의 반지를 가지고 있는 덕택에 아일라와 비견될 만큼 막강한 신력의 소유자가 됐기 때문이다.

“가자, 바실리포.”

그 사실을 깨달은 알렌은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알렌은 새롭게 태어난 바실리포의 손잡이를 꼭 쥐었다.

과거에 설욕을 되갚을 절호의 기회였다.

분노로 폭주하는 아일라를 향해 알렌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다.

파드드드득!

알렌의 바실리포로부터 아일라를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얼음의 파도가 휘몰아 쳤다.

* * *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아서스는 아일라의 행동에 실소를 터뜨렸다.

죽은 헬라의 시체를 저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이은 아일라의 분노로 촉발되어 갑작스럽게 시작된 난전의 결과를 본 아서스는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하늘 위로 솟구치는 아일라의 머리.

알렌은 하늘 위로 떠오른 아일라의 머리를 얼린 다음, 얼어붙은 머리 통째로 두 동강을 냈다.

아일라의 패배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말이다.

그래서 아서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일라는 사도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강인한 인물이었는데, 그런 인물이 저리 쉽게 당해 버렸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아일라의 패배로 인해 한껏 오른 흥이 깨져 버렸다.

더불어 죽은 아일라 앞에서 쾌재를 부르는 원정대원들이 몹시 얄밉게 느껴졌다.

“그렇단 말이지…… 좋아, 그럼 이러면 어떨까?”

잠깐의 고민 끝에, 아서스는 금방 흥이 식은 놀이판을 되살리기 위해 시선을 박아 두고 있던 화면을 향해 손가락을 내저었다.

그러자 아서스의 손가락으로부터 신력이 빠져나가 화면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별것도 아닌 놈이었네.”

알렌은 얼굴이 두 동강 난 아일라의 머리를 발로 짓밟아 완전히 깨부수었다.

그런 다음 몸뚱이까지 완벽하게 깨부순 후에야 등을 돌려 원정대원들에게로 향했다.

알렌이 목걸이를 벗으며 말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내 스트레스도 좀 풀리는군. 그나저나 헬라 녀석……. 그런 말로를 맞았을 줄은 전혀 몰랐어.”

“철혈여제님의 일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성녀님, 헬라 여제님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지금 즉시 기도식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렌은 멋지게 아일라를 처리한 후 목걸이를 벗어 헨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성녀에게 헬라를 비롯한 멸망한 아마리스에 대한 기도를 부탁했다.

기도가 이루어지면서 원정대에게 잠깐의 휴식이 이루어졌다.

“사랑과 평화의 여신 아이린이시여, 부디 평화를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죽은 아마리스 왕국의 여전사들의 넋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가엽게 여기소서…….”

원정대원들은 성녀와 십이사도가 올리는 기도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진심어린 기도가 신력과 공명하여 빛을 발할 때, 대원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러자…….

꾸득, 꾸드득……!

알렌에 의해 완전히 분쇄되었던 아일라의 시체가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나 원래의 모습대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

이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원정대원 모두가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성녀님?”

당황스러움에 맥도웰이 성녀를 불렀다.

그러자 성녀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급히 내저었다.

“제, 제가 안 그랬어요! 저건 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 그야 그렇겠지만……!”

아이리네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아이리네가 아일라를 되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일라의 부활은 심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일라는 처음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목까지 성히 붙은 채로 다시 원정대 앞에 강림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후슬러가 말했다.

“흑마…… 술?”

“뭐?”

무심결에 던진 후슬러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후슬러는 갑작스럽게 몰린 시선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하지만 후슬러가 아일라에게 느끼고 있는 이 힘은 흑마술 특유의 탁한 기운이 맞았다.

헨리가 말했다.

“후슬러, 그게 무슨 말이지? 흑마술이라니?”

“화, 확실합니다. 지금 아일라는 흑마술에 의해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것도 아주 몹시 흉악한 기운의 흑마술로 말입니다…….”

후슬러는 최상급 워록인 데다가 마왕의 부활을 위해 몇십 년을 교단에 헌신해 온 교주였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은 대부분이 사실일 것이다.

‘흑마술이라니, 설마 아서스가?’

아서스가 흑마술에까지 손을 댔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샤하트라의 제사장들이 사용하는 언어 또한 흑마술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신어!

영혼의 무덤에서 만났던 헤라볼라는 그러한 언어를 통틀어 신어라고 했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흑마술과 신력은 같은 언어를 공유하니 얼핏 보면 흑마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것은 야누스의 권능일 수도 있다는 말! 그렇다면 지금 당장……!’

헨리가 빠른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켜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원정대원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로거와 아난다가 말했다.

“흑마술이라…….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요.”

“맞습니다. 드디어 저희들이 활약할 차례로군요.”

최상급 워록인 후슬러가 보증하는 농도 짙은 흑마술의 기운!

그리고 과거, 헨리와 함께 대륙 전역의 흑마술사들을 소탕한 적이 있는 위대한 성전사인 두 사람.

로거와 아난다가 기세 좋은 표정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럼 저 여자는 저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화아아악!

두 사람의 의견에 이의는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전신에 신성력이 맴돌기 시작했다.

성전사들이 흑마술사들을 만났을 때, 성전사들은 대륙의 그 누구보다도 막강한 전사들이 된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성전사들 중에서도 역대급 전사들이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 새롭게 탄생한 흑마술의 잔재 앞에서 그 과거의 영광을 재림시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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