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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299화 (299/522)

# 299

위대한 원정대 (1)

“호오, 리드카인이 당했어?”

아서스는 정말로 리드카인 언덕에서 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계획한 오락거리들을 차례대로 즐길 생각으로 피가 가득한 욕조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리드카인은 그 여흥의 초읽기였다.

아서스가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겨우 리드카인 정도로 애를 먹으면 안 되지. 그나저나 반지라…… 어디서 재밌는 걸 주워 온 모양이로군.”

아서스의 눈앞에는 큼지막한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서스는 그 거울을 통해 헨리가 조직한 원정대를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신의 권능이란 참으로 편리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반신에 근접한 경지였지만 그래도 반신에 근접한 경지만으로도 충분히 신이나 드래곤과도 같은 유희를 즐길 수 있었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서스는 죽어 잿더미가 된 리드카인을 금세 머릿속에서 지웠다.

리드카인이 첫 번째 여흥거리로 발탁된 이유는 간단했다.

아서스가 데리고 있던 아홉 사도들 중에 가장 약했으니까.

물론 거슬렁거가 먼저 죽었으니 그다음으로 약할 수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남은 사도들 중에선 가장 서열이 낮은 놈이었기에 기꺼이 리드카인을 첫 타자로 지목한 것이었다.

“흐음, 리드카인 다음은…… 아마도 그 녀석이었지?”

아직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해 줄 사도들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아서스는 핏물이 가득한 욕조에 몸을 푹 담근 후 황홀한 표정으로 다음 구경거리를 기다렸다.

* * *

라덴만 영토를 지난 헨리는 다시금 거침없이 원정대를 이끌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어쩌면 꽤나 고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도를 생각보다 손쉽게 쓰러뜨려 냈으니까.

덕분에 아홉 기사를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 강한 자신감이 어렸다.

헨리는 이동 루트에 내정된 다음 목적지를 확인했다.

‘곧 하비드강이 나타나겠군.’

설정된 루트는 말 그대로 리자르크 언덕까지 갈 수 있는 최단거리 루트였다.

그렇기 때문에 루트를 설정할 때 헨리는 장애물 같은 건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웬만한 장애물, 예컨대 산맥이나 호수, 강 같은 건 마법으로 이동시키면 됐으니까.

그러니까 곧 나타날 하비드강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하비드강은 강이라고 부르기엔 엄청나게 넓은 폭을 자랑했다.

모르는 이가 얼핏 봤다면 바다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하비드강을 건너야만 했다.

‘이번에도 블링크면 되겠지.’

걱정은 없었다.

하비드강이 제아무리 넓어 봤자 어쨌든 강이었으니까.

그리고 원정대에는 8서클 대마법사인 헨리를 포함해 이동학파장인 ‘링키 블락’ 또한 대기하고 있었다.

원정대는 꼬박 반나절을 더 달려 드디어 하비드 강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비드강이군.’

저 멀리서 하비드강이 보일 때쯤 헨리는 즉시 마법의 발동을 준비했다.

사용하려는 마법은 당연히 그룹 단위의 블링크.

헨리는 달리는 제이드 위에서 두 다리로 몸뚱이를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두 손을 모아 수인을 맺었다.

‘블링크!’

파밧!

블링크를 발동시키자 질주하던 원정대 전체가 지우개로 지워지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헨리의 시선이 닿을 수 있는 최대한 먼 거리에 있는 하비드강이었다.

헨리의 원정대가 하비드강 한복판에 소환됐을 때였다.

‘한 번 더!’

블링크는 기본적으로 이동 대상을 술자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마법.

물론 마음 같아선 텔레포트를 사용해 한 번에 강을 건너고 싶었지만 아서스가 텔레포트를 금지시켰으니 혹시 모를 마음에 블링크를 채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헨리가 다시 한번 수인을 맺고 블링크를 시전하려던 순간이었다.

“안녕?”

“……!”

선두에서 수인을 맺으려는 헨리의 눈앞에, 낯선 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덕분에 하마터면 맺던 수인을 놓칠 뻔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뭐?’

갑작스레 나타난 녀석은 웃는 낯짝을 들이밂과 동시에 수인을 맺던 헨리의 두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하지만 헨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녀석이 자신의 손을 붙잡았다고 한들 다음 블링크를 위한 수인은 이미 맺어졌으니까.

그런데.

“……!”

분명히 송출되어야 할 마력이 바깥으로 송출되지 않았다.

헨리는 크게 당황했다.

지금 현 상황에서 마력이 분출되지 않으면, 허공에 붕 떠 있는 원정대 전체가 하비드강 속으로 떨어지게 될 테니까.

“이런 미친……! 링키이이!”

쩌렁쩌렁!

전신에서 마력이 송출되지 않았으나 목소리만큼은 멀쩡했다.

그래서 다급한 마음에 헨리는 소리를 질렀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마차 속의 7현자들은 급하게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프, 플라이잇!”

중심을 잃은 원정대 전원이 높디높은 허공에서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하비드강의 깊은 수심에 빠지기 직전, 마법 연산 실력이 가장 뛰어난 로어가 찰나의 차이로 원정대 전체에게 플라이를 시전할 수 있었다.

“헉……!”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정대와 하비드강 사이의 거리는 손만 뻗으면 강물을 손에 움켜 쥘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고소 공포증을 가진 어떤 원정대원은 얼굴색이 노랗게 질릴 정도였다.

“다들 괜찮습니까?”

하비드강에 빠질 뻔하였으나 로어의 기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이에 헨리가 원정대원들을 돌아보며 대원들의 안위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재밌네.”

‘재밌다고?’

들린 말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헨리를 비롯한 원정대원 전원이 고개를 들어 그 말을 내뱉은 존재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빌어먹을 낯짝은, 애석하게도 원정대원 전부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소레국을 멸망시킨 아서스의 아홉 사도 중 한 명인 ‘칸느’였으니까.

칸느.

녀석은 장난기가 가득한 광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대 특유의 퉁퉁한 몸매가 아닌 말쑥한 정복이 잘 어울릴 법한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꼬불거리는 자신의 앞머리를 손끝으로 배배 꼬며 말했다.

“반가워, 내 이름은 칸느야. 아서스 님의 아홉 사도들 중 한 명이지. 그리고 지금은 아서스 님의 즐거움을 위해 너희들과 여흥을 즐기러 왔어.”

“여흥이라고?”

“응, 너희들이 여기에 왔다는 건 리드카인을 쓰러뜨렸다는 이야기겠지. 그래서 기대가 몹시 커. 비록 리드카인이 약해 빠지긴 했어도 녀석이 가진 화력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거든.”

“하!”

칸느의 말에 이번에도 코웃음을 친 것은 다름 아닌 맥도웰이었다.

플라이 마법에 의해 하비드강 수면 위에서 가까스로 발을 걸친 맥도웰이 헨리에게 말했다.

“사령관님! 이번에도 그냥 후딱 해치웁시다!”

핏대를 세우며 속공을 주장하는 맥도웰의 의견은 어찌 보면 정론이었다.

그리고 정론 외에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일부러 이런 곳을 택한 건가?’

좀 전에 칸느가 헨리에게 선보인 능력.

정확히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마력의 송출을 방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 말인즉슨 마법사들을 견제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일부러 기다렸다는 듯이 헨리의 블링크를 방해했다.

‘아서스, 그놈의 책략인가?’

신 흉내에 집착하는 녀석이니 어쩌면 칸느가 이 타이밍에 등장한 것은 칸느의 아이디어가 아닌 아서스의 계책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타이밍에 저 녀석이 나타나 이동을 방해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생각을 마친 헨리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 방법이 최선인 것 같네요.”

헨리는 이번에도 맥도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

이에 칸느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후후,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이번에는 좀 힘들걸? 이곳 하비드강 전역에 나의 권능을 심어 두었거든.”

“그 권능, 혹시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인가?”

“정답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마력이 체내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것이지.”

헨리는 궁금함을 숨기지 않았고 칸느는 거리낌 없이 물음에 답해 주었다.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어찌 보면 몹시 우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광경을 자아낼 수 있는 배경에는 자신이 가진 힘의 비밀을 알려 주어도 상관없다는, 원정대 전체를 무시하는 칸느의 거만함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그러나 헨리는 물음에 순순히 답해 주는 리드카인의 오만한 태도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좀 전에 마법을 부릴 수 있었던 건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해. 설마 겨우 마법 정도 못 쓴다고 빌빌거리진 않겠지?”

심지어 능글거리기까지 한 이 녀석은 은근슬쩍 마법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자신의 권능에 합당한 명분을 부여했다.

헨리는 그런 칸느가 생긴 것에 걸맞게 꽤나 비열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기지도 않네.”

“뭐?”

“제법 능글거리는 척하지만 실은 겁먹고 있었던 것 같군.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하비드강에서 이런 함정까지 설치해 가며 우리를 기다렸을 이유가 없거든.”

꽤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정곡을 찌를 생각은 없었지만 관점을 달리 하면 저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칸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후후, 꽤나 괜찮은 도발이었어. 하지만 어쩌나……? 나한테 그런 도발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데.”

“도발이 아니야.”

“뭐?”

“네가 숨기고 싶어 하는 치부를 지적해 줬을 뿐이야. 그리고…….”

헨리는 손끝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헨리의 손아귀에는 그 흔한 마력 한 줌 모이지 않았다.

헨리의 마력은 평범한 보통의 마법사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하는 특별한 마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다.

헨리는 이에 대한 문제를 미리 예상했고 예상한 문제를 확실하게 검증받기 위해 칸느에게 물음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칸느는 자신의 오만함에 넘어가 그 물음에 순순히 답변까지 해 주었다.

그렇다면 헨리가 취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바할드 님, 헤라리온 님.”

“예, 사령관님.”

헨리는 웃는 낯짝과 더불어 담담한 목소리로 바할드와 헤라리온을 찾았다.

그리고 헨리가 두 사람을 찾은 이유는 몹시 간단했다.

“태양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태양을 부탁한다는 말에 두 사람은 헨리의 의도를 알아채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성녀님, 원정대 전원이 태양을 피할 수 있을 만한 커다랗고 튼튼한 양산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주문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지금 헨리가 내린 명령은 대책 회의에서 미리 준비한, 사전에 합을 맞춰 놓은 전략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헨리가 내린 명령은 순전히 즉석에서 생각해 낸 최적의 전략이었다.

이윽고 바할드와 헤라리온이 허리에서 칼을 뽑아들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칼을 뽑아 들어 올린 후 전신에 각자가 가진 기운을 출력시키기 시작하자, 성녀 또한 십이사도와 함께 신력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할드와 헤라리온이 시선을 교환하며 동시에 한 단어를 내뱉었다.

“일출.”

치지지직……!

두 사람의 칼끝으로부터 뿜어지는 뜨거운 기운.

그것은 다름 아닌 각자가 가진 ‘태양’의 힘이었다.

“수호성법, 전개!”

그리고 태양열이 검 끝에서 뿜어지기 시작하자, 성녀와 십이사도 또한 수호성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전개된 수호성법은 수면 위의 원정대원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쏘아 내는 태양열이 너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수호성법으로 펼친 결계의 겉면이 뜨겁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 피해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이윽고 하비드강 위로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을 떠올린 두 사람은 이내 다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뜻은 맞추어졌고 결과는 정해졌다.

이윽고 두 개의 푸르고 붉은 태양을 띄워 올린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일몰!”

“……대가뭄!”

화아아악!

하비드강 위에 떠오른 두 개의 태양이 서로를 집어삼키며,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대재앙을 만들어 냈다.

오직, 이곳 하비드강을 가득 메운, 걸리적거리는 강물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이윽고 하비드 강 위에 세상을 녹여 버릴 듯한 열화 같은 대재앙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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