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
에피타이저 (4)
리드카인.
아서스를 비롯한 사도들은 그를 화염의 리드카인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의 이름 앞에 ‘화염’이라는 칭호가 붙게 된 것에는 그의 타고난 화염에 대한 친화력과 더불어 화염에 대한 내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불꽃은 리드카인에게 있어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리드카인이 말했다.
“아서스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텔레포트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확실하게 칭찬해 주마. 생각보다 고분고분한 맛이 있네.”
“뭐라고……!”
“왜 흥분을 하고 그래? 아니지, 고분고분한 게 아니라 유약한 건가? 하긴 마음이 나약하니 쓸데없는 동정심이 생겨 남은 인간들을 포기하지 못한 거겠지.”
“닥쳐라!”
챙캉!
리드카인의 빈정거림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맥도웰이었다.
맥도웰은 알렌이나 바할드와 더불어 등짝의 상흔 때문에 아서스에 대한 증오심이 최대치로 차오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잖아도 욱하는 성질을 가진 이가 바로 맥도웰이었다.
화를 참지 못한 맥도웰이 검을 뽑아 들어 말의 안장을 박차고 허공에 날아올랐다.
‘이런!’
쉽게 흥분하는 성격은 늘 변수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러한 변수까지 고려하여 계획을 짜고 합을 맞추는 것이 바로 유능한 상관이 할일이다.
그리고 헨리는 유능했다.
헨리는 날아오른 맥도웰을 보며 곧바로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원하는 마법에 대한 의지를 발산했다.
그러자 제이드의 발아래로 마치 촉수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거석 줄기가 뿜어져 나와 리드카인에게 채찍처럼 뻗혀 나갔다.
“모두 나와!”
동시에, 헨리는 마차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7현자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7현자들.
현자들은 헨리가 개개인에게 명령을 하지 않아도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고분고분하고 유약한 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하군.”
리드카인은 자신에게 뻗어져 오는 거석 줄기들을 가볍게 받아 들였다. 마치 그것들을 끌어안듯이 말이다.
무언가를 관통했다는 감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일전에 아서스가 헨리의 칼날을 받아 내듯, 온몸으로 물질을 관통시켜 흘려 냈을 뿐이었다.
헨리는 아마도 그것 또한 리드카인이 부리는 신력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가 뻗쳤다.
‘저놈도!’
환술이 아닌 이상에야 몸의 물리력을 없애 저런 식으로 공격을 흘려 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놈들이 다루는 저 힘은 그야말로 최고의 방어 능력인 셈.
몸뚱이에 물리력을 없앤 리드카인은 온몸으로 거석 줄기들을 받아 들인 후, 오른손에만 다시 물리력을 부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맥도웰의 검을 받아 내기 위해서.
리드카인이 여유로운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서걱!
“……!”
맥도웰의 검은 정확히 리드카인의 오른쪽 손목을 절단했다.
‘사령관의 말대로군!’
손목이 잘린 리드카인을 보며 맥도웰이 희열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리드카인은 맥도웰과 전혀 상반된 표정을 지으며 경악했다.
‘대체 어떻게!’
물론 리드카인이 경악할수록 맥도웰에겐 한없이 좋은 호재였다.
자신의 공격이 먹힌다는 걸 깨달은 맥도웰은 곧장 허리를 비틀어 공중에서 다시 한번 회전했다.
회전 축을 만들어 다시 한번 약진하는 맥도웰.
“죽어라!”
진심을 가득 담아 맥도웰은 외쳤다.
그리고 공중에서 팽이처럼 회전한 맥도웰은 그 반동을 이용해 곧바로 리드카인의 목덜미에 칼날을 쑤셔 넣었다.
쯔걱!
칼끝에 고기를 베는 선명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전에 사도들과 맞닥뜨렸을 때와는 달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셈이었다.
바로 헤라볼라로부터 넘겨받은 열 개의 반지, 즉 ‘신물’에 의해서 말이다.
“이 새끼가!”
회전하던 칼날은 리드카인의 목덜미를 모두 베어 내지 못 했다.
리드카인이 자신의 손목이 잘렸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곧바로 전신의 물리력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한 탓이었을까?
생각지도 못한 검상에 리드카인은 찰나의 차이로 물리력을 한 발짝 늦게 거두고 말았다.
그 결과가 바로 리드카인의 오른쪽 목덜미에 난 날카로운 상처.
그리고 그와 동시에 뿜어진 한 줌의 핏물이었다.
헨리는 바람을 손아귀처럼 뭉쳐 맥없이 떨어지는 맥도웰을 잡아채 끌었다.
끌어진 맥도웰이 헨리의 지척까지 당겨졌을 때 맥도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사령관님, 나이스.”
“욱해서 나간 것치곤 성과가 있었네요.”
분명히 이전과 달리 존대를 쓰는 듯하긴 했지만 전혀 존대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아마도 기분 탓일 것이다.
분위기는 빠른 속도로 헨리 쪽으로 기울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굴던 화염의 리드카인은 목덜미에 난 상처를 남은 손으로 감싸 쥐고서 무참히 일그러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쯤해서 리드카인이 옥수수 밭에 뿌렸던 무지막지한 화염 세례도 7현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진압이 되었다.
헨리가 맥도웰에게 물었다.
“직접 베어 보니 어떻습니까? 효과가 있습니까?”
“있다마다! 아주 이참에 샤하트라 국교로 개종해도 되겠어!”
연합 회의 때 미리 설명해 주긴 했지만 사실 신물의 힘에 대해 전해 들었을 땐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차선책이라고 들고 온 신물의 힘이라곤 했지만 막상 그 힘을 시험해 볼 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벌어진 잠깐의 경합으로 인해 그 효과가 여실히 증명되었다.
이에 반지를 나누어 받은 아홉 기사들의 얼굴에 희열이 가득 차올랐다.
그러나 리드카인은 그러지 못했다.
리드카인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네놈들이 감히……!”
“시끄러 인마!”
“뭐, 뭐라고?”
“손목도 한 짝 날려 먹고 목덜미도 물어뜯긴 주제에 똥 폼은! 덤빌 거면 빨리 덤벼! 네놈 같은 조무래기나 상대하자고 우리가 지난 한 달 동안 그 개고생을 한 게 아니니까!”
분위기는 확실히 헨리 쪽으로 기울었고 사기 또한 절정에 치달았다.
그리고 맥도웰은 기세 좋은 모습으로 좀 전에 받은 빈정거림을 보기 좋게 되돌려 주었다.
맥도웰이 칼을 들고 소리쳤다.
“사령관님! 저런 놈은 얼른 해치워 버리고 한 시라도 빨리 리자르크 언덕으로 이동합시다!”
“그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맥도웰의 제안에 목소리를 높인 것은 맥도웰과 마찬가지로 등짝에 상흔이 남았던 알렌이었다.
이에 헨리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의견입니다. 연합군 전원, 리드카인을 제거하세요.”
“조오아쓰으! 가즈아아아!”
맥도웰이 제안하자마자 헨리는 곧바로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제안이 수렴되자마자 아홉 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속에 넣어 둔 반지들을 손에 차고서 순식간에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 미개한 이단자 놈들이!”
그리고 마침내, 심리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리드카인은 결국 자신이 가진 인내심의 한계점을 넘어서 맹렬하게 폭발하고 말았다.
콰릉!
콰아앙!
리드카인은 목덜미를 감싸 쥐던 손을 떼고 양팔을 교차하며 아랫방향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풍압과 함께 거대한 화염 폭발이 전방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 버린 옥수수 밭.
그리고 폭주하는 리드카인의 신력.
화염 폭풍이 옥수수 밭을 휩쓸자 리드카인의 화염을 견디지 못한 옥수수들이 새하얀 눈처럼 튀겨져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러나 헨리는 그런 리드카인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8서클 등급의 냉풍 마법을 시전했다.
화염 폭풍과 뒤섞여 엄청난 안개를 토해 내는 헨리의 냉풍.
리드카인의 화염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
“키아아아아!”
허리에 양 주먹을 붙인 리드카인은 광기어린 울음소리를 포효했다.
피어(Fear).
그것은 최상급 마물들이나 내뿜는, 상대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일종의 위협용 울음소리였다.
“모두들 겁먹지 마세요!”
지이잉!
그 순간,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리네가 십이사도들과 함께 수호성법을 발현시켰다.
일전에 헨리와의 전쟁에서 보여 주었던 아군을 보호하고 용기를 북돋게 해 주는 대전쟁용 수호성법이었다.
밝은 빛 무리가 뻗어져 나가며 아홉 기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포식자인 리드카인의 막대한 피어가, 수호성법으로 인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순한 짐승의 울음소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죽어라!”
성녀의 축복에 용기를 입어 고함을 내지른 것은 단연코 최선봉에서 몸뚱이를 날린 맥도웰이었다.
맥도웰은 어느새 모든 상처를 회복한 리드카인의 코앞까지 다가와 전신에 푸른 오러를 휘감으며 리드카인의 미간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쑤욱!
그러나 뻗은 칼끝에 느껴지는 감촉은 없었다.
맥도웰의 검은, 흡사 연못 속으로 빠져들듯 조금의 이물감도 없이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다.
덕분에 날린 몸뚱이를 제어하지 못한 맥도웰의 안면이 애초에 목표로 두었던 리드카인의 얼굴과 점점 더 가까워졌다.
쩌억!
이에 리드카인은 입을 벌렸다.
감히 짐승도 저만큼 입을 벌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리드카인은 물리력을 제거함과 동시에 오만에 취한 맥도웰을 그대로 집어삼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리드카인이 입을 벌린 순간, 벌려진 아가리를 향해 다른 여덟 기사들의 칼날이 쏟아졌다.
쑤욱!
쑤욱!
쑤우욱!
“그따위 장난질이 내게 통할 성싶으냐!”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총 네 자루의 칼날이 리드카인에게 뻗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칼날도 물리력을 제거한 리드카인의 몸뚱이에 닿지 못했다.
고작 반지 하나짜리 신력을 가진 놈에게 치욕을 입는 건 한 번이면 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이어 들어온 다섯 번째 칼날인 로난의 칼날이 리드카인의 몸에 닿았을 때, 로난은 자신의 칼끝에서 맴도는 묵직한 고기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됐어!”
검이 닿았으니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리드카인은 네 개의 검을 온몸으로 집어삼키고도 아무렇지 않게 맥도웰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다섯 번째 칼날인 로난의 칼날이 몸속 깊이 박혀 들어온 순간, 리드카인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크아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며 리드카인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 다물려고 했다.
리드카인이 벌린 아가리를 닫으려는 순간, 칼날이 아닌 묵직한 모닝 스타 하나가 리드카인의 인중에 날아들어 끔찍한 분쇄음을 만들어 냈다.
콰지직!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
발락의 검은 형벌이 리드카인의 머리통을 무참히 깨부수었다.
후두둑!
리드카인은 볼썽사나운 모습이 되어 뒤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부서진 후두부를 채 추스를 새도 없이 겨우 형체만 남은 입술을 달싹거려 의아함을 표했다.
“어, 어떻게……?”
이에 발락이 말했다.
“글쎄, 그건 네가 고작해야 반지 네 개짜리 신력을 가졌다는 뜻이겠지.”
“뭐……라고……?”
“죽어라.”
콰직!
검은 형벌이 휘둘리면서 리드카인은 절명했다.
자신에게 왜 칼날이 박혀 들었는지 정확한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락이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 줄 의무는 없다.
그래서 발락은 평소 성격대로 검은 형벌을 휘둘러 남은 리드카인의 얼굴에 마저 곤죽을 내 주었다.
목 아래로 부르르 떨리던 리드카인의 사체는 곧 비참한 말로와 함께 그 떨림을 멈추었다.
“좋군.”
발락은 확실하게 리드카인의 최후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처음에 잡아먹힐 뻔했던 맥도웰을 비롯해 자신의 칼날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세 명의 기사들이 죽은 리도카인의 시체를 짓밟으며 분풀이를 했다.
‘사령관의 말이 맞았군.’
검은 형벌을 거두며 발락은 생각했다.
연합 회의 때 반지를 나누어 주던 헨리의 말마따나, 신물은 그 수가 모일수록 더욱 더 강력한 신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됐어!’
그와 동시에, 곤죽이 된 리드카인의 시체를 보며 헨리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중첩된 신물들의 힘 덕분에 아홉 사도들 중 하나인 화염의 리드카인을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곧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승리에 취해 축배를 들 여유는 없었다.
리드카인을 확실하게 처리하자마자, 헨리는 곧바로 재출발을 명령했다.
그러나 연합원 중 그 누구도 헨리의 명령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도리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볍게 사도를 죽였다는 생각에 환한 미소를 만개하며 안장 위에서 콧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이랴!”
첫출발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