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93화 (293/522)

# 293

부화 (7)

“흐아아아악!”

그 옛날, 어느 왕국의 지하 고문실의 진혼곡과 같이, 지금 설탑 내부에서는 굉장한 합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흐아아아아!”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인간들이 오롯이 고통으로만 연주할 수 있는 지옥의 연주회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지옥의 대악마가 지옥에 수감된 죄인들 사이를 거닐듯, 오직 헨리만이 뒷짐을 지고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법사들 사이를 거닐었다.

고통과 파괴, 그리고 회복과 성장의 순환 고리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헨리는 어느 순간부터 웃지 않았다.

대신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려는 이가 보이면 따귀를 때리고 물을 뿌려서라도 정신을 붙잡아 주었다.

특히 마도사급 이상 인재들에겐 더더욱 가차 없었다.

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아야 헨리의 전력이 크게 늘어날 테니까.

물론 이들이 죽을 걱정은 없었다.

애초에 이번 각성을 통해, 예컨대 성장통으로 죽고 싶어도 절대 죽을 수 없게끔 설계된 것이 바로 이번 각성이었으니까.

헨리의 동공은 어느새 설탑을 가득 메운 광명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익숙한 시야 속에서 한두 명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하자 헨리는 각성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헨리는 가장 먼저 쓰러진 어린 마법사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성공했군.’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으나 헨리가 상태를 살핀 마법사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3서클의 2등 마법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서클이 하나 더 늘어 4서클이 된 것도 모자라, 마도사의 조건인 다섯 번째 서클의 싹도 보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성과였다.

이외에도 헨리는 우후죽순처럼 힘이 증폭되어 가는 마법사들을 보며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모든 마법사들의 각성이 진행되었고 헨리는, 어느 순간 자신과 사제들을 제외한 모든 마법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기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쯧쯧, 다들 약해 빠졌군.’

서클이 가장 낮은 최하급 마법사부터 전 탑주였던 로어까지…….

설탑의 마법사들은 그 힘든 각성의 시간을 견디고 난 뒤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기절하고 말았다.

헨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가 7서클로 각성할 땐 현재의 마법사들처럼 처음부터 치유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전히 맨몸으로, 오로지 마족의 심장을 먹고 얻은 혈독술로만 견뎌 냈기 때문이다.

“끄…… 끝났다!”

털썩.

모든 마법사들이 기절한 직후, 덩달아 쓰러진 것은 수많은 마법사들을 치료해야만 했던 사제들이었다.

사제들은 쥐어짜 내듯이 사용한 신력 때문에 때 아닌 탈수 증세를 겪어야만 했다.

물론 성녀와 엘라곤은 괜찮았다.

그들은 애초에 치유에 특화된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

고작 마법사 몇백 명을 치료한 것 정도로는 두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할 순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서 헨리는 쓰러진 사제들에게 목례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에 미소로 화답한 뒤 급하게 쓰러져 잠드는 사제들.

지쳐 잠든 하이 프리스트들을 뒤로한 채 성녀가 헨리에게 물었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들 성공적으로 성장하신 것 같군요.”

“이 모든 게 다 사제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녀님.”

-뀨뀨뀨!

헨리가 성녀에게만 고마움을 표하자 뿔난 엘라곤이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은 후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래, 너도 고생했다. 엘라곤.”

-뀨뀨!

그제야 만족하는 엘라곤.

아이리네가 물었다.

“대마법사님,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까?”

“아뇨, 아직 한 명이 남았습니다.”

“한 명이요?”

“예, 설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각성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아직 저는 아무런 증진을 이루지 못했지 않습니까?”

“……아!”

아직 각성하지 못한 한 명.

그것은 다름 아닌 마탑의 주인, 헨리였다.

‘이런 기회가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니까.’

헨리는 품속에서 꽤 묵직해 보이는 병 하나를 꺼냈다.

블랙 티어였다.

그러나 이 블랙 티어 한 병은 설탑의 모든 고등 마법사들을 증진시키고도 남을 정도의 독액이 농축되어 있었다.

그만큼 8서클로 증진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이 농축된 블랙 티어 한 병이 가진 고통의 크기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헨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대미문의 양으로 농축된 최고농축의 블랙 티어.

분명히 고밀도로 압축시킨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지손가락만 했던 기존의 블랙 티어에 비해 그 크기가 전사들의 주먹만큼 몹시 비대했다.

‘마시기만 해도 배부르겠군.’

곧 밀려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약 설탑의 마법사들을 동원하지 못했다면 연구실에 가둬 둔 사이클론 히드라 한 마리를 훨씬 더 오랫동안 고문해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설탑의 모든 마법사들을 성장시키겠다는 원대한 계획 덕분에 헨리의 새로운 각성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찾아올 수 있었다.

헨리가 거대한 블랙 티어를 들고 성녀에게 말했다.

“잠시 후, 저는 스승님을 이어 대륙의 두 번째 8서클 대마법사가 되려 합니다.”

“예? 8서클이요?”

“그렇습니다. 사실 이 모든 건 저의 성장을 위해 계획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만…… 아무튼 엄지손가락만 한 블랙 티어의 고통 또한 저럴진대 이 정도 양의 블랙 티어라면……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뚜렷이 정해졌군요.”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단지, 제가 빠른 시일 내로 회복할 수 있게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준비하면 될까요?”

“금방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헨리는 두 손을 모아 천천히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곧 허공에 어른 주먹만큼 큼지막하고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방울들이 만들어졌다.

헨리는 그것들을 지쳐 쓰러진 학파장들의 얼굴 위로 쏟아부었다.

촤악!

“어푸푸푸풉!”

“끄허어어!”

“으헉?”

깨어난 학파장은 총 일곱.

다양한 반응들이었다.

그들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양이다.

그러나 헨리는 그들의 잠투정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일어나.”

“대, 대마법사님?”

“그래, 대마법사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서 정신 차려. 너희들이 지금 한가롭게 자빠져서 잠이나 잘 때야?”

“하, 하지만 분명히 저흰……!”

“너흰 뭐? 설마 각성의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거나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을 생각은 아니지?”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각성의 과정에서 얻은 성장통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이를 악물고 인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절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이까지 먹은 중장년들이었으니 분명히 휴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헨리는 그들에게 휴식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줄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이번 각성은, 휴식이 전혀 필요 없게끔 설계된 각성이었으니까.

“호들갑 떨지 말고 몸 상태나 체크해. 바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테니까.”

헨리의 지적에, 학파장들은 그제야 무엇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

도리어 전에 느껴본 적 없던 엄청난 기운들이 몸속에서 회오리치고 있었다.

“설마……!”

“이, 이 힘은……!”

몸속에서 요동치는 힘.

그리고 낯설면서도 몹시 반가웠으며 한평생을 그리워하던 힘!

바로 일곱 번째 서클의 힘이었다.

뒤늦게 동공이 확장된 일곱 학파장들을 보며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7서클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애송이들아.”

“……!”

“……!”

헨리의 축하를 통해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일곱 마법사들은 그제야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헨리에게 예를 갖추었다.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그래그래, 그럼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7서클이 된 기념으로 첫 임무를 내리도록 할 테니 두 귀 열고 잘 듣도록.”

헨리의 성장 계획이 초읽기를 시작했다.

* * *

설탑의 최상층.

즉, 헨리의 집무실에 여덟 명의 7서클 마법사들이 집무실의 모든 집기들을 치우고 거대한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은 척 보기에도 난해하고 복잡한 공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의 가장자리에 일곱 명의 마법사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학파장들이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마법진이 닿지 않은 공간에는 성녀 아이리네와 엘라곤이 서 있었다.

마법진의 중심에 앉은 헨리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설명할게. 내가 블랙 티어를 마시고 명상에 들어가는 순간, 너희들은 내가 각자 알려 준 역할에 맞춰 너희들이 기절할 때까지 마력을 쏟아부어야만 해. 다들 알겠지?”

“예, 대마법사님.”

“그리고 성녀님.”

“예, 대마법사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엘라곤과 제가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7서클에서 8서클이 되는 과정.

8서클의 영역은 단순히 많은 마력량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 따위가 아니다.

헨리가 발견하고 이룩해 낸 8서클의 영역은 거의 인간을 초월하다시피 해야 하는 영역.

물론 각성을 통한 육체의 재구성 같은 현상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8서클은 7서클 때까지 대자연으로부터 받아들이던 ‘마력에 대한 교감 능력’이 판이하게 달랐다.

‘모든 마법사들에게 같은 환경을 주어도 흡수할 수 있는 마력량이 다르다. 그것이 감응력의 차이라고 하지.’

7서클 때까진 그래도 어떻게든 사용하기만 한다면 가진 마력이 바닥을 드러낼 순 있었다.

그것은 둑으로 막아 놓은 강물과도 같은 마력이었으니까.

하지만 8서클은 바다와도 같았다.

아무리 사용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마력량.

단순히 소지한 양도 양이었지만 대자연과 끊임없이 순환해서 물이 차오르는 바다처럼, 8서클 마법사의 마력은 대자연과 끊임없이 순환해 마력이 닳을 수가 없는 그런 구조였다.

‘그러니 유일무이한 대마법사였지. 근데 그럼 뭐해? 한낱 독약 한 병에 명을 달리했는데.’

헨리는 과거에 마신 독약의 추억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헨리의 말마따나 제아무리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8서클 대마법사였다고는 하나, 어찌됐든 그 근간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랐다.

과거의 유약했던 시절과는 달리, 현재의 헨리는 보다 더 완전하고 더 강력한 8서클 대마법사로 군림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난 나를 믿는다. 그리고 그런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내 마법들을 믿는다.’

헨리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신념은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헨리가 말했다.

“시작해.”

“예!”

헨리의 명령과 함께 일곱 명의 7서클 마법사들이 수인을 맺고 마법진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후.”

마법진이 공명하고, 헨리는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런 다음 성녀와 시선을 한 번 교환한 후 단숨에 블랙 티어를 들이켰다.

쨍그랑!

헨리는 블랙 티어를 들이키자마자 유리병을 마법진 바깥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귓전에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 순간, 헨리의 내면 안에서도 무엇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피잉-!

귓가에 이명이 퍼지고 눈과 코, 그리고 귀에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설탑 내부의 마지막 비명.

하지만 가장 장엄하고 위대한 탄생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가 이제 막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삭!

헨리의 품속에 들어 있던 ‘진주’가 일전의 ‘달걀’이었을 때처럼 표면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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