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92화 (292/522)

# 292

부화 (6)

설탑의 마법사들에게 중대 발표가 있은 후, 헨리는 마법사들 전원을 ‘미러클 블루’와 ‘블랙 티어’ 재료의 채집에 투입시켰다.

어려울 건 없었다.

적어도 마탑의 마법사들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아카데미를 거쳐 마탑에 소속되어 마도사가 되기 전까지 선임 마법사의 조수 생활을 거쳐 왔으니까.

게다가 헨리는 이 수많은 마법사들에게 ‘서클의 증진’을 약속했기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덕분에 마법사들은 마탑 역사상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단체 노동’에 투입되어 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러나 불만을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설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심지어 마도사나 아크 메이지급 마법사들까지 투입되어 땀을 흘리고 있는데 그 어떤 마법사가 감히 불평불만을 제기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는 수지맞은 장사였다.

자고로 서클의 증진이라 함은 개개인마다 타고 난 재능이 달라서 어떤 마법사는 평생이 가도록 4서클의 벽을 깨부수지 못하는 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태생적인 재능의 한계를, 신처럼 여겨지던 전 8서클 대마법사의 제자가 나타나 제거해 주겠다고 하니, 불평은커녕 쌍수를 들고 환영할 판이었다.

재료 수집은 무려 사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은 매점매석을 하듯 깡그리 긁어 왔고, 만약 돈으로 구할 수 없는 재료가 있다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채집하러 나섰다.

특히 블랙 티어의 재료인 ‘도마뱀 마물의 꼬리’가 그러했다.

물론 도마뱀 마물의 꼬리를 위해 마물의 숲에 진입할 땐 따로 이셀란 같은 요새 간부들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에 헨리가 마물의 숲과 통하는 텔레포트 게이트, 즉 칼리번 게이트를 미리 설치해 두었으니까.

그 덕에 마침내 설탑 마법사들을 모두 먹이고도 남을 만큼의 재료들이 모이게 되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재료들을 보며 스탠이 흥분한 목소리로 헨리에게 소리쳤다.

“대마법사님! 이제 제조법만 알려 주시면 바로 제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하지만 그 전에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소개해 줄 사람이요?”

“그래.”

분명 탑의 마법사들은 이곳에 전부 모였는데 자신들을 제외한 소개해 줄 다른 사람이 있다니?

스탠을 비롯한 학파장들은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헨리가 데리고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마, 마법사님……! 이분들은 대체……!”

“인사하시죠. 제가 휘하에 부리고 있는 설탑의 모든 마법사들입니다. 아! 토리안 님께는 ‘전 마탑의 마법사’들이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하려나요?”

바로 토리안이었다.

헨리는 토리안을 비롯한 토리안이 관리, 감독하던 크림슨 가문의 노예들을 설탑으로 데리고 왔다.

그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간단했다.

제아무리 마법사들이 유능하다고 한들, 먹고 자는 일 이외엔 오로지 블랙 티어만을 만들어 온 ‘블랙 티어의 장인’들의 숙련도 앞에선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이번 일은 전적으로 배합을 성공시켜 시간을 단축하고,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재료 채집에만 사흘을 썼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일주일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배합은 이틀 안에 끝내야 한다.’

일주일은 심히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헨리는 이틀 안에 모든 영약들을 제조하고 다시 이틀에 걸쳐 여기 있는 마법사들 전부의 서클을 증진시켜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남은 사흘 동안 아서스에 대비할 방책을 준비할 테니까.

그래서 헨리는 블랙 티어의 제작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들을 이번 배합 작업의 ‘특별 관리 감독직’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설탑의 1층 로비에 가득 쌓인 블랙 티어의 재료를 본 토리안이 말했다.

“대마법사님, 설마 이게 다 블랙 티어의……?”

“그렇습니다. 그리고 도마뱀 마물도 최대한 잡아오긴 했지만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마물을 회복시켜 다시 꼬리를 수거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허, 허허허…….”

산더미처럼 쌓인 블랙 티어의 재료들을 보고 토리안과 노예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투지가 샘솟았다.

토리안은 이렇게나마 헨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의를 불태웠고, 노예들은 이번 일만 성사시키면 부분적으로 자유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게라의 블랙 티어 공장이 이제 막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 * *

이틀 후, 설탑의 마법사들은 헨리와 관리감독들의 지휘 하에 간신히 기한을 맞출 수가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수천 회분의 블랙 티어와 희석되지 않은 미러클 블루의 원액들.

정갈하게 유리병에 담긴 완제품들을 본 마법사들이 기쁨의 찬사를 보냈다.

이에 헨리는 휘하의 마법사들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대체로 희망적인 분위기였다.

헨리는 완성된 영약들의 일부를 테스트해 본 뒤 각기 만족할 만큼의 성능을 확인했다.

그 동안 휘하 마법사들에게 반나절간의 휴식 시간을 배분해 주었다.

휴식 시간을 분배받은 스탠이 헨리에게 물었다.

“저, 대마법사님. 저희로선 반나절이나 쉴 수 있어 기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은 1분 1초가 바쁜 시국이잖습니까?”

“괜찮아. 그리고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선 녹초가 된 몸을 충분히 쉬게 해 줄 수밖에 없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떤 고통이든지 감내하겠다며? 너희들도 블랙 티어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어렴풋이 눈치챘겠지만…… 블랙 티어, 그거 극약에 가까운 독극물이야.”

“맞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했지만 대마법사님께서 진행하시는 일인지라 감히 여쭤볼 생각도 못 했습니다.”

“모든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아무렴 아크 메이지 이상의 경지라고 불리는 7서클은 아직 그 수가 적어 제대로 된 호칭조차 없잖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각오해 두는 편이 좋을 거야. 7서클이란 자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거든.”

꿀꺽.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도 엘라곤이 아니었다면 최초로 블랙 티어를 마신 직후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그만 죽어 버렸을 테니까.

“어쨌든 다들 쉬고 있어. 그동안 나는 다음 단계를 도와줄 분들을 모셔 올 테니.”

“……알겠습니다.”

헨리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이틀 밤낮을 고생한 마법사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곯아떨어져 잠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반나절 후, 시끄러운 알람 마법 소리에 마법사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마법사들은 눈앞에 전에 보지 못한 존재들을 볼 수 있었다.

“당신들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듯, 학파장 몇 명이 부스스한 눈매를 하고서 눈앞의 낯선 방문자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낯선 방문자들의 대표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아이리네. 대마법사님의 부탁으로 여러분들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신성국 세인트 홀의 성녀라고 합니다.”

“성녀!”

낯선 방문자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신성국 세인트 홀의 상급사제들이었다.

사제들의 경지는 최소가 하이 프리스트급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헨리의 하나뿐인 최상급 정령, 엘라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뀨!

이미 안면이 있는 엘라곤이 성녀에게 붙어 친근함을 표시했다.

성녀 또한 그런 엘라곤의 애교가 마음에 들었는지 부드러운 손길로 엘라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제들의 등장에 비로소 잠에서 깬 마법사들이 일제히 헨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다들 당황할 것 없어. 이분들이 계셔야 너희들이 죽지 않고 무사히 각성할 수 있을 테니까.”

헨리는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사실을 전했지만 그 말을 듣는 마법사들은 그제야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르기에는 너무나도 먼 길을 와 버렸다.

이윽고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슈우웅!

헨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각자 마법사들 앞에 각각의 경지에 맞는 영약들이 배달되었다.

그리고 눈앞에 배달된 영약을 손에 쥐었을 때, 헨리는 그제야 영약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미러클 블루를 받아 든 자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마탑에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내 스승님의 비전 영약으로,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그 경지를 크게 상승시켜 주는 기적의 영약이다. 다들 이것의 명성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들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사들.

여기 있는 중상급 마법사들의 대부분이 어릴 적에 헨리가 만든 미러클 블루의 희석액을 먹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내준 것은 희석액이 아니라 원액이다! 그러니 그 고통은 희석액의 몇 배에 해당할 터. 하지만 견뎌라! 견디고 또 견디다 보면 너희들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을 테니까!”

굵고 짧은, 하지만 발전을 갈망하는 마법사들에겐 전율을 끼치게 하는 격언이었다.

그러나 헨리의 격언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미러클 블루를 마신 직후, 너희들의 육체를 휘젓는 영약을 어떻게든 너희들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것이 너희들을 무시무시하게 성장시켜 줄 거대한 성장의 원동력이 될 테니까. 다들 알겠나!”

“예!”

어린 마법사들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헨리의 물음에 답했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그리고 이거.”

헨리가 집어 든 것은 두 번째 영약인 블랙 티어였다.

블랙 티어는 미러클 블루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러클 블루에 비해 블랙 티어는 중상급 마법사들의 마력을 팽창시켜 주는, 그야말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다다익선의 영약이었으니까.

물론 헨리는 이들 모두가 잠들었을 때, 각각의 마법사들이 가진 마력에 맞춰 미리 압축 작업을 끝내 놓은 상태였다.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부단히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해냈다.

저들의 성장이 곧 자신을 성장시킬 거대하고 찬란한 원동력이 될 테니까.

그래서 헨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 번거로운 수작업을 일일이 행했던 것이다.

헨리가 블랙 티어를 집어 들자, 미러클 블루가 아닌 블랙 티어를 마셔야 하는 마법사들이 경외어린 눈길로 헨리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앞서 헨리가 어린 마법사들에게 말해 주었듯이 자신들에게도 전율이 끼칠 만한 장엄한 연설을 해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말했다.

“이걸 마셔야 되는 사람들은 그냥 버텨라.”

“……?”

짤막한 설명.

이에 중상급 마법사들을 비롯한 부학파장과 학파장들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러나 헨리는 냉담했다.

“뭘 멀뚱거리고 있어? 너희들은 이미 미러클 블루를 마셨잖아. 그러니까 미러클 블루를 마신 사람들은 블랙 티어를 마시고 죽기 살기로 버티라고. 이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고통스러울 테니까.”

연설, 아니 경고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다소 허망하기 짝이 없는 설명에 로어가 헛기침을 하며 헨리에게 물었다.

“흠흠, 저, 대마법사님…… 아무리 그래도 격려 정도는 해 주셔야…….”

“격려? 그래, 격려 좋지. 다들 이 악물고 버텨라. 그래야지만 빛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너희들 때문에 사제님들을 모셔온 것이니 사제님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절대로 죽어선 안 된다.”

“…….”

“…….”

격려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헨리의 격려는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들이었다.

블랙 티어는 미러클 블루에 비해 영약을 바로잡을 필요가 없이 무조건 이 악물고 버티기만 하면 됐으니까.

이윽고 헨리가 명령했다.

“자, 그럼 다들 섭취해!”

퐁!

헨리의 명령에, 영약이 담긴 유리병들의 마개가 일제히 열렸다.

그리고 영약의 마개가 열리면서 성녀 또한 외쳤다.

“다들 준비하세요!”

“예!”

-뀨뀨뀨!

우웅!

사제들이 축문을 외우자 치유 성법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새하얀 광명이 설탑 내부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사들의 식도를 통해 이틀 밤낮동안 만든 무시무시한 영약들이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마법사가 영약을 비워 낸 직후였다.

“으, 으아아악!”

전신을 찢어놓을 듯한 고통.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하는 끔찍한 비명이 설탑 내부에 가득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다들 이 악물고 견디라고.”

오직 단 한 사람.

헨리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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