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90화 (290/522)

# 290

부화 (4)

‘정리는 대충 됐고 이제 남은 건…….’

헥터와 후슬러를 불카누스에게 떠맡긴 헨리는 곧장 살게라로 돌아왔다.

헨리는 설탑의 최상층에 마련된 자신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집무실에는 아무도 불러들이지 않았다.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대체 정체가 뭐냐, 넌?’

헨리가 탁자 위에 올려둔 것.

그것은 바로 표면에 금이 잔뜩 간 달걀이었다.

달걀은 일전에 헤드자온이 헤라리온을 통해 준 것이었다.

헨리는 아직도 이것의 쓰임새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교황을 처치하고 난 직후, 우연찮게 달걀의 상태를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금이 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진 않았다.

이 달걀은 여전히 헨리에게 낯선 것이었으며 달걀을 상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헤라리온과 성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두 사람에게 이것을 보여 주었으나, 두 사람 다 이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 탓에 헨리는 어쩔 수 없이 금 간 달걀을 설탑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실험해 볼 요량으로 말이다.

집무실에서 손에 달걀을 쥔 헨리가 생각했다.

‘그 헤드자온이 괜히 이런 걸 내게 전달해 준 건 아닐 테고…….’

마음 같아선 영혼의 무덤에 다시 한번 방문해 헤드자온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은 헤라리온 선에서 막히고 말았다.

칸의 눈은 어찌 됐든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까지 잦은 출입을 허할 순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그러한 융통성 없는 모습은 헨리의 관점에선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없잖아 있었으나, 헤라리온이 종교적인 이유로 그렇다고 하는데 딱히 고집을 피울 생각도 없었다.

헨리는 금이 간 달걀을 손에 쥐고 손바닥 안에서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깨지려면 완전히 깨지든가…….’

달걀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전신에 금이 쩍쩍 가 있었다.

헨리는 달걀을 손에 쥐고 한참 동안이나 생각했다.

이것은 신물이 아니었다.

헤라리온조차 모르는 것이라고 했으니 공식적으로 이것의 등급은 매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헤라볼라의 반지처럼 반환하라는 말도 없었다.

말 그대로 샤하트라의 1세대 왕, 헤드자온이 자신의 손주를 통해 헨리에게 준 선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낄 이유가 없겠지.’

헤드자온이 막연히 이것을 헨리에게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물이라든가 귀하게 다루라는 말도 하지 않았기에 헨리는 이것을 다룸에 있어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래, 마법사는 탐구하는 자라고 했다. 겨우 그까짓 조심성에 겁먹어선 아무것도 하지 못해.’

그래서 헨리는 결심했다.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좀 더 과감하게 이것을 다루자고.

헨리는 손아귀에 굴리던 달걀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결심을 마친 직후, 손에 쥔 달걀을 세게 으스러뜨렸다.

파직!

금이 간 표면이 부서지며 헨리가 바라던 소리가 귓전을 긁었다.

헨리는 손에 쥔 달걀이 완전히 으스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헨리는 천천히 손을 펼쳤다.

그러자 펼친 손바닥 안에는…….

‘진주?’

달걀보다 좀 더 작은 형태의 동그란 진주가 들어 있었다.

‘진주라고?’

혹여나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헨리는 손바닥에 쥐여진 진주를 들어 올려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이리저리 살펴봐도 명백한 진주였다.

‘진주가 왜 나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에 헨리는 한동안 그것을 좀 더 이리저리 굴려 보았으나, 이젠 그 어떤 충격에도 더 이상의 파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허무하네.’

달걀에서 나온 진주.

이번 탐구에서 얻은 소득의 전부였다.

결국 이렇다 할 뚜렷한 소득도 얻지 못한 헨리는 진주를 품속에 밀어 넣고 호기심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헨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므로.

헨리는 이윽고 품속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두 개라고 했었나?”

양피지에는 로거와 아난다로부터 전해 들은, 종교 대전 당시에 사라진 다른 종교들에 대한 정보가 적혀져 있었다.

두 종교의 이름은 각각 오리온과 덤빌런.

교황이 네프람 교단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평화교가 감시하고 있는, 종교 대전에서 패하고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는 남은 종교들이었다.

‘우선은 덤빌런부터.’

덤빌런을 택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덤빌런이 살게라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였다.

그렇게 20일이 지났다.

* * *

“……이럴 수가.”

헨리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석판 위에 걸터앉았다.

지금 헨리의 눈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진, 수십 명에 달하는 오리온 교단의 사제들이 쓰러져 있었다.

오리온 교단.

덤빌런 교단 이후, 어떻게든 새로운 신위를 찾기 위해 헨리가 방문한 두 번째 교단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이번에도 헛다리를 짚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화와 회유를 통해 얼마든지 신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헨리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끄으으……!”

헨리의 발앞에 오리온 교단의 교주가 피를 흘리며 신음했다.

헨리는 그런 교주를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들은 미친놈들이었다.

수십 년 전, 종교 대전에서 패한 이 녀석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종교가 다시금 화려하게 비상하기만을 꿈꾸며 거의 광신도와 같은 삶을 영위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들이 가진 건 신앙 따위가 아니라 광기에 가까운 증오였다.

그리고 오로지 교단의 부흥과 평화교에 대한 질투만이 이들이 목표로 하는 삶의 전부가 되고 만 것이다.

처음엔 이들의 광기를 이용해 신위를 얻어 볼까 싶기도 했다.

헨리가 원하는 것은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을 통한 정신적 구제가 아닌, 그 종교를 지속케 하는 신위가 가진 물리적인 힘이었으니까.

하지만 광기에 물든 이들에게 있어 신위나 신력은, 종교 대전에서 패한 이후로 그들이 가진 것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제아무리 헨리가 다시 교단을 부흥시켜 준다고 해도 절대로 헨리에게 ‘신의 대리자’ 같은 막강한 직책 같은 걸 양보해 주지 않았다.

불안함 때문이었다.

혹여나 가진 것마저 헨리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함 말이다.

게다가…….

“너희들은 어긋나도 한참이나 어긋났어.”

헨리는 한숨을 내쉬며 쓰러진 교주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린 후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교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직!

칼끝에 고기 베이는 감촉이 흐르며 핏물이 살짝 튀었다.

축 늘어지는 오리온 교단의 교주.

이로써 오리온 교단은 정말로 ‘궤멸’하고 말았다.

죄책감은 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들은 신앙심이 광기로 진화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정신적인 구제를 위한 종교 활동이 아닌, 그동안 날려 먹은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보상 심리’만이 머릿속에 꽉꽉 들어찬 놈들이 되었기에.

‘그런 사상을 가진 놈들이라면 좀 곤란하지.’

왜 로스 교황이 이들을 학살했는지 알 것만 같은 부분이었다.

“후.”

교주를 죽인 후, 헨리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다음 딛고 있던 석판에서 일어나 신전에 마련된 ‘신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오리온이라…….’

오리온은 정의와 균형을 수호하는 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신이 수호하는 것과는 달리 그의 신도들이 추구하는 정의와 균형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질된 듯싶었다.

“미안하게 됐다.”

헨리는 오리온 신의 조각상을 향해 짤막한 사과 인사를 던진 뒤 신전을 나섰다.

그런 다음 신전을 완전히 벗어나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아래로 천천히 내리그었다.

쿠구구!

무너지는 신전.

소리 없이 발동한 헨리의 마법이 오리온 교단의 신전을 무참하게 박살 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헨리는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걷어 냈고 살아남은 신도들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결국 없는 건가?’

아쉬웠다.

하지만 아쉽다고 해서 오리온 신의 성물 같은 건 챙기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런 신앙을 가진 신도들의 성물은, 그 수가 수백 수천 개라 할지라도 헤라볼라가 준 반지들보다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교 대전에 참여했던 두 개의 거대 종교가 이제 막 헨리에 의해 그 궤를 달리 하게 되었다.

“이제 열흘 정도 남았나……?”

열흘.

아서스가 말한 한 달로부터 이제 겨우 열흘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그러나 이제 겨우 열흘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헨리는 여전히 아서스에 대항할 수 있을 만한 마땅한 대책을 강구해 내지 못 하고 있었다.

속이 타들어 갔다.

사실 덤빌런 교단을 무너뜨리고 오리온 교단을 헤집을 때만 해도 헨리는 간절하게 바랐다.

부디 오리온 교단에서만큼은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좀 전에 오리온 교단의 신전을 무너트리며 그 바람은 한 줌의 모래처럼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럼 남은 방법은 결국…….’

아서스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건진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이제 헨리에게 남은 것은 헨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열흘 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우웅.

결심을 마친 헨리가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광명이 빛을 뿌리며 헨리를 감싸 안았고 마력은 곧 헨리를 살게라로 이동시켜 주었다.

* * *

웅성웅성.

살게라의 설탑.

다른 집단에 비해 비교적 고요함을 추구하는 설탑이, 어울리지 않게 말소리로 시끄러웠다.

설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1층 로비에 집결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두 소집한 것은 다름 아닌 헨리였다.

이윽고 탑의 최상층 부에서 헨리가 부유석을 타고 내려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의 등장에 웅성거리던 모든 마법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헨리는 1층 로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헨리의 양옆으로 로어와 스탠을 비롯한 각 학파의 수장들이 자리를 지켰다.

헨리가 말했다.

“다들 모였나?”

“예!”

설탑의 모든 마법사들을 소집한 이유는 헨리의 곁을 지키는 학파장들도 전혀 몰랐다.

그저 모이라고 해서 이곳에 모인 것뿐.

그래서 설탑의 1층에는 오랜만에 설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집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헨리는 1층 로비에 빼곡히 들어 찬 수많은 마법사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헨리의 다음 말이 무엇일지 궁금해 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개중에는 하울도 있었다.

하울은 헨리의 배려로 설탑에서 마법을 수학하고 있었으니까.

소집된 마법사들의 얼굴을 둘러본 헨리가 말했다.

“다들 생기가 넘치는군. 내가 오늘 이 자리에 그대들을 불러 모은 것은 중대 발표를 하기 위함이다.”

중대 발표.

마탑에서 설탑으로 마법사들이 이주한 이후, 그리고 헨리가 마법사들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후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였다.

이에 모두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어떤 마법사는 갑작스러운 중대 발표에 설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긴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헨리가 말했다.

“다들 긴장하는 기색이 여력하군. 근데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내가 지금부터 발표할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한 이야기니까.”

침묵으로 대답하는 좌중.

헨리가 말했다.

“지금부터 열흘 뒤, 우리 설탑은 대륙의 사활이 걸린 최후의 전쟁에 참여한다.”

“……!”

“……!”

최후의 전쟁!

그 전쟁은 곧 키메라를 포함한 아서스와의 전면전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헨리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부터 열흘간 난 그대들의 서클을 최소, 한 단계에서 두 단계 정도 끌어올릴 생각이다.”

“……!”

“……!”

서클의 증진!

헨리가 아서스를 상대로 준비할 수 있는, 오직 헨리만이 취할 수 있는 방식.

그것은 다름 아닌 ‘마법사로서의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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