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86화 (28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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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프람 (5)

    후슬러가 말하길, 메시아란 마신의 선택을 받은 아주 극소수의 인간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족만큼이나 지독한 마기를 소유하고도 육체가 녹아내리지 않으며 대부분의 마족과 마물들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다고 했다.

    ‘그래서 클레버를 통해 목소리를 전달했던 것이군.’

    헨리는 그제야 체스트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메시아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메시아가 가진 능력은 그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메시아는 다른 신자들처럼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 올라가는 자리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으로 선택받는 것.

    그렇기 때문에 타고난 능력만으로 마신과의 교감은 물론 강력한 마기와 마물들에 대한 지배력까지 가지긴 했지만, 메시아가 가진 능력은 애석하게도 그것이 전부였다.

    반면에 교주는 달랐다.

    사정을 들어보니, 후슬러는 원래 여느 중급 마족을 섬기는 중급 워록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평화교의 대학살이 있던 날, 교황은 교단 신자의 대부분을 죽여 버리고 메시아와 메시아를 보필할, 아주 겁이 많은 워록 한 명만을 살려 두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후슬러가 멍청한 게 설명이 되지.’

    그렇지 않다면 후슬러가 이렇게까지 겁쟁이라는 사실이 좀처럼 설명되질 않으니까.

    아무튼 그 이후로 후슬러는 메시아를 도와 아주 천천히 새로운 마왕의 강림에 힘써 왔고 교황은 여태껏 남몰래 그런 메시아를 후원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있던 헨리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잠깐, 혹시 그럼 교황도 워록인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냐, 질문을 바꾸지. 혹시 로스 교황이 너희들을 살려 두면서 워록이 가진 힘의 일부를 강탈했나?”

    “아,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로스 그자가 아무리 야망에 찬 인물이라고는 해도 그는 아이린의 충실한 심복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

    이제는 잃을 것이 없는 교주가 하는 말이니 그가 거짓을 고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슬러의 말마따나 교황이 정말로 아이린의 충실한 심복이라면 샬카는 대체 왜 달을 가리켰던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어.’

    어차피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황은 반드시 재판장 앞에 세워야 할 인물이었다.

    단지 그때가 되서 죄를 물을 때, 심문할 거리가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뿐.

    이어서 헨리가 물었다.

    “후슬러, 그렇다면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각종 함정들과 독, 그리고 마력 결계와 스켈레톤, 마지막으로 데스나이트까지. 이것들 전부가 너의 작품이겠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겁이 많은 후슬러는 일단 모른 척을 했다.

    혹시라도 그러한 사실들이 헨리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을까 봐.

    헨리의 추궁이 계속 되었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네 말대로라면 메시아는 방금 언급한 것들을 만들 능력이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즉, 여태껏 메시아를 보필하기 위해 네가 이것들을 전부 만들었다는 말밖에 더 돼?”

    “…….”

    정확한 추궁에 후슬러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중급 워록일 때부터 살아남았던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 속에 빠져 있는 메시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성장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헨리는, 그런 후슬러의 재능을 높이 사 그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데스나이트 제작술이라……. 네크로멘서도 아니면서 용케도 그런 것들을 만들어 냈네. 그렇지, 후슬러?”

    “예? 예…… 마법사님.”

    “교황 그놈이 말한 ‘순환’에 대한 교리가 이런 뜻일 줄은 몰랐군. 좋아, 후슬러. 네가 할 일이 정해졌다.”

    “하, 할 일이요?”

    “그래.”

    헨리가 데스나이트 제작술에 대해 언급한 직후였다.

    “꽤액! 꽤액!”

    근처에서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헥터가 목청껏 울기 시작한 것은.

    * *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페일로 님, 그러니 지금 당장 놈을 처단해야 합니다.”

    “처단하다니요, 누굴 말입니까?”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헨리 그놈이지요!”

    교황, 로스 보르기아 1세는 계획했던 대로 비밀리에 아서스의 충실한 사도중 하나인 페일로와 접선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페일로에게 고했다.

    그러나 페일로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페일로가 말했다.

    “흐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전능하신 아서스 님께서 겨우 그 정도 사실도 모르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셨겠죠?”

    “……!”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말문이 막힌 교황.

    이에 페일로가 웃으며 말했다.

    “후후, 농담입니다. 그건 그렇고 교황님의 말씀대로 약간의 조치가 필요해 보이긴 하네요. 하지만 아서스 님께서 말씀하시길, 앞으로 한 달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예에? 아서스 님께서요?”

    “뭐…… 맛있는 식사는 충분한 기다림에서 나온다는 뜻이지요. 그런고로 저는 아서스 님의 맛있는 식사를 방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목소리가 잦아드는 교황.

    이에 페일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적어도 저는 방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황님께선 이번 기회에 아서스 님께 대한 충성심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겠어요.”

    말을 마치면서, 페일로는 교황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페일로의 손아귀로부터 보랏빛 기운이 새어 나와 교황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서스 님께서 맛있는 식사를 하심에 있어 조금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능한 심복이라면 적어도 그 식사를 준비함에 있어 차질이 생기게 해선 안 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로스 님?”

    “그렇습니다!”

    “후후, 방금 전에 아서스 님의 은총을 내려 드렸습니다. 그러니 이 이후론……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페일로 님!”

    다시 목소리가 밝아지는 교황.

    교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황은 지난번의 은총으로 영원한 젊음을 하사받았다.

    교황은 그것만으로도 몹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추가적인 은총이라니?

    교황은 전신에서 솟구치는, 끓어오르는 새로운 힘에 대한 기대 때문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 * *

    “후, 지루해 뒈지겠네.”

    모리스 가문의 시종, 코홀.

    그는 가문의 적자, 헨리 모리스의 시중을 들던 전속 시종이었다.

    하지만 가문의 아들들이 모두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영지를 떠난 후, 자기가 할 일이 줄어 매일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다.

    물론 이따금씩 들리는 교역상에게 제국이 멸망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제국이 멸망하고 새로운 제국이 건국되었다지만 그 어떤 제국도 이런 동쪽 변두리에 있는 작은 영지까지 신경 쓰진 않았다.

    그래서 모리스 가문의 가주인 한스 모리스 준남작은 외부에서 특별한 사안이 생기지 않는 이상 자신이 구축해 놓은 작은 세계에서 평소처럼 삶을 영위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은퇴한 군인에다가 이젠 출세할 아들만을 기다리는 야망의 불씨가 잦아든 늙수그레한 중년이었으니까.

    퐁!

    시간을 확인한 코홀은 챙겨 온 유리병의 마개를 열었다.

    그것의 정체는 과거 헨리가 만들었던 미라클 블루를 어깨너머로 훔쳐보고 따라서 만든 것이었다.

    코홀은 오늘날까지 그때 본 헨리의 기적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돈이 생길 때마다 녹까마귀꽃을 비롯한 미라클 블루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을 구입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실험 끝에 코홀은 사온 재료들을 한 냄비에 넣고 달여 낸 물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코홀이 그러한 사실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실제로 헨리가 선택한 재료들을 한 냄비에 넣고 우려내면 사람의 활력을 돋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효과는 그게 전부였다.

    헨리의 미라클 블루는 통상적인 미라클 블루와는 달리 헨리만이 아는 특별한 제조 과정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홀이 그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코홀은 자신이 만든 특제 영약을 마시고 활력을 얻을 때마다 자신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착각 속에 근 몇 년을 살아왔다.

    언젠간 자신 또한 과거의 헨리가 그랬던 것처럼 멋지게 성장할 것이라는 화려한 미래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코홀은 여느 때와 같이 마을의 어귀쯤에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을 맞으며 시간을 죽였다.

    그런데 저 멀리서, 요 근래 사람이 다닌 적이 없던 길목으로부터 낯선 인영이 눈에 띄었다.

    코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명뿐인 낯선 방문자를 주시했다.

    방문자는 가벼운 무장을 한 것으로 보아 군인으로 보였다.

    ‘탈주병인가?’

    코홀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국에 혼자 다니는 병사라면 당연히 탈주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코홀은 품속에 넣고 다니는 단검을 꼭 쥐고서 생각했다.

    ‘그래, 그동안 나도 게을리 살아오진 않았어. 게다가 꾸준히 마셔 온 영약의 효과도 있을 테니 저 정도 병사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해……!’

    결심을 마친 코홀은 근처의 풀숲에 매복했다.

    그러나 병사가 가까워질수록 코홀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들이 마구 차올랐다.

    ‘잠깐, 저 녀석이 만약 탈주병이 아니라면 어쩌지? 그래, 상식적으로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우리 영지가 나오는데 우리 영지에는 가주님도 계시고 베른 단장님도 계신다. 그런 상황에서 저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야. 그럼 저 녀석은 대체 뭐지?’

    아무리 봐도 행색이 남루해 보였다.

    그래서 코홀은 저 병사가 탈주병이나 패잔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하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되자, 코홀은 제법 합리적인 추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합리적인 추론은 곧 다가오는 병사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니, 두려움을 지운 것 이상으로 어쩌면 자신이 먼저 병사에 대한 정보를 확보해 이득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를 테면 제국에서 보낸 징집병이라든가…….’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발상이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저 병사가 제국에서 발행한 징집 명령서를 가지고 왔다면, 코홀은 곧바로 짐을 싸서 영지를 떠날 생각이었다.

    제아무리 그동안 단련하고 영약을 마셔 왔다지만 제국 단위의 전쟁은 코홀도 싫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결심을 굳힌 코홀이 매복해 있던 풀숲에서 나와 성으로 접근하던 병사에게 말했다.

    “이봐!”

    코홀을 발견한 병사가 화들짝 놀랐다.

    * * *

    “예? 부고장이요?”

    “그, 그렇습니다.”

    병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칼리번 요새에서 헨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찾아온 심부름꾼이었다.

    병사는 코홀에게 부고장과 함께 위로금이 든 상자를 내밀었다.

    부고장을 받아든 코홀의 표정이 멍해졌다.

    “도련님이 돌아가시다니…….”

    “헨리 장교님은 훌륭한 군인이셨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폭주하기 시작한 마물들과 맞서싸우시다가 그만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멍한 표정의 코홀에게, 병사는 자신이 전해야 할 말들을 끊임없이 읊조렸다.

    그리고 마침내 전달해야 할 마지막 사항까지 모두 전달한 병사는 투구를 벗어 꾸벅 인사를 해 보인 뒤 발걸음을 돌려 천천히 멀어져만 갔다.

    “이럴 수가……!”

    망연자실한 코홀은 곧바로 영지를 향해 뛰었다.

    헨리 도련님의 사망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 * *

    “이걸로 됐겠지.”

    헨리는 멀리서 부리나케 영지로 뛰어가는 코홀을 보았다.

    그리고 코홀로부터 멀어지는 남루한 행색의 병사도 보았다.

    병사는 곧 헨리 앞에서 멈춰 섰다.

    “말씀하신 대로 부고장과 위로금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딱!

    멋지게 임무를 완수한 병사에게 헨리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병사의 외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곧 늙수그레한 노인의 모습으로 외견이 바뀌었다.

    병사의 정체는 다름 아닌 후슬러였다.

    헨리는 후슬러를 칼리번 요새의 병사로 둔갑시켜 자신의 부고장을 전달하게 했다.

    한스 준남작에게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앞으로 계속 관계를 맺을 생각이 아닌 이상, 끝없는 기다림을 갖게 하는 것보단 깔끔하게 관계를 마무리하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거짓 부고장은 한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였다.

    하지만 헨리는 한스 준남작과 모리스 부인이 자신을 위해 그렇게까지 슬퍼해 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육체의 주인인 헨리가 지금의 헨리가 아닌 원래의 헨리였다면, 여전히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두고두고 무시 받는 채로 살았을 테니까.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물론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헨리는 더 이상 괘념치 않기로 했다.

    “이동한다, 후슬러.”

    “예, 예! 마법사님!”

    잊고 있었던 가족 문제를 정리한 헨리가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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