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85화 (285/522)

# 285

네프람 (4)

과거 헨리의 주도 하에 대륙에 퍼져 있는 모든 흑마술사들을 소탕하고 흑마술서들을 회수하여 소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마술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죄악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소탕 작전에는 황궁의 마법사들과 기사, 그리고 평화교의 성전사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그 누구보다도 흑마술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앞장섰던 평화교의 성전사들.

교황의 지시와 교단의 절대 규율도 이유라면 이유였겠지만 그런 것들보단 모두들 자신이 가진 종교적 신념에 의해 더 적극적으로 소탕 작전에 임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전사들은 자신들과 같이 신력을 운용하는 워록들을 더욱 더 집요하게 죽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마술에 의존하는 흑마술사나 네크로멘서들과는 달리 워록들은 마신의 힘을 인간 세상에 강림시키는, 다른 흑마술사들과는 죄악의 질이 다른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흑마술사들의 대학살이 있기 훨씬 이전에 먼저 제거된 워록들이 있을 줄은 헨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워록들의 존재를, 다른 이도 아니고 워록들의 제거에 앞장 서온 평화교의 수장, 로스 교황이 숨겼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공존……이라고?”

“그렇습니다.”

후슬러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내뱉는 말은 더더욱 거짓말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헨리는 후슬러의 대답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착검.”

헨리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그리고 동시에 콜소드를 뽑아들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내팽개쳐진 네프람 교단의 메시아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었다.

“지금 당장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내는 것이라면…….”

주륵.

들이민 칼날 끝은 메시아의 목덜미에 자그마한 생채기를 만들었다.

생채기로부터 흐르는 한 줄기의 피.

“내 너희들을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저, 저희들도 로스 교황이 대체 왜 저희에게 마법사님을 보낸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메시아로 불리는 소년의 목덜미에 핏물이 흐르자, 후슬러는 친손자에게 상처가 난 것처럼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후슬러의 행동에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로 후슬러의 행동이 더더욱 진실하게 비추어질수록 헨리는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륙 최고의 종교 단체가 마신을 섬기는 워록들과 공생 관계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콰아앙!

헨리는 결국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바깥으로 분노를 표출시켰다.

뻗치는 검격.

검격은 곧 땅바닥에 반쯤 잠긴 신전을 가르며 신전을 완전히 무너지게 했다.

후두둑……!

신전이 무너지는 소리가 공동을 울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교황 그놈은……!’

후슬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

나아가 교황을 이단자로 지목하고 종교 재판에 세워 능히 화형을 받게 하여야 마땅했다.

‘근데 잠깐만…….’

분노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 오로지 교황을 어떻게 벌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궁리했다.

그런데 그러던 중 잠자코 헨리의 분노를 지켜보던 이성이 놓치고 있던 의문점 하나를 제기했다.

‘메시아가 뭐야?’

메시아.

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리고 헨리 또한 여태껏 숱한 워록들을 죽여 왔지만 개중에서 ‘메시아’라는 교위를 가진 워록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헨리는 고개를 돌려 메시아라고 불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약관의 나이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것 같은 소년.

하울의 또래로 보였다.

이에 헨리가 후슬러에게 물었다.

“후슬러.”

“예, 마법사님!”

“네가 교주고, 이 아이가 메시아라고?”

“그렇습니다!”

“좋아, 근데 교주는 알겠는데 메시아는 대체 뭐야?”

“그건……!”

후슬러의 표정은, ‘마치 올 것이 왔다.’라는 그런 종류의 표정이었다.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후슬러.

이에 헨리는 말없이 검을 치켜들어 메시아를 겨누었다.

“바로바로 안 튀어나오지?”

“세, 세상의 구원자입니다!”

“세상의 구원자? 그게 메시아란 이름의 뜻이야?”

“그, 그렇습니다! 저희 교단은 마계의 주신이신 마신님을 믿는 단체. 그리고 메시아는 그런 마신님의 선택을 받은 마신님의 단 하나뿐인 대리자이자 저희 워록들을 구원해 줄 유일한 구원자이기도 하십니다.”

“구원자라면…… 성녀?”

“예?”

“포지션이 딱 성녀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평화교에 성녀가 있다면 네프람 교단에는 메시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큰 차이가 존재했다.

평화교 내에서 성녀의 위치는 교황보다 낮다.

그러나 네프람 교단 내에서 메시아의 위치는 교주보다 높은 듯했다.

‘이놈이 대체 뭐길래?’

헨리는 의아한 눈길로 메시아를 내려다보았다.

성녀의 힘은 몇 번이나 경험해서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바닥에 누워 곯아떨어져 있는 이 녀석은, 칠순 노인네가, 그것도 교주급의 워록이 쩔쩔맬 정도라면 가진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일 것이다.

헨리가 이어서 물었다.

“메시아가 하는 일이 뭐지?”

“그, 그건……!”

“쓰읍!”

“히이익! 마, 마, 마왕의 강림입니다!”

“……뭐?”

헨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왕.

마신이 마계를 관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으로써 지켜보는 것이지, 직접적인 개입을 한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마왕은 다르다.

마왕은 말 그대로 마계를 지배하고 모든 마족과 마물들의 위에 군림하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리고 헨리는 때마다 새롭게 부활하는 마왕을 한 차례 쓰러뜨린 적이 있는, 대륙 내에서도 그 수가 손에 꼽히는 위대한 마왕 슬레이어들 중에 한 명이었다.

헨리는 마왕을 몹시 증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먼저 죽은 유라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 골든 잭슨이 그 빌어먹을 마왕의 저주 때문에 단명하고 말았으니까.

‘마왕 그놈만 아니었어도 이 사달이 일어나진 않았을 테지.’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원흉은 마왕에게 있었다.

골든은 죽어 가던 마왕이 쥐어짜 낸 최후의 저주 때문에 단명하고 말았으니까.

그래서 무능한 그의 아들인 실버 잭슨이 황권을 쥐었고, 약해진 황권을 틈타 아서스 같은 놈이 중상모략을 펼쳐 개국공신들을 죽게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사달이 나게 만든 최초의 날갯짓이 바로 마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헨리는 가까스로 마왕을 쓰러뜨린 직후, 마물의 숲 1급 구역 너머에 있는 ‘마계의 틈’을 어떻게든 봉인하려고 애를 썼다.

마왕으로 인한 이후의 비극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차원 사이에 벌어진 마계의 틈은 당시 고작해야 7서클에 지나지 않았던 헨리가 닫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다.

아니, 어려움을 떠나 원리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헨리는 마계의 틈을 봉하는 것을 포기하고 칼리번 요새를 세워 끊임없이 마물의 숲을 견제한 것이었다.

그리고 헨리는 얼마 전, 아주 우연찮은 기회로 이셀란으로부터 새로운 마왕이 탄생할 것이라는 아주 끔찍한 소식을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마, 마왕을 이 세상에 강림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메시아님의 사명입니다.”

평화교의 성녀, 아이리네가 가진 사명은 대륙의 평화를 기원하고 사랑을 전파하는 것.

그리고 네프람 교단의 메시아가 가진 사명은 다름 아닌 이 세상에 새로운 마왕을 강림시키는 것이었다.

마왕이 강림하여 인간계를 지배하는 것이야 말로 워록들에겐 구원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으니까.

후슬러의 솔직한 대답에, 헨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끝에 천천히 눈을 뜨며 후슬러에게 물었다.

“마왕의 강림이 가능한 메시아와 그런 메시아를 비밀리에 살려둔 교황, 그리고 네프람과 공존하는 평화교까지…….”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헨리가 읊은 사실들은 어긋나 있던 퍼즐 조각들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냈다.

“교황 이 개새끼가……!”

쿠구구구…….

결론이 내려지자 헨리의 분노가 곧 극한에 달했다.

그리고 헨리의 분노가 극에 달하며 안개 같은 에메랄드 빛 오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감히 이딴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

쩌렁쩌렁!

의도하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증폭되며 공동을 울렸다.

곳곳에서 떨어지는 흙먼지.

헨리의 코앞에 앉아 있던 후슬러는 두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했다.

“사, 사, 살려 주십시오!”

겁을 집어먹고 두려움에 떠는 후슬러.

그의 양 고막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헨리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 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끓어오른 분노가 좀 가라앉은 헨리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제기랄!”

헨리는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관점을 다양하게 생각해도 교황이 네프람 교단을 살려 둔 이유는 마왕의 강림을 통해 다시 한번 평화교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단순한 종교적 이익 때문이란 것 말고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헨리의 예상대로 정말로 교황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대체 왜 이곳으로 헨리를 보낸 것일까?

헨리는 그 부분이 몹시 의아했다.

‘내 힘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왜?’

공식적으로 헨리는 대륙 유일의 7서클 대마법사임과 동시에 오러까지 다룰 줄 아는 대륙 최초의 마검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치부이자 역린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네프람 교단으로 헨리를 보낸다?

머리 쓰기 좋아하는 로스 교황이 애용할 만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설마 내가 이곳에서 꺾일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그리고 헨리는 몇 번이나 그 사실을 후보지로 떠올렸지만 그 로스 교황이 그런 멍청한 선택을 했을 리가 없다며 부정했다.

결국 헨리는 고심 끝에 후슬러에게 물었다.

“후슬러.”

“예, 예! 마법사님!”

“지상 위의 우물과 마력의 응집을 방해하는 결계, 그리고 막대한 양의 해골병, 그리고 데스나이트들과 네놈의 동반 자살까지.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함정이나 보호 장치가 있나?”

“보, 보호 장치라면…… 사실 교단의 신전이 지어진 이곳의 토양에는 오랫동안 동물들의 시체를 묻어 죽여 토양 자체에 강력한 독성을 띠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래 있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금방 중독되어 죽습니다.”

“중독? 근데 넌 왜 멀쩡하지?”

“그야 저희 워록들은 당연히 마족의 힘을 빌려 이 정도 독쯤은…….”

헨리는 손을 들어 올려 후슬러의 말을 막았다.

더는 듣기 싫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헨리는 후슬러의 첨언으로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곳에 자신이 아닌 보통의 아크 메이지나 소드 마스터들이 들이닥쳤다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란 걸 말이다.

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없는 진실과 맞닥뜨리고 나니 맥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심사를 돌려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는 메시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깨워.”

“예, 예? 하, 하지만 마법사님, 메시아님은 지금, 아주 오랫동안 마신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터라 저 같은 일개 교주 따위의 힘으로는 메시아님을 깨울 수가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헨리의 되물음에 후슬러는 또다시 우물쭈물했다.

이에 헨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쯤 되면 후슬러는 공포가 교육되지 않는 멍청이 중의 멍청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옅은 인내심이 폭발한 헨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물은 내가 잘못이지. 하지만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군. 이런 상황에서도 눈 붙이고 자고 있는 이 녀석 때문에 새로운 마왕이 탄생하는 것이라면 이 녀석만 없애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뜻이겠지.”

“자, 잠깐만요!”

“잘 가라.”

헨리는 망설임 없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모르게 곤히 자고 있는 메시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푸슉!

피가 튀고 살갗이 찢어졌다.

그리고 곧 메시아의 숨이 멎었다.

그 모습을 본 후슬러가 절망했다.

“아, 안 돼……!”

“네프람 교단은 오늘부로 끝이다. 그리고 넌!”

메시아의 죽음을 확인한 헨리가 칼날을 돌려 후슬러를 가리켰다.

“네놈은 살려 주지. 넌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으니까. 아, 이번에도 자살할 생각은 하지 마. 네놈이 죽으려 들면 몇 번이고 다시 되살려 낼 테니까.”

헨리의 따뜻한 독설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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