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
네프람 (3)
후우웅!
돌풍이 불어닥치듯, 혀를 깨문 후슬러의 전신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독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덕분에 헨리는 졸지에 독 안개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치이익!
독 안개의 위력은 대단했다.
독 안개는 짙은 맹독성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농도의 산성을 띠고 있어 안개에 닿는 모든 것들을 부식시키고 녹여 냈다.
그러나…….
“윈드.”
후우웅!
독 안개 속에 불어닥치는 또 다른 돌개바람.
헨리의 바람 마법이었다.
헨리가 불러낸 바람은 곧 독 안개를 한데로 뭉쳐 문 밖으로 뱉어 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헨리.
헨리는 몹시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신이라고?”
독 안개의 여파로 인해, 헨리가 걸치고 있던 콜아머를 비롯한 각종 무구들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헨리는 멀쩡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는 세상의 모든 독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에 대한 완전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헨리가 분노한 까닭은 독 안개를 통한 기습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히 마신이라고 했다.’
마신.
마왕보다 더 높은 마계의 존재.
마신은 말 그대로 마계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의 지혜라고 불리는 헨리조차도 본적이 없는 존재가 바로 마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신이 정말로 실존하는지 그 누구도 몰랐으니까.
이에 헨리는 사뭇 심각해진 표정으로 몸뚱이의 대부분이 녹아내린 후슬러를 내려다보았다.
흉측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후슬러는 아직 죽지 않은 듯했다.
“이…… 이이……!”
피부가 녹아내리고 근육과 뼈가 거의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후슬러의 입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벙어리의 저주에 걸린 망자를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성대를 비롯한 발성기관의 대부분이 녹아 버린 탓에 후슬러는 기껏해야 바람소리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헨리가 아니었다.
“엘라곤.”
-뀨뀨.
“치료해.”
-뀨뀨뀨!
엘라곤은 흉측한 몰골의 후슬러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치유술을 시전했다.
헨리의 서클로부터 많은 양의 마나가 급속도록 빠져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엘라곤이 강도 높은 치유술을 시전할수록 헨리가 소진하는 마력량 또한 덩달아 상승하기 때문.
그러나 헨리는 이까짓 투자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무서운 표정을 하고서 회복되어 가고 있는 후슬러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빛이 번쩍였다.
살점이 다시 돋아나고 피부가 재생되며 녹아내렸던 각종 장기들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그렇게 엘라곤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선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후슬러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왔을 때, 헨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라, 후슬러.”
“……?”
헨리의 명령에 천천히 눈을 뜨는 후슬러.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쉬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
헨리는 귓전 직전에 들려오는 파공음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손을 내뻗었다.
콰직!
손바닥을 꿰뚫는 화살촉.
분명히 매직 실드가 둘려 있을 텐데도 화살은 손쉽게 헨리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주륵.
화살은 헨리의 손바닥을 관통한 뒤, 헨리의 관자놀이를 조금 찢어놓은 후에야 비로소 멈추었다.
헨리의 얼굴에 흐르는 피.
그러나 헨리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홀드.”
헨리는 화살이 박힌 손바닥으로 눈꺼풀을 뜨기 시작한 후슬러를 결박했다.
이번에는 신체뿐만이 아니라 목 위의 머리까지 완벽하게 결박했다.
다시 혀를 깨물 수 없게끔 말이다.
그런 다음 손바닥에 박힌 화살을 무심하게 뽑아냈다.
“엘라곤.”
-뀨뀨.
헨리가 엘라곤의 이름을 부르자, 얼른 헨리의 손바닥을 치료하는 엘라곤.
치유는 완벽했다.
이어서 헨리는 바닥에 발을 굴렸다.
그런 다음 마법 무장을 비롯한 두터운 매직 실드를 다시 한번 전개한 후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말했다.
“정체를 드러내라.”
끼기기긱…….
헨리의 물음에, 어둠으로 가득 찬 신전의 내부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신이 칠흑으로 뒤덮인 ‘기사’들이었다.
기사의 키는 대략 2미터 남짓.
모습을 드러낸 흑갑옷의 기사들은 총 세 명으로, 각기 검과 창, 그리고 자신만큼 거대한 활을 들고 있었다.
“저놈들은……?”
흑기사들을 본 헨리는 차갑게 가라앉은 입꼬리에 헛웃음을 띄웠다.
전신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농도의 마기.
그리고 마기와 더불어 오직 ‘그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죽음의 향기’.
과거에도 헨리는 이러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바로 마물의 숲에서 말이다.
“데스나이트라…….”
데스나이트.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데스나이트들이었다.
이윽고 활을 쥐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다시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헨리의 손아귀를 뚫고 관자놀이에 상처를 낸 녀석이었다.
화르륵!
당긴 화살의 끝에 새카만 아우라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고위급의 마물들, 혹은 마족들만이 부릴 수 있는 최상위 레벨의 마기였다.
예컨대 저것은 인간들의 것으로 비유하자면 오러와도 같은 것.
헨리는 화살촉에 응집되는 마기를 보고서 좀 전에 날린 화살은 단순한 경고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착검.”
데스나이트가 등장한 이상, 헨리는 더 이상 힘을 숨길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검을 뽑아 들었다.
지이잉.
녹아내린 콜아머와는 달리, 여태껏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새하얀 콜소드는 짐짓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 자태를 뽐내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헨리가 검을 뽑아 든 순간 데스나이트의 손아귀로부터 당겨진 화살이 시위에서 해방되었다.
챙캉!
화살이 시위를 떠난 순간, 헨리는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활을 든 데스나이트의 목젖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헨리의 칼끝은 목덜미를 관통하지 못하고 보랏빛을 띠는 예기 어린 대검에 가로막혔다.
검을 소지하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움직인 것이다.
“흥.”
짧은 콧방귀.
비록 검이 가로막혔다고 한들 헨리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도리어 헨리는 양측의 놈들이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검이 막히자마자 곧바로 칼끝에 오러를 방출해 냈다.
콰아앙!
에메랄드 빛 오러가 폭발했다.
동시에 헨리는 허리를 숙이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프로즌 필드.”
쩌저저적!
귓전을 때리는 냉각 음에 맞춰 헨리는 곧바로 허리를 축으로 상체를 회전시켰다.
그런 다음 솟아오르는 얼음 기둥과 함께 전방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얼음 기둥을 제외한 또 다른 감각이 칼날을 스쳐 지나갔다.
세 놈들 중 한 놈이 들고 있던 길쭉한 창대였다.
헨리는 잘려져 나간 창대를 보며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만족스러운 절삭력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절삭력을 통해 헨리는 확신했다.
과거에 데스나이트와 맞붙었을 때보다 훨씬 더 손쉽게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헨리의 일방적인 검무가 시작됐다.
* * *
“읍읍……!”
후슬러는 경악했다.
헨리의 홀드 마법 때문에 전신이 결박된 터라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눈알을 굴리며 악을 쓰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엘라곤에 의해 죽다 살아난 직후, 데스나이트들을 발견한 후슬러는 기쁨어린 미소를 지었다.
저들의 이름은 ‘네프람의 삼신기’.
각자가 쥔 무기들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소유한, 무력으로는 믿어 의심치 않는 네프람 최고의 전력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금방 곤죽이 되어 바닥에 흩뿌려질 줄로만 알았던 마법사는 갑작스레 검을 소환하더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오러를 흩뿌리며 삼신기들을 압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데스나이트들이 부서져 바닥을 구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허리에 다시 검을 차는 헨리.
데스나이트들을 쓰러뜨린 직후, 헨리가 신전을 향해 외쳤다.
“대지의 파도.”
쿠구구구……!
활잡이 데스나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경고 따위는 없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엔 헨리가 참아줄 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어버렸으니까.
게다가 후슬러를 확보한 이상, 더 이상의 네프람 신자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구구구구……!
마법이 발동되자, 신전 아래의 대지는 곧 바닷가의 파도처럼 딱딱함을 잃고 너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암석은 모래로, 모래는 흙으로, 흙은 곧 늪의 그것처럼 신전을 끊임없이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으읍!”
천천히 가라앉는 신전을 보며, 후슬러가 악을 썼다.
눈알이 벌게져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손가락을 튕겨 목 위의 결박을 풀어주며 물었다.
“말해라.”
“신전 안에! 신전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제발 그분을 구해주십시오!”
“사람?”
“부탁드립니다! 메시아 님을 구해주시면 이번에는 기필코 마법사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메시아?”
“신전 안에! 신전 안에 잠들어 계십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탁.
헨리는 후슬러가 너무 악을 쓰기에 자신에게 저주라도 퍼붓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부탁을 해왔다.
이에 헨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곧 손뼉을 쳤다.
헨리가 손뼉을 치자 가라앉던 신전의 바닥이 다시금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헨리는 손수 신전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그러나 신전 내부에는 정말 후슬러의 말대로 웬 소년 하나가 거미줄에 걸린 고치처럼 매달려 있었다.
“미친놈들.”
헨리는 그 기괴한 풍경에 혀를 한번 찬 후 녀석을 데리고 신전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후슬러 앞에 녀석을 내동댕이친 후 후슬러에게 물었다.
“설명해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서,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독 안개 때문에 옷 전체가 녹아내려 알몸이 된 늙은 노인 후슬러는, 헨리의 홀드에서 풀려나자마자 머리를 조아리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하…….”
후슬러의 설명이 끝날 때쯤, 헨리는 솟아올라 있는 암석에 걸터앉아 헛웃음을 내뱉었다.
“워록(Warlock)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헨리의 입에서 워록이라는 단어가 낮게 맴돌았다.
워록.
그들의 정체는 마신을 숭배하는, 그러니까 흑마술사들 중에서도 네크로멘서처럼 흑마술을 발전시켜 힘을 얻는 것이 아닌, 마신을 섬김으로써 필요한 힘을 얻는 자들을 뜻했다.
그리고 후슬러의 정체는 헨리의 예상대로 네프람 교단의 교주가 맞았다.
비록 신자라고 해봤자 교주와 메시아뿐인 작은 교단이었지만 이들의 정체가 워록이란 것을 안 이상, 헨리는 그들의 존재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갑자기 워록이라니? 그놈들은 내가 분명히 다 죽였는데? 아니 그보다 교황이 어떻게 이놈들을?’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들의 정체가 진짜 워록이라면 이들의 위치를 알려준 교황의 의도가 더더욱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화교의 절대 교리들 중에는 ‘흑마술’을 비롯한 ‘마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죽여야만 하는 규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헨리의 눈앞에 버젓이 워록들이 살아 있었다.
그것도 교위가 매우 높은, 교주와 메시아라는 신력의 소유자들이 말이다.
고심 끝에 헨리가 물었다.
“후슬러.”
“예, 예, 마법사님!”
“너희들은, 아니…… 네프람 교단은 대체 제국의 평화교와 무슨 관계지?”
“저희는…….”
고심 끝에 헨리가 고른 질문.
그리고 헨리의 물음에 후슬러가 대답했다.
“저희는 평화교와 공존을 약속한 사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