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80화 (280/522)

# 280

교황 (1)

헤라리온과 비람을 무슈에 다시 데려다준 헨리는 헥터와 함께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헥터는 이전과는 모습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꽤애액! 꽤애액!”

“……하아!”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는 헨리.

헨리의 어깨 위에는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육체들 중, 여분으로 만들어 두었던 앵무새의 육체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헥터는 앵무새의 육체에 영혼을 전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체 상태로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기에 앵무새의 몸으로나마 식사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꽤애액! 꽤애액!”

“더럽게 시끄럽네.”

조용히 짹짹거리는 참새와는 달리 앵무새의 성량은 우렁찼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거슬렸던 건…….

“배고파! 배고파!”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헨리는 고개를 내저으며 텔레포트 준비를 시작했다.

이에 헤라리온이 물었다.

“헨리 님, 이번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신성국에 가 보려고 합니다.”

“신성국에요?”

“예, 어떤 신위가 야누스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린의 신력부터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뭐, 물론 평화의 여신이 야누스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요.”

“그럼 이것을 가져가도록 하십시오.”

헨리의 설명에 헤라리온은 품속에서 나무로 만든 나침반 하나를 내밀었다.

나침반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작은 크기였다.

그런데 보통의 나침반처럼 방위 표시는 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절반씩 공간을 나누어 각각 해와 달이 그려져 있었다.

나침반을 내밀며 헤라리온이 말했다.

“이것의 이름은 ‘샬카’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라의 저울’이라고 불리는 물건인데 신도들이 가진 신력의 성향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성향을 측정해요?”

“예, 혹시라도 법으로 금지시킨 야누스를 숭배하고 있다면 큰일이니까요.”

“그렇군요.”

처음엔 좀 의아한 용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향을 측정한다는 말에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현재 헨리가 찾는 신은 아서스의 신력과 맞먹을 막강한 신위를 찾아야 한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헥터에게 새로운 육체를 선사할 야누스와 닮은 성향을 가진 신위도 찾아야 했으니까.

이에 헨리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물이겠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신물에 가까운 물건이지 신물은 아닙니다. 단지 저희 제사장들이 오랜 시간 동안 기도를 드려 신력이 깃들게 한 것이거든요.”

“사용법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샬카는 순수한 라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소지자가 가진 신력이 라의 성향을 가졌다면 바늘은 태양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누스에 가까운 신력에는 달을 가리키겠군요.”

“그렇습니다. 물론 다른 신력을 가진 자를 상대론 이것을 사용해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자 이것을 드리는 것이니 받아 주십시오.”

“아닙니다, 이런 귀중한 물건을 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아닙니다. 함께 하지 못해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덕분에 헨리가 원하는 신위를 찾기가 한결 더 수월해질 듯싶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때 동안 부지런히 정진하시길.”

번쩍!

빛이 번쩍이며 헨리와 앵무새가 사라졌다.

* * *

신성국 세인트 홀.

헨리는 이번에도 역시 정식으로 만남을 요청해 성녀와 만났다.

응접실에 먼저 와 있는 헨리를 보며 성녀가 먼저 살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대마법사님. 이번엔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헨리는 그녀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품에서 샬카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성녀님, 잠시 이것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이게 뭐죠?”

성녀는 의심 없이 샬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이리네가 그것을 받아 들자마자 샬카에 달린 바늘이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태양이 그려진 방향이었다.

‘역시.’

사랑과 평화의 여신, 아이린.

헨리의 예상대로 아이린이라면 태양의 신, 라와 성향이 비슷했다. 사랑과 평화가 어두운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헨리는 샬카의 기능 테스트를 쉽사리 끝마쳤다.

샬카를 다시 건네받으며 헨리가 말했다.

“이건 샬카라는 물건인데 신위의 성향을 측정할 때 쓰이는 사햐트라 왕가의 도구입니다. 헤라리온 전하께서 저를 위해 빌려 주신 물건이지요.”

“성향의 측정이라…… 후훗, 그래서 저는 어떠한 성향을 가졌나요?”

“예상대로입니다. 아이린은 사랑과 평화의 여신이니만큼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샬카의 두 그림 중 태양을 가리키더군요.”

“샤하트라의 물건인데다가 라의 저울이라고 불리는 걸 보니 태양은 라를, 달은 야누스를 뜻하는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야누스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신을 찾고 있습니다.”

“예? 야누스와 비슷한 성향을요?”

“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성녀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단순히 사랑과 평화의 여신인 아이린의 성향이나 알아보자고 이곳에 온 건 아니다.

헨리가 직접 신성국까지 발걸음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다른 종교에 대한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제일 최근에 종교 전쟁을 벌인 게 평화교이니 도망친 다른 종교의 행방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헨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서스에 대항할 만한 신위라면 적어도 종교 대전에서 평화교와 맞부딪혔을 정도로 큰 교단이어야만 했으니까.

“저는 지금 아서스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신위를 찾고 있습니다. 성녀님과 협의한 대로 헤라리온 전하와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해 보긴 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진 못했거든요.”

“음, 그때 분명히 라의 검 자리가 비었으니 그 자리를 노려 보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무산됐습니다. 진실한 믿음이 없다면 라에게 신력을 하사받기란 좀 힘들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으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그래서 아쉬운 대로 라의 신력이 깃든 신물들을 빌릴 순 있었습니다만, 이것들만으로는 아서스를 제압할 순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서스와 비견될 만한 새로운 신위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흐음, 그러한 사정을 가진 신위라…….”

헨리의 논리 정연한 설명에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번 이러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헨리의 지략에 내심 감탄했다.

성녀가 말했다.

“음, 이 부분은 저보다는 아난다 님이나 로거 님, 그리고 교황님께 도움을 요청하시는 편이 훨씬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종교 대전이 일어났을 당시에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요.”

말 그대로였다.

아이리네가 성녀가 된 것은 평화교가 종교 대전에서 승리하고 제국이 건국된 뒤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종교 대전에서 자취를 감춘 종교의 행방은, 종교 대전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리네보단 참전 용사들에게 묻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럼 로거 님과 아난다 님을 불러들일 테니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눠 보시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성녀는 교황을 불편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교황을 배제하고 자신의 창과 방패가 되어 주는 로거와 아난다에게만 도움을 요청키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허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제가 왔으니까요.”

“……!”

인기척 없이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기습적으로 뒤를 찌르는 등장에, 헨리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곳에는 교황, 로스 보르기아 1세가 있었다.

‘교황?’

교황이 나타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교황의 등장에 성녀 또한 심히 당황한 태도를 보였다.

“교, 교황님께서 여기엔 어쩐 일로?”

심히 당황스러워하는 성녀.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이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은 조금도 전해 듣지 못했으니까.

이에 교황이 말했다.

“성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제게도 소식이 들려오는 법이니까요. 그나저나 먼저 대마법사님께 인사드립니다. 제가 바로 신성국 세인트 홀의 수장, 로스 보르기아 1세입니다.”

놀라는 성녀와는 달리 교황은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응대했다.

그리고 온화하기까지 한 미소로 능청스럽게 헨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로스 보르기아 1세.’

과연 너구리 같은 영감이었다.

전생에선 제국 행사 때마다 마주쳐 안면을 터 두었지만 이번 생에선 지금이 첫 만남이었으니까.

이에 헨리도 교황과 마찬가지로 예를 차렸다.

“헨리 모리스입니다. 돌아가신 대마법사님의 유일한 직계 제자입니다.”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참 섭섭합니다, 대마법사님.”

“섭섭이요?”

“듣기로는 로거와 아난다 경과는 이미 인사를 나누었다고 들었는데 어찌 저와는 인사 한번 나누어 주지 않으신 것입니까?”

허허 웃으며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투정을 통해 헨리는 생각했다.

‘하, 이놈 봐라?’

점잖아 보였지만 저것은 분명한 기선 제압이었다.

분명히 평화교가 아서스 편에 붙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헨리와는 적대 관계였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헨리에게 왜 먼저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냐고 묻고 있다.

이것은 헨리를 얕잡아 보는 태도였다.

‘누가 너구리 같은 놈 아니랄까 봐……!’

이에 헨리는 교황은 여전히 교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헨리는 머릿속에 떠오른 반감의 어조보단 사회적인 격식을 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교황에겐 물어볼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으니까.

이에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인사를 드리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장소를 옮겨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헨리가 기 싸움에 응하지 않고 교황의 의도를 인정해 주자 교황은 유하게 웃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 듯 곧바로 본론을 언급해 주었다.

“좋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성녀님과 로거 님, 그리고 아난다 님까지 모두 불러서 함께 의견을 나누도록 하시지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요.”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 다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 * *

교황은 자신의 응접실로 모두를 초대했다.

그리고 원탁에는 뒤늦게 호출된 로거와 아난다까지 포함해 총 다섯 사람이 둘러앉게 되었다.

뒤늦게 호출된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상황을 살피며 교황의 입을 주시했다.

모두가 원탁에 앉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었을 때 교황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좀 전에 못다 나눈 이야기를 마저 나눠 보도록 할까요, 대마법사님?”

“좋습니다. 그보다 교황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혹 교황님께선 현재 대륙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계신지 알고 계십니까?”

“아, 물론 알고 있지요. 저는 세인트 홀을 다스리는 교황입니다. 성녀와 태양 전사들이 아는 사실을 제가 모를 리가 없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만약 성녀와 전사들은 알고 있는데 교황만 모르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분위기가 어색해질 테니까.

교황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좀 전에 듣기로는 대마법사님께선 지금 종교 대전에서 패한 후 종적을 감춘 종교들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혹시 그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지금 아서스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신위를 찾고 있습니다.”

“새로운 신위요?”

“그렇습니다. 현재 아서스는 야누스라는 사막 신의 가호를 받아 강력한 신위가 되었습니다. 듣기로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하며 곳곳에서 경배를 강요한다고 들었는데, 저는 놈의 신력이 더 거대해지기 전에 미리 싹을 자를 생각입니다.”

“하하, 강력한 신위라……?”

헨리의 설명에 실눈 같은 교황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헨리의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이것 외에도 다른 사정이 좀 있긴 합니다만……. 아, 물론 이러한 방법은 샤하트라의 신자님들과 심도 있는 토의 끝에 도출된 방법이니 꽤나 신빙성 있는 계획입니다. 그 예로 여기 샬카라는 물건을 받아 왔습니다만, 한번 보시겠습니까?”

헨리는 어떻게든 근거를 더해 교황으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뜯어 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헤라리온에게서 받은 샬카를 선뜻 교황에게 내밀었다.

샬카를 받아 드는 교황.

그런데 그가 샬카를 받아 들자 샬카의 바늘이 거세게 회전했다.

핑그르르!

그리고 회전 끝에 바늘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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