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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272화 (272/522)

# 272

뜻밖의 조력자 (1)

헨리는 헤라리온과 함께 샤하트라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베네딕이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 왕가가 몸을 숨겼던 ‘칸의 눈’이라는 곳이었다.

칸의 눈에 도착한 헨리가 말했다.

“여기가 맞습니까, 전하?”

“예, 근처에 삼각암벽이 보이는 걸 보니 확실하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나저나 전혀 몰랐습니다. 과거에는 단지 단순한 대피처 정도로 여겼는데 이곳에 그러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은…….”

샤하트라 사막의 남서쪽에 위치한 칸의 눈.

칸의 눈은 공식적으론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동굴처럼 보였지만 그곳에는 사실, 대제사장 비람과 더불어 왕비나 대비조차도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샤하트라를 통치해 왔던 선조들의 영혼이 안배된 ‘영혼의 무덤’이라는 것이었다.

영혼의 무덤.

물론 역대 왕들의 육신이 매장된 곳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샤하트라에서 죽은 육신은, 왕이라 할지라도 별로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기껏해야 그들이 지내 온 역사를 보여 주는 역사의 상징 정도랄까?

하지만 영혼은 달랐다.

샤하트라의 국민들은 라의 아들이었던 왕들이 죽으면 신의 곁으로 등선해 라와 함께 샤하트라를 수호해 준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샤하트라를 통치했던 왕들은 육체의 무덤과 영혼의 무덤을 따로 분리시켜 매장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매장된 무덤이 바로 이곳, ‘칸의 눈’이었다.

‘이곳이 칸의 눈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군.’

나중에 들은 사실이지만, 칸의 눈에 밤이 찾아오면 동굴 천장에 뚫린 두 개의 구멍 때문에 정말로 사람의 눈과 같은 형상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래서 샤하트라를 건국한 초대 왕 헤드자온 1세는 이곳을 영혼의 무덤으로 지정하고 자신의 영혼을 안치시킨 것이다.

헤라리온이 말했다.

“제가 가진 신물은 라의 증표라고 불리는 이 반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무덤에는 제 선친과 조부님께서 쓰시던 신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아서스를 물리침에 있어 신력이 필요하신 것이라면, 아서스를 물리칠 때까지만 선조님들의 신물을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복수를 위해, 죽은 선조들의 유품을 선뜻 빌려준다는 말.

이를 통해 헨리는 헤라리온이 얼마나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는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가시죠.”

헤라리온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앞장섰다.

헨리는 헤라리온을 뒤따랐다.

칸의 눈이라고 불리는 동굴 내부는 생각보다 깊었다.

이윽고 동굴의 끝에 다다른 두 사람.

헤라리온이 말했다.

“잠시 뒤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헤라리온의 요청에 헨리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헤라리온이 동굴의 끝이라고 여겨지는 벽 쪽으로 다가가 벽면에 오른 손바닥을 붙였다.

그리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dufjqns! wmfrjdns gksrkdnl ehltlrlf qkfkqslek!”

우웅!

짧은 주문.

그러나 헤라리온이 주문을 외운 순간, 평범한 벽면이라고 생각했던 동굴의 끝 전체에 새하얗게 빛나는 문자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자들이 발광하며 공명하는 그 순간, 헨리는 나타난 문자들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계어?’

그것은 마계어였다.

동시에 흑마술에 쓰이는 언어이기도 했고, 환술에 쓰이는 언어이기도 했다.

이에 헨리는 반가움에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또 보게 되는군.’

일전에 일어난 몇 차례의 사건들을 통해 세 군데에서 쓰이는 언어가 모두 같은 언어임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선조들의 영혼이 안배된 영혼의 무덤인데도 저러한 문자가 나타났다는 건, 어쩌면 기존에 알고 있던 세 가지 쓰임새 이외에도 추가적인 쓰임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 차차 알아 가면 되겠지.’

마법사의 지적 호기심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사리분별도 하지 못할 만큼 무지막지한 것은 아니었다.

헨리는 호기심을 잠시 뒤로 미뤄 두고 발광하는 벽면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드드드득-!

벽면이 진동하며 흙먼지들을 떨어뜨렸다.

진동하던 벽면은 곧 옆으로 갈라지며 새로운 길을 창출해 냈다.

진동이 멎었다.

벌어진 벽면 사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었다.

“가실까요?”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헤라리온의 제안에 헨리는 그제야 물러났던 걸음을 다시 앞으로 옮겼다.

그리고 벽면 사이로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는 순간.

쿵-!

헤라리온과 헨리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 * *

-키야오오오!

높은 울음소리.

그것은 드라칸이 만든 키메라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었던 마물의 울음소리였다.

울음소리를 낸 정체는 다름 아닌 샤하트라 산맥에 기거하는 ‘갑각귀’.

갑각귀는 포효했다.

갑각귀가 포효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갑각귀는 현재, 샤하트라 산맥의 ‘정상’에 올라 서 있기 때문이다.

-캬오오오!

이 갑각귀는 샤하트라 산맥의 정상에 도달한 최초의 마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샤하트라 산맥의 정상은 샤하트라의 제사장들이 만든 강력한 환술 결계로 인해 함부로 출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출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계에 발을 디딘 생물의 대부분이 결계의 환술에 현혹되어 제자리에 서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못하거나 같은 자리를 빙빙 돌았다.

그리고 그 환술은 침입자가 굶어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마물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계 내부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상황들이 그렇듯이, 특정 영역을 금기시해도 우연한 상황에 의해 금역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생긴다.

이 갑각귀가 그러했다.

이 갑각귀는 정말 우연찮은 이유로 결계 안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발을 들인 결계 내부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용기를 내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갑각귀는 샤하트라 산맥의 정상에 도착해 산맥 아래에 펼쳐진 광활한 사막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캬오오오!

갑각귀가 포효한 이유는 그러했다.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한 영역을 정복했다는 사실과 산맥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는 상쾌한 쾌감!

그러한 쾌감들이 현재의 갑각귀를 울부짖게 만든 것이다.

-캬오?

-크르릉?

그리고 갑각귀의 포효는 산맥에 존재하는 모든 마물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캬오오오!

갑각귀의 포효.

그리고 그 포효에 담긴 의미를 산맥의 마물들이 하나둘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이윽고 마물들은 질주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을 샤하트라 산맥에 갇혀 살 수 밖에 없었던, 마물들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증 어린 질주가 말이다.

* * *

“으음.”

헨리는 짧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환생한 이후로 이렇게 정신을 잃은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의 그 무엇도 헨리를 기절시킬 순 없었으니까.

“전하?”

헨리는 눈을 뜨자마자 헤라리온을 찾았다.

혹시라도 잠깐의 기절로 인해 헤라리온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정말로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꽤나 익숙한 목소리가 헨리의 이름을 불렀다.

“헨리.”

헨리는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는 헤라리온이 쪼그려 앉아 쓰러져 있는 헨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전하?”

“전하는 무슨, 나 모르겠냐?”

“예? 지금 무슨 말씀을…… 어, 어어……?”

황당한 대화.

그런데 헨리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헤라리온을 보며 전신에 소름이 쫘악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헤라리온 칸이 아니었다.

그는 헤라리온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절대 헤라리온이 아닌, 헤라리온의 아버지.

‘헤라볼라 칸 2세’였다.

“헤, 헤라볼라?”

“역시 너 맞구나.”

헤라볼라의 알은체에, 헨리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영문을 모를 상황에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그러자 헨리의 당황한 모습에 헤라볼라가 몹시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기는, 그만 정신 차리고 저쪽이나 봐.”

헤라볼라는 이내 곧 한쪽 방향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그곳에는 벽면 전체가 거울로 이루어진 ‘거울벽’이 있었다.

거울벽.

그리고 헨리는 거울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나?”

나.

헨리 모리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은 대륙 최초의 마검사이자 7서클의 경지를 이룬 연합의 사령관 헨리가 아니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인류 최초로 8서클의 경지를 이룩한 대마법사이자 마탑을 만들고 마법학교를 건립한, 그리고 골든 잭슨을 도와 대륙을 통일시키고 유라시아 제국을 건국한, 일등 공신 ‘헨리 모리스’였다.

거울 속의 자신이 죽기 전, 그것도 젊은 날의 모습으로 비춰지자 당황했다.

“어, 어떻게……!”

너무나도 큰 충격에 헨리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전생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렇게 버젓이 눈앞에 나타나 살아 숨 쉬고 있었으니까.

헨리는 이어서 양손의 손가락을 벌려 움직여 보았다.

그리고 즉시 현실을 부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뱃속에 위치한 단전, 즉 기사들이 사용하는 코어를 활성화시켜 보았다.

‘거짓말!’

그러나 뱃속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7서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끓어 넘치는, 엄청난 양의 마나가 심장에서 들끓고 있었다.

“다 놀랐냐?”

흠칫!

헤라볼라의 물음에, 헨리는 물건이라도 훔친 어린아이처럼 놀란 눈초리로 헤라볼라를 보았다.

이에 헤라볼라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역시 사람은 죽고 볼 일이야.”

“뭐?”

“뭐긴 뭐야? 정신 차려라, 헨리. 네가 멋대로 내 무덤에 들어왔으면 최소한 어리바리하게 굴지는 말아야 할 것 아냐?”

헤라볼라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헨리에게 말했다.

그런 헤라볼라의 말에 헨리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여기가 바로……!”

“그래. 환영한다, 헨리. 나의 무덤에 온 것을 말이야.”

헨리의 깨달음에, 헤라볼라는 그제야 양손을 벌려 헨리를 정식으로 환영해 주었다.

그렇다.

이곳은 칸의 눈 지하에 숨겨져 있는 왕들의 영혼이 기거하는 영혼의 무덤.

헨리는 그 영혼의 무덤에 걸맞게, 본디 남의 것이었던 몸뚱이에서 벗어나 순수한 영혼의 상태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렇군.”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자 헨리는 그저 낯설기만 했던 상황에 천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헤라볼라가 말했다.

“무서운 적응력이군.”

“됐고, 그보다 헤라리온은 어디에 있지?”

“내 아들놈은 왜? 그놈은 따로 벌을 받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그건 그렇고 고얀 놈 같으니, 분명히 왕가의 비밀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쉽게 나불거리고 다녀? 그것도 이런 놈한테?”

헤라볼라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가의 비밀을 철없는 아들놈이 불어 버렸으니 아비가 탄식할 만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헤라볼라가 말했다.

“사정은 알고 있다. 신력 때문에 이곳에 온 거라지?”

“그 사실을 어떻게?”

“여긴 내 집이야. 그리고 네가 평생 숨겨 온 사실도 옷 벗겨 내듯 홀랑 벗겨 냈는데 여기에 온 목적 정도가 대수일까?”

능청스럽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 크게 놀랄 필요는 없다.

도리어 편했다.

구구절절한 설명과 함께 그를 설득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헨리는, 전생의 헤라볼라와 꽤나 막역한 사이였다.

이에 헨리가 편하게 부탁했다.

“그럼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네. 헤라볼라, 날 도와줘.”

“싫어.”

“뭐?”

“싫다고.”

헤라볼라는 헨리의 도움 요청을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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