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68화 (268/522)

# 268

하늘이 무너져도 (3)

푸슈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저만치 날아간 것은 다름 아닌 좀비의 머리였다.

엘라곤이었다.

곁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던 엘라곤이 아이리네가 위험에 처하자마자 펀치를 날려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뀨뀨뀨!

목구멍에서 분수와도 같이 핏물을 내뿜으며 쓰러지는 좀비에게, 볼을 잔뜩 부풀리고 주먹을 내지르며 화를 내는 엘라곤.

엘라곤의 분노의 펀치가 아이리네를 살린 것이었다.

‘겉모습만 바뀐 건 아닌 모양이네.’

헨리는 똑똑히 보았다.

이빨을 들이미는 좀비에게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혀 펀치를 꽂아 넣는, 엘라곤의 경이로운 몸놀림을 말이다.

아무래도 이번 각성을 통해 진화된 것은 정령 마법뿐만이 아닌 듯했다.

헨리는 머리통이 뜯긴 좀비의 몸뚱이를 저만치 걷어찼다.

그런 다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건데…….”

“아, 아니에요! 엘라곤이 저를 구해 주었는걸요.”

-뀨뀨뀨!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는 엘라곤.

헨리는 엘라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헨리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마법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의견엔 저도 동의해요. 그렇다면 역시 남은 단서는 그것뿐인 것 같습니다.”

“그것뿐이라면……?”

“성국에서 말씀드리려 했던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마법사님, 죄송합니다. 진즉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식으로 말씀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실험이 실패하자 아이리네는 사과와 함께 성국에서 말하려 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의 서문은 사과였다.

“저희가 처음 샬롯 고원에서 아서스를 만나고 그가 종적을 감추었을 때, 저와 헤라리온 전하, 그리고 로거와 아난다는 아서스로부터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신력을, 그것도 아주 명백하고 짙은 신력을 느꼈습니다.”

“……!”

신력.

그녀의 입에서 신력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아이리네는 헨리의 놀란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 나갔다.

“처음엔 저희 모두 다 확신이 없었고 곧바로 키메라 군단과 전투를 벌여야 해서 충분히 논의할 시간 또한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나고 헤라리온 전하가 먼저 논의의 물꼬를 터 주신 덕분에 저희 모두 의견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혹시 아서스가 가진 신력이 어떤 신의 것인지도 알고 계십니까?”

“예, 이것 또한 헤라리온 전하의 추측이긴 하지만, 저희들끼린 거의 확신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어떤 신의 신력입니까?”

“저는 그 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헤라리온 전하의 말씀으론 본인이 모시던 샤하트라의 밤과 죽음의 신이라 불리우는 야누스 신의 신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누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아이리네의 입에서 언급되자 헨리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누스라 하면 아서스가 그토록 탐내던 힘이 아니었던가?

‘아서스 그놈이 기어코!’

야누스에 대한 아서스의 집착은 대단했다.

과거에 아서스는 야누스의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일부러 베네딕과 합작해 거짓 반란을 일으켰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때 분명히 베네딕을 저지하고 야누스의 증표 또한 회수했다.

‘대체 무슨 경로로 야누스의 힘을 손에 넣었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장고 끝에 헨리가 아이리네에게 물었다.

“성녀님, 그렇다면 성녀님께선 지금 저희가 좀비로 착각하고 있는 저것이, 야누스의 권능이 깃든 새로운 존재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비치는 저 존재는 분명히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다는 건, 더군다나 그 존재가 언데드가 아님에도 죽지 않는다는 건 필시 죽음의 신인 야누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그리고 아이리네가 이러한 추측을 내놓자, 헨리는 다른 질문을 내놓았다.

“그럼 성녀님의 신력으로 저자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까?”

“아뇨, 저는 야누스 신의 성력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신력도 다른 신력의 힘을 억누르거나 파훼하는 힘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그럼…… 성녀님의 말씀대로라면, 앙켈만의 시민들은 모두 죽일 수밖에 없겠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황하는 성녀.

하지만 헨리가 내놓은 의견은 제법 합리적은 추론에 의해 도출된 것이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만약 방법을 찾다 보면 시민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과, 그동안 여기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보존키 위해 이들을 얼려 두는 것에는 너무나도 많은 힘의 소비가 필요합니다.”

“…….”

헨리의 현실적이고도 날카로운 지적에 성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리네가 모시는 여신은 본디 사랑과 평화의 여신.

그렇기 때문에 흑마술에 지배받는 것도 아닌데 쉽사리 타인의 죽음을 논하기엔 그 성향이 너무나도 자애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과 대비되는 성향을 내세워 헨리를 설득하기엔, 헨리를 설득시킬 수 있을 만한 마땅한 근거가 없었다.

침묵을 유지하는 아이리네.

헨리가 말을 이었다.

“여태까진 임시방편으로 엘라곤의 힘을 사용해 왔지만……. 성녀님, 물론 성녀님께서 지금 어떠한 심정이실진 잘 압니다. 하지만 감정뿐인 동정심은 때때로 더 큰 불행을 낳기도 합니다.”

말을 내뱉은 후 헨리는 성녀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성녀는 헨리의 시선을 회피하며 힘겹게 대답을 내놓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저를 설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 방금 말씀드린 작업은 성녀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 조용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마법사님, 대신 저도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말씀이십니까?”

“예, 간단한 부탁입니다. 일을 하실 땐 하시더라도 이들을 위해 신께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그 정도야…… 오히려 그런 부탁이라면 도리어 제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역시 성녀였다.

헨리는 성녀의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감동했다.

이윽고 아이리네는 곧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할 시민들을 위해 짧게나마 기도를 올려 주었다.

기도가 끝난 후, 앙켈만에 대한 정의를 내린 헨리는 아이리네와 함께, 전에 못 다 나눈 이야기에 대해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헨리가 물었다.

“성녀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성녀님께 신력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편하게 여쭈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여쭙자면 신력을 가진 자는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상대해야 하는 겁니까?”

헨리는 질문을 하면서, 황궁에서 아서스에게 조롱받았던 일화를 떠올렸다.

헨리의 공격을 비웃음과 동시에 물리력으로부터 자유롭던 아서스의 그 신비한 힘.

그때는 그 힘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갈피조차 잡지 못 했는데 이제는 아이리네 덕분에 그 힘이 신력임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희망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 본인은 오직 복수만을 위해 대륙 최초의 마검사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지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아서스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할 뻔했으니까.

헨리가 얼마나 분했는지, 당시의 심정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아이리네가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헨리의 시선이 아이리네의 입술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

“신력은 말 그대로 신자가 신으로부터 부여 받는 성스러운 힘입니다. 그리고 신력은 대체로 자신이 모시는 신들에 따라 그 힘의 종류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 신력에 대항한다거나 하는 말은 저로선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리네의 말이 끝날 때쯤, 헨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리네의 말이 계속되었다.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과거 전 제국의 초대 황제, 골든 잭슨 님께서 대륙 정벌을 벌이실 때 저희 평화교 또한 비슷한 종교 대전을 벌인 적이 있어서 그때를 근거로 들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종교 대전.

헨리도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종교 대전이 발발한 시기는 대륙 정벌의 대부분이 끝나고 유라시아 제국을 건국할 때쯤이었다.

종교 대전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신을 모시는 종교인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세력 싸움을 뜻했다.

그들이 세력 싸움을 펼친 까닭은 간단했다.

대륙이 통일되고 제국이 건국됨에 따라 제국 또한 다른 신생 국가들이 그랬듯 ‘국교’를 선발하게 된다.

그리고 제국의 국교가 될 종교는 제국의 황제만큼이나 막강한 종교적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요약하자면 밥그릇 싸움이었다.

제국이 이미 대륙을 통일하였으니 그런 제국의 국교가 된다면 제국민 대다수가 국교를 믿을 테니까.

그리고 그 종교 대전에서 승리한 세력이 바로 현재의 평화교였다.

현재의 교황, 로스 보르기아 1세가 이끄는 평화교 말이다.

“당시 종교 대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은 대부분이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병사의 대부분이 성법을 사용할 줄 알았는데 제아무리 성법을 사용한다고 한들, 각교의 신도들을 치료하고 무장을 강화했을 뿐이지, 상대 병사의 신력을 무효화시키거나 성법을 파훼시키는 성법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저희가 다루는 것은 마법이 아닌 성법이니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성법은 본디 신자들을 수호하고 타인에 대한 봉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

그렇기 때문에 마법처럼 상대의 캐스팅이나 수인을 방해하는 성법이 없었다.

이에 헨리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골치 아파지는데…….’

믿었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는 듯하였으나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리네의 말이 끝나고 헨리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몹시 답답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불편한 표정 탓에, 아이리네 또한 말을 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잠시만요.”

“예?”

“그렇다면 성법의 근간은 신자의 수호가 목적이니, 당시의 종교 대전에서 팔라딘들은 보통의 병사에 지나지 않았겠군요?”

한참의 생각 끝에 헨리가 꺼낸 질문이었다.

성법의 근간이 신자의 수호라면, 마족과 악마를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던 팔라딘들은 민간인들을 상대로 자가 치유가 가능한, 그리고 무장의 레벨이 좀 더 상승한 보통의 병사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아이리네가 답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팔라딘들이 보통의 병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본디 악마와 마족을 상대하던 성스러운 전사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전투 방법에서 성법의 응용을 착안해 팔라딘들은 상대보다 더 큰 신력을 바탕으로 종교 대전에서 큰 힘을 발휘한…… 아!”

설명을 잇던 아이리네는 그제야 자신이 내뱉고 있는 말들에 대한 모순을 깨달았다.

헨리가 처음에 물은 것은 신력을 가진 자의 상대법.

그렇기 때문에 아이리네는 그러한 종류의 성법은 없다고 설명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신력과 신력을 가진 이들의 싸움은 다르다.

양쪽 다 신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더 강인한 신력을 가진 자가 우위에 서게 되는 법.

평화교가 종교 대전에서 승리한 까닭은 로거와 아난다라는 강력한 신력을 가진 무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리네의 깨달음에 헨리가 미소 지었다.

“해결책을 찾았군요. 아서스가 야누스 신의 선택을 받은 강인한 신력의 소유자라면, 저는 그와 대척되는 신의 선택을 받은 강력한 신력의 소유자가 되면 되는 겁니다. 어차피 순수한 무력만 놓고 보았을 때 더 강한 것은 제가 될 테니까요.”

해결책을 찾은 헨리는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잡히지 않을 것 같던 실마리가 잡히자 희망의 빛이 비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리네가 물었다.

“그럼 야누스 신과 대척되는 신이라면……!”

“야누스가 샤하트라의 밤과 죽음을 관장했다면 낮과 생명을 관장하는 신인 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서스의 사도 때문에 샤하트라의 종교인들 대다수가 죽은 지금, 저에게도 기회는 있습니다.”

잔인했지만 냉정한 판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샤하트의 왕궁은 거슬렁거라는 사도 하나 때문에 궤멸 직전까지 갔었으니까.

게다가 마침 베네딕이 죽으면서 ‘라의 검’이라고 불리는 요직 또한 부재중에 있었다.

방법을 찾았다.

헨리는 신력에 대한 대화를 마무리 지은 후 아이리네에게 말했다.

“성녀님, 그럼 혹시 부탁드리는 김에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와 함께 무슈로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성녀와 엘라곤.

헨리가 아는 최고의 치유술사들이었다.

그렇다면 헨리의 목적은 뻔했다.

무슈에 집결된 중환자들의 치료.

이에 아이리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대답을 들은 헨리가 엘라곤을 역소환했다.

그리고 아이리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번쩍!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

0